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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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전쟁·전투 | 교전국 |
<colbgcolor=#405486,#000031>
독립운동 1920~19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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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
판문점 총격사건 Soviet Defector incident Инцидент с пробегом Василия Матузк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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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colbgcolor=#fff,#191919> 1984년 11월 23일 | ||
장소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 ||
원인 | 한 소련인의 월남 시도 | ||
교전국 |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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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한국군
유엔군사령부 |
북한군 17명 | ||
피해 규모 | |||
한국군
|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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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
소련인 망명 성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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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4년 11월 2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소련의 관광 유학생인 바실리 마투조크(Василий Яковлевич Матузок / Vasily Yakovlevich Matuzok[1])가 갑작스럽게 군사분계선을 넘고 월남을 시도하자 북한군과 한국군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 사건.2. 전개
1984년 11월 23일 11시 30분경 소련의 유학생인 바실리 마투조크가 갑자기 월남을 시도하자 북한군은 월남을 제지하기 위해 총격을 하면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침입했다.이에 한국군은 망명인을 대피시키고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였다. 갑작스러운 총격전에 합류한 미군과 5분대기조가 출동했다. 이때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주범인 박철 중위도 총격전 현장에 참여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 보이지 않아 미군에게 사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2] 이미 남쪽으로 내려온 북한군들은 다시 북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무에 몸을 숨겨 한국군과 교전을 벌였다.
20여 분간 총격전이 계속됐고 5분대기조까지 출동한 상황에서 총격전이 심화되어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장교가 급히 사격 중지! 사격 중지!를 외치며 총격전이 잠시 멈추자 북한군은 부상자와 사망자를 수습해 돌아가겠다며 교전 중단을 청했고 유엔 측이 받아들이자 북한군들은 사상자들을 끌고 다시 돌아갔다.
3. 결과
바실리 마투조크는 미국으로의 망명이 결정되면서 성공했다는 생각에 안도하였지만 자신의 망명으로 인해 한국군 1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선택에 후회한다고 했다. 총격사건 이후 판문점총격전 과정에서 북한군은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한국군 장명기 일병이 언덕에서 엄호 사격 도중 북한군 초소에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전사했으며 북한군과 총격전을 벌이던 미군 중 한명인 버고인 일병(Michael A. Burgoyne)이 부상을 입었다. 퍼플하트를 수여받는 버고인 일병
북한군의 전사자 3명 중에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의 원흉 중 하나인 박철[3] 이 포함된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이후 박철을 기억하고 있던 미군이 그를 보고 격노해 집중사격을 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전사의 원인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