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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5:48

한상훈/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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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시절
2.1. 2011 시즌2.2. 2012 시즌2.3. 2013 시즌2.4. 2014 시즌2.5. 2015 시즌2.6. 은퇴

1. 아마추어 시절

서울화곡초, 신일중 시절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투수로 퍼펙트 경기를 기록하는 등 빠른직구와 제구력이 좋았다. 신일고 시절에는 2학년 때부터 주전 3루수로 경기에 출전하면서 1997년 신일고 전성기 시절에 팀수비를 이끌었다. 고3시절에는 동기였던 봉중근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진출하여 신일고 마운드를 책임지는 선수가 되었다.

비교적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고3 시절 145km/h를 던졌으며 그의 투구를 유심히 관찰한 한화이글스 스카우터들은 한상훈을 내야수가 아닌 투수로 지명하였다. 이때 한상훈은 프로와 대학진학을 고민하였고, 동료 선수들을 위해 경희대 체육대학 체육학과 99학번 진학을 결정하였다.

대학에 들어간 한상훈 선수는 대학시절 150km/h의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성장하였지만, 대학교 3학년 팔꿈치 인대 부상을 당해 투수를 그만뒀다.

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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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

2003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내야수로 활동하였다.

2.1. 2011 시즌

2010년 11월 공익근무요원 소집이 해제되어 한화에 복귀하였다. 입대할 당시 많은 한화팬들이 '그가 복귀 후 내야에 무혈 입성할 정도면 정말 팀이 막장일 것이다….'라고 예상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특히 2루수 정원석이 3루로 옮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2루에 안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팬들은 한화의 내야가 워낙 개판이라 그가 복귀하면 적어도 2010 시즌보단 약간은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수비를 안정적으로 해 주면서 전년도의 3루와 함께 시한폭탄과도 마찬가지였던 2루를 완벽하게 틀어막아 새로운 3루수 이여상과 함께 내야 수비를 안정시키면서 한화의 내야 수비를 안정화시켰으며, 놀랍게도 5월 들어 팀이 딱딱 필요한 순간에 적시타를 때리고 꾸준히 2번 타자의 역할도 해주면서 새로운 에이스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준 선발 김혁민, 가장 아슬아슬할 때 승부를 지켜준 계투의 박정진과 함께 한화 5월 상승세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2011년 7개의 상당히 적은 실책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해 주었으며, 후반기 크레이지 모드인 이대수와 함께 믿음직한 키스톤 콤비로 활약했다. 9월 25일 개인 통산 최초로 시즌 100안타까지 달성.

2011년 시즌 타율 2할 6푼 9리과 가장 많은 3홈런 39타점 16도루를 기록했다.

2011년 11월 1일 마무리캠프에 참여했다. 부활을 꿈꾸는 장성호에 이은 팀내 고참 2위. 보통 마무리캠프를 신인 위주로 맞추는걸 생각해보면 전 경기 출장에 대단한 의욕이다. 2012 시즌 목표는 3할 타율이며, 간결하고 부드러운 밀어치기에 중점을 둘 생각이라고 한다. 한대화 감독도 캠프에서 무리를 시킬 생각은 없으며 타격의 부족한 점을 보충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2년부터 신경현의 후임으로 한화 이글스의 새 주장이 되었다.

2.2. 2012 시즌

주위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고 스스로도 의욕적으로 준비하며 시작한 2012 시즌이었지만, 2011년의 성적이 플루크였음을 입증하며 본래의 클래스인 2할 2푼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더군다나 유일한 장점이던 수비력도 노쇠화 때문인지 퇴보하여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어쩌면 원래 대수비로 밖에 활용 못할 양반을 전해의 플루크 때문에 주장이라는 중책까지 맡겨서 원래 실력보다도 더 못한 성적이 나오는 것일지도...

7월 1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9회초 불펜으로 등판한 임태훈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냈다.

9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전 홈 경기에서 4회말 2루 도루를 시도했는데 김상수의 공이 태그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루수 심판의 오심으로 아웃되었다. 덕분에 김상수는 찜찜했고 이 오심은 두고두고 논란이 있다.[1]

시즌 최종 성적은 112경기 272타수 61안타 3홈런 8도루 타율 .224로, 지난 시즌 대비 타율이 4푼 5리나 떨어져 나가 버리며 멘도사 라인으로 복귀. 하지만 이 시즌의 한상훈이 요상한 점은 하나있다. 바로 작년 시즌과 출루율 자체는 똑같다는 것.(...)[2]

시즌 종료 후 주장직을 일본에서 돌아온 김태균에게 넘겼다..

2.3.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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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14 시즌

오프시즌에 자신이 예전에 달던 3번을 강동우가 방출되고 공석이 되면서 다시 달게 되었다. 또한, 자신의 주 포지션인 2루수가 국대 2루수 정근우에게 주어지면서 유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게 되었다.

시즌 평생에 이 정도로 평가받는 때가 있었나 싶은 출발. 물론 타격은 여전히 답답하지만(...), 송광민 發 에러열전에 암 걸릴 지경이던 팬들로선 무난한 수비만으로도 새삼 한상훈에게 감사하고 있다.

4월 13일에도 선발출장 하면서 4타수 3안타에 2루타만 2개(1타점 포함)를 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정작 4회때 기본적인 땅볼을 못 잡는 아쉬운 실책을 저질렀다. 그나마 타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게 다행. 그리고 이 실책 빼고는 수비 역시 준수했기 때문에 송광민보다 낫다는 평가가 떨어져나가지는 않았다.

4월 25일부터 정근우 대신 2번 타순에 들어서게 되었다. 4번 김태균의 느린 발 때문에 3, 5번에 빠른 발을 가진 타자를 세울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

5월 2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7회 대타로 출전하여 점수차를 3점으로 벌려놓는 2타점 적시타를 기록했다.

6월 1일엔 7번 타순으로 출장했다. 송광민이 3루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이며 한상훈의 주전 유격수 자리도 굳어졌다. 타격감도 일취월장해, 전성기 때도 없었던 3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5월말 현재 규정 타석엔 못 미치지만 타율이 .333에 출루율 .426, 득점권 타율은 .481에 이른다. 14시즌이 역사상 다시 없을 타신투병의 시즌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한 성과. 한상훈의 예기치 않았던 활약으로 결국 1군에서 자리가 없어진 이대수가 트레이드되어 SK 와이번스로 떠나야 했다.

주장 고동진이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자 전직 주장으로서 주장 대행을 맡고 있다.

6월 25일 경기에서 4회초 최준석의 애매한 위치의 뜬공을 잡으러 가던 도중 2루수 정근우와 부딫치며 왼쪽 발목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고 구급차로 실려갔다. 이후 엑스레이 검진결과 다행히 골절은 아니고 바깥쪽 인대가 늘어난 것이라는 진단을 받으며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당분간 휴식이 불가피해졌고 결국 다음날 26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대신 올라온 선수는 조정원.

8월 9일 1군에 재등록되었다. 다만 코끼리 감독이 신인 강경학을 전폭적으로 밀어주기를 천명했기 때문에 당분간 대타나 대수비로 쓰일 듯 하지만, 강경학이 1군 새가슴 증세를 보이고 있어서 아직 그의 자리가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코감독의 조급증 때문에 부상이 완쾌되지 않아 발목에 뼛조각이 돌아다님에도 1군에서 꾸준하게 출장했고, 그나마 주전으로 쓰인 것도 아니었다. 결국 시즌초의 쾌조의 폼을 많이 깎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커리어 하이(.286)의 타격성적을 남겼다. 시즌후 발목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고, 내년 스프링캠프 참가를 목표로 순조로이 재활중이다. 노력파 선수답게 시즌후 노력의 가치를 잘 아는 지도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자 기대감과 환영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2.5. 2015 시즌

예상보다 재활이 늦어져 스프링캠프도 재활조에 편성되어 소화하였다. 마침 시즌을 앞두고 정근우도 송구에 맞아 턱 골절 부상을 입어, 시즌초 한화는 주전 키스톤이 모두 빠진 채 내야진 운영에 큰 어려움을 빚고 있다. 한상훈의 복귀가 늦어지는 동안 강경학 이시찬이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 험난한 주전 경쟁이 예상되는 상황.

4월 30일 1군에 콜업되었지만 출장은 하지 않았다. 5월 1일 롯데전에서 대타로 처음 나와 볼넷으로 출루하였고 득점을 기록하며 6회의 대역전승에 한몫했다.

5월 5일 kt전에서 5회에 조인성의 대타로 출격, 담장을 원바운드로 때리는 2타점 2루타를 때려 8:8 동점을 만들었다.

5월 6일 kt전에서 5-7로 지던 6회 2사 2,3루에서 대타로 출장했으나 장시환에게 헛스윙 삼진을 헌납했다.

5월 7일 kt전에서 시즌 첫 선발출장했다.

5월 8일 두산전에서 2번 타자로 선발출장, 3타석 오르고 김경언과 교체된다. (희생번트, 삼진, 병살타...)

5월 9일 두산전에서는 8번 타자로 선발출장 했으며 3타수 1안타 1삼진 후, 교체되었다.

그러나 5월 12일 삼성전에서 3루수 겸 2번타자로 선발출장했으나 첫 타석에서 번트에 실패하고 강경학과 교체되었다.

이후 다음날 2군행. 2개월 후인 7월 1군에 짧게 등록되었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후 시즌이 다 끝나갈 무렵 권용관이 3경기 연속 실책을 기록한 후 권용관을 대신해 콜업되어 주전 유격수로 시즌을 마쳤다. 35경기 0.230 14안타 8타점으로 제대로 출장 기회조차 받지 못하였는데 어딜 보나 권용관에 비해 타격도 수비도 나쁘지 않고, 스타일도 김성근 감독이 좋아하는 수비형에 노력파 선수이지만 권용관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콜업이 되지 못하여 한상훈이 김성근 감독에게 항명하여 징계성으로 2군에 박아두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물론 근거는 없는 뜬소문이지만 그런 낭설이 나돌 정도로 미스테리하게 기회를 받지 못한 시즌.

2.6. 은퇴

2015 시즌 후, FA 계약기간이 무려 2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단과의 잔여연봉 지급 논란이 발생했다. 한화 이글스/사건사고 문서 참조. 한편 한화는 한상훈에게 육성선수 전환을 제의하고 한상훈 또한 하와이로 출국해 개인 훈련을 하며 다시 한화로 복귀할 여지를 남겨 두었으나, 최종적으로 2016년 2월 19일 한화를 떠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잔여연봉 지급 문제를 두고 구단과 마찰을 겪게 되었으나 이후 3월 30일 구단이 잔여연봉 4억 원을 전액 지급하기로 합의하였다. 관련 기사. 그리고 동시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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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데 2012년 한국프로야구는 유독 오심이 많았다. 김강민, 이병규, 최진행 등등 관련 오심이 많은 것 보면 이번 오심은 터져나가고 있는 게 확실하다. [2] 이게 뭔 말이냐면 타출갭, 즉 순출루율이 더 높아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