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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9 01:07:30

아시아(밴드)

파일:asia.jpg
1. 개요2. 역사3. 음악성4. 디스코그래피
4.1. 음반4.2. 싱글
5. 기타

1. 개요

영국의 록밴드. 1981년 결성되었다. 킹 크림슨 U.K 출신의 걸출한 보컬이자 베이시스트 존 웨튼, 예스의 스티브 하우,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칼 파머, 버글스의 제프 다운스라는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아시아의 로고과 앨범 커버 일부도 예스와 마찬가지로 로저 딘이 디자인을 했다.

2. 역사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가 잠정적으로 해체하고 프론트맨인 존 앤더슨 릭 웨이크먼이 Tormato 앨범의 참패를 안고 축출된 예스의 휴지기인 1978년부터 이미 구상이 시작되었으며, 예스와 ELP, 킹 크림슨 등 여러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의 멤버들이 서로의 앨범에 참여하며 어느정도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밴드 창립은 수월하게 진행되어 1980년 처음으로 밴드의 앨범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본래 계획은 예스의 릭 웨이크먼과 당시에 무명이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 기타리스트 트레버 레빈, KC의 베이시스트였고 당시에 U.K 해체 이후 한가하던 존 웨튼, 예스의 전 드러머였던 빌 브루포드가 참여할 계획이었지만 중간에 계획이 꼬여서 스티브 하우가 기타리스트로 참여하는데, 스티브 하우가 아시아에 참가하기 위하여 장장 11년만에 예스를 탈퇴한 자리는 원래 아시아에 참여하기로 했던 젊은 피 트레버 레빈이 대체했다.[1][2] 스티브 하우는 원래 예스에서 같이 손발을 맞춰보았던 드러머 앨런 화이트에게 합류 제안을 했지만 한큐에 거절당해 결국 활동 중지중이던 ELP의 칼 파머가 합류했다.

릭 웨이크먼은 막상 아시아에 참여하려 했던 차에 모종의 사유[3]로 게펜 레코드와의 계약을 불발시켰고 그 결과 버글스와 예스를 거친 키보디스트 제프 다운스가 아시아에 참여했다. 제프 다운스는 릭 웨이크먼을 대체할 키보디스트로 1980년 이미 예스에 가입한 상태였지만 이번에는 아시아에 가입하기 위해 예스를 탈퇴(...)해버려서 90125 앨범 라인업에서는 그 자리를 예스의 창립 멤버였던 토니 케이가 대체했다.

이렇듯 출범부터 예스와의 이런저런 연관이 많았으며, 예스의 음악성은 프로그레시브 록 팬덤 사이에서도 유명했기에 아시아와 예스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끌렸지만 예스와 아시아 측 둘 다 예스와 아시아는 그다지 관계가 없는 밴드라고 일축하였다.[4]

1982년 발표한 앨범 Asia는 진짜 호떡집에 불난듯 팔려서 전세계적으로 1천만장 이상을 팔아제끼며 총 9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하였으며, 연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5]를 차지하고 싱글 Heat of the Moment가 빌보드 4위를 기록하면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는 등 시대의 인기 밴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정통 프로그레시브 록을 포기하고 AOR, 하드 록을 선택하면서 프로그레시브 록의 팬들에게는 음악성 대신 돈을 선택했다며 큰 비난을 받았다.[6] 싱글로는 2번째 트랙인 Only Time Will Tell 역시 성공하였다.

1983년에는 앨범 Alpha를 발표, 빌보드 6위를 기록하고 총 150만장이 팔리면서 그 인기를 여전히 유지했고 싱글 Don't Cry도 10위를 기록했다. 또한 US 메인스트림 록차트에는 1위를 기록하며 Heat of the Moment에 이은 2번째 메인스트림 록차트 1위 곡이 되었다. Alpha 앨범의 2번째 싱글인 The Heat Goes On은 빌보드 핫 100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대신 메인스트림 록차트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이때부터 점점 밴드의 불협화음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첫번째로 데뷔 앨범인 Asia에 비해 Alpha 앨범이 생각보다 판매량이 따라주지 않아 보컬이자 베이시스트였던 존 웨튼이 밴드를 나가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밴드는 다급히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에서 칼 파머와 같이 활동했다가 해체 후 솔로활동을 하던 칼 파머의 절친 그렉 레이크를 거금을 주고 일본무도관 콘서트에 섭외해 데려왔고 존 웨튼의 쩌렁쩌렁한 보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키의 보컬리스트인 그렉 레이크였지만 밴드의 협조에 힘입어 촉박한 기간 동안 어째어째 프롬프터까지 동원해가며 나쁘지 않게 공연을 마친다[7]. 하지만 그렉 레이크가 게펜 레코드의 방침에 실망해 나가버리고 나서 다시금 존 웨튼이 가입한다.


대표곡 Heat of the moment의 일본무도관 라이브. 존 웨튼의 탈퇴로 인해 그렉 레이크가 대신 참여했다. 두 보컬리스트간 음색의 차이가 확 나는지라 다른 멤버들의 애드립을 늘렸고 톤도 다운튜닝했다.

그러나 두번째 불협화음이 다시 찾아오는데, 스티브 하우와 존 웨튼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사실 두번째 앨범을 작업할때까지는 둘의 관계가 표면적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웨튼은 웨튼대로 기타연주와 리듬이 너무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하우는 하우대로 곡이 너무 간결하고 팝적으로 변하면서 밴드의 창의성과 음악적 성취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존 웨튼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갑작스럽게 밴드를 탈퇴하고 나서 일본 콘서트를 마치고 세번째 앨범 작업부터는 웨튼의 재합류부터 서서히 손발이 어긋나더니 결국 스티브 하우가 탈퇴한다.

팀과 소속사인 게펜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곡은 존 웨튼과 제프리 다운스가 작곡하고 있었기에 크게 손해볼 거 없다고 생각했지만 세번째로 스티브 하우의 대체자를 모색할 때 문제가 일어난다. 데이비드 길모어조차 명함도 못 내밀어 봤던 일간지 멜로디 메이커의 올해의 기타리스트 우승자를 석권하고 차트에서 매년마다 상위권에 거론되던 당대 프로그레시브계 최고의 명장 스티브 하우의 자리에 큰맘먹고 들어올 만한 클래식에 기반한 필링과 일렉기타의 강렬함을 모두 구현가능한 기타리스트는 별로 없었다. 동시대 유명 기타리스트들에게 러브콜을 보내다 지친 그룹과 소속사는 아예 기존 기타리스트들을 배제한 채 젊고 트렌디한 연주자들에게 초점을 두기로 하여 결국 크로커스(Krokus)라는 밴드 출신인 서글서글한 성격의 젊은 기타리스트 맨디 메이어(Mandy Meyer)가 팀에 합류했다. 맨디 메이어는 스티브 하우에 비해 하드 록 스타일을 기반으로 직선적이고 힘이 넘치는 연주를 선보였다. 하지만, 아시아의 인기는 여기까지였고 1985년 세번째 앨범 Astra는 영국에서만 실버 인증을 받고 빌보드 200에서는 67위에 그치는 흥행 대참패를 당하면서 아시아의 짧은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2022년 현재 스티브 하우[8]와 존 웨튼[9]은 탈퇴한 상태고 대신 예스 출신의 빌리 셔우드[10] 건즈 앤 로지스(!!!) 출신의 론 범블풋 탈[11]이 참여했었고 현재의 라인업은 범블풋의 탈퇴 이후 제프리 다운스, 칼 파머, 빌리 셔우드, 마크 보닐라[12]의 라인업을 유지하고 있다..

3. 음악성


대표곡 Heat of the Moment


Only Time Will Tell


Rock and Roll Dreams

초창기의 1,2번째 앨범은 모두 다운스 특유의 신디사이저음과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스티브 하우의 기타 솔로가 일품이다. 예스, 킹 크림슨, 버글스 등 1970년대를 달궜던 수많은 브리티시 프록 밴드들의 멤버가 함께한 밴드인만큼, 그 밴드들의 음악성도 들어가있어 예스나 킹 크림슨의 음악을 즐긴다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이 많다. 또한 하드 록, 팝 록의 성향도 받아들였고 1980년대 팝의 주류 정서라고 할 수 있는 AOR 성향도 있기 때문에, 프로그레시브 록에 취향이 아닌 사람들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성이 특징이다. 3번째 앨범도 당대 트렌드인 하드록 경향이 강하지만 타이틀곡인 'Go'에서의 맨디 메이어는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기타연주를 보여주면서 확 젊어진 밴드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성에 있어서는 예스나 킹 크림슨에 비해 평가가 낮고 아예 프로그레시브 록을 배반했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1980년대에는 많았다. 필 콜린스 피터 가브리엘 등 동시대에 팝적인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던 여러 아티스트들에 비하면 그나마 아시아는 프로그레시브 록의 색채가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13]

활동 당시 롤링 스톤은 아시아를 별볼일 없는 밴드라고 평했지만, AOR 프로그레시브 록의 결합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일반적인 AOR의 수준보다 격이 높다며 칭찬한 바 있다.

4. 디스코그래피

4.1. 음반

4.2. 싱글

5. 기타



[1] 트레버 레빈이 처음으로 녹음한 앨범이 90125인데 이 앨범 역시 아시아의 앨범들만큼이나 아주 성공했다. [2] 이후 스티브 하우는 중소 프록 밴드들을 떠돌다가, 1996년부터 현재까지 다시 예스로 돌아와 활동 중이다. [3] 여러가지 문제가 많았다. 아버지의 별세, 개인 솔로 투어 준비로 인한 재정의 악화 등등...후일 웨이크먼 본인이 밝히길 당시엔 투어 이후 쪼들리는 판국이라 83%아무리 Taxman의 국가라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라는 영국의 미친 세금을 피해 스위스까지 도피한 적도 있던지라 영국에 돌아왔을 적엔 이미 집도 차도 죄다 넘어가 버려서 갈 곳도 없이 한동안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다가 전에 알고 지내던 로드매니저가 집에서 숙식하게 해줘서 겨우 사람처럼 살게 되었다고.. [4] 사실 계약상의 문제 때문이 컸다. 일단 예스는 애틀랜틱 레코드 소속이었고 아시아는 게펜 레코드 소속이었다. [5] 쉽게 말해 그해 한해동안 미국에서 제일 히트친 앨범이라는 뜻이다.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 바로 연말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이다. 게다가 빌보드 최대 레드오션이었던 1980년대에 1위는 정말 대단한 기록인 셈. 게다가 프록 밴드중에서 빌보드 연말 차트 1위를 차지한 밴드는 아시아와 핑크 플로이드밖에 없다. 오죽하면 스티브 하우는 인터뷰에서 예스에서 활동하는 10년 내내 벌어들인 수익을 아시아 1집때 벌었다는 얘기를 했을 정도였다. [6] 사실 비슷한 시기 인기를 누렸던 저니도 프록 밴드 출신이고 제쓰로 툴, 제네시스, 핑크 플로이드, 킹 크림슨 등 대부분의 프록 밴드들이 대중적인 팝 노선으로 전환하였기 때문에 아시아만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핑크 플로이드 제네시스가 대중성을 위시해 팝 성향으로 가면 밴드의 존립을 위한 결단이고 예스나 아시아가 팝적인 성향으로 가면 돈에 눈이 먼 것인가? 자칭 프록팬들의 내로남불적인 이중성을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똑같이 대중적인 노선을 택해도 누구는 착한 노선이며 누구는 또 변절이라고 하니 대체 그 기준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정말 자의적이기 짝이 없는 기준이다. [7] 2022년에 이 일본에서 진행된 라이브 공연실황을 블루 레이까지 포함된 deluxe edition으로 구성하여 Asia in Asia - Live at the Budokan, Tokyo 1983가 발매되었다. [8] 아시아 25주년 기념 투어를 위해 잠시 재가입해서 활동하다 2013년 밴드에서 은퇴. [9] 역시 아시아 25주년 기념 투어를 위해 복귀했었다. 2017년 1월 31일 별세. [10]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예스의 베이시스트였다. [11] 2006년부터 2014년까지 GNR의 제4대 기타리스트였다. 액슬 로즈의 지랄맞은 성격 때문에 6년만에 탈퇴했다. [12] Marc Bonilla. 글렌 휴즈 키스 에머슨과 작업한 적이 있다 [13] 이는 아시아 멤버들의 출신 밴드중 하나인 예스의 90125도 마찬가지이다. [14] 초기 3부작. 아시아라는 밴드의 커리어를 짚어볼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다. [16] 이 앨범부터는 존 웨튼이 떠나고 자리를 대체한 존 페인이 활동한다. [16] Geffen 레코드에서 출시한 초기 3장의 앨범과 싱글 B-Side 수록곡, Then & Now 앨범의 4곡을 추가해 총 36곡으로 구성된 편집앨범. [18] 이 앨범은 마침내 'a'로 시작하고 끝나는 단어로 아시아 스튜디오 녹음을 명명하는 전통을 깨뜨렸으며, 재결합 전 존 페인의 마지막 앨범이다. [18] 사실 1990년대 이후 2008년 이전까지도 앨범 활동이 있긴 했지만 이 시기는 오리지널이 아닌 멤버들이 활동을 했던 시기이며 국내에 음반이 정식 발매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던 시기인데 워낙 많은 멤버들이 왔다갔다해서 가히 구 건즈 앤 로지스도 울고갈 수준으로 멤버들의 교체가 잦았다. 초기 멤버들이 다시 뭉친 Phoenix 앨범 이후로는 로엔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발매되었다. [19] 결성 30주년 기념앨범으로 로마숫자로 30을 의미 [20] 존 웨튼이 보컬로 참여한 마지막 앨범, 이후 빌리 셔우드가 보컬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