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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튀르키예와 요르단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튀르키예와 요르단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정회원국이다.양국은 종교, 문화에서 가까운 사이이다. 요르단과 밀접한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와하브파가 우세한 것과 대조적으로 요르단은 튀르키예와 마찬가지로 하나피파 법학파가 우세한 편이다.
2. 역사적 관계
2.1. 중세
요르단은 국토 대부분이 건조한 사막이지만 한편으로 아나톨리아 반도 등 지중해 문명과 아라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이유로 종종 전략적 요충지로 대우를 받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기 3세기부터 7세기까지 아랍계 기독교인 국가인 가산 왕국이 동로마 제국의 변방을 여타 아랍 베두인 부족들의 약탈로 방어하고 그 대가로 보조금을 받았던 사례가 있다,2.2. 근세
동로마 제국 대신 아나톨리아 반도를 차지한 오스만 제국은 중동 각지로 세력을 넓히며 이집트를 기반으로 한 맘루크 왕조와 충돌하였다. 오스만 제국군이 마르즈 다비크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오늘날의 요르단 일대의 하심 가문은 1517년에 오스만 술탄에게 신종하였다. 이후 요르단 일대는 오스만 제국의 간접 지배를 받게 되었다.다만 오늘날의 요르단에 해당하는 지역은 대부분 건조한 사막이라 생산력이 낮았고, 오스만 제국 측에서는 점과 선 형태의 지배에 만족하였다. 핫지(성지순례) 루트에 위치한 베두인 부족들에게 성지순례객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오스만 제국 덕분에 핫지를 떠난 성지순례객들은 안전하게 성지순례를 할 수 있었지만 베두인들이 종종 보조금이 늦는다거나 혹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순례객을 공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순례객들을 약탈한 베두인들에게 타크피르를 내렸다.
2.3. 19세기
19세기 초 이집트의 메흐메드 알리가 오스만 제국에 반항하며 시리아 일대를 위협하고, 네지드 지방에서 와하브파를 믿는 베두인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오스만 제국은 해당 지역의 안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베두인 유목 부족들을 반강제로 정착시키고, 러시아 제국의 침략을 피해 망명한 체르케스인이나 체첸인들 역시 정착시켜 # 마을을 버리고 떠나지 못하도록 감시도 할겸 이들의 농경을 원조하도록 하였다. 19세기 이르러 유목민족에서 농경민족으로 전환된 요르단 일대의 베두인들은 오늘날 요르단인들의 기원이 된다. 참고로 당시 요르단에 정착한 체르케스인들은 평균적으로 기골이 장대한 이유로 오늘날 요르단 왕실 근위대에서 활약하고 있다.2.4. 20세기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고, 술탄-칼리파제가 폐지된 이후 신생 튀르키예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속령이었던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일대에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이 들어섰다.( 트란스요르단) 1956년 요르단이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한 이후 양국은 상호 수교하였다.양국은 이스라엘 견제 및 팔레스타인 지원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2.5. 21세기
양국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시리아인 난민 대량 유입을 겪었다는 역사를 공유한다.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당시 요르단도 튀르키예 측에 구조인력을 파견하고 구호물품을 지원하였다. #
2024년 시리아 반군 공세 이후 튀르키예와 요르단 사이에서 시리아 재건 관련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 양국은 이스라엘의 시리아 침공을 규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