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S010 |
1. 개요
<nopad> | |
1992 몬차 500km 7번 | 1992 르망 24시 8번 |
<#5b5b69> | |
1992 르망 24시 33번 | 1993 르망 24시 36번 |
토요타가 1991년에 개발한 그룹 C 프로토타입으로, 스포츠카 월드 챔피언십(SWC), 전일본 스포츠프로토타입 선수권(JSPC) 등의 레이스에 출전했다.
그동안 터보 엔진 탑재 프로토타입에 사용하던 'CV' 이름 형식 대신 토요타 스포츠를 의미하는 'TS'를 최초로 사용했으며, 이는 토요타 TS050 하이브리드까지 이어지게 된다.
2. 역사
개발 프로젝트는 토요타 히가시후지 연구소에서 1989년부터 시작했다. 초기에는 무게 중심을 철저히 낮추고 언더 플로어 흐름 등을 고려한 기존의 그룹 C 스타일 차체를 목표로 설계했지만 이후 개발팀 간의 의견 차로 언더 플로어 정류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게 중심도 높아진 차체가 설계됐다. 이때 차체의 모습은 88C-V와 유사한 형태였다고 한다.한편 1990년 2월 모터스포츠 부서장에 취임한 사이토 치히코는 막막한 개발 상황을 수습하고자 동년 5월 실버스톤에서 만난 토니 사우스게이트에게 TS010의 개발 어드바이저를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또한 스포츠카 월드 챔피언십의 출전을 1년 지연해 1992년부터 하는 것으로 변경하고, 섀시와 엔진 모두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엔진은 당시 SWC 규정대로 포뮬러 1과 같이 3.5L 자연흡기 엔진인 RV10을 탑재했다. 섀시는 이후에 완성되어서 1991년 시즌에는 89C-V에 RV10 엔진을 탑재해 성능을 시험해 보고 있었다.
타이어는 기존에 사용하던 브리지스톤 대신 굿이어를 선택, 최종적으로 차는 1991년 중순에 완성이 되었다. 기존의 그룹 C 차량 느낌을 최대한 벗어내려고 했지만, 도어를 걸윙 도어로 사용하고 재규어 XJR-12와 같은 그룹 C 차량들이 사용하던 타이어 디플렉터를 채용하는 등 다소 보수적인 설계가 이루어졌다. 또한 라디에이터가 앞쪽에 배치돼있는 등 다소 오래된 패키지 구조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당시 재규어 XJR-14와 비교당하곤 했는데, 8월에 미디어에 공개되었을 때도 자동차 평론가 모로즈미 다케히코로부터 "세부의 조형이 어쩐지 거칠고 디자인 센스도 아마추어 같다"라는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차량 완성도는 나쁘지 않아 대중들로부터 '토요타제 그룹 C 머신의 집대성'이라고 평가받기도 했다.
1991년 오토폴리스에 첫 출전했고, 본격적으로 1992년 SWC에 출전해 첫 번째 경기인 몬차에서 우승을 달성한다. 1992년 르망 24시에서는 하필 비가 내려 미쉐린 타이어를 사용한 푸조 905나 마쓰다 MXR-01에 비해 열세였다. 그래도 33번 차량이 2위까지 순위를 올려냈지만 실린더 헤드에 균열이 발생하고 냉각수가 누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처음은 피트 인해서 냉각수를 보충했다. 그러나 곧바로 과열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이때 다시 피트 인하기보다는 페이스를 조금 낮추어 계속 레이스를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이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어 33번 차는 종합 2위를 유지하는데 성공한다. 실린더 헤드 파손이나 비만 오지 않았다면 우승했을지도 모르는, 토요타에게는 너무나 아쉬운 레이스였다.
이 뒤의 시즌 경기들은 대부분 푸조가 우승을 달성했고, 1992년을 마지막으로 SWC가 사라지게 되면서 토요타는 오직 몬차 레이스 우승만을 가져갔다. 이후 토요타는 1993년 르망 24시 우승을 목표로 TS010에 공기역학 설계, 출력, 토크 등을 개선했다. 또 트랙션 컨트롤 시스템 탑재하고 트랜스미션을 수정했으며 약 30kg을 경량화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전한 세 대 모두 트랜스미션 문제가 발생하면서 1위부터 3위까지 푸조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 성적 #==
종목 | 경기 | 팀 | 번호 | 드라이버 | 종합 순위 | 클래스 | 날짜 |
스포츠카 월드 챔피언십 | 500km 몬차 | 토요타 팀 톰스 | 7 |
제프 리스 오가와 히토시 |
우승 | C1 | 1992.4.26 |
토요타 팀 톰스 | 8 |
얀 라머스 앤디 월리스 |
DNF | C1 | |||
BRDC 엠파이어 트로피 실버스톤 그레이트 브리튼[1] | 토요타 팀 톰스 | 7 |
제프 리스 오가와 히토시 |
DNF | C1 | 1992.5.10 | |
토요타 팀 톰스 | 8 |
얀 라머스 앤디 월리스 |
DNF | C1 | |||
토요타 팀 톰스 | 8T |
얀 라머스 앤디 월리스 |
C1 | ||||
르망 24시 | 토요타 팀 톰스 | 7 |
제프 리스 데이비드 브라밤 카타야마 우쿄 |
DNF | Cat. 1 | 1992.6.21 | |
토요타 팀 톰스 | 8 |
얀 라머스 앤디 월리스 테오 파비 |
8위 | Cat. 1 | |||
토요타 팀 톰스 | 33 |
피에르헨리 라파넬 케니 애치슨 세키야 마사노리 |
2위 | Cat. 1 | |||
트라이튼 샤워즈 트로피, SWC[2] | 토요타 팀 톰스 | 7 |
제프 리스 데이비드 브라밤 |
3위 | C1 | 1992.7.19 | |
토요타 팀 톰스 | 8 |
얀 라머스 앤디 월리스 |
DNF | C1 | |||
토요타 팀 톰스 | 8T |
제프 리스 얀 라머스 |
C1 | ||||
전일본 스포츠 프로토타입 선수권 / 후지 롱 디스턴스 시리즈 | 인터 챌린지 컵 500km 인 미네[3] | 토요타 팀 톰스 | 7 |
에디 어바인 톰 크리스텐센 자크 빌르너브 |
4위 | C | 1992.11.1 |
르망 테스트 경기 | 토요타 팀 톰스 | 36 |
제프 리스 후안 마누엘 판지오 2세 얀 라머스 |
2위 | Cat. 1 | 1993.5.16 | |
토요타 팀 톰스 | 37 |
앤디 월리스 케니 애치슨 에디 어바인 |
3위 | Cat. 1 | |||
르망 24시 | 토요타 팀 톰스 | 36 |
에디 어바인 스즈키 토시오 세키야 마사노리 |
4위 | Cat. 1 | 1993.6.20 | |
토요타 팀 톰스 | 37 |
피에르헨리 라파넬 앤디 월리스 케니 애치슨 |
DNF | Cat. 1 | |||
토요타 팀 톰스 | 37T |
에디 어바인 앤디 월리스 케니 애치슨 |
Cat. 1 | ||||
토요타 팀 톰스 | 38 |
제프 리스 얀 라머스 후안 마누엘 판지오 2세 |
8위 | Cat. 1 |
3. 기타
- 본 크러셔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차량이다. 1992년 2월 다수의 엔지니어들과 테스트 드라이버들이 호주 이스턴 크릭 경기장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코너를 주행하던 앤디 월리스와 오가와 히토시의 갈비뼈가 여러 개 골절된 것이다. TS010의 엄청난 다운포스와 코너 주행시의 G포스를 견디지 못해 뼈가 부러진 것. 해당 테스트가 끝난 뒤 일본 엔지니어들은 '차가 드라이버보다 강하다'라며 차량의 완성도를 칭찬했다고 한다.
-
일본의 가수 이와이 유키코(岩井 由紀子)와 아나운서 미야케 마사하루가 방송에서 TS010에 탑승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