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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2 16:20:19

해스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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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노르드어: Hásteinn
여러 기록에서: Haastén, Haesten, Hæsten, Haestenn, Hæstenn, Haesting, Hæsting, Anstign, Anstignus, Alsting, Afflengo, Hastingo

1. 개요2. 행적3. 기타

1. 개요

9세기경 전 유럽에서 활동했던 바이킹 무리의 두목이다. 오늘날 바이킹하면 떠올리는 이미지 즉, 뿔투구를 쓰고 도끼를 휘두르며 용머리배를 타고 신출귀몰하며 해안에 상륙하는 무자비한 약탈자의 이미지를 구축케한 인물이다. 실제로 해스테인을 제외하면 다른 유명한 바이킹들은 주로 탐험가나 개척자이거나 침략을 하더라도 단순 약탈이 아닌 정착이나 정복을 위한 침략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 행적

기록을 남기지 않는 바이킹의 특성상 초기 생애는 알려져있지 않으며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따르면 덴마크계 바이킹인 데인족이었다고 적고 있다. 이하 내용은 《앵글로색슨 연대기》의 내용이다.

859년 이전 서프랑크 왕국에 대한 대대적인 바이킹의 습격에 깊게 관여했고, 이후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루아르 강 하구 습지대에 은거하여 추가 약탈을 노렸다.

859년에서 862년 사이에는 지중해 연안 지역을 약탈했다. 859년 루아르 강 하구를 출발하여 아스투리아스 왕국 코르도바 칼리파국을 습격했으나 격퇴당하여 실패했고, 퇴각 중에 알헤라시스를 약탈하여 모스크를 불태웠다. 지브롤터 해협 건너편 이드리스 왕조의 영토에 상륙하여 북아프리카 연안을 약탈하고 다시 해협을 건너 발레아레스 제도와 루시용을 털어먹었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를 떠나 프랑스 남부를 털어먹고 론 강 하구에서 겨울을 난 후 이탈리아 반도에 상륙하여 제노바 근방의 루나를 공격했는데 성곽은 견고하고 방비가 삼엄하여 쉽사리 함락시키지 못했다. 결국 격전 끝에 해스테인은 부상을 당했는데 그는 이를 이용해 부하들을 시켜 자신이 죽었으며, 남은 무리는 기독교로의 개종을 원하고, 해스테인도 죽기 직전에 기독교식 장례를 원했다고 적군에게 말하도록 했다. 루나 측에서 이에 응했는데 해스테인은 죽은 척 위장한 후 관에 실려 교회 안에 잠입했다. 장례 미사가 진행되자 해스테인은 관에서 뛰쳐나와 사제의 목을 베고, 교회는 물론 루나를 철저하게 약탈했다. 약탈물이 어마어마하여 바이킹 무리는 루나를 로마로 착각했다고 한다. 이후 해안을 따라 피사를 약탈하고 동로마 제국도 찍먹한 후 기수를 돌려 루아르 강으로 귀환했다. 오는 길에 팜플로냐도 털어먹었다.

866년 인근 브르타뉴의 왕이었던 살로몬과 동맹을 맺고 서프랑크 왕국을 공격했다. 866년 9월 15일, 브리샤트 전투에서 네우스트리아 백작 로베르를 죽이고 승리했다. 867년에는 부르쥬를 약탈했고 868년엔 오를레앙을 공격했다. 872년엔 루아르 강을 거슬러 올라가 앙주를 일시적으로 점령하기도 했다. 873년 10월에 결국 서프랑크의 왕 샤를 2세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882년 비만왕 카를 3세에 의해 루아르 강 하구에서 쫓겨나게 되었는데 오히려 센 강으로 이동하여 파리를 포위하고 근방에 주둔했다. 이후 해스테인은 잉글랜드로 눈을 돌렸다.

892년 불로뉴에서 영국해협을 건너 잉글랜드의 켄트에 상륙했다. 해스테인은 인근 해안을 일시적으로 점령했으나 웨식스 왕국의 군주인 알프레드 대왕의 저지로 큰 소득을 얻지 못한채 자신의 두 아들에게 세례를 준다는 조건으로 평화조약을 맺고 켄트를 떠나 에식스로 이동했다.

893년 웨식스를 재침공했으나 판햄 전투에서 알프레드 대왕의 아들이었던 에드워드에게 패배했다. 이후 여러 번 침공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격퇴된 후 최종적으로 896년 이후 기록에서 사라졌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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