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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6 20:21:57

존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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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TD.png 선정 100대 록 음악 최고의 키보디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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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thisday라는 사이트가 선정한 " 100대 록 음악 최고의 키보디스트"이다. 기술, 창의성, 영향력, 실험정신등을 기준으로 선정 되었다고 한다.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키스 에머슨 릭 웨이크먼 존 로드 레이 만자렉 리처드 라이트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토니 뱅크스 빌리 프레스턴 로드 아르젠트 스티브 윈우드 알 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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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매튜 피셔 부커 T. 존스 이안 언더우드 그레그 올먼[1] 토니 하이마스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얀 해머 니키 홉킨스 그렉 롤리 브라이언 이노 조던 루데스
<rowcolor=#fff>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리처드 탠디 데니스 드영[2] 옌스 요한슨 케리 리브그렌[3] 배리 골드버그
<rowcolor=#fff>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티 라비츠 돈 에어리[4] 가스 허드슨 데이비드 샌셔스 이안 맥라건
<rowcolor=#fff>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조지 듀크 앨런 자보드 스티브 니에브 맥스 미들턴 빌리 파웰[5]
<rowcolor=#fff>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케빈 무어 데렉 쉐리니언 지미 그린스푼 존 카린 리 마이클스
<rowcolor=#fff>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켄 헨슬리 벤몬트 텐치 스티비 원더 조나단 케인[6] 척 리벨
<rowcolor=#fff>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제프 다운스[7] 레온 러셀 패트릭 모라즈 위르겐 프리츠 하워드 존스
<rowcolor=#fff>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마이크 핀더 맷 벨라미 알렌 라벤스틴 앨런 프라이스 마이클 맥도날드
<rowcolor=#fff>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존 폴 존스 밥 마요 토니 케이 빌 페인 로이 비탄
[ 각주 ]

[1]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키보디스트. [2] 스틱스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 [3] 캔자스의 기타 겸 키보디스트. [4] 딥 퍼플의 키보디스트. [5] 레너드 스키너드의 키보디스트. [6] 저니, 베이비스, 배드 잉글리쉬의 키보디스트. [7] 버글스, 예스, 아시아의 키보디스트.
61위부터는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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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드
Jon Lord
파일:jon-lord-bw.jpg
<colbgcolor=#171717><colcolor=#fff> 본명 존 더글러스 로드
John Douglas Lord
출생 1941년 6월 9일
영국 이스트미들랜즈 레스터
사망 2012년 7월 16일 (향년 71세)
영국 런던
신체 183cm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직업 음악가
소속 딥 퍼플, 화이트스네이크, 페이스 애시턴 앤 로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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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71717><colcolor=#fff> 부모님 레지널드 로드
미리엄 로드
배우자 주디스 펠드먼 (1969 – 1981)
비키 깁스 로드 (??? - 2012)[1]
자녀 슬하 2녀
세라 로드
에이미 로드
활동 기간 1960년 – 2012년
사용 악기 건반 악기, 배킹 보컬
장르 록 음악, 하드 록, 헤비 메탈, 블루스 록, 프로그레시브 록, 클래식, 재즈, 재즈 퓨전
레이블 Purple, EMI, Harv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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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딥 퍼플 활동4. 기타
4.1. 사망
5. 사용 장비6. 작품 목록

[clearfix]

1. 개요

파일:jonlordcover.jpg

본명은 John Douglas Lord로, 영국의 작곡가 겸 피아노, 오르간 키보드 연주자이다.[2]

2. 생애

1941년 6월 9일 영국 레스터주에서 태어나 지방 악단의 색소폰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5세 때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런던으로 이사해 Royal Central School of Speech and Drama 에 입학했으며 이 시기 연기도 전공했다. 이 후 잠시 Emergency - Ward 10 같은 영국 드라마에 작은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원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 나가려고 했지만 지미 스미스의 하몬드 오르간의 매력에 사로잡혀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꿈을 버리고 팝 분야에서 활동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60년대 영국 팝씬의 유명한 키보드 세션주자로 활약하게 되며 이 당시 지미 페이지, 그리고 리치 블랙모어의 스승이기도 한 빅 짐 설리반 같은 베테랑 세션맨들과 교류가 시작되었고, 아트우즈, 플라워포트맨, 산타바바라 머신헤드등의 밴드를 거쳐 리치블랙모어와 함께 딥퍼플의 창시자가 된다.

해몬드 C3 오르간과 레슬리 스피커 그리고 마샬 앰프를 결합한 독특한 음색과 전기기타에 버금가는 파워를 자랑하는 그의 키보드 연주는 타 밴드와 딥 퍼플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이었다. 덕분의 90~00년대에 만들어진 신서사이저에는 존 로드의 하몬드 오르간 톤이 샘플로 대부분 들어가있으며 음원의 이름 또한 대부분 ' Deep Purple'이다.

3. 딥 퍼플 활동

파일:존로드.jpg
딥 퍼플의 리더이며 원년멤버로[3] 2001년 나이를 이유로 탈퇴[4][5]할 때까지 딥 퍼플에 계속 남아있었다.

존 로드의 해먼드 오르간은 몽환적이면서 날카로운 속주로 유명한데, 특히 초기 딥 퍼플의 리더로서 클래식과 록을 접목한 그의 실험적인 결과물은 싸이키델릭/프로그레시프적인 초기와 하드록을 대표하는 후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딥 퍼플 1기의 앨범 "Concerto for Group and Orchestra"는 존 로드가 밴드 결성 때 부터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했던 클래식과 록의 결합의 실험의 결과물이다.[6]

공연 직후 협주곡의 실황이 LP 앨범으로 발매되었고, 이후 1990년에 CD로 재발매되면서 2부 연주곡 중 Hush를 제외한 두 곡이 같이 수록되었고, 2002년에는 1~3부 전체와 앵콜까지 모두 담은 한정판 라이브 앨범이 DVD-Audio와 SACD로 발매되기도 했다. 이후 1970년 8월 25일에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보울에서 로렌스 포스터가 지휘한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과 재차 공연했지만, 공연 직후 악보가 분실되는 바람에 재공연은 거의 30년이 지난 1999년 9월 25~26일에 가서야 네덜란드 작곡가 Marco de Goeij의 협력으로 재작성된 악보로 행해졌다. 다만 원곡 그대로는 아니었고 어느 정도 개작된 형태였다. 초연 때와 마찬가지로 로열 앨버트 홀에서 폴 맨이 지휘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했다.[7]

Mark 1에서 존 로드가 음악적으로 리드했다면, 이안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합류하는 Mark 2 부터는 점점 리치 블랙모어가 리드하게 된다.
하지만 대내외 적으로 밴드의 방향성과 결정권은 언제나 존로드의 영향하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76년 밴드 해산 후 밀린 청구서 더미 때문에 빚더미에 오른것도 리더였던 존 로드였다.

딥 퍼플의 멤버는 계속 바뀌었지만 뛰어난 인품은 바뀌지 않았다. 라이브에서 가사를 자꾸 틀리는 이안 길런에게도 '이안, 가사가 틀렸어' 하고 웃으며 넘어가줬고,[8] 완벽주의자에 성격까지 까탈스러운 리치 블랙모어와 자유분방한 이안 길런 사이에서도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특히 리치) 노력했다고, 딥퍼플 재결성 이후 리치가 또 탈퇴했을 때는[9] 충격먹고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Mark 3 이후 펑크와 소울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도 신참내기 멤버인 데이비드 커버데일 글렌 휴즈가 주도한 음악적 변화에도, 그의 성격대로 유연하게 받아 들였다.

2011년 고향인 레스터의 레스터 대학교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1년 7월 췌장암을 진단받고 영국과 이스라엘을 오가며 치료를 받았으며 2012년 7월 16일 런던에서 폐색전증으로 사망했다. 향년 71세.

4. 기타

작곡도 한두 곡정도만 공동작곡에만 참여했으며 미국 진출을 위해서 멤버 평균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매니지먼트의 결정하에 Slide it in 앨범을 마지막으로 아무런 불평없이 탈퇴하였다. 딥 퍼플 시기의 존 로드의 연주를 그리워하는 팬들로서는 아쉬운 대목이 아닐수 없으며,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자기 인생의 은인이나 다름 없는 존 로드를 모셔와서 신나게 마케팅을 한 후 재능낭비 시키고 나중엔 홀대하고 내보냈다고 두고 두고 까이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존 로드 자신은 이 시기 솔로앨범도 여러장 발표하면서 나름 만족한 시기였다고 말하고 있다.[10] 어쨌거나 자신이 발굴해낸 10년 연하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리더로 있던 밴드에서 나서지 않고 묵묵히 백업멤버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도 존 로드의 음악적 능력 못지않은 그야말로 영국신사 다운 높은 인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4.1. 사망

파일:존로드2.jpg
2002년 딥 퍼플 탈퇴 이후 솔로활동으로 조용하게 노년기를 보내다가[11] 2012년 7월 16일 런던에서 췌장암 합병증과 폐색전증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71세.

2013년 리치 블랙모어는 블랙모어스 나이트 앨범에 그를 추모하는 <Carry On...Jon>이라는 연주곡을 넣어 존의 죽음을 추모했고 2014년에는 1기의 로드 에반스, 닉 심퍼, 리치 블랙모어와 3기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제외한 나머지 기수의 멤버들(이언 페이스, 스티브 모스, 이언 길런, 로저 글로버, 돈 에어리, 글렌 휴즈)과 아이언 메이든의 브루스 디킨슨, 존과 친분이 있던 오케스트라가 추모공연에 참여해 딥 퍼플 시절의 곡을 연주하며 그를 기리기도 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사정상 불참했지만 2015년 딥 퍼플의 곡들을 화이트스네이크 버전으로 편곡한 <The Purple Album>을 내놓는다. 3기 시절의 'Burn', 'Mistreated', 'Soldier of Fortune' 등이 수록되어 있다.

존 로드의 사망으로 완전체 딥 퍼플의 결성은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2022년 7월 16일, 10주기를 맞이하였다. 그레이엄 보넷이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로드 옹의 열 번째 기일을 기리는 글을 남겼다.[12]

5. 사용 장비

6. 작품 목록


[1] 존의 사망으로 사별 [2] 1970년도 후반부터는 신디사이저와 하프시코드도 연주했다. [3] 딥 퍼플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1945년생인 리치 블랙모어보다 4살 연상. [4] 탈퇴라기보다는 사실상 록밴드구성원으로서의 은퇴 [5] 이후에 키보드는 레인보우, 블랙 사바스, 오지 오스본의 세션맨으로 활동했던 돈 에어리가 맡는다. [6] 초연은 1969년 9월 24일에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진행되었고, 1부에서는 말콤 아놀드 지휘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놀드의 자작곡인 교향곡 제6번을 런던 초연했다. 2부는 딥 퍼플 단독 무대로 Hush와 Wring That Neck, Child in Time 세 곡이 연주되었고, 3부에서 존 로드의 이 협주곡이 공연되었다. 협주곡 공연 후에는 3악장의 후반부가 앵콜로 연주되었다. [7] 리치 블랙모어는 이 시기의 존 로드 주도에 의한 클래식과 록의 조합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도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않았지만, 영광의 2기 딥 퍼플을 알리는 효과는 대단 했다. [8] 이때 리치는 이안에게 온갖 험한 말을 퍼부었고 둘의 관계는 악화된다. [9] 하루는 멤버들의 저녁식사로 소스 없이 치즈와 허브를 쓴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리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안이 '스파게티는 토마토 소스지' 라는 생각으로 케찹 범벅을 만들어놨다. 꼬라지를 보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리치는 스파게티 그릇을 이안의 얼굴에 내던진채 나가버렸다. [10] 네이버 웹툰 만화로 보는 올댓록에는 존 로드가 금전적인 문제로 돈 때문에 화이트 스네이크에 합류, 그리고 1기타 채체가 아닌 2기타 채제로 나가는 등 음악적 견해로 밴드에서 나왔다는 식으로 그려졌다. [11] 2009년 내한 콘체르토 공연을 하기도 했다. [12] 10 years ago today, we lost one of the best of the best. Jon Lord was an incredible musician, friend and man. I have so many fond memories of working with Jon, he really was incredible. During the recording of my solo album Lineup, Jon arrived one morning holding a plastic bag which was rattling with the sound of glass. It was around 9:00am when he made his way to his area of the studio and began unloaded bottle after bottle of varying liquor. When all were unloaded and presented in an arc shape across his keyboard stand, he dramatically turned, surveyed the room and with a mock posh accent stated “gentlemen, the bar is open.” Everyone in the room lost it! It was a superb moment. I wish Jon were still with us. No one played like he did…… incred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