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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8 16:52:10

조지아-아르메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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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조지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근대2.5. 현대
3. 상호 교류4. 교통교류5. 여담6. 관련 문서

1. 개요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캅카스에 위치한 두 나라는 모두 고대부터 기독교를 믿었으며 한 때 바그라티온 왕조는 동군연합에 준하는 왕조들을 세우기도 했었다. 다만 좀 더 서쪽에 위치하여 동로마 제국과 교류가 많았던 조지아의 경우 정교회의 칼케돈 신조를 그대로 수용했던 반면 아르메니아의 경우 오리엔트 정교회의 일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로 갈라져서 5~7세기동안 동로마 제국과 갈등을 빚었다.

2.2. 중세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일대는 중세 초 아랍인들의 침공과 중반 튀르크인들의 침공을 겪었다. 조지아의 경우 고향 조지아 땅을 중심으로 조지아 왕국 시대 동이베리아판 레콩키스타를 벌여 튀르크계 무슬림들을 격파하고 캅카스의 패자가 되는 등 중흥기를 구가하였고, 아르메니아인들은 고향을 떠나 아나톨리아 남부의 킬리키아로 이주하여 십자군들과 연합하여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은 14세기 맘루크 왕조의 공격으로 멸망하였고, 전성기를 달리던 조지아 왕국 역시 몽골 제국의 침략을 겪어 전성기가 꺾이고 이후 티무르 제국의 침공을 계기로 붕괴하였다.

2.3. 근세

조지아 왕국과 아르메니아 왕국이 붕괴한 이후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발흥한 사파비 제국은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침략하였으며 엄청난 수의 조지아인들을 노예로 잡아 끌고 갔다. 조지아인 남성들은 노예병으로 조지아인 여성들은 하렘으로 끌려갔다. 아르메니아인들은 비교적 처지가 나았는데 사파비 제국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상술이 좋다는 것을 알고 수도 이스파한 근처로 강제이주시킨 후에 황실에 공납품을 대도록 하였고, 조지아인들을 무조건 시아파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것과는 반대로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에게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를 유지할 권리를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은 페르시아 만으로 들어온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상선들은 물론 서쪽의 오스만 제국과의 무역을 대행하면서 사파비 제국 치하에서 나름 좋은 대우를 받았다. 조지아인들의 경우 사파비 제국 영내에 주민들은 아무때나 징발당해 강제이주를 당할 수 있는 비참한 처우를 받았으나 오스만 제국 영내에 속하게 된 조지아 서부는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2.4. 근대

사파비 제국이 무너지고 이란에는 여러 차례 전쟁으로 왕조들이 몇 번 뒤집어진 이후 다시 아제르바이잔을 중심으로 카자르 왕조가 들어섰다. 제정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점령한다. 러시아의 점령 이전 아르메니아 영토에는 아르메니아인 인구가 희소해진 상황이었으며, 조지아의 수도가 되는 트빌리시 역시 인구 대다수가 무슬림이거나(이 중 상당수는 시아파로 개종했던 조지아인) 아니면 아르메니아인이었던 상황이었다. 근세부터 근대까지 트빌리시에는 조지아인보다 아르메니아인 인구가 더 많았는데, 이들은 현지 조지아인들과 사이가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렇게 트빌리시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은 상당수가 모스크바 등으로 이주하여 아르메니아계 러시아인이 되기도 하였다.

2.5. 현대

러시아 혁명 전후하여 자캅카스 민주 연방 공화국이 세워지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소련의 통치를 받았다. 두 나라들은 소련 해체 이후 독립되었다.

조지아-아제르바이잔 관계와 달리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는 1910년대 국경 획정에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유혈 충돌을 벌인 바 있다. 이후 신생 독립 튀르키예가 소련과의 협정으로 자기 몫을 챙겨 가고 남은 땅을 소련이 강제 중재해 그 관할을 확정하였으나 정치 어젠다 측면에서는 전쟁의 앙금이 오늘날까지도 전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 관계에 있어 소련 시절 상당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트빌리시에서 잘 살아 왔고 국경 문제에 대해서 양국 모두 알마아타 의정서에 동의하기는 하였으나 그 이상의 진척은 없다.

오히려 2008년 조지아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조지아를 간접적으로 도울 때 아르메니아는 이를 아르차흐 공화국의 국제 승인 기회로 삼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를 긍정하며 양국 관계는 가뜩이나 별 교류도 없는 판에 더 악화되기도 하였다. 조지아는 대노했지만 실질적으로 아르메니아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지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일단 비난 수준에서 그냥 넘어갔고, 조지아는 후일 2017년 조지아에서 나토-조지아 연합 훈련이 열렸을 때 비록 CSTO 가맹국이나 서방과의 협력을 원하는 아르메니아군이 훈련에 초청받을 수 있도록 협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에 깊게 종속된 상황에서 무리한 외교 행보를 지속할 여력을 상실한 상태였고, 이 훈련 참가를 돌연 기권한 뒤 # 2018년 러시아, 벨라루스, 그리고 조지아의 주권 영토에 속한 러시아계 괴뢰국들과 합동훈련을 하며 조지아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다.

2020년 발발한 아아전쟁에서 조지아는 2018년 뒤통수의 기억을 잊지 않았는지 기계적 중립으로 아르메니아 국경 봉쇄에 한 숟가락 거들며 아제르바이잔의 승전에 키맨으로 활약한다. 바로 중립을 운운하며 아르메니아로 가는 군수 물자의 반입을 막아버린 것.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세계의 도움을 호소하였지만 바로 이웃한 기독교권 국가인 조지아의 신임도 얻지 못해 국경이 막힌 마당에 그런 도움은 닿을 수 없었다.

2023년 11월, 조지아는 프랑스에서 아르메니아로 가는 군수물자를 허용했고 아르메니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이는 조지아의 EU 가입을 위한 행위 중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

2024년 양국이 전략적 파트너쉽을 맺기로 협의했다. #

3. 상호 교류

아르메니아는 가난하고 특산물이 적으며 절대적인 시장 파이도 작고, 조지아와의 국경 대부분이 분쟁으로 경색되어 있어 조지아와의 교류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직접 적대하는 상황은 아니기에 무역과 인적 교류는 이루어지고 있다. 아르메니아인들은 소련 시대 이전부터 트빌리시, 아할치헤 등지에 많이 거주하여 유명인들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또한 아르메니아는 내륙국으로, 유일한 외부 루트인 조지아의 항구를 빌려 쓰고 있다. 조지아가 갑이라서 아아전쟁 문제를 두고도 뭐라고 하지도 못한다.

내륙국인 아르메니아는 큰 호수가 있기는 하지만 바다가 없기 때문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바투미 등 조지아 해안가 휴양지에 놀러가기도 한다.

4. 교통교류

양국을 통하는 열차 및 항공편이 운행되며, 미니버스의 일종인 마르슈르카를 이용해서도 쉽게 왕래 가능하다. 트빌리시 예레반을 왕래할 때 기차를 이용할 경우 한화 약 19,0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므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기차를 추천한다. 트빌리시는 조지아 동부에 있고 바투미는 조지아 서부에 있는데 바투미랑 예레반을 왕래할 때는 비행기가 괜찮을 수 있어도 트빌리시에서 예라반 가는 길에 비행기를 타는 것은 돈이랑 시간 모두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배낭여행자의 경우 마르슈르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데 이동 거리 와중에 경치가 좋은 곳에 버스가 정차하기 때문이다. 트빌리시에서 예레반은 자동차로 4시간 거리이다.

5. 여담

문화적으로도 조지아인들은 유럽에서 성문화가 가장 보수적인 민족으로 꼽히는데 반해 아르메니아인들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성적으로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여성들이 성격이 드세다고 알려진 편이다. 조지아인들은 근세 당시 대부분 이슬람으로 개종했었던 영향 및 폐쇄적인 산악 지대에서 농경 생활을 주로 했던 영향으로 사회보수주의적 성향을 띠는 반면, 아르메니아인 사회는 디아스포라 및 유럽인들과의 활발한 무역의 영향, 과거 소련 사회 전반에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참여했던 영향 등으로 조지아와는 상당히 다른 문화가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여러모로 한일관계와 비슷한듯. (조지아는 일본과의 공통점이 많고 아르메니아는 한국과의 공통점이 많으며, 캅카스의 한일로 비유되기도 한다.)

조지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시도하는 압하지야에도 적잖은 아르메니아인이 산다. 조지아 내전 직전인 1989년 아르메니아인은 14.6%로 압하스의 제3민족이었다. 소련 해체 후 다수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해외로 이주했으나 압하스 공화국 당국에서 원래 제1민족이었던 조지아인을 모조리 학살하거나 추방하여 아르메니아인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20.8%로 오히려 늘었다.

6.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