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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6:58:19

해외파/배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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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대한민국의 해외파 선수 목록
3.1. 남자3.2. 여자
4. 아시아의 해외파 선수 목록
4.1. 일본4.2. 중국4.3. 태국4.4. 베트남
5.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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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과 기타 국적의 해외파 배구 선수에 대해 설명한 문서.

2. 설명

남자 선수는 1978년 로마 세계 선수권 대회 4위한 이후[1], 여자 선수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며 해외 진출이 시작되었다.

1979년 첫 해외 진출한 선수는 모두 이탈리아 1부 리그 세리에 A1 소속 구단으로 향했다. 남자부 첫 선수는 피네토에 진출해 3년 선수 생활한 이후 주로 감독으로 경력을 쌓는 박기원. 여자부 첫 선수는 여자부 라이온스 베이비(안코나)[2]에서 2년간 뛴 조혜정이다.

한국 배구가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70/80년대에는[3] 해외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이 선수들이 지도자 경력을 쌓는 경우도 많았으나 90년대 말 외환 위기로 여러 구단이 해체된 후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독일로 진출했던 일부 경우를 제외하곤 2000년대까지 그 명맥이 끊겼다. 배구 불모지였던 나라들에 배구가 널리 보급되고 그런 나라들이 한국 배구를 추월하기 시작하여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이 점차 떨어짐에 따라 해외에서 오는 오퍼가 줄었음은 당연지사다. 해외 진출 선수 포지션은 세터가 가장 많다. 이탈리아는 79년 처음 진출한 박기원/조혜정 감독이, 독일은 71년부터 독일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던 대신중고 코치 출신 박대식 감독이, 일본은 오래 일본과 교류한 최이식 감독이 처음 사다리를 놓는 역할을 담당했다.

2008년 경기대학교 졸업 직전 신인 드래프트를 앞둔 문성민이 바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하며 국내 실업/프로 무대를 거치지 않고 해외에 진출한 첫 선수가 되었고 2009년 일본 V.프리미어 리그 JT 마블러스로 이적한 김연경 프로 배구 선수 중 해외 진출 1호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시대가 달라 비교하긴 어려우나 해외파 선수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진출순으로 각각 독일, 이탈리아, 독일, 터키에서 최정상급으로 활동한 김애희, 김호철, 이희완, 그리고 김연경이다.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20대 초중반에 해외로 나간 경우로 공격수인 김연경을 제외하고 모두 세터다.

김애희는 독일에서 선수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후 유소년 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선경합섭에서 3년을 뛴 후 만 20세인 1980년에 로호프 팀에서 독일 생활을 시작한다. 광주여상 3학년인 1977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여자 배구 선수권에 나가 우승을 하면서 세계 무대에 알려졌다. 1차 은퇴 전까지 11년 동안 여러 구단에서 뛰면서 독일리그 우승 4회, CEV 챌린지 컵 우승 3회, 그리고 5번 출전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최고 성적 3위를 기록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뛰던 1985년에는 리그, 컵 대회, CEV 챌린지 컵을 모두 우승한 트레블을 달성하고 독일 배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고, 1988년에는 리그 베스트세터 상을 수상했다. 1984~1989 사이 독일 국가대표로 활동했다. 1차 은퇴 후 2000년 만 40세의 나이에 2부 리그 구단에 복귀해 2년간 뛰며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선수 초기시절 독일에 가서 귀화했고 아우크스부르크 시절 감독이던 페테르 괴츠와 결혼해 계속 독일에서 활동했기에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선수 은퇴 이후에는 독일 최남단 알프스 도시 손토펜에서 클럽 코치를 거쳐 현재는 유소년팀 지도자로 일하고 있다.

김호철은 이탈리아에서 선수이자 감독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대학과 군 배구단을 거쳐 실업팀에서 불과 1년을 뛴 후 만 26세인 1981년 이탈리아로 간다. 첫 클럽 파르마에서 3년 있는 동안 리그 우승 2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3위 1회를 하며 이탈리아 리그와 챔피언스 리그 MVP에 선정되었다.[4] 이후 84년 LA 올림픽 후 한국에 돌아와[5] 3년을 보내고 만 32세에 다시 지도자 수업을 겸해 이탈리아 트레비소 팀으로 갔다.[6] 이듬해 88년 서울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하고 만 40세까지 선수 생활 후 첫 이탈리아 구단이던 파르마에서 1995년 감독 경력을 시작한다. 이어서 트레비소를 이끌며 리그, 챌린지 컵 우승을 하고 이탈리아 국가대표 2군 등을 거쳐 이탈리아에서 9년간 감독 생활을 한다.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캐피탈과 국가대표 등 감독직을 맡았고 한동안 물러나 있다가 2021 IBK기업은행 감독을 맡았다.

이희완도 대학과 군 배구단을 거쳐 실업 구단에서 3년을 뛴 후 만 25세인 1981년 파더보른을 시작으로 독일에 진출한다. 한국에서 부상으로 국가대표에서 제외되었으나 독일에 진출한 이후 재활에 성공 18년간 선수 및 감독으로 클럽 팀들을 리그 우승 4회 준우승 9회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만 29세이던 1985년 독일 배구 올해의 선수가 되고 이후 9년간 연속으로 리그 베스트 세터상을 수상, 배구의 카라얀[7]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99년 클럽을 떠나 7년간 독일 여자 국가대표팀 전임 감독으로 좋은 성적을 냈다.[8] 2006년 감독직을 후임 귀데티에게 넘기고 25년 만에 일시 귀국해 GS칼텍스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안타깝게도 다음해 암투병을 시작하게 되고 2011년 독일 레버쿠젠에서 사망한다. 한국내 활동이 크지 않아 단신 뉴스로 처리되었지만 독일배구협회와 국제배구연맹은 각각 공식 추도문을 발표했다.

김연경은 한국 프로 리그에서 4년을 뛰며 첫 해를 포함해 팀을 세 번 우승시킨 후 일본으로 진출 2년만에 다시 팀을 우승시키고 만 23세에 터키로 진출한다. 터키에서 뛰는 8년 동안 소속 구단에 리그 우승 2회 준우승 3회를 안겨 줬다. 진출 첫 시즌에 유럽 모든 상위 리그 우승 구단과 최상위권 구단이 참가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으로 이끌며 여자부에서는 동양인 최초로 MVP를 수상했다. 여름에 이어지는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팀은 4위에 그쳤지만 MVP를 수상해 선수 경력 중 가장 화려한 수상을 한 해를 기록했다. 유럽에 있는 동안 총 6회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는 활약을 했고 페네르바체에서 엑자시바시로 팀을 바꾸는 과정인 2017-18 시즌에 중국 리그 상하이 팀을 거첬다. 2020년 코로나 확산 상황을 피하며 올림픽 대비를 위해 한국에 돌아와 한 시즌을 뛰고 2021-22 시즌엔 한 번 더 중국 리그 상하이 팀에서 활약했다.

김연경은 국가대표 동료들에게 해외 진출을 장려하였으며 실제로 2012 런던 올림픽 4강 신화 이후 몇몇 선수가 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9] 실제로 김사니가 2013년 아제르바이잔 리그의 로코모티브 바쿠에서 1년간 뛰었으며 2020년까지 마지막 해외파 선수였다.[10] 2021년 한국 여자 배구 최고의 세터와 레프트였던 이다영, 이재영 자매가 학교폭력과 그 외 여러 논란으로 자폭하면서 흥국생명에서 퇴출되었고 굶주리며 살 수 없었는지 김사니에 이어 해외 리그로 도망가 버리며 그 다음 해외파 선수가 되었다.

사실 V리그 KOVO 신인선수 드래프트 제도에 따라 V-리그에서 6시즌을 뛴 다음에야 FA자격을 얻게 되는 족쇄가 있어 국내 배구 선수들은 해외에서 오퍼가 들어와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국내 구단들이 본인들의 성적을 중시하므로 뛰어난 선수들을 굳이 해외에 보내려 하지도 않는다. 예로 전광인에게 이탈리아 세리에 A1 리그의 모 팀에서 두 달만 빌려 달다는 제의가 들어온 적이 있었으나 한전이 거부했다.[11] 또한 김연경 2005~2006 KOVO 여자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음에도 2022-23 시즌이 끝나서야 첫 FA 자격을 얻었다.

대한배구협회는 한국 배구 선수를 해외 무대에 보내면 연대 기여금(Solidarity fee)을 받을 수 있었으나 오히려 다수의 외국인 선수를 받아들이면서 적지 않은 돈을 썼다.

3. 대한민국의 해외파 선수 목록

3.1. 남자

이름 나이 포지션 소속 구단 비고
이선구[12] 1952년생 아웃사이드 히터 UAE 클럽(1978~1979) 코치 역할
박기원 1951년생 미들 블로커 피네토 (1979~1981) 세리에 A1
이인 1952년생 미들 블로커 카타니아 (1980~1983) 세리에 A1
강만수 1955년생 아웃사이드 히터 알 자지라 (1980~1982)
도레이 (1987~1992)
UAE 리그
일본 리그 1부
김호철 1955년생 세터 파르마(1981~1984)[13]
트레비소(1987~1990)
스키오(1990~1995)
세리에 A1
세리에 A2→A1
세리에 A2→A1[14]
이희완 1956년생 세터 파더보른(1981~1985)[15]
본 (1985~1987)
레버쿠젠 (1987~1991)
부퍼탈 (1991~1995)
분데스리가 1부
이성희 1967년생 세터 부퍼탈 (1998~2000)[16] 분데스리가 1부
문성민 1986년생 아포짓 스파이커 VfB ZF 프리드리히스하펜 (2008~2009)
할크방크 앙카라 (2009~2010)
분데스리가
에펠러리기
윤봉우 1982년생 미들 블로커 울프독스 나고야 (2020~2021) V.리그 1부
구본승 1997년생 아웃사이드 히터 하스 메가 스타즈 (2022~ ) 몽골리안 프리미어 리그
정태현 1997년생 아웃사이드 히터 나라 드리머스 (2022~ ) V.리그 3부
송준호 1991년생 아웃사이더 히터, 아포짓 스파이커 팔렘방 뱅크 섬셀 바벨 (2023) 인도네시아 프롤리가, 임대
이우진 2005년생 아웃사이드 히터 베로 발리 몬차 (2023~ ) 세리에 A1
송민근 2000년생 리베로 ACH 발리 ( 2023~ ) 슬로베니안 리그, 임대

3.2. 여자

이름 나이 포지션 소속 구단 비고
조혜정 1953년생 레프트 안코나(1979~1981) 세리에 A1
김애희 1960년생 세터 로호프(1980~1982)
포이에르바흐(1982~1984)
아우크스부르크(1984~1986)
로호프(1986~1989)
스트라우빙(1989~1992)
아우크스부르크-호크졸(2000~2002)
분데스리가 1부
윤영내 1951년생 세터 도요보(1981~1983)
바리(1985~1986)
일본 리그 1부
세리에 A1
최은희 1955년생 레프트 안코나(1981~1982) 세리에 A1
임경숙[17] 1959년생 세터 산라자로(1981~1982)
모데나(1982~1983)
세리에 A2
변경자 1956년생 세터 안코나(1982~1986,1987~1988)[18] 세리에 A1
임해숙 1955년생 세터 포이에르바흐(1982~1984) 분데스리가 1부
정현임 1959년생 레프트 쿠라보(1982~1984) 일본 리그 2부
이순열 1958년생 라이트 모데나(1983~1985) |세리에 A1
김애주 1958년생 세터 쿠라보(1983~1990) 일본 리그 2부
최정숙 1964년생 세터 도요보(1983~1985) 일본 리그 1부
심순옥 1958년생 센터 쿠라보(1984~1985)
안코나(1985~1986)
일본 리그 2부
세리에 A1
정화숙 1960년생 레프트 가네보(1984~1985) 일본 리그 1부
심현숙 1961년생 세터 가네보(1984~1986) 일본 리그 1부
황둘선 1961년생 세터 도요보(1984~1987) 일본 리그 1부
원영례 1960년생 레프트 페루자(1985~1987) 세리에 A1
진춘매 1960년생 라이트 페루자(1987~1988) 세리에 A2
곽선옥 1960년생 라이트 로호프(1987~1988[19], 1990~1991) 분데스리가 1부
이문희 1962년생 세터 도요보(1987~1989) 일본 리그 2부
이경애 1963년생 센터 도요보(1987~1988) 일본 리그 2부
제숙자 1963년생 센터 도요보(1989~1991) 일본 리그 1부
이영선 1962년생 센터 바젤(1991~1995) 스위스 리그 1부
최은영 1974년생 레프트 아우크스부르크-호크졸(1997~1999) 분데스리가 2부
주순란 1974년생 센터 로호프(1998~2000) 분데스리가 2부[20]
박수진 1979년생 (미상) 아우크스부르크-호크졸(1998~2000) 분데스리가 2부
오옥주 1979년생 (미상) 아우크스부르크-호크졸(1998~2000) 분데스리가 2부
김연경 1988년생 레프트 JT 마블러스 (2009~2011)
페네르바흐체 SK (2011~2017)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2017~2018)
엑자시바시 비트라 (2018~2020)
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 (2021~2022)
V.프리미어리그
술탄라리기
중국 슈퍼 리그
김사니 1981년생 세터 로코모티브 바쿠(2013~2014) 아제르바이잔 리그

4. 아시아의 해외파 선수 목록

4.1. 일본

4.2. 중국

4.3. 태국

4.4. 베트남

5. 관련 링크



[1] 지난 50여 년 해외에 진출한 남자 선수 총 7명 중 5명이 78년 세계 선수권 대표팀 출신이다. [2] 라이온스 베이비는 당시 스폰서였던 회사명이기에 변하지 않는 클럽 소재 도시 이름 안코나로 부르기로 한다. [3] 또한 해외에 비해 국내의 배구 환경이 좋지 않아 해외 진출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기도 했다. [4] 3연속 이탈리아 리그 MVP를 했다는 보도가 있으나 다른 기록으로 교차 확인되지는 않는다. [5] 84년 9월 현대차서비스 입단 보도 기사 [6] 국내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 해도 내년 말까지가 한계다.어차피 지도자 수업을 쌓으려면 배구 선진국서 공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보도 기사 중 김호철 인터뷰 [7] 세계 최고 중 하나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종신 지휘자로 20세기 클래식의 황제라 불렸다. [8] 치열한 유럽 예선을 뚫고 2000년과 2004년 연속 올림픽 진출. 2003 유럽 선수권 3위, 2002 FIVB 월드그랑프리 3위. [9] 한때 배구 팬 사이에서 양효진은 터키 리그에서, 한송이는 러시아 리그에서 오퍼가 들어왔다는 썰이 돌기도 하였으나 믿거나 말거나. [10] 참고로 김사니와 동 연령대의 정대영, 한유미 등 '81동기'들은 1999년 FIVB 청소년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기록해 미국의 여러 대학교 여자 배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한유미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나무위키 문서를 읽으며 밝힌 방송분을 토대로 추측하면 당시 81동기들은 그냥 미국 소재 대학교가 아니라 NCAA 여자 배구 리그 상위팀에서 오퍼를 받은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유미의 경우 이때의 기억 때문에 개인 두 번째 FA 이후 틈만 나면 외국 리그에 진출하려고 시도했다. [11] 보도에 나온 내용을 조합해 보면 해당 구단은 몰페타(Molfetta)로 특정된다. 전년도 A2 리그 2위를 해서 A1 리그로 승격되었으며 2013-14 시즌 중 두 명의 용병을 프랑스와 브라질 클럽에서 영입해 12개 팀 중 10위를 기록한다. 전광인의 경우 루키 시즌인 2013-14 시즌에 잠깐 V-리그에서 뛴 팀 동료이자 월드클래스 스타였던 레안드로 비소토가 외국 진출을 독려하기도 했다. [12] 해외 진출 선수보다는 지도자에 가깝다. 78년 UAE의 이름이 명확하지 않은 클럽에서 코치 역할의 선수로 잠시 있었고 그 다음해에 정식 코치로 진출한다. [13] 첫해 리그 우승, 둘째 해 리그 우승에 챔피언스 리그 3위, 마지막 해에 리그 준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다. [14] 2부 구단을 한 해 만에 1부로 올려 놓는다. [15] 대신중고교 코치 출신 박대희 감독이 1971~1981년 독일 여자 국가대표 감독을 거쳐 1981~1985년 파더보른을 맡고 있었다. 대신중 시절 가르친 이희완을 비롯해 많은 선수를 독일에 초청한다. [16] 외환 위기로 고려증권 구단이 갑자기 해체되어 옮긴 경우 [17] 김호철과 결혼해 같이 이탈리아로 이주 [18] 진출 첫 해에 리그 MVP가 된다. 이후에도 계속 이탈리아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나 자세한 기록이 없다. [19] 리그 우승 [20] 1999년 2부 우승으로 2000년 1부 승격 [21] 기사 [22] 기사1, 기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