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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2:12:45

유정호

정호씨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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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000><colcolor=#000,#fff> 유정호
柳正虎
파일:유정호.jpg
출생 1993년 3월 2일 ([age(1993-03-02)]세)
대구직할시 달서구 진천동
(現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76㎝[1]|57㎏
가족 어머니 서정희, 누나
딸 유하린(2017년생)
학력 대구진천초등학교 (졸업)
대진중학교 (졸업)
대구체육고등학교 (졸업)
병역 병역면제[2]
종교 불교
소속사 디지털레코드[3]
직업 유튜버, 가수[4], 인터넷 방송인
별명 류튜브, 류정호[5], 뚝배기 브레이커 정호씨, 몬쉥긴 정호씨[6], 정호맨, 동물사랑꾼[7], 악마 관상, 괴물 관상
구독자 수 105만 명 → 98.2만 명[기준] → 비공개[9]
링크 파일:SOOP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가수 시절2.2. 유튜버
3. 논란 및 사건 사고4. 여담5. 관련 링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유튜버이다.

2. 생애

2.1. 가수 시절

중학생 시절, 직접 노래를 불러서 엔터스라는 예명으로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2013년 무렵부터 웃긴대학에서는 '가수엔터스', 오늘의 유머에서는 '슬픈일요일에'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면서 두 사이트에서 유명한 네임드로 활동하며 꾸준하게 봉사활동을 하는 글을 올렸다.

웃긴대학 기부대란 사건이 발생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본명보다는 주로 '엔터스', '스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그 이후, 유정호 본명으로 페이스북 활동을 시작해서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유튜버가 되었다.

2.2. 유튜버

본인의 응징뿐만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응징 영상[10], 모금 영상, 혹은 단순히 부당한 일을 알리고자 영상을 찍곤 한다. 고양이 시체를 태운 급식들, 학교 폭력 가해자, 입주민의 갑질로 폭행당한 경비원[11], 암 말기를 판정받았으나, 형편 때문에 수술을 거의 포기했던 황미옥 양 등등. 이렇게 꾸준히 선한 일을 많이 하면서도 광고 같은 수익성 활동은 일절 하지 않기 때문에 댓글창에는 제발 광고 좀 넣어달라거나 돈을 보낼 수 있도록 계좌번호를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콘텐츠 중 참교육 콘텐츠가 인기가 있어 다른 유튜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경찰이 개입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 이른바 '정의구현'을 하는 것 때문에 사적제재 논란이 일었고, 본인도 고소 및 고발 등의 위험이 크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 게시된 동영상을 보면 '정의구현' 실행 이전에 경찰이나 무료 변호 상담 등의 도움으로 법률 자문을 받아 문제되는 부분은 없는지 철저히 확인하고 행동에 착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평소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는데, 자주 올라오지는 않는데, 보여주기식/ 관종이라는 악플 때문인 것 같다. 초기에는 동영상 구성이 정지 사진의 슬라이드 쇼 방식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동영상 형태로 변화했다. 그밖에는 대학교 똥군기를 주제로 올린 것도 있다. 니가 버린 시간들(싱글).

당시 본인 주장으로는 참교육 콘텐츠들은 재미를 연출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기부나 봉사등의 활동은 절대 주작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2021년 2월, 유정호 자살 시도 사건 및 화장품 논란의 여파로 혼란의 시기를 거친 후 2021년 5월부터 새로운 포맷으로 돌아왔다. 편집자를 고용했는지[12] 기존 단순한 맑은 고딕 자막에서 TV 예능 방식으로 편집 스타일이 크게 바뀌었다. 스타박스는 현주(큐빅스)와 공동 진행. 게스트를 초대해 인터뷰를 진행하는 코너이다. 그 외 지니포유, 홍보유 코너가 신설되었다. 그러나 2021년 5월 29일 유정호 불법 도박 및 사기 사건 이후 모든 유튜브 영상이 비공개되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유정호/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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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안녕하세요 유정호입니다.
계속 글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 하다 보니 밤을 새워 버렸고 몇 시간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니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여러분께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전하는 편지가 제 마음과 같이 여러분을 슬프게 할까 봐 아프게 할까 봐 몇 번을 쓰고 지우기를 며칠간 하면서 메모장에 여러분께 쓴 편지를 지울 때마다 항상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내 사람들은 영상으로만 나를 만나니... 괜찮은 척, 행복한 척, 기쁜 척 한 번만 더 해보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아프고 힘든 일들을 날이 밝을 때까지 써 내려간 이후에 과연 이 글이 내 마음이 내 사람들에게 잘 전해질 수 있을까 내가 써 내려갔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아기가 깰까 혹여나 이런 모습을 아내가 볼까 봐 숨죽여 울었네요. 참 찌질하죠?
참 나 나름 열심히 했다 하며 생각하며 한 번만 더 피에로 가면을 쓰자며 썼던 글들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습니다.
여러분들을 속이는 게 아니라 내가 무너져버리면 나를 믿고 있던 사람들이 함께 무너질까 봐 그것이 제일 두려웠습니다.
또 지금 써 내려간 글을 지우고 여러분에게 닿지 못할 수도 있는 나 자신에게 편지가 또 되어버릴 수도 있지만 만약 이 글이 혹은 영상이 올라간다면 마지막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먼 여행을 떠나고 있다고 말할래요.
2018년 10월 23일 여러분들께 공황발작 때문에 힘들다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공황발작을 발견하기 전 죽을 거 같고 심장이 터질 거같이 아파 응급실에 자주 실려 가 몇백만 원을 들여 검사란 검사를 가톨릭대학병원에서 했었지만 빠르게 뛰는 심박 수 말고는 정상이었고 똑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자주 실려 오는 것을 본 응급실 선생님께서 정신과를 추천해 주셨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갔더니 여러 검사를 받고 에피소드가 없는 공황발작을 진단받았습니다.
제 병은 아무 이유 없이 죽을 거 같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가 오는 것이라 했습니다.
점점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이유가 없으니까 이유 없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제가 아팠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주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기는 싫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아주 많이 좋아하고 보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영상으로 웃고, 행복하고, 힘이 센 척, 슬프지 않은 척, 항상 녹화된 영상이 있었기에 유정호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새벽에 구름 사이로 달이 잠길 때 항상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영상을 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지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알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지요.
화면 너머로 여러분들을 볼 수는 없지만 화면 너머로 나를 보고 있는 당신에게 마지막은 그저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는 유정호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 혹시나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정말로 그땐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당신에게 친구로 다가가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유정호입니다.
1993년 3월 2일 오후 3시에 태어났습니다.
머리가 너무 커서 엄마가 정말 죽을 뻔했대요.
저희 부모님은 맞벌이셨어요.
항상 해가 지고 들어오셨고 덕분에 아주 어린 나이부터 밥 짓는 법을 알게 되었어요.
집안 사정은 좋지 못했어요.
하지만 사랑의 부족함은 느끼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렇게 사랑받고 살았고 초등학교에 들어서고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께서 몸이 좋지 않아 쓰러지셨고 혼자서 어머니께서 가족을 책임지기엔 한계가 있었고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져 기초수급자로 혜택을 받아 동사무소에서 쌀을 지원해 줘서 굶지는 않았었어요.
가끔 병원비 때문에 동사무소에서 받은 쌀을 동네 슈퍼에 팔기도 했었고 봄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다시 왔을 때 즈음 입던 옷이 작아지고 초등학교 한 학년이 올라갈 때 가난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게 되었어요.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다닌다는 것으로 놀림당할 때 "같은 옷이 여러 개라서 그렇다"라며 첫 거짓말을 배웠고 한파가 불어닥쳐 수도가 얼거나 했을 때에는 "유정호한테 더러운 냄새 나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유정호는 부끄러움이란 걸 배웠습니다.
따돌림, 왕따, 자연스럽게 그렇게 커 왔던 것 같아요.
특별하게 초등학생 때 좋았다기보다 기억에 남는 건 한 가지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생 때 처음으로 치킨과 피자를 먹어본 날.
더럽다고 친구들이 다들 피하는 저를 친구로 생각해 주는 친구가 생일파티에 초대해 줬어요.
손 편지를 종잇장에 써서 편지 봉투를 만들어 밥풀로 붙여 꾸며 들고 갔었죠.
아직도 기억나네요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니.
몇 번 고민을 하고 치킨 두 조각을 주머니에 숨겨 나왔어요.
엄마 아빠에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있더라 보여주고 싶었어요.
딱 그만큼이었어요.
퇴근한 어머니께 냄비 속에 숨겨놓은 치킨을 꺼내 드리니 어디서 난 거냐는 질문에 친구 생일파티에 갔다가 이렇게 맛있는 게 있어서 몰래 숨겨왔다 하니
그날 어머니께서는 울었어요.
왜 우냐 물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이렇게 맛있는 게 있어서 눈물이 난다며 앞으로는 우리도 시켜 먹자 하며 하셨던 말이 어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니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우리 엄마는 가슴이 찢어짐을 웃음에 눈물과 삼키신 것이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대진중학교에 가고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도 함께 같은 학교에 배정이 되었고 괴롭힘은 지속되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유서를 쓰고 보건소에서 처방해 주었던 결핵 약 한 통과 집 안에 있는 약들을 모두 삼켜 누웠어요.
깨어나 보니 코에는 호스가 달려있었고 위세척을 하고 있었고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어요.
그 후에 모든 것이 학교에 알려졌고 그제서야 학교는 징계를 내리고 나를 죽지만 않게끔 도와주었어요.
죽음을 선택하기 전 가장 힘들었던 것은 폭력보다 교복에 침을 뱉는 것보다, 화장실에 끌고 가서 걸레 빠는 칸의 호스로 물로 샤워를 시키는 것보다, 내가 이렇게 괴롭힘당하는 것들이 당연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중학생 때부터 가톨릭대학병원 정신과를 다녔어요.
자살 고위험군이라며 교수님은 부모님께 저의 입원을 권유하셨었고 입원 대신 어머니와 동네 근처 산과 개울을 자주 돌아다녔던 게 기억이 납니다.
아주 사랑받았고 사랑하기에 치유받았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 물론 친구는 없었습니다.
대신학교에서 수급 대상자 아이들에게 신청하면 컴퓨터를 줬었는데 운 좋게도 제가 받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 커뮤니티에 가입하여 친구를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고 주로 제가 올렸던 건 이웃을 돕는 방법이었어요.
모든 것이 괜찮아질 때 즈음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을 하게 되셨고 어린 나이 유정호는 가장이 되었어요.
새벽 우유배달 신문 배달 목욕탕 청소 가끔 중국집 배달 일을 하면서 힘든 소년 소녀 가장 홀몸 어르신을 뵈게 되었고 어느 순간 그 이웃들과 가까워지니 그들을 돕는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인터넷에 약자를 돕는 방법을 공유하기를 수년간 처음에는 착한 척하는 사람이다 반짝하고 말 것이라는 사람들이 응원해 주고 동참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봉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그날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어요.
두꺼운 옷을 입고 방 안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입에 물고 계시던 아버지가 배가 고프다는 말에 수프를 끓여드리고 너무 아프다는 말에 병원에 가고 싶다는 아버지 말씀에도 저는 병원에 데려다 드리지 못했어요.
땅이 얼고 일이 없어서 치료비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추운 겨울 아침 눈앞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나지막한 목소리의 "정호야 아빠 아프다 춥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였어요.
나 자신을 자해하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때 나는 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나가족도 못 지킨 새끼가 누굴 돕냐고.
저를 응원해 주던 사람들도 봉사를 그만둔다는 말에도 나를 이해해 주었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줍는 홀몸 어르신을 보게 되었는데 야위고 아파 보이고 뒷모습이 딱 우리 아빠 같았어요.
무언가에 홀린 듯 다가갔고 너무나도 아버지를 닮은 모습에 그렇게 무언가에 홀린 듯 아버지를 닮은 정말 아픈 어르신을 시작으로 다시 이웃을 돕기 시작했어요.
내 가족도 못 지킨 유정호.
내가 생각해도 나는 쓰레기고 다시는 누굴 돕지 말자 생각했지만 국가의 혜택이나 잘 몰라서 치료받지 못하고 끼니를 굶는 사람들이 많음을 느끼고 다시 시작한 인터넷.
다시 시작한 이웃을 돕는 방법에 대한 글에 달린 나를 기다린 분의 첫 댓글.
"기다렸습니다. 저는 신을 믿는 편입니다. 당신이 겪은 고통들은 아마 어려운 이웃들을 이해하라고 시련을 주신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동정이 아닌 이해를 해주고 홀몸 어르신께 아들이 되어주고 당신에게는 부모를 잃은 것이 불우했던 일들이 잔혹하겠지만 신이 있다면 뜻이 있는 거겠지요...? 정말로 신이 나에게 먼저 고통을 주고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이웃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신의 뜻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봉사.
그것도 잠시 암은 유전적 요인도 크다고 하나요.
복부에 통증 소변 누는 것이 힘들고 40도 가까이 열이 나는 것이 반복.
병원에서는 독감인가 싶어 피검사도 하고 항생제도 맞고 그렇게 반복하다 ct 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신의 장난인가요.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남은 어머니 가정을 지키는 가장인 제가 이제 숨을 좀 돌리려 하니 이제는 제가 암으로 가족을 힘들게 해야 한답니다.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죽음을 선택하려 했고 마지막으로 수년간 봉사하던 커뮤니티에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즐거웠다고 봉사는 여기까지인 거 같다.
정말 먼 여행을 떠날 거 같다고.
그러자 달리던 댓글.
"넌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도왔으면서 왜 너는 도움받으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루 만에 병원비를 모아주셨고 12시간이 넘는 개복수술 끝에 목과 온몸에 달린 바늘 극심한 통증에서 눈을 떴을 때 그때 약속했습니다.
"어차피 죽었을 운명 살아났으니 나와 똑같이 힘든 사람들을 돕고 살겠습니다."
그렇게 그 일로부터 7년을 쉬지 않고 도왔습니다.
이식 수술비가 없어 눈앞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봐야 하는 어린 딸의 수술비를 함께 내주었고 수많은 소아암 아이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지난 7년간 여러분들과 함께 살려냈습니다.
10년이 넘도록 지켜온 것 한 가지.
수많은 TV 출연 제의, 공중파의 뉴스 취재, 고액의 광고 제의 모두 다 거절해온 이유.
여러분들과 했던 추억과 봉사들이 다른 목적이 있었다던가 더럽혀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저 여러분들과 함께 작은 것이 모여 한 아이를 한 가정을 살리고 그 아이가 커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활짝 웃는 근황들을 보면서 함께 뿌듯해하고 기뻐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다시 되돌아와 2018년 10월 23일.
이유 없는 공황발작을 진단받은 날.
아내도 저도 참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말 누가 나를 죽일 거 같은 당장 지금 내가 죽을 거 같은 마음에 항상 구석진 곳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간을 찾아 숨어버리곤 했습니다.
"괜찮아지겠지... 이유 없는 발작이면 이유 없이 사라질 거야."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없던 게 아니라 몰랐던 거였던걸.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가슴에 마음에 유리 파편처럼 꽂혀있던 것이었어요.
유리 파편을 빼고 회복할 시간을 주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알아버렸나 봐요.
저는 학교폭력 상담사가 주 업무입니다.
어릴 때 당했던 학교폭력.
누가 옆에서 이야기해 줄 사람이 넌 잘못한 거 없어 걱정하지 마 믿어 봐라고 말해줄 사람이 절실했기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해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많은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어릴 때 내가 학교에서 겪었던 사회의 부당한 일들.
뭔가 잘못된 것을 바꾸려다가 포기하고 더 상처를 입었던 것들과 지난 힘들었던 12개월 동안 아이가 아프다, 임산부인데 아이와 내가 위험한데 병원비가 없어 치료를 못 한다, 부모님이 아픈데 치료비가 없다, 그 말에 저도 아픔이 있고 아이도 있으니 감정이입이 되어 진심으로 도와주고 나니 그 도움을 받은 사람을 알아본 지인이 제보가 왔습니다.
그 사람 부모님이랑 짜서 유정호 님한테 도움 좀 달라 해서 돈 좀 받아봐라 한 거다, 그 미혼모분 부모님이랑 짜서 아기 팔아서 만들어낸 이야기다.
그리고... 그다음도. 그리고... 그다음도.
6개월가량을 연속으로 내가 아프고 힘들었던 감정을 이용했다는 것에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모자란 것인데.
한날 진심으로 사과하더라고요.
속이고 받은 돈은 나중에 일해서 꼭 돌려보내 드리겠다고.
제가 그때 가장 심한 공황발작에 응급실에서 진정제를 맞았던 걸로 기억해요.
그 이후로 나 자신이 더욱더 숨기 시작한 거 같아요.
처음 말하는 거지만 틱장애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방송 중에 자꾸 기침을 하잖아요.
무언가 불안할 때 기침을 하면 좀 나아지던 게 습관이 되고 밥 먹을 때 불안해지면 속이 불편해져서 토를 하게 되는데 그럼 좀 나아지는 게 또 습관이 돼서 그날 이후로 먹으면 토하고 먹으면 토하다 보니 병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아이도 나를 닮아 아프기 시작해 입원을 자주 했어요.
참 못난 아빠 못난 남편이죠.
얼마 전 병원에 갔어요.
기침을 하는데 피가 심하게 나오더라고요.
기침을 많이 해서 기관지가 상했나 보다 했는데 병원에 가보니 선생님께서 엑스레이, 객담검사, 피검사, ct 검사를 하시더니 폐가 아주 심각하게 나쁜 상태인 건 본인도 알고 계시죠 하시더라고요.
천식이 상태도 좋지 않고 위내시경도 받아야 할 거 같다 해서 이틀 뒤에 수면 내시경을 하고 일어나 보니 내시경을 하는 도중에 문제가 있어 조직 검사를 맡겨놨다고 하네요.
먹는 약이 수없이 많아지고 뒤돌아보니 나는 나에게도 나쁜 사람이었고 아내에게도 나쁜 남편이었고 아이에게도 나쁜 아빠였네요.
힘든 사람들을 외면하면 나를 살려준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서 진정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수술대에서 깬 이후 7년을 여러분들의 심부름꾼으로 이웃을 도왔습니다.
정말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눈물이 나는데
저 이제 이만하면 된 거겠죠...?
아주 먼 여행을 떠날 거예요.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추억들을 등에 업고 행복한 기억들만 가지고 지낼게요.
여러분들이 항상 광고 넣어라 광고 받아서 떵떵거리고 살아라 위해주신 거 항상 귀담아들었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추억을 더럽히는 것 같았어요.
제가 먼 여행을 떠난다는 게 고작 해봐야 어두운 곳 구석에서 웅크리고 이겨내려 용쓰는 작은 공간이겠지만 이겨내 보도록 노력할게요.
여러분들 말처럼 제가 제 가족을 위해 이기적 이어볼게요.
끝에 와보니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약을 먹으면 정신이 없어 제가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는 게 어머니와 로션을 만들어 파는 것 말곤 없습니다.
저는 이제 잊히고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제가 몸 상태가 더 나빠져서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내 새끼, 우리 아내, 우리 엄마, 내가 정말 힘들게 할까 봐 먼 여행 떠나는 길에 그렇게 여러분이 하시라 했던 가족들을 위해서 이기적이게 살라는 말.
혹시 어쩌다 이 영상을 한 번씩 본다면 혹시 로션 같은 거 필요하시면 이제야라도 가장 노릇 해보게 일거리 좀 주세요.
너무 이기적이게 보이죠.
저 이때까지 안 쉬고 달려왔는데 쉬어도 되는 거 맞죠.
먼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와보도록 할게요.
그 자리에 기다리고 있지 않으셔도 제가 찾아갈게요.
로션 주소는 기분이 좀 묘하고 미안해서 못 올릴 거 같고 댓글에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행복한 모습으로 멋진 아빠 멋진 남편으로 돌아올게요.
여러분이 절 잊어도 저는 잊지 않을게요.}}}

파일:유자오024.jpg
오늘 소개할 로션은 저희 어머니가 유튜버 정호씨를 위해서 만든 로션입니다. 이게 제가 옛날에 제가 피부 때문에 엄청 좋은 거 다 써보고 진짜 sns에서 막 과장 광고하고 홍보하는 거 다 써봤는데도 별로 좋아지는 걸 느껴본 적이 없어서 진짜 피부 때문에 진짜 대인기피증까지 왔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원래는 비누를 만드시던 분인데 아들 때문에 제가 또 피부가 엄청 진짜 손톱만큼이라도 자극적인 거 쓰면 바로 뒤집어지거든요? 그래서 수년간 연구해서 레시피 짜서 만들어주신 게 바로 이 아토케어 로션이에요
3년 가까이 사람들이 엄청 좋다고 후기를 많이 남겨주셔서 저도 궁금해서 kc 피부 임상 연구센터에 자극률 케스트를 했는데 무려 1프로도 아니고 0.00 무자극으로 나왔어요. 아예 자극이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이건 모링가 크림인데요, 우리 막 피부 하얘지려고 비비 바르잖아요? 그런 거 바르지 않아도, 바르지 않아도 원래 피부를 하얗게 해주는 미백 성분과 주름개선 성분을 엄청 때려 넣어서 저희 어머니가 만드신 건데 근데 이거 두 개는 지금 팔고 있지 않아요(품절 상태임)

왜 팔고 있지 않냐! 바로 ☆신☆제☆품☆ 때문입니다!! 두 개다 좋아서 사람들이 주문을 하시는데 두 개다 사시면은 가격이 너무 비싸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이 두 제품의 진짜 좋은 성분과 기능들을 두 개다 합쳤어요. 그래서 나온 게 바로 이 제품입니다(큐르케어)
이건 샘플인데요~! 당연히 시험까지 국가에서 인증해서 실험까지 했고 자극률 0.00에 미백에 주름개선 기능까지 인증 다 받았습니다! 로션을 발랐는데 0.00 무자극이에요. 거기다가 미백 주름 기능까지, 그걸 합쳐서 만든 게 이 신제품입니다!

요약: 로션, 크림 2개 살려면 6만 원 가까이하는데 두 기능을 합쳐서 더 좋은 신제품이 한 개 가격으로 나옴

이거 진짜 인증 안 받으면은, 막 '미백에 도움 되고, 주름에 도움 되고' 이런 단어를 쓰면은 형사처분 받습니다. (허위광고, 과장광고로 박살 나는 거임 아주 그냥)
그래서 백화점 명품숍 가면 '주름, 미백' 이 1단어만 들어가도, 진짜 돈 10만 원 가까이하는 제품들 너무 많은 거예요

근데 문제는, 좋은 만큼 저희가 이걸 한 달에 한 번 팔까 말까 하다 보니까 구하기가 어려워요. 가격도 좋다 보니까는... 영상 더 보기 란에 구입 주소가 들어가 있는데요, 품절이 엄청 빨리 되기 때문에 품절 적혀 있으시면 이미 늦은 겁니다ㅠ
또 한 번 구매 내력 있으신 분들은 명품 백화점에서 물량 풀릴 때 남들은 5만 원 넘는 가격에 살 때, 2만 원대에 살 수 있는 혜택을 평생 누릴 수 있다는 거죠. 지금 사이트 들어가셨는데 주문이 된다면 운이 좋으신 겁니다.

1. 한 번이라도 구매 시 명품숍, 백화점에서 일반 시민들은 5만 원대에 사도 구매 이력 있는 회원은 평생 원가에 대우받고 살 수 있음
2. 미백, 주름, 무자극 제품을 좋은 가격에 집에서 피부 관리가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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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관련 링크



[1] 본인은 175㎝라고 하지만, 3옥타브 장인 클라인이 목소리로 179㎝라고 언급했으며 인싸월드의 맨발 단체샷에서도 변승주와 차이가 거의 없었다. 175㎝는 아마 학창 시절 키를 언급한 듯하다. 그러나 8월 2일 유정호가 176㎝라고 밝혔다. [2] 22세에 암 진단을 받아 6급 면제 판정을 받았다. [3] DIA TV에도 소속되어 있었지만 계약 크리에이터 명단에서 없어진 것이 확인되어 퇴출당한 것으로 보인다. [4] '엔터스'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었다. # [5] 단, 자신과 어머니가 경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비누 판매 사이트에서 '개인 정보관리 책임자: 류정호'로 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어머니 성함이 기재되어 있다. 다만 비행기 탑승권 및 웃대 기부 대란에는 정호로 되어 있다. 이는 2006년부터 성에 두음법칙을 적용시키지 않아도 되게 바뀌면서 생긴 일인데 자세한 전말은 문서 참조. [6] 일부 팬들은 잘생긴 정호띄라고 부르기도 한다. [7] 집의 고양이들도 한 두 마리 받아주다 보니 10마리가 넘어가버렸고, 심지어는 직박구리 한 마리가 확 날아와 그의 집에 들어온 적까지 있다고. 이 직박구리는 정호 씨가 어떻게든 돌려보내려 했지만 마치 박제된 듯 움직이지 않았고, 병원에 데려가는 길에는 어깨에 달라붙어서는 또 박제되었다. [기준] 2021년 6월 2일 [9] 유튜브 채널명이 변경 된 후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이후 가이드라인 위반으로 채널이 공중분해되었다. [10] 중고나라 사기꾼이나 각종 불만 사례 제보를 받아 해결해 주고는 한다. 직접 강원도 제주도까지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11]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이 청소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릎 꿇기를 강요하고 빗자루로 폭행한 영상을 올렸다. 현재는 삭제되었는데, 이에 대해 사과했다. 경위를 살펴보면, 사건 당일 파출소에서 출동했으나 경비원이 입주자에게 사과하고 사건 처리가 되지 않았는데, 관할서 형사팀에서 영상을 보고 상황을 판단해 사건 처리를 하고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보자에게 경비원 가족들이 그 영상을 보고 많이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고, 자신의 영상으로 누군가가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삭제했다고 한다. 즉, 직접 영상을 내려달라고 요구를 들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내렸던 것. 여론은 역시 유정호라며 칭찬 일색. [12] 2021년 3월에 베리 엔터테인먼트에 합류했는데, 이쪽에서 편집 지원을 해 준 것으로 추정된다. [13] "야짤을 올리면 클라인와 정호 그리고 야짤을 올린 당사자가 같이 경찰서를 가는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며, 여러분은 음란물 유포로 처벌받고 클라인과 정호는 방조죄로 처벌받습니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 [14] 독거노인에게 쌀을 기부하고 있는 사진을 엔터스가 독거노인의 쌀마저 빼앗아 가는 것처럼 묘사하는 등 [15] 이는 어느 웃대 유저가 '잘 가라 엔터스'라는 제목의 유정호 헛저격글을 올린 것에서 유래한다. [16] 유정호의 어머니가 판매하는 천연비누를 주문하면 주문한 양보다 많이 와서 비누가 오다가 자가증식을 한다는 평을 듣곤 한다. [17]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 뜻은 '오늘을 즐겨라'라는 뜻이다. 케세라세라와는 의미가 다른데, 카르페 디엠은 식당에 갔으면 먹는 걸 즐기고 클럽에 갔으면 춤추는 걸 즐기라는 등 그 상황에 따라 맞춰 살아라는 뜻이 강한 반면 케세라세라는 그냥 배째고 내일 죽든 말든 하고 싶은 거 다 하자.라는 막가파라는 의미가 강하다. [18] 2018년 2월 말에 올라온 해당 영상 기준으로는 11마리. [19] Lana Del Rey - West Coast (Stint Remix) 1분 32초부터 [20] 간혹 흉가체험과 같은 공포 동영상에서는 매우 느리게 흐른다. [21] 심지어 유정호의 아내에게만 빌려 간 게 아니라 본인의 어머니의 카드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래저래 손 벌려서 긁은 핸드백의 가격만 220만 원 당연하지만 얼마 안가 유정호에게 꼬리가 잡혔고 돈 빌려 간 여자의 가족들까지 조력해서 핸드백은 먼지 한 톨 묻기도 전에 압수당했다고 한다. [22] 일 평균 1~2회 [23] 해당 영상 4분 22초 참조 [24] 이 영상을 찍느라 당사자는 새벽 6시까지 10번 넘게 촬영을 했다는 듯하다. [25] 인터스텔라처럼 자신의 과거 영상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는 것이 압권. [26] 디시인사이드에 경북 구미시 선산읍의 한 카센터에 있다는 글과 함께 사진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카센터는 골드쿠폰이 "유정호의 람보르기니가 선산에 있다는데 아느냐?" 는 질문에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며 선산읍이 아니라 고아읍에 위치한다고 답했다. [27] "야짤을 올리면 클라인와 정호 그리고 야짤을 올린 당사자가 같이 경찰서를 가는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며, 여러분은 음란물 유포로 처벌받고 클라인과 정호는 방조죄로 처벌받습니다."고 주의를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