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트 김 Twisted K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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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cc66><colcolor=#fff> 본명 | 김한섭 (金漢燮) |
출생 | 1936년 4월 6일 |
부산광역시 | |
사망 | 2010년 11월 30일 (향년 74세)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 |
학력 | 부산고등학교 (졸업) |
가족 | 배우자 이옥이 |
슬하 1남 1녀, 손자 | |
데뷔 | 1962년 '동경서 온 사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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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2. 활동
한때 주연배우를 희망하여 연출자에게 부탁을 했으나, 외모가 부족하다는 이유로[1]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주연배우들이 감당해야 하는 대본과 연기 과정을 절감, 과감히 생각을 바꾸어 정력적인 배우 활동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트위스트 김과 신성일 신영균 등이 활약하던 1960~1970년대 영화배우들의 인기는 요즘 배우들과는 차원이 달라서, 주연급 배우들은 제작자들이 현금을 자루에 담아 집 앞에서 줄을 설 정도였고 조연급 배우들도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등[2] 상당한 인기와 부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극장 영화가 TV 방송에 밀려 시들해지면서 그의 입지도 좁아졌고, 결국 거의 출연을 못 하고 나와 봐야 단역 수준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나마 1986년에 출연한 깜보[3]와 1990년에 개봉된 남부군이 인지도가 있지만, 지난날처럼 영화계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으며, 간간히 주류 영화인들의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본인이 연출에 관여하는 뮤지컬, 기타 방송출연 등으로 활동하며 배우 생활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뮤지컬에서는 칠순이 다 된 몸으로도 녹록지 않은 춤솜씨를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하였다. 춤 솜씨가 좋아서 트위스트 김이었으니.하지만, 본업인 영화인으로서 활동의 제약은 끝내 벗어나지 못했고, 게다가 불필요한 구설수에까지 올라 인망에 손상을 입었으며, 설상가상으로 2003년부터 본인 이름을 도용한 인터넷 음란사이트들 때문에 오해를 받게 된다. 2005년부터 음란사이트 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법정 투쟁을 했으나, 당시 관련 법률이 없어 업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와 측근의 몇 가지 변명성 주장 중에는 '생계를 위해 TV 드라마에 출연하였기 때문에' 또 ' 1980년대부터는 전두환 군부독재의 3S정책에 항거하여 어용영화는 사절이라며 밤무대에 출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동일 세대의 배우들은 이걸 도피성 행위로 간주해서' 이런 이유들 때문에 배우로서 자격이 없다며 영화인협회에서 사실상의 제명에 준하는 취급을 받게 되었다고 주장하나 근거는 물론, 정황상 타당성이 희박하다. 영화에서 TV로 전향하거나 병행한 배우는 얼마든지 있으며, 그렇다고 변절자 취급 받지도 않았다. 제5공화국 시절 영화가 어용 영화라서 출연 안 했다 하기엔 그 이전에 대표적 프로파간다, 어용 영화인 반공 영화같은 데는 잘만 나왔기 때문. 단지 TV 보다는 야간업소 출연이 훨씬 벌이가 좋았고, 말년에는 개인적인 구설수 때문에 공중파에는 캐스팅이 되지 않은 것 때문일 것이다.
3. 사망
2006년 어느 날, 호텔 행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악명높은 뇌졸중[4]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로 투병하다 2010년 작고했다.예전에 한 말 대로 청바지를 좋아해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청바지를 입혀 화장을 시켜달라는 말대로 청바지를 입은 채로 입관 해서 화장 절차에 들어갔으며, 운구는 들 사람 조차 없어서 근처에 있는 취재진들이 운구를 옮겨야 했다고 한다.
사후 장례식에 영화인 협회 누구도 오지 않으며 결국 마지막까지 외면당했다. #1, #2 장례식에는 후배 배우 이효정만 참여했는데, 당시 이효정은 트위스트 김의 장례식에 많은 동료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상.
4. 여담
- 후배 배우 송승헌이 트위스트 김의 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문이 돌았고, 트위스트 김 본인이 흐릿한 기억 속에 혹시나 하는 식의 의사를 비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는 아무 관련 없는 사이임이 드러났다. #
- '폭발 1초전' 이라는 곡을 낸 적이 있는데, 군사정권 당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 1997년 발매된 뮤지션 어어부밴드의 데뷔앨범 재킷에, 손발이 결박당한 채 도로에 누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사진이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앨범 재킷 사진은 백현진이 낸 컨셉으로 사진작가 오형근이 촬영했다.
[1]
신작 영화의 감독을 맡은 이에게 주연으로 발탁될 수 있을지 의사를 타진해 봤지만, "네 상판을 봐라"는 타박만 들었다고...
[2]
당시에 정식 수입되지도 않고 현재 가치로 따지면 수억대에 달하였다. 휘발유도 리터 당 가격이 물가 환산 3000원 이상이었고 연비가 리터당 4-5km에 불과해 유지비도 엄청났다.
[3]
박중훈,
김혜수 주연의 액션 영화.
[4]
한방에서 흔히 중풍으로 분류하는 중병이다. 대개 3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는데, 설령 완치 판정을 받아도 반신불수 판정을 받아서 거동이 불편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렵게 된다. 때문에 젊은 시절 아무리 왕성한 활동을 했던 사람이라도, 이 병으로 쓰러지면 누가 문병도 잘 오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있는 질병이기도 하다. 중풍으로 고통받는 모습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기 때문. 이 병으로 쓰러진 사람에게 2번 문병오는 사람이 있으면 지난날 덕(德)을 쌓은 사람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