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핑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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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핑 郎平 | Lang P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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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e2910> 출생 | 1960년 12월 10일 ([age(1960-12-10)]세) |
화베이 톈진시 | |
국적 |
[[중국| ]][[틀:국기| ]][[틀:국기| ]] |
민족 | 만주족 |
학력 |
베이징사범대학 (
영어과 /
학사) 뉴멕시코 대학교 ( 체육학 / 석사) |
신체 | 신장 184cm, 체중 71kg |
포지션 | 아포짓 스파이커 |
국가대표 |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1981~1990) |
감독 |
뉴멕시코 대학교 배구부 (1987~1989, 1992~1993) 볼리 모데나 (1999~2002, 이탈리아) 아시스텔 노바라 (2002~2004, 이탈리아) Pieralisi Jesi (2005, 이탈리아) 텔레콤 앙카라 (2008~2009, 터키) 광둥 에버그란데 (2009~2014, 중국) |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1995~1998) 미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2005~2008)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 (2013~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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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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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국가대표 배구 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쇠망치 (Iron Hammer).현역 시절 포지션은 아포짓 스파이커로 80년대 중국 배구 핵심 공격수로 활약하며 남자부 지바와 함께 여자 배구 역사상 유일하게 올림픽, 세계선수권, 월드컵 3개의 메이저 대회 우승, MVP를 수상한 선수다.
또한 2013년부터 중국 대표팀 감독을 맡으며 2016 리우 올림픽에는 감독으로도 올림픽 우승을 달성하며 미국 대표팀 감독인 카치 키랄리와 함께 유이하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금메달을 딴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톈진 출신으로 대약진운동 당시 제대로 못 먹어서 매우 허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릴 때는 어머니가 매일 좁쌀을 먹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스포츠광이었고 랑핑을 데리고 자주 배구경기에 관람갔다고 한다. 커가면서 만주족 특유의 강인한 피지컬을 갖추게 되어 184cm의 장신이 되었다.문화대혁명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인 1973년 베이징 노동자 체육관 체육학교의 배구부에 들어갔고, 1976년 베이징팀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1978년 국대에 선발되었다.
중국 여자 배구는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해체 상태였고 국제 대회에는 1980년대부터 고개를 내밀지만, 랑핑을 비롯한 골든제네레이션 멤버들이 워낙 화려했다. 그리하여 1981년 여자배구 월드컵을 시작으로 중국 여배팀은 1982년 세계 선수권대회와 1984 LA 올림픽에서 모두 우승,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게 되었다. 랑핑은 1981년 월드컵에서 MVP를 수상하여 세계적 선수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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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올림픽 우승 당시 랑핑, 가장 왼쪽에 1번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인물이다 |
1986년의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다시 우승한 후[1] 국대 은퇴를 선언했다.
이어 이탈리아 리그로 진출해 모데나(Modena)에서 뛰었고, 1989년 귀국후 잠시 국대에 복귀했다가 같은 배구선수인 남자친구와 결혼, 1992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선수로서는 매우 빠른 26세에 국대은퇴를 했는데, 아마도 부상이 문제였던 듯 하다. 미국 체류시 고관절 대체 수술을 받아서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강스파이크를 잘 때려서 별명이 '쇠망치' 였다.
3. 감독 경력
1987년 중국의 전직 배구 선수 바이판과 결혼 후, 미국의 뉴멕시코 대학교에 진학, 석사 학위를 따고 배구팀의 수석 코치로 일했다. 미국에서 바이랑(리디아 바이)라는 이름의 딸을 출산했다. 이때부터 약 15년간 미국에서 거주하였다. 리디아는 스탠퍼드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1995년 선수 출신 첫 남편 바이판과 이혼했다. 2016년 왕위청이라는 역사학과 교수와 재혼했다.
1995년 중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고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 1998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으나 건강의 이유로 사퇴했다. 그 해, 이탈리아 여자 배구 리그의 모데나에서 감독직을 역임, 많은 우승컵을 들며 FIVB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되었다.
2005년 미국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당시 예선전에서 미국은 중국을 3-2로 이겼고, 이 경기에 당시 조지 부시와 후진타오가 참석하였다. 그 해, "가족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싶다"며 사임하였고 터키 여자 배구 리그의 텔레콤 앙카라를 이끌었다.
2012년에 광둥 에버그란데에 부임하여 귀국했다.
2012년 중국은 충격적으로 올림픽 8강에서 탈락했다. 그리하여 랑핑이 2013년부터 다시 자국의 국가대표 감독을 2번째로 맡았다. 랑핑의 초반은 2008년 이후부터 계속된 중국 여배의 암흑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약체에게도 계속 패했다.
랑핑의 중국 국대 감독 데뷔무대였던 2013년 아시아 여자 선수권에서는 결선토너먼트에서 이전에 쉽게 이겼던 태국(4강)과 한국(3,4위전)에도 패해 4위에 그쳤고, 랑핑은 팬들로부터 욕을 엄청나게 먹었다. [2]
하지만 이후 중국 배구협회의 여러 반대를 누르고 국대 선발 시스템을 개혁했다. 원래 중국 여배 국대는 처음부터 소수정예 엔트리를 뽑아 훈련하는 시스템이었지만, 랑핑의 제안으로 100여명의 상비군을 소집해 함께 훈련한 후에 대회 직전 엔트리를 구성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또한 중국 배구협회는 자신들이 세계최강을 자부했기 때문에 이전까지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지 않았지만, 랑핑은 과감히 외국인 코치를 데려왔다.
이런 시스템 개혁 때문에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붙박이 주전이었던 쩡춘레이가 탈락하고, 신예 궁샹위가 선발되어 중국 배구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랑핑은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반대론자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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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우승 당시 랑핑,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우승 감독이 되었다 |
이렇게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수와 감독 신분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인물이 되었다. 운도 상당히 좋은 편인데, 2016년 조별예선 때는 2승 3패로 조4위로 가까스로 8강 결승 토너먼트에 올랐으나 토너먼트에서 같은 조 2, 3위였던 네덜란드, 세르비아를 각각 꺾고 금메달을 땄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으나, 주포 주팅이 고질적인 손목 부상 때문에 제대로 플레이 할 수 없었고, 8강을 가리는 예선에서조차 탈락했다. 이 때문에 책임을 지고 감독에서 사임했다.
4. 주요 경력
선수 | ||
올림픽 | ||
<colcolor=#222> 금메달 | <colbgcolor=#ffffff,#191919> 1984 로스앤젤레스 | <colbgcolor=#ffffff,#191919> 여자 배구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82 페루 | 여자 배구 |
은메달 | 1990 중국 | 여자 배구 |
월드컵 | ||
금메달 | 1981 일본 | 여자 배구 |
금메달 | 1985 일본 | 여자 배구 |
감독 | ||
올림픽 | ||
은메달 | 1996 애틀랜타 | 여자 배구 |
은메달 | 2008 베이징 | 여자 배구 |
금메달 | 2016 리우 | 여자 배구 |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98 일본 | 여자 배구 |
은메달 | 2014 이탈리아 | 여자 배구 |
월드컵 | ||
동메달 | 1995 일본 | 여자 배구 |
동메달 | 2007 일본 | 여자 배구 |
금메달 | 2015 일본 | 여자 배구 |
금메달 | 2019 일본 | 여자 배구 |
5. 개인 수상
- 1982 FIVB 세계 선수권 MVP
-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MVP
- 1985 FIVB 월드컵 MVP
- 1996 FIVB 올해의 감독상
6. 기타
-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당시 중국 CC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연경에 대해 칭찬했다. #
랑핑: 우리는
김연경의 기술적인 면을 많이 배울 필요가 있어요. 또한 그녀가 경기 중 자신의 팀을 하나로 끈끈하게 모을 수 있는 능력, 이런 리더의 모습은 정말 보기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만약 김연경과 주팅, 두 선수 모두 당신의 제자가 된다면?
랑핑: 그럼 중국팀이 틀림없이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겠죠.
기자: 만약 김연경과 주팅, 두 선수 모두 당신의 제자가 된다면?
랑핑: 그럼 중국팀이 틀림없이 다시 세계 챔피언이 될 수 있겠죠.
- 이외에도 김연경이 상하이 유베스트에서 뛸 때(2017-18) 중국언론과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랑핑 감독이 당신을 자주 칭찬한다"고 전하자 김연경은 "랑핑 감독님은 제가 가고 싶은 길을 보여주고 있고, 잘 걷고 있는듯 하다"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 선수시절 당한 부상 때문에 고관절이 안좋은 듯, 2017년 고관절 대체 수술을 받아서 한동안 후배 선수들과 함께 재활을 했다.
- 미국에서 15년간 거주했음에도 중국 국적을 유지할 정도로 애국심이 강하다고 한다. 다만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딸 리디아 바이는 미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고 애초에 이쪽은 태어나서 쭉 미국에서만 자라왔기때문에 미국인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평소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영어로 인터뷰한다.
- 2020년 1월 공리가 주연을 한 "탈관(奪冠)"이라는 랑핑의 전기 영화가 개봉한다. 비록 둘이 서로 얼굴은 많이 닮지 않았지만 대체로 대배우답게 랑핑의 특징을 잘 살려 연기했다는 평이 많으며 랑핑 본인 또한 이러한 공리의 연기를 보고 자신을 매우 잘 연기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극 중 젊은 현역 국가대표 시절의 랑핑은 딸 리디아 바이가 직접 연기를 하였는데, 처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 리디아 바이는 자신은 배우도 아니고 배구선수도 아닌데[3] 왜 이런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해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인 진가신은 바이랑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젊은 시절의 랑핑을 연기하지 못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에 준강제로(?) 엄마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 현역만큼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는 못하지만 최근에도 매년 1회 정도는 예능이나 다큐에 출연하고 있다. 2024년 초신성운동회5에 출연하기도 했다. #
7. 관련 문서
[1]
이 대회는 체코 프라하에서 1986년 9월 2일부터 13일까지 열렸는데, 그래서 랑핑은 9월 20일부터 시작된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는 불참했다. 아시안게임은 5개팀(한중일+태국+인도네시아)이 참가한 풀리그로 치러졌는데, 중국 여배팀은 세계선수권에서 격전을 치르고 1주일 만에 다시 아시안게임에 참가했음에도 랑핑 없이도 다른 팀에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우승했다. 사실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수준이하의 팀이어서 그렇다고 해도 한국과 일본팀은 절대 만만한 팀이 아니었는데, 중국은 올림픽 우승멤버가 고스란히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우승을 했다. 한국팀은 동메달. 일본이 은메달.
[2]
한국이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딴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중국 여배는 2군을 내보냈다. 랑핑이 아니라 2군감독인 쉬젠더
최용수를 많이 닮았다 감독이 지휘했다. 다만 중국 2군은 U-23이하의 어린 선수들 위주로 선발했고, 당시 아시안게임 멤버였던
장창닝,
딩샤,
위안신웨는 2015년부터 1군 주전으로 발돋움 했고 리우 올림픽 우승멤버이기 때문에, 2군이라도 아주 형편없는 팀은 아니었다.
[3]
다만 엄마의 끼를 완전히 안물려받은 것은 아닌지
스탠퍼드 대학교 재학 시절 대학 대표팀 배구선수로 활약한 적이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