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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17:44:58

조지아-압하지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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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압하지야
1. 개요2. 역사적 관계, 교통 교류3. 갈등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조지아 압하지야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 교통 교류

고대에는 콜키스 왕국에 속했고, 중세시대에는 동군연합을 이루기도 했다. 이후 두 지역 모두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 소련의 지배를 거쳤다. 소련 시절 조지아와 압하지야는 1931년까지 조약 공화국 관계였고 이후로는 조지야 산하에 압하지야가 자치 공화국으로 들어갔다.

소련 해체 이후 조지아는 독립되었으나 압하지야는 여전히 조지아에 속해있었고 이에 압하지야 전쟁이 발발하여 사실상 독립했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 압하지야는 남오세티야와 러시아를 지원했고, 덕분에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다. 다만 조지아는 여전히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등 갈등이 큰 편이다.

파일:압하지야 자치공화국 국기.svg
조지아에서 제안한 압하지야 자치공화국 국기.[1]

조지아는 압하지야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소련 시기 그루지야 SSR의 자치공화국이었던 압하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지위를 계승하여 압하지야를 자국의 자치공화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조지아측에서 인정하고 있는 압하지야의 합법 정부는 압하스계 압하지야 공화국이 아닌 조지아계 압하지야 자치공화국(აფხაზეთის ავტონომიური რესპუბლიკა / Аԥснытәи Автономтә Ареспублика)이다. 자치공화국 정부는 2008년부터 트빌리시 망명 정부로서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갈등이 있기에 두 나라 간의 교통 교류는 없는 편이다. 조지아와 압하지야를 오가는 유일한 합법적인 통로는 주그디디 근처 엔구리 강의 검문소 뿐이다. 코로나 사태 동안 검문소가 폐쇄되었으나 2023년 이후 통행이 재개되었다.

3. 갈등

1810년 러시아제국에 흡수된 그루지야 내 압하지야공화국도 러시아-그루지야 전쟁의 또다른 전선이 됐다. 러시아제국이 망한 뒤 한때 그루지야에 점령됐던 압하지야는 소련 성립 이후 1921년부터 1930년까지 자치공화국으로 존립했다. 그러나 그루지야 출신인 스탈린의 등장으로, 압하지야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처형당하고 탄압받았으며, 압하지야는 다시 그루지야 영토 내 자치공화국으로 재편됐다. 압하지야는 1992년 분리독립 선언을 했으나, 그루지야와 교전으로 수백명이 숨졌다.
소련과 ‘애증관계’…나라 안선 ‘민족갈등’
공산주의 이념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압하지야는 ‘조지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의 자치국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91년 소련 해체로 조지아가 독립하자 압하지야도 덩달아 독립을 요구하면서 유혈 내전이 시작됐다. 수만 명의 민간인이 살해당하고 강제로 퇴출당한 이 싸움을 계기로 압하지야의 자치는 막을 내렸다.
그들은 왜 세계지도에 표시되지 못했나
조지아·압하지야 분쟁은 본질적으로 양 민족간 언어·인종·전통·역사·사회제도의 상이성에 기초되고 있다. 압하지야 민족은 오랜 기간 동안 외세의 지배 속에서도 자신들의 고유한 언어·문화 전통 등을 유지하는 독립성이 강한 집단이다. 소련 형성기 민족 구성과 역사적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경계 설정과 스탈린 시기 강압적인 조지아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조지아에 대한 아브하즈인들의 불만과 불신을 가중시켰다. 따라서 소연방 해체 이후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독립하거나, 최소한 정치적 주권과 사회문화적 자율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연방국가 형성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조지아 측은 압하지야가 역사적으로 조지아에 속하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압하지야의 독립 요구는 무책임한 반정부 행위로 간주되어졌다
“카프카스 지역의 학적체계와 담론 :역사, 문화, 그리고 지정학” - 2015년 한양대 HK 2차 국내학술대회 p73~74[출처]
이는 애초 압하지야의 조지아에 대한 편입은 소련에 강요된 압하지야의 조지아화 였기 때문이다.

2000년도 이전부터 이미 남오세티야와 또 다른 조지아 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는 조지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90년대 초부터 분리 독립을 시도해 중앙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곳이다. (인용 출처)

압하지야는 고유 언어인 압하스어까지 있는 독자적인 문화권이며 남오세티야와 달리 압하지야에서는 '러시아에 편입될 생각이 없다' 공개적 입장 표명 (뉴스1)이 나올 정도로 무조건적으로 러시아를 따라가지도 않는다.[2] 압하지야가 러시아에 몰빵하다시피 관계에 매달리는 것은 오직 압하지야를 침략하는 조지아가 매우 싫기 때문이며 주변에서 압하지야를 지배하려고 하는 조지아로부터 압하지야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러시아뿐이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압하지야는 소련에 의해 조지아의 자치공화국으로 지위를 격하당했으며 소련에서 압하지야를 조지아에 동화시키기 위해 강제 동화정책을 실행하며 압하지야를 억압하며 방해가 될 수 있는 압하지야의 지식인들을 처형했으며 조지아 중앙정부는 압하스인 강제 동화를 위해 조지아인들의 압하지야 이주를 장려했다. 즉 압하지야로서는 조지아와 도저히 한 나라를 이루고 함께 살 수 없는 원한관계에 있는 셈이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이후로도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남오세티야 지역과 마찬가지로 국경 지대를 무단으로 침범했다는 명목 하에 압하지야에 의한 조지아인의 구금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조지아내 친러 자치공화국' 압하지야 "러시아 편입 계획 없어"
친러 자치지역 압하지야서 '러 투자 협정' 반대 시위(종합)
일각에서는 압하지야에 대해 러시아의 괴뢰국으로 취급하는데 정작 압하지야는 러시아로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당장 러시아의 경제적 간섭에 불만을 품은 압하지야인들이 상당하기에 러시아의 괴뢰국으로 인식되는 압하지야에서 정작 러시아에 편입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간섭에 항의하는 대대적인 시위가 발생한다는 전혀 다른 전개가 이어지고 있다.

4. 관련 문서



[1] 한 국가에서 독립한 미승인국가에 대해 대부분 해당 국가에선 미승인국 영토의 국기, 국장 등의 상징을 따로 제작하는 경우는 없는데, 조지아는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에 대해선 자체적으로 국가와 국장 도안을 제안, 제작하였다. [2] 남오세티야랑 비교하면 일목요연해지는데 압하지야와 달리 남오세티야측은 적극적으로 러시아로의 편입 의사를 드러내는 중인데 지도자가 러시아로 편입되겠다고 공개토론까지 제안해대는 판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