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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eae47><colcolor=#fbe673> 백제 제후왕
저근 | 姐瑾 |
|
작위 | 면중왕(面中王) → 도한왕(都漢王) |
직위 | 영삭장군(寧朔將軍) ➝ 관군장군(冠軍將軍) |
주군 | 동성왕(東城王) |
이름 | 저근(姐瑾) |
생몰연도 |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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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세기 후반에 활동한 백제의 장군. 중국 사서인 남제서 백제 열전에서 등장한다.2. 생애
백제 24대 건길지인 동성왕 시기 영삭장군(寧朔將軍) 면중왕(面中王)에 봉해진 뒤 지금의 전라남도 고흥군 지역의 담로장으로 재임했다.490년 1월 동성왕이 남제에 올린 표문에 따르면 저근의 승진·책봉 명분을 "충성과 공로를 다하여 국난을 제거해서 사직을 견고하게 지킨 데 대한 논공"이라고 하니 저근이 당시 웅진 천도 이후 백제에서 이탈한 지방세력을 재흡수하는 군공을 세웠음을 알 수 있고 그는 이 공으로 남제로부터 관군장군(冠軍將軍) 도한왕(都漢王)으로 임명되었다.
3. 기타
- 기록상 그의 봉지는 오늘날 광주광역시로 비정되는 면중(面中)이었는데, 고흥군 일대로 비정되는 도한(都漢)으로 옮기게 되었다.[1] 면중은 490년 북위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목간나의 봉지가 된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