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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스쿨 플릿/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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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 설정3. 선박4. 직업 및 단체5. RATt 관련6. 역사
6.1. 역사의 분기점6.2. 일본의 침강6.3. 유럽 동란6.4. 일어나지 않은 2차대전, 그리고 해양 협조

1. 개요

하이 스쿨 플릿의 설정을 정리한 문서.

2. 배경 설정

3. 선박

3.1.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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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직업 및 단체

4.1. 블루 머메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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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ATt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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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

애니메이션 방송 당시에는 세계관에 대해서 자세히 밝혀진 바가 없었지만, 이후 팬북이 발매되면서 세계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사카모토 료마 암살을 모면하고 살아남은 뒤,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채굴하면서 일본이 침강하게 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은 어중간하게 평화 협정을 맺어서 유럽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하게 된 상태. 그 대신에 일본이 미국, 영국과 협력 체제를 맺게 되었다.

료마가 암살당하지 않고 계속 살아서 그 영향으로 실제와는 다른 세계관이 전개되어 간다는 점에서 노가미 타케시 창해의 세기와 흡사한 부분이 있다.

6.1. 역사의 분기점

현실의 역사와 갈라지기 시작한 것은 사카모토 료마가 살아남게 된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 다시 말해 1853년에 매튜 페리 제독이 이끄는 미국 함대는 우라가 해협에 내항하여 일본에 개국을 요구한 것과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 의한 대정봉환까지의 흐름은 실제 역사와 다르지 않다.

현실역사에서 사카모토 료마는 대정봉환 1개월 후인 게이오 3년(1867년) 11월 15일 교토의 간장 가게 근처의 여관에서 살해당하지만, 하이후리 세계에서는 암살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있던 사이고 다카모리의 조언으로 위험을 피했다. 그 후 료마는 암살자들이 득실거리는 일본을 떠나, 해원대 대원들과 그 아내들과 함께 무역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그리고 세계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 실제로 막말에 제작된 도사 번의 운송용 목제범선 요코부에마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이 때 탑승해 있던 대원들의 아내들이 바로 블루 머메이드들의 대선배들이 된다.

6.2. 일본의 침강

함선의 기관은 석탄을 연료로 삼은 증기 기관에서 증기 터빈 기관으로 발전했고, 연료도 석유로 변화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 유망한 육상 유전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해저 유전을 조사하게 되었고, 니가타현 주변에서의 시추 조사 때에 발견된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일본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바꾸게 된다. 석유를 대신하여 연료로 유망하다고 여겨진 메탄 하이드레이트였지만, 그것을 채굴하게 됨으로써 일본의 침강이 시작된다. 도쿄타워가 있는 걸로 보아 1958년 후 부터 침강이 시작된 걸로 보인다. 당초에는 니가타 방면에서만 침강이 확인되었지만, 추가적인 조사 결과 침강이 가속되고 있는 것과 함께 그 영향이 일본 전국에 미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조사 시점의 침강 속도를 유지할 경우, 일본의 주요 평야부는 100년 후에는 해면 아래로 침몰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전체의 산업을 총동원하여 해상 도시의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육군을 중심으로 대륙에 진출할 것을 주장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러일전쟁에서 육군이 대패함에 따라 그것도 그림의 떡이 되었다. 한편 바다에서는 현실역사대로 일본 해군이 쓰시마 해전에서 압승함에 따라 강화 조약이 맺어졌지만, 육군의 대패에 더해 전비 조달을 위해 영미에 대량의 부채를 지고 있었던 일본 정부는 대륙에 가진 많은 이권을 그 두 국가에 양도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대한제국의 운명은? 일제강점기 대신 미제(美帝) 혹은 영제(英帝)강점기인가?[4]

한편 멀리 떨어진 영미도 대륙 개발에 즈음하여 현실과 같이 아시아의 전초기지로 일본을 필요로 했다. 대륙의 극동 개발은 제국주의적인 핫이슈였고, 그 개발 투자가 일본에 집중되었다. 또한, 영미에 의한 경제 지배에 위기감을 느낀 재계는 그 당시 일본 최대의 무역회사가 되어 있던 사카모토 상회를 창구로 삼아 다른 열강으로부터의 투자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일본에 일찌기 없었던 호황이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해외 투자에 의해 급속한 근대화와 공업화가 추진된다. 태평양에 위치해 있어서 대륙 진출의 창구로서의 역할이 확립된 일본에게는 투자 외에도 기술까지 유입되었다. 구미 열강은 근대화의 바탕을 갖춘 일본에 많은 공장을 건설하고 이 대량생산에 특화된 공업은 블록 공법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 블록 공법은 수상도시의 건설을 한층 더 촉진하게 되었다.

6.3. 유럽 동란

1914년에는 현실역사상의 제1차 세계 대전에 상당하는 유럽 동란이 일어나지만, 일본은 여기에 참가할 여력 따위는 없었고, 연합국 측에 붙었지만 참전하지는 않았다.(실제로는 독일령이었던 칭다오 적도이북 서태평양 제도를 침공했다.) 다만, 주요 전장이 유럽이었다고는 하지만 유럽 열강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전쟁의 불씨는 이들 식민지로도 옮겨붙게 된다. 연합국에 대치하던 독일 제국은 해상 통로를 끊기 위해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행한다. 이것은 적국과 적진영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함선을 군민 관계 없이 공격하는 것으로, 연합국 측에 가담했던 일본 선적의 선박도 공격 대상이 되었다.

유럽 동란은 극동 경영에 깊이 관여해 있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유럽을 지원하지 못하고 장기화 되었으며, 그 사이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 제정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전선에서 이탈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황제파가 극동에 있는 미국령으로 도피해 보호를 요구하여 미국 정부가 이것을 승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 간에 대립이 발생하고 만다. 하지만 유럽 동란으로 피폐해진 러시아에게 미국과 싸움을 벌일 여력은 없었다. 게다가 제국주의 국가가 패권을 다투고 있던 유럽 동란은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사태에 새로운 흐름을 맞게 된다. 영국은 혁명 정부에 대해 강경책을 취하고, 독일과 휴전한 뒤에 백해와 크림반도 방면의 반혁명파를 지원하여 혁명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프랑스도 영국의 지원 없이 계속해서 싸울 수는 없었고, 독일과 일시적으로 휴전한다. 이것에 의해 공산주의 러시아의 임시정부는 붕괴하고, 기나긴 혼란기에 돌입한다.

러시아 이외의 각국은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비상 사태에 어정쩡하게 휴전했지만, 파리에서 이루어진 강화 회의에서는 명확한 승자가 없는 탓에 다툼이 발생하고 말았다. 특히 전장이 되어 국토와 국민에 큰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독일에 대해서 거액의 배상금을 요구했지만, 혁명 세력에 대한 방파제로 독일을 유지하고 싶었던 영미는 이 요구를 지지하지 않았다. 거액의 배상금이 독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할 터였고, 국민 생활이 피폐해지는 결과가 파시즘적 사회주의 혁명이나 공산주의 혁명 둘 중 하나로 번질 것을 두려워한 탓이었다. 이것에 불복한 프랑스는 강화 회의를 장기화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한다. 이리하여 유럽 협조는 늦어지고 유럽의 경제도 정체하고 만다.

6.4. 일어나지 않은 2차대전, 그리고 해양 협조

대륙 국가의 정체에 반해 일, 영, 미 삼국을 중심으로 한 해양 국가는 협력 체제를 확립하여 해양 교통의 안전을 유지하는 각국 기관의 설립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유럽 동란의 자연적인 휴전과 강화 회의에서의 분규, 해양 국가간의 연계의 강화 등 1930년대에서 1940년대의 국가의 관계성은 사실과 크게 다르며, 특히 복구 부흥이 늦어진 유럽의 대륙 국가에서는 큰 정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전쟁을 다시 수행할 여력도 없었다. 일본은 대륙으로 진출할 기회를 잃은지 오래였고, 거기에 더해 국토의 보전에 주력해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기에 건함 경쟁은 일어났다고 하지만 영미와의 양호한 관계 덕분에 이후에도 큰 전쟁은 발생하지 않았다.

항공기의 경우에는 공중에서 기체를 제어할, 제대로 된 항공 이론이 발견되지 못했고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실험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기계가 하늘을 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하다고 결론지어져 있다. 프랑스 육군원수님 의문의 1승


[1] 다만 종종 지도에 한반도를 묶어서 한국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많으니 분단이 없다고 단정지을수는 없고, 무엇보다 일본은 남한을 그냥 한국으로,북한을 북조선으로 쓴다. [2] 다른 한편으로는 그냥 협찬받은 해상자위대의 지도를 고대로 갖다 써서 그런 것일 수 있다.그것도 문제지만. [3] 실제로 라이트형제의 발명이후 인류의 항공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이유는 전적으로 2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항공기의 가치가 크게 인정받았고, 냉전으로 인한 군비경쟁으로 엄청난 돈이 투자되었다. 전쟁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항공기의 속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엔진기술이 발전했으며, 그와동시에 항공기의 공기저항을 고려하면서 공기역학등이 발전하는등 전쟁은 항공기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처음으로 동력 비행기를 날린 오빌 라이트가 세상을 뜨기 몇 개월 전에 인간은 수평 초음속을 달성하였다. [4] 아니면 한국을 독립국으로 남겨두되, 현실처럼 많은 원조를 해주고 군대를 주둔시키며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수도 있다. 바로 위에있는 러시아가 공산화되었다는 설정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럴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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