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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7:50

정성(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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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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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 고려· 거란· 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tablewidth=100%><tablebgcolor=#676767><tablecolor=#ffffff><width=25%> ||<width=25%> ||<width=25%> ||<width=25%> ||
[[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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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서도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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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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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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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07><colcolor=#fff> 정성
鄭成
파일:고거전 정성02.jpg
캐릭터
지위 흥화진부사 (1 ~ 3회)
흥화진사[1] (4 ~ 29회)
등장회차 1 ~ 2회, 4 ~ 6회, 10회, 12 ~ 13회
15 ~ 17회, 21 ~ 23회, 29회
배우
김산호[2]

1. 개요2. 작중 행적
2.1. 1 ~ 2회2.2. 4 ~ 7회2.3. 10회2.4. 12 ~ 13회2.5. 15 ~ 17회2.6. 21 ~ 23회2.7. 29회
3. 묘사4. 어록5. 여담

[clearfix]

1. 개요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양규와 함께 흥화진을 지켜낸 흥화진사. 거란군이 압록강을 넘어 후퇴할 때도, 양규의 부하답게 정성은 거란군을 공격하여 수많은 거란군을 수장시켰다.


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2.1. 1 ~ 2회

1회에서 양규 밑에서 흥화진을 지키는 흥화진부사로 등장한다. 양규를 따라 거란 척후병을 몇 명 잡았으나, 멋대로 국경을 넘어 추격을 계속하다 거란에 잡히는 바람에 어렵게 잡은 척후병을 내주고 포로 교환을 통해 돌아온 김숙흥을 가두고는, 분노하는 그에게 조용히 있으라며 호통친다. 2회에서는 방어 시설인 함마갱을 만드는 모습을 보며 함마갱만으로 거란을 막을 수 있을지 걱정하다 넌지시 김숙흥을 용서해도 되지 않겠냐고 건의한다. 결국 양규의 설득에 귀주로 떠나는 김숙흥을 보며 양규에게 정말 귀주로 거란군이 가겠냐고 묻는다.

2.2. 4 ~ 7회

4회에서 서북면 도순검사가 된 양규의 뒤를 이어 흥화진사가 되고, 도순검사가 되고도 서경으로 가지 않고 흥화진에서 뻗대는 양규에게 김숙흥이나 장군이나 상관 명령을 무시하는 점은 닮았다며 웃으며 놀린다. 5회부터 양규와 함께 흥화진 방어 준비에 착수했고, 6회에서 전투를 치렀다. 7회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으나 그의 지시를 받아 양동작전을 통해 양규의 본대가 봉화를 피울 시간을 벌어주었다.

2.3. 10회

이후 10회에서 흥화진의 포위가 풀린 뒤, 김숙흥을 통해 전황을 파악한 양규가 곽주성 탈환의 의지를 표명하자, 항명까지 불사하며 반대에 나선다. "흥화진이 40만 대군을 상대로 7일이나 버텼으니 우린 할만큼 했다, 40만이 4천을 못 넘는 것이 공성전인데 지금 소수 병력으로 그걸 강행하겠다는 생각이냐?"며 "(만약에) 할 거면 제 목을 베기 전에는 흥화진의 군사들을 동원할 수 없다."라면서 무릎까지 꿇고 막아서지만, 그렇다면 혼자 갈 것이고 또 고려인을 죽일 수 없다는 양규의 발언을 듣고 이 이상은 안 된다면서 결국 흥화진의 병력 700명을 양규에게 인계한다. 직후 다시 생각해보라고 청하지만 그의 뜻이 확고함을 알고 이내 무운을 빈다.[3][4]

2.4. 12 ~ 13회

12회에서는 곽주를 탈환한 양규가 개경이 함락되고 현종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서북면의 제장들을 모두 부르면서 다른 인물들과 함께 서경성으로 와 다시 상관과 재회한다. 양규를 바라보면서 사기가 떨어져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13회에서는 양규의 명에 따라 다시 흥화진으로 복귀한다. 이때 무로대에 있는 거란군이 남하할 기세를 보이면 가차없이 공격해서 발을 묶어놓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2.5. 15 ~ 17회

15회에서 흥화진으로 돌아온 포로들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잠시 등장했다.

16회에서 흥화진으로 온 전령에게서 양규의 전사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고 잠깐 휘청거리다가[5] 이내 격분하여 "거란주는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서 흥화진의 모든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여 압록강을 건너는 거란의 부대를 추격한다. 수많은 거란군을 사살했지만 끝내 야율융서를 놓치자 압록강을 바라보면서 격분한다. 이후 흥화진 성루에서 거란군의 퇴각에 기뻐하는 백성들과 구출된 포로들[6]과 대비되어 전사한 시신들을 보는 다른 장수들(김훈, 최질, 보량, 조원, 최충 등)과 침울하게 보다가 성 안으로 호송되어 온 양규의 시신을 멈춰 세우고[7] 끝까지 활을 놓지 않은 그의 시신을 보고 "기어이 저 놈과 함께 가셨군요. 이제 좀 주무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좀 주무십시오, 장군.... 형님!"하면서 오열한다.

17회에서는 흥화진에서 수하 장수로부터 거란의 척후병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를 병부에 알린다.

2.6. 21 ~ 23회

21회 에서는 압록강을 넘어 거란으로 넘어가는 사신, 고려로 돌아오는 사신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모습으로 오랜만에 등장한다. 이후 사신으로 가려는 김은부가 혼자 가겠다고 말하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22회에서는 거란의 사신이 고려에 온 후 고려에 전운이 감돌게 되고 척후병으로부터 거란군 수천이 압록강 너머에 주둔한걸 보고받고 조정에 알린다.

23회에서 김은부가 국경 근처에서 붙잡힌 것을 보고 구하려 하지만 거란의 선봉대에게 공격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단념하고 김은부가 화살로 전한 편지를 읽고 개경에 전령을 보낸다. 그 후 서북면 도병마사 유방에게 거란의 사신을 붙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소배압과 강감찬의 기싸움을 지켜본다. 거란이 우리를 두려워하겠냐면서 협상에 의문을 가지지만 유방의 명에 따라 압록강에 부교를 세운다.

24회 시점에는 정신용이 흥화진 방어를 맡아서 정성이 아닌 정신용이 소적렬의 내침을 막았다.[8]

2.7. 29회

고려 내부의 정쟁이 끝난 직후 오랜만에 등장하여, 거란 측 장군[9]에게 거란의 사신을 억류하였다고 통보하는 장면을 끝으로 완전히 퇴장한다.[10][11]

3.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양규가 휘하 장수들에게도 주로 존댓말을 쓰며 말수가 적은 과묵한 주인공이라는 차이가 있듯이 정성도 원작과 다른 부분이 있다. 설정상 정성이 5살 연상이라서 40대 후반의 경주 사람인데, '입이 약간 돌출되고 입술이 두꺼웠는데 두꺼운 입술만큼이나 목소리가 묵직했다.'고 소개된다. 특별한 재주는 없어도 고지식하거나 우직하게 맡은 임무를 다하는 치밀한 모습을 지녔으며, 양규와 오랜 시간 같이 지냈고 관직 생활 시기도 비슷해서 잘 아는 사이라고 언급되었다. 드라마에서는 담당 배우들이 동갑이고[12], 양규의 시신을 보며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나이 차이는 크지 않으나 정성이 약간 더 어린 듯하다. 출신도 딱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원작처럼 양규와 함께 종군하면서 그의 휘하에서 함께 움직이거나 그의 명령에 따르며 서로 믿는 상하관계로 나오며, 비교적 유하고 융퉁성 있게 묘사되었다. 원작에서는 양규의 시신과 글을 본 후 그의 유지를 받들어 압록강을 건너는 거란군을 공격하는 식으로 묘사하였지만, 드라마에서는 소식을 들은 직후 바로 결행하며 시신을 본 시점에선 그를 애도하는 식으로 각색하였다.

4. 어록

(웃음) 장군이나 김숙흥이나 똑같군요. 당최 윗사람 말을 안 듣지 않사옵니까?
이런 무모한 놈들은 처음입니다. 너무 무모해서... 무섭습니다.
이겼사옵니다! 우리가 해냈사옵니다! 도순검사...[13]
도순검사, 우리는 할만큼 했습니다. 40만의 거란군을 7일이나 막아냈습니다! 그러는 동안 흥화진의 군사들이 절반이 넘게 죽었습니다!
성을 함락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40만이 4천을 당해내지 못하는 게 공성전입니다! 근데 곽주를 탈환하시겠다니요? 저는 그런 무모한 공격 때문에 흥화진 군사들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 양규: 명령이네. 따르게.) 그럼 제 목을 베십시오. 흥화진사는 접니다. 제 목을 베시기 전에는 단 한 명의 군사도 내어드리지 않겠습니다.
거란주는 어디 있느냐...? 거란주는 어디 있느냐!!!
(병사: 압록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출정한다...! 모든 군사들을 집결시켜라![14]
결국 저 놈과 같이 가셨군요... 이제... 좀 주무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좀 주무십시오. 장군... 형님...!

5. 여담


[1] 원작에서는 그가 실제 역사대로 '호부낭중'이라는 직책도 역임한다고 소개한다. [2]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 고려의 제2대 군주 혜종을 연기했다. [3] 전쟁 초기에 흥화진의 본래 병력이 3천이었는데 절반이 죽었다고 언급되었으니 이 시점에서 흥화진의 병력은 1,500명 정도이다. 부상병의 숫자는 정확히 나오진 않았지만 작중에서 격전을 벌이는게 묘사되었고 병력이 절반으로 줄었을 정도이니 부상병 등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700명이면 사실상 흥화진 대부분의 병력일 가능성이 높다. [4] 참고로 원작에서 정성도 양규가 시기를 잘 봐서 거란군의 뒤를 치겠다는 계책을 말하였을 때에 더 이상 빼낼 여력이 없고 실행하기 어렵다고 말하였지만, 그래도 반드시 할 의향이 있고 그것이 명령이라면 따르겠다는 의사를 표하는 등 드라마에서의 정성과는 차이가 있다. [5] 뒤에 있던 부장이 부축거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던 것. [6] 이중에는 흥화진 전투 당시 딸이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것을 보고 흐느낀 아버지도 있었다. [7] 이 때 정성을 포함해서 모든 장수들이 일제히 양규의 시신을 향해 고개를 숙여 추모한다. [8] 하지만 이때 뒷모습 기준 오른쪽에 정성의 갑옷을 입은 사람이 몇몇 있어 그중 한명이 정성일 가능성이 있다. [9] 정황상 소굴렬로 추정된다. [10] 29회~30회 방영 이후 마지막 촬영을 담은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 [11] 이후 정신용, 고적여와 함께 야율세량의 군사들과 싸우다 전사한걸로 추정된다. [12] 둘 다 1981년생으로 동갑이지만 빠른년생을 쓰는 김산호가 형이다. [13] 승전보를 전하며 기쁜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흥화진 너머를 바라보며 여전히 분노에 차 있는 양규의 얼굴을 보고 놀란다. [14] 곽주 전투 장면 때는 흥화진 군사들을 또 잃을 수 없다며 군사 차출을 주저했던 정성이었지만, 양규와 김숙흥의 결사대의 전사 소식에는 크게 분노하며 이대로 거란군을 살려보내지 않겠다면서 능동적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와 고려군에게 양규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 수 있는 장면. [15] 압록강이 너무 작게 나왔던 문제도 있다. 보병들도 무리 없이 걸어서 건너는 개천 수준으로 나왔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 죽는 것을 묘사하기는 너무 어려웠을 것이다. 수풍댐이 지어지기 전의 압록강에는 걸어서 건널 만한 곳도 있었다고 하니 압록강의 묘사가 고증 오류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려사』에서는 빠져 죽었다고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거란군이 건너야 했던 지점은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은 하구 쪽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16] 정성 외에 보량 역시 제2차 여요전쟁 기간에만 기록이 드러나며, 그 외 강민첨과 서경에서 싸웠던 조원과 조자기는 제3차 여요전쟁 전후로 잠깐 언급이 나온다. [17] 양규 이후 흥화진을 지켜낸 정신용, 고적여, 조익, 견일, 홍광, 고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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