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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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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훈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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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000> 1986~1990 1991~1993 1994~1995 1996 1997~2000
유승안
이강돈
강정길 장종훈 강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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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훈 김종석 임수민 이영우 이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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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철 신경현 한상훈 김태균 고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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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민 (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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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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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람 채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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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임주택
(1996~2001)
한상훈
(2003~2004)
권영근
(2005)
한화 이글스 등번호 13번
맹진국
(2003~2004)
한상훈
(2005)
최주녕
(2007)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권영근
(2005)
한상훈
(2006~2008)
강동우
(2009~2013)
한화 이글스 등번호 16번
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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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훈
(2011~2013)
정민혁
(2014~2015.6.27.)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강동우
(2009~2013)
한상훈
(2014~2015)
안승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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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야구부 No.
한상훈
韓尙勳 | Han Sang-hoon
출생 1980년 6월 3일 ([age(1980-06-03)]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78kg[1], A형[2]
학력 화곡초 - 신일중 - 신일고 - 경희대[3]
포지션 2루수, 유격수, 3루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1999년 2차 6라운드 (전체 42번, 한화)[4]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3~2015)
지도자 육군사관학교 야구부 코치 (2020~)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8~2010)
등장곡 YB- 나는 나비
응원가 해바라기 - 뭉게구름[5]
Paul ANKA - Oh! Carol[6][7]
동요 - 겨울바람[8][9]
종교 개신교[10]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5.1. 별명5.2. 손시헌의 라이벌?5.3. 한집사
6. 연도별 성적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한화 이글스의 전 내야수. 주포지션은 2루이지만 유격수로도 자주 출장했다.

선수 초년기에는 상황에 따라 3루로 뛴 적도 있으며,[11] 좌익수로 나온 적도 있어 멀티 포지션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1년 이후 무주공산이 되어버린 2루에 안착하며 거의 2루수로 출장하였고, 2014년에는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가 영입되며 유격수로 많이 출장했다.현재 유소년팀 HBC팀의 감독으로 지내고 있으며 제9회 국토정중앙양구대회애서 우승을 하였다.

2. 선수 경력

한상훈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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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한상훈/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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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시절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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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이후

칰갤에 의하면 사실상 선수 생활을 접은 상태에서 '한상훈 베이스볼클럽’이란 간판을 내걸고 사회인 야구 지도강사 겸 감독을 했다. 이만수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같은 크리스찬이라 그런지 통하는 게 있는 모양. 이만수 전 감독에 의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받았던 듯하다. 피칭머신 기증.

2020년 6월 이만수 전 감독이 육군사관학교 야구부의 총감독으로 위촉되었다는 소식과 동시에 한상훈도 육사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며 이만수와 함께 재능기부를 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실제로 육사 관계자들과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외에 HBC 유소년야구단의 감독으로 활동한다.

4.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수비형 내야수로, 수비능력 하나만큼은 탁월해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김경문 감독은 한상훈이 2할5푼만 쳤어도 대표팀에 뽑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허나 한상훈의 커리어하이는 2011년 2할6푼9리며, 김경문 감독이 이 말을 했던 시기의 커리어하이는 2007년 2할5푼9리다. 그러나 커리어 내내 100안타를 넘긴 시즌이 단 한 번 뿐인데다가 1할을 친 시즌도 2번이나 있고, 결정적으로 한창 베이징 올림픽 엔트리를 구성하던 2008년에는 전설의 한삼푼시대였다.[12] 그만큼 타격이 발목잡던 시절에도 수비력 하나만큼은 인정받고 있었던 선수.

소집 해제 이후에는 선구안이 2008년 이전에 비해 나아져 2011년에 3할 중반대의 준수한 출루율을 자랑했고, 2012년에도 볼넷을 적은 출장 속에서 50개 가까이 골라내며 타출갭이 무려 0.128에 달했다. 커리어 후반에는 2루수들 중 가장 저평가된 선수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수비와 선구안에서는 확실한 모습을 보였다. 커리어 하이 시즌인 2013년에는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2루수 중 출루율 1위였으며, OPS도 정근우, 오재원만이 그의 앞에 있을 뿐 무려 서건창, 안치홍보다도 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다만 날렵한 이미지와는 달리 도루 능력은 좋지 않았고, 실제로 통산 52도루 37실패로 성공률이 60%가 채 되지 않는데다가 16도루를 기록한 2011년에도 10실패로 61%에 그쳤다.

5. 여담

5.1. 별명

가장 널리 불리는 별명은 짱구아빠.(줄여서 '짱빠'라고 한다.)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아빠와 인상이 비슷하다고 붙여진 별명으로 면도를 해도 수염이 금방 자라는 편이라고 한다. 그 외에 한화 이글스가 승리할때면, 골을 넣은 박주영처럼 무릎 꿇고 기도를 하고는 해서 한개독이란 별명이 있다.주장할 때 마킹하고 나온 유니폼의 C는 캡틴(Captain)의 C가 아니라 크리스챤(Christian)의 C라 카더라...[13][14]

2008년초에 한창 삽질하던 때의 별명은 한삼푼. 실제로 3푼대 타율이었고.. 2푼8리로 바닥까지 찍은 후에 뒤늦게 분발하긴 했지만 시즌 성적은 멘도사 타율... 다만 전체적으로 통산 타율에 비해서 출루율이 꽤 높은 타자. 그렇다고 출루율이 정말 선구안이 좋은 S급에 비하면 대단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통산 타율은 2할대 초반인데 출루율은 3할대 초반으로 확실히 높다. 그리고 군대갔다 돌아온 이후에는 출루율로 보면 0.350이상은 기대해줄 수 있는 괜찮은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1년 9월 22일에는 마지막 타석에서 우측 담장을 넘긴 홈런을 터뜨렸는데, 스스로도 홈런 친 것에 놀랐는지 홈에 들어오면서 '와아, 대-박' 이라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나갔다. 이 직후 새로 '한대박' 이라는 별명을 득템.

5.2. 손시헌의 라이벌?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손시헌이 자신의 라이벌로 한상훈을 지목한 적이 있다. 둘 다 발이 빠른 편이 아니지만 그만큼 강한 어깨로 커버하는 수비 스타일도 비슷하다.[15]

5.3. 한집사

파일:external/upload.cts.tv/%ED%95%9C%EC%83%81%ED%9B%88%20%EC%A7%91%EC%82%AC%20%EC%9D%B8%ED%84%B0%EB%84%B7%20copy.jpg
MC 최선규도 보인다.[16]

독실한 개신교 신자. 집사다. CTS의 간증 프로 '내가 매일 기쁘게'에도 출연했었다. 제목이 <은혜의 홈런 잡아내는 내야수>(...) 여기서 다시 볼 수 있다. 한화팬이라면 한화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수비 위치에서 무릎꿇고 기도 하는 한상훈의 모습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한화 이글스 팟캐스트 방송 이글스캔들에 의하면 2013년 시즌 후 총액 13억에 FA 계약을 체결한 후 이 금액을 십일조로 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다. 정확히는 일시불로 받은 계약금 3억 원 중 3천만 원을 냈다고 한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간증을 하기도 했다. 앞에 나이스 플레이를 한 동영상을 틀어주면서 명품선수라 치켜세워주는데 본인도 오글거리긴 하는 듯. #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3 한화 95 270 .196 53 9 1 1 18 28 6 19 .289 .249
2004 63 147 .197 29 4 0 0 4 15 1 8 .252 .239
2005 94 168 .214 36 4 1 1 7 19 1 17 .268 .286
2006 95 161 .242 39 7 0 1 11 14 2 16 .304 .311
2007 118 313 .259 81 15 1 2 22 33 6 35 .332 .333
2008 122 314 .217 68 13 2 0 32 29 5 34 .271 .293
2009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0
2011 131 398 .269 107 12 3 3 39 49 16 52 .337 .352
2012 112 272 .235 61 11 1 3 29 41 7 54 .305 .352
2013 101 260 .262 68 13 4 0 25 45 5 53 .342 .383
2014 77 175 .286 50 8 1 1 21 23 3 24 .360 .372
2015 35 61 .230 14 4 0 0 8 7 0 9 .295 .329
KBO 리그 통산
(11시즌)
1043 2539 .239 606 100 14 12 216 303 52 321 .303 .323

7. 관련 문서


[1] 네이버 프로필 기준 [2] # [3] 체육대학 체육학과 99학번 [4] 대학 진학으로 프로데뷔는 2003년에 했다. [5] 한화의 명품수비 한상~훈! 날려버~려 한~상훈! 한화의 명품수비 한상~훈! 랄랄라라 랄라라라~ ×2 [6] 한상훈! 한화 한상훈~ 승리를 위해~ 날려버려라~ ×2 [7] 롯데 자이언츠 정훈 응원가 원곡과 동일하다. [8] 안타 날려라! (HEY!) 안타 날려라~ (HEY!) 명품수비 한상훈~ 한!상!훈! 안타 날려라~ 안타 날려라~ 명품수비 한~상훈 한!상!훈! [9] 07~08시즌에 사용. [10] 후술하겠지만 2013 시즌 후 총액 13억에 FA 계약을 체결한 후 이 금액을 십일조로 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다. 비와이보다 신앙심이 강하다고 봐도 된다. 1억 3천만원을 헌금으로 냈으니 [11] 그 유명한 안영명 vs 김동수 빈볼 사건 당시 3루수가 바로 한상훈이다. [12] 류현진 외에는 미필 선수가 뽑히지 않은 한화에 대한 선심성 드립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도 거론되었다는 자체가 내야 멀티포지션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유틸리티 내야수 역할로 조동찬이 뽑혔고, 김민재 역시 현역 시절 시원찮은 타격에 비해 대표팀 차출이 잦았던 것은 폭넓은 포지션 소화 능력이 큰 몫을 했다. [13] 실제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 후술된 내용 참조. [14] 2013년의 한 인터뷰에 의하면 지는 경기 때도 항상 덕아웃에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단지 지고 있는 경기에서는 공격하다 경기가 끝나니 그라운드에서 기도할 여건이 안 될 뿐.. 기도내용은 '안 다치고 무사히 경기할 수 있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15] 참고로 손시헌과 한상훈은 화곡초 동기이며, 당시에는 손시헌이 2루수, 한상훈이 유격수로 서로 키스톤 콤비를 맞추기도 했다. 권오준 또한 이 두 명과 화곡초 동기. [16] 현재는 MBC-SBS 출신이자 TV조선에서 "생방송 광화문의 아침"을 진행 중인 프리랜서 방송인 이창섭이 MC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