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연합국 과도 행정처 행정관 폴 브리머 Paul Bre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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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colbgcolor=#DBC573> 본명 |
Lewis Paul "Jerry" Bremer III 루이스 폴 "제리" 브레머 3세 |
출생 | 1941년 9월 30일 ([age(1941-09-30)]세) |
코네티컷 하트퍼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재임 | 이라크 연합국 과도 행정처 행정관 |
2003년 5월 12일 - 2004년 6월 28일 | |
학력 |
예일 대학교 (B.A) 하버드 대학교 ( MBA) 파리 정치대학 |
가족 | 아내 프랜시스 윈필드[1] |
직업 | 외교관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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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유대교 |
약력 |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 보좌관 미국 국무부 행정국장 주네덜란드 미국 대사 대테러 조정관 이라크 연합국 과도행정처 행정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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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외교관. 1941년 9월 30일생. 헨리 키신저 밑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2. 경력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후 아프가니스탄, 노르웨이 등에서 근무하고 1983∼86년 네덜란드 대사를 지내는 등 국무부에서 23년간 재직했다. 브리머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대테러담당 무임소대사를 역임했으며, 1999년 하원에서 전국 대테러위원회 의장에 선출됐다. 그는 2000년 6월 의회 증언을 통해 진주만 공습과 같은 대규모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경고대로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나자 정보기관들이 자만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발생했다며 비판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명문대 출신의 식견을 가진 수재에다 통찰력까지 겸비한 능력자로 보이겠지만...
3. 이라크를 망친 원흉
2003년 독단적으로 이라크 침공을 결행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승전을 선언한 이후에 5월 1일 이라크 연합국 과도 행정처 행정관으로 폴 브리머를 임명하였다. 그런데 폴 브리머는 그 키신저 밑에서 일했다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럼즈펠드와 쌍박을 이루는 무능의 극치를 보여주면서 이라크를 생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확히 말해서 식민지나 괴뢰국에서나 할 짓을 해댄것이다.브리머의 이라크 통치는 논란의 연속이었는데, 대표적인 실책 두개로는 본인도 인정했던 집권당 바트당 출신 정치인들의 배제를 이라크 정부 내 정치조직에 맡겨 파벌싸움과 정치적 목적으로만 일관해 혼란을 주도한 것과 더불어 미국 주도 과도정부가 대규모 재건 계획에 매몰되어 고속도로와 발전소 등 민생과 직결된 시설들을 건설하지 않아 민심을 잃었던 것이다.
이 인간이 미국 내의 중동관련 전문가들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것들만 골라서 했던 사람중 하나였던것이 문제였다. 폴 브리머는 아프간에서 일한적이 있던 주제에 막상 이라크 문화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미군과 기업에 대해 관리를 잘한것도 아니면서도 총선과 지방선거를 연기, 이라크인들의 바람과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월권행위 등의 일을 벌여댔고, 후세인 정부의 피해자라 미군의 우군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시아파를 등을 돌리게 만들었으며, 이라크군을 멋대로 해산시켜, 이라크군을 치안유지 인력으로 쓰려던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뒷목잡게 만들었다. 또한 경제정책에서도 무능의 극치를 달려 이라크 국영기업의 회계자료를 찾는 대신 부채와 예금으로 0으로 맞추며 부실기업을 되살리고 우량기업을 부실기업으로 만들었으며 인프라가 손실되어 복구해야될 와중에도 현금식 충전카드를 배포하는 삽질을 벌였고, 치안악화로 인해 식량배급 시스템이 망가지면서 사담 후세인 시절보다 오히려 후퇴했다는 악평을 들었다. 기존의 이라크군과 바트당을 해산시켰을때 실무진들도 대책없이 막 해고시킨 덕택에 행정처리는 개판이 되어버리고 치안인력의 상당수는 반군이 되어버리고 말았으며 수니파는 미군정에게 등을 돌렸다. 이러한 행태로 인해 결과적으로 반군과 테러리스트들이 나돌아다니게 되면서 이라크의 치안이 크게 악화되고 정국이 크게 혼란해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후세인이 축출되면 더 나은 세상이 올것이라는 이라크 국민들의 기대를 배신하며 반미주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1년을 꼬박 버티다가 결국 자국내에서도 거하게 욕을 처먹고 2004년 6월 28일에 이라크를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가 일을 제멋대로 처리하면서 싸놓은 똥은 이후로도 이라크를 어지럽히는 데에 일조했고 급기야 웬 사이비 종교 반란군들이 몇년간 날뛰게 되는 계기까지도 마련했다. 물론 이라크 신정부가 무능하게 일처리한 점이 크게 작용했지만 애초에 뒷수습을 개판으로 처리해서 테러리스트들이 날뛰게 만든 인물이 폴 브리머였기 때문에 변명이 되지 못한다.
미국내에서도 욕을 있는대로 처먹지만 이라크인들에게는 가히 역적급인 인물이다. 이 인간이 일을 개판으로 처리한 덕택에 테러리스트들이 창궐하게 되면서 치안이 극도로 악화되어 길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만들었고 더군다나 1980년대 이후로 악화되어가던 경제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좋게 평가해줄리는 만무하다.
4. 그 외
- 위 사진이 찍힌 2000년대 당시 60대였음에도 40대 같은 동안이었다.
[navertv(4376588)]
- 더 가관인것은 당시 2004년 2월 14일에 그때는 현직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에게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물론 지금 상황을 보면 받을 자격도 없었다. 그 전에 이 사실이 2018년에 알려졌다는것이 충격과 공포다.
- 이라크 전쟁 전후처리를 총독처럼 다스렸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2018년에서야 문서가 만들어질 정도로 무관심했다.
- 당시 사담 후세인을 체포할 때 브리핑을 했던 때로 FBI밈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노래 이름은 Breakbot의 Baby I'm yours
[1]
2019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