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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19:19:39

인조, 명군이 되다

인조, 명군이 되다
파일:인조 명군이 되다.jpg
장르 대체역사, 빙의
작가 구오
출판사 KW북스
연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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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블루
원스토리
연재 기간 2022. 08. 24. ~ 2023. 07. 14.

1. 개요2. 줄거리3. 연재 현황4. 등장인물
4.1. 조선
4.1.1. 조선 왕실4.1.2. 조선군4.1.3. 서인4.1.4. 북인4.1.5. 기타
4.2. 명나라4.3. 후금4.4. 일본
5. 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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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 대체역사 웹소설. 작가는 구오.[1]

2. 줄거리

"함부로 지껄이는구나. 너라고 나보다 잘할 것 같으냐?

밤새 키보드배틀을 떠서 이긴 상대가 인조였다
아니, 이건 아니지.
그래도 내가 너보단 잘한다!

3. 연재 현황

카카오페이지에서 2022년 8월 24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2023년 7월 14일 완결되었다.

4. 등장인물

4.1. 조선

4.1.1. 조선 왕실

4.1.2. 조선군

4.1.3. 서인

4.1.4. 북인

4.1.5. 기타

4.2. 명나라

4.3. 후금

4.4. 일본

5. 개변된 역사


[1] 조선의 재벌이 되기로 했다. 내가 왜 이순신이죠. 등을 집필한 기성 작가. [2] 그나마 쓴소리 할 수 있는 자들은 송시열처럼 출사하지 못한 나잇대의 젊은 선비들이다. 그나마도 철이 없고, 영향력이 없어서 가능한거지 출사한 조정 사람이 있으면 다들 욕이나 먹는다. [3] 인조의 동생을 자살하게 몰고 갔고, 인조의 부친인 정원대원군은 이 일로 인한 화병으로 병사했다. 그래서 광해군에게 기용된 인물들에게도 오히려 인조의 처우가 자비롭다는 평가를 받는다. [4] 홍이포의 2차 개조형인데 '낙서'는 장만의 호다. [5] 사실 김충선이 조언해줄 수 있는 일본식 장창전술은 대기병전에는 거의 쓸모가 없다. 조선의 장창 전술은 후방의 포병의 화력 집중을 위해 적을 유도하는 목표가 있어서 유용한 것. [6] 원역사에서도 인조반정 당시까지만 해도 이이의 제자인 이귀가 서인의 영향력이 더 컸지만, 워낙에 성깔이 그랬던 탓에 실질적인 행보는 김류가 훨씬 앞서나갔다. [7] 사실 이건 인조의 계획을 한참이나 벗어난 일이었다. 부패한 북인 출신 풍기군수가 이괄이 달래는데도 지레 겁먹고 패거리인 아전들을 동원해서 칼질을 해왔다. 썩어도 장수라고 만취하고서도 어떻게든 도망쳤으나, 망신을 당하고 이후 이괄은 출세길도 막히자 인조 입장에서도 재활용할 길도 막힌 것. [8] 특히 조카인 사복시정 박성장이 뇌물을 받고 종친들에게 개혁 반대를 주장하자 문중 친척들을 보내서잡아 죽인다. [9] 김류는 김신국의 능력을 인정해서 넘어갔고, 이귀는 바락바락 대들었지만 인조는 씹었다(...). [10] 이 때 명나라에서 조선을 반역국으로 의심할 것이라며, 자기가 오해를 풀 수 있다고 필사적으로 발악한다. 조선에서도 죽이고 싶지만 좀 불안했던 건 사실이었떤지라 미리 모문룡이 살려고 부하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게 해서 분열시켜 놓았다. [11] 본 역사에선 산해관에 집중하는 소극방어를 주장한 인물이다. 인조는 오삼계의 배신 이전에는 열리지 않은 산해관이니 틀리진 않았다고 평한다. [12] 조선 장창방진은 후방에 막강한 포병부대를 배치해서 기병들이 방진을 공략할 것을 강제하지만 명은 그런 교리가 없이, 기존처럼 적 보병을 견제하는 식이었다. [13] 누르하치와 후금은 손해 벌충을 위해 몽골원정을 앞당겨야 했고, 이 사태로 조선을 병적으로 경계하게 된 홍타이지는 몽골에 이어 바로 조선과 연전을 벌인 끝에 패배한다. [14] 등래대원수를 자칭하기 시작한 요동군 중심의 등주 반란. 왕가윤이 홍승주와 치고받으며 점차 기세를 올리는 섬서의 내주 반란 진압을 요구하고 있었다. [15] 당시 전황상 조선이 기둥 뿌리 뽑아가면 후금 원정 해야 명나라가 살아날 수준이었다. [16] 함경에서는 한명련의 결사대에 의해 온성에서 막혔으며, 평안도의 주공에서만 팔기 2만 이상, 외인 부대 역시 그 이상으로 소모했다. [17] 여담으로 조선과 전쟁을 벌인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면서도 후회하며 악몽을 꾼다고 자주 언급하는데, 은근슬쩍 조선왕이 처음부터 자신을 손바닥 위에 가지고 놀았다고 기억을 개찬한다(...) 심지어 자신이 아바타이까지 속이고 조선에 방문해 조선 왕실을 기겁시킨 기억조차도 조선왕이 자신을 압박했다고 회상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18] 조선에서 물자를 핑계로 남부의 성과 항구를 조차하고, 내부에 자신의 사람을 심고, 권고를 핑계로 내정에도 조언을 하고 있다. [19] 위험하다는 자송합에게 싸우라고 악을 써서 앞으로 보낸 직후 홍이포의 포격에 휘말려 기절해있다가 잡힌다. 동생은 창진에 유의미한 돌격까지 했기에 조선군이 동생과 비교하며 비웃자 수치심에 혀를 깨물어 자살하려 했다가 김준룡이 아슬아슬하게 입을 막는다. [20] 특히 요서 인근의 영향권과, 남쪽 접경지에서 벌이는 경쟁에선 오히려 앞서기 시작했다고 한다. [21] 조선에 빌붙어 금나라를 본체만체 하며 뱃속만 챙기는 압록강, 비사성 지역의 여진 부족과 한족들조차 조선이 불편해할까봐 건들 생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조선과의 완충지대 역할도 조금은 해주기에 그들이 그대로 있어주길 바란다는 감상까지 남겼다. [22] 그리고 조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발악이기도 했다. [23] 이자성의 순나라군, 후금의 팔기에게 여러차례 학살과 약탈을 당했다. 고향을 버리고 싶지 않은 주민들이 어떻게든 버티기는 했지만 그들도 한계였다. [24] 후금이 조선의 발해만 방벽 건설을 막고 싸움을 붙이려 호격에게 반조선 독립을 주장했다. 그러나 호격도 바보는 아니어서 흔들리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자, 자기들이 군사장비를 모아서 전쟁을 조장했다. [25] 대마도의 외교 관련 사기극은 정말로 화려하다. [26] 사실 북방군은 조선의 전통적인 정예전력이었기 때문에, 이괄의 난만 아니었어도 최소한 국경에서 평양까지 보름만에 뚫릴 수준으로 붕괴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7] 그대로 남하해 명의 북방 국경을 치거나, 요동 복귀 후 그 기세로 조선을 쳤어야 했다고. [28] 야인여진 혼성군이 안개와 한명련의 야습으로 혼란에 빠진 전장을 막무가내로 탈출하는 바람에 후금군이 온성을 점거하지 못했다. 설령 온성을 점거했다고 한들 그쪽 길로는 평안도의 주력군과 합류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29] 인조는 이제 홍타이지는 이 피해복구에 전념해도 천운이 찾아오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용을 써야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팔기 2만명 이상의 사망만 해도 엄청난 타격이고, 반정까지 벌이고는 정복한 모든 산하세력이 보는 앞에서 실패한 것이 컸다. [30] 후일 청나라의 실권을 쥔 거물 도르곤의 친모. 홍타이지에 의해 순장당하는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31] 왜란 직후에도 노토부락 토벌전으로 야인여진을 몰락시킨 전력이 있었으니, 그 기억이 남아있는 조선인들에게는 그냥 국뽕이 아니라 명백한 운명 정도로 느껴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