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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3 14:30:59

이인규(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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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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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8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이인규
李仁圭 | Lee In-gyu
파일:201806251519086678_3.jpg
<colbgcolor=#1e4a71> 출생 1958년 1월 22일 ([age(1958-01-22)]세)
경기도 용인시
본관 용인 이씨 (龍仁 李氏)
배우자 김민정
자녀 1남 1녀[1]
학력 경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코넬 대학교 로스쿨 (법학 / 석사)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3차장검사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1. 개요2. 생애3. 논란4. 여담

[clearfix]

1. 개요

한국 변호사 겸 전직 검사.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 비리 의혹 수사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사건을 지휘했다.

2. 생애

1958년 1월 22일에 경기도 용인시에서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서 성장했고,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법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검사 재직 중에 미국으로 연수를 다녀오면서 코넬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였다.

1982년에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14기. 1985년 1월부터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평검사 시절에는 서울지검, 부산지검 동부지청[2],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법무부 국제법무심의관실, 주미 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했다.[3]

이후 부장검사 승진 이후에는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 4과장, 2과장, 1과장, 서울지검 형사9부장[4][5], 서울지검 금융조사부장[6]을 거쳤고 차장검사 시기에는 춘천지검 원주지청장[7],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 등의 요직을 거쳤다.

특히 형사 9부장 시절에는 SK그룹 분식회계 수사를, 원주지청장 시절에는 대검찰청에 파견되어 대선 자금 사건을 수사했다.

2007년에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전고검 차장검사,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지냈고, 2009년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영전했다.[8] 그러나 후술할 논란으로 인해 해당 직위를 끝으로 퇴직하였다.

2023년 3월 검찰 시절에 대한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3. 논란

3.1. 박연차 게이트 수사 관련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 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문재인의 운명》 中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이후, 전부터 실적을 쌓아올린 기업체 수사[9] 일에 비중을 두는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었으며, 2009년 7월 14일을 끝으로 사표가 수리되어 검찰을 떠났다. 이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한 동안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 "평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저승에 가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느냐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다."라며 반발했다. #



변호사로 활동 중, 2015년에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선 당시 검찰의 망신주기식 편파 수사와 이에 따른 보도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연결됐다는 책임론이 자신에게 집중돼 괴로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일명 논두렁 발언 등에 대해 언론플레이한 건 자신들이 아니며,[10] 수사 내용 일부를 과장해 언론에 흘린 건 국정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이후 평범하게 사나 했는데, 2016년 12월 '박연차-반기문 23만 달러 수수설'과 관련하여 당시 검사였던 이인규에게 다시 언론 인터뷰가 쇄도하는 웃픈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혔다. # 그러면서 자기가 입을 열면 다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도 했다.[11]


2017년 7월 다니던 법무법인을 퇴사하고 8월 출국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 시기는 하필 국정원 개혁위가 소위 논두렁 시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한 시점이었다. # 당사자 본인은 16일 기자들에게 미국에 유학 중인 자녀를 만나러 가는 것뿐이라고 밝혔으나, # 출국 후 연락이 두절된 등의 정황으로 미루어, 사정당국은 사실상 해외도피로 판단하고 있다. #[12] #

언론에서 도피 의혹을 제기하자, 2017년 11월 7일 언론사에 입장문을 보냈는데, 자기는 노무현을 수사할 때 잘못한 것이 없으며 논두렁 시계 건은 국정원 소행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짤막한 내용이다. 수사를 받으러 오라면 귀국하겠다고 한다. # 그 무렵, 이전에 미국에 파견되었을 때에 거주한 연고지인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에서 목격되었으며, 비자 문제로 조만간 제3국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

이인규 "반기문 웃긴다…돈 받은 사실 드러날 텐데"라는 2016년 말 기사에 관해 노컷뉴스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2018년 3월 22일 패소하였고, 2018년 6월 19일 경 버지니아 주 애난데일에서 목격되었다고 MissyUSA에 올라왔다. #


위와 같은 목격담이 보도된 지 난 얼마 후인 2018년 6월 25일 돌연 또 다시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입장문을 보내어, 논두렁 시계 보도는 원세훈의 소행이라고 주장하였다. #


2018년 11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SBS와의 개인적 인연 등을 고려해볼 때 SBS 보도의 배후에 국정원이 있다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고 발언했다가 2018년 11월 SBS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고소당한 뒤 검찰에 진술서를 내기도 했다. 이후 2022년 10월 28일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박혁수 부장검사)는 이 전 부장을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이같은 이 전 부장의 발언이 사실 적시가 아닌 개인적인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보고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인규, "논두렁시계 배후는 국정원" SBS 명예훼손 무혐의



이후 2019년 8월에 미국에서 돌아왔고, 현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4길 저택에 머물고 있다. 2019년 9월에 MBC 기자가 찾아가서 질문했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부인 김민정의 홈앤쇼핑 취업 청탁과 주식 관련해서도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담당한 주역 3인방 중 우병우, 홍만표는 옥고를 치른 것과는 달리 이인규는 무사했다.[13]


2023년에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누가 노무현을 죽였나》[14]라는 책을 출간하여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이명박 정부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이 2009년 4월 10일께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피아제 명품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것이 어떠냐"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주장했다.[15] 2009년 4월 14일에는 국가정보원에서도 찾아와 비슷한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무현의 변호를 맡았던 문재인 변호사가 무능하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으로서 문 전 대통령이 검찰을 찾아와 솔직한 검찰의 입장을 묻고 증거관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그는 변호를 맡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주검 위에 거짓의 제단을 만들어 대통령이 됐다"고 주장했다. #

이에 대해 윤건영 의원은 MBC 라디오에서 "대통령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간 정치검사가 검사 정권의 뒷배를 믿고 날뛰는 행동"이라며 "노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힐난했다. '문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변호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에 대해선 "왜 전관예우를 활용하지 않았냐는 거다. 쉽게 말해 왜 검사들 접촉해 정보도 얻고, 방향을 협의하지 않았냐는 것"이라며 "정치검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반박했다.

변호인으로 같이 입회했던 전해철 의원, 당시 변호사는 격분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노무현, 문재인 두 분 전직 대통령님에 대한 이인규 전 검사의 무도한 거짓주장과 파렴치한 행태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이인규 전 검사가 회고록을 통해 주장한 내용은 사실의 적시라기 보다는 자신의 관점과 시각에서 두 분 대통령을 왜곡되게 묘사하고 폄훼한 것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수사 당시 변호인으로 참여한 저의 기억으로는 이인규 검사는 거만하고 교만한 태도로 일관했었고, 검찰은 일상적인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을 활용한 마녀사냥식 망신주기로 정치검찰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대통령님께서는 많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외국에 도주하다시피 한 이인규 전 검사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또 다시 노무현 대통령님을 모욕주고, 문재인 전 대통령님을 폄훼하는 불순한 의도와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출처

노무현재단은 17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책임자였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노 전 대통령 수사 상황이 담긴 회고록을 발간한 데 대해 "고인과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영배 의원도 SNS에 "인간으로서 조금의 양심이라도 있는 것인지, 부끄러움을 아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며 "살인자가 구급대원에게 왜 피해자를 살리지 못했냐며 따지는 격"이라고 적었다.

한민수 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전 부장이 회고록을 통해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하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며 "이 전 부장은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며 고인을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라고 비난했다.

이후 이인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책은 고소도 각오하고 사실을 밝히기 위해 쓴 것”이라면서, 노무현재단 등이 2차 가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분들이 그런 말씀을 할 수는 있다고 이해하지만 너무 많은 허위사실들이 돌아다녔기 때문에 바로잡은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

책 제목도 검사 운운하고 있고 서문에도 "검찰 후배들이 검사의 길을 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고 집필의 변을 밝혔지만, 정작 이 책에 대한 현직 검사들의 반응은 "책을 출간한 것은 개인적 이익일 뿐 검찰 조직을 생각한 건 아니라고 본다", "조직을 떠난 자로 인해 전·현직 검찰이 한패처럼 싸잡아 욕먹고 있다", "그동안 조직에 부담만 줬던 사람이 전면에 나서 또 조직을 내세우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어 보인다" 등으로 대체로 곱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 #

이인규의 회고록에 대해 한국일보, #, 국민일보, #, 한겨레. #는 부정적으로 평했고, 매일신문은 '노무현이 정말 무고했다면 이인규를 고발하라'라고 야권을 비판했다. #[16]

중앙일보 이상언 논설위원은 다음과 같이 혹평했다. #
‘우리가 원하는 걸 내놓지 않으면 회사와 집안이 풍비박산 날 거야.’ 이런 식의 수사 때문에 검찰이 욕을 먹었고,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돼 왔다. 과거엔 흔한 일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검사들에게 결코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닐 것이다. 바라는 것을 주면 다른 죄는 덮기로 약속했다는 이 전 검사장은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고 호기롭게 외쳤다. 책을 읽은 한 현직 검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 전 검사장은 자신이 노 전 대통령과 검찰청에서 나눈 말, 노 전 대통령과 박연차 전 회장이 조사실에서 나눈 대화를 공개했다. 직무상 얻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유포했다.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과 박 전 회장은 반박조차 할 수 없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조계 금언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이 전 검사장은 자신이 자랑스러운 검사였다고 믿는 모양인데, 대한민국에 더는 이런 검사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3.2.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 수사 관련


2002년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전달사건에 대해서 상술된 회고록에 본인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경영권이나 기업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진술을 문서로 안 남기고 현 법무부 장관인 한동훈 검사가 구해온 녹음기에 담아뒀다고도 밝혔다. '저승사자'의 대선자금 수사법..."협조 안 하면 기업도 오너도 다친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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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는 둘 다 결혼했으며, 손주들도 있다. [2] 개청 멤버였다. [3] 이 당시 이명박과 연결고리가 생겼다. [4] 당시 부부장 차동언, 평검사 이석환, 양호산, 한동훈, 이시원. 이후 유일준, 이동열 검사가 추가되었다. [5] 특수부의 업무 분산을 위해 설치한 경제 범죄 수사부였다. [6] 2차장 산하에서 3차장 산하로 이관 후 부서 명칭 변경. [7] 실제로는 2달 남짓만 근무하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로 파견을 가 있었다. [8] 특히 대검찰청 기조부장과 중수부장 임명은 임채진 검찰총장의 의사였다. [9] 특수통. 수사대상인 기업체가 원하는 바와, 그 약점(허점)을 포착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10] 애초 우병우도 정황상 의심스러운 거지 확실한 물증은 없었다고 지인에게 밝힌 바 있다. [11] 공교롭게도 박연차 게이트 때에도 노무현이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를 제시하기를 거부하면서 '증거 관계 설명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공개될 관련 참고인들의 사생활과 명예가 훼손될 우려가 높음'이라고 둘러댔는데(뇌물공여자라는 박연차 역시 입건유예처분을 하여 증거 관계를 덮어버렸다.) 그 때의 블러핑과 흡사하다. [12] 이인규의 잠적을 두고, 헤럴드경제는 그가 퇴임사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세평에 휘둘리거나 원칙에 어긋나는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특히 법과 원칙을 세우고 정의를 수호하는 검찰로서는 더더욱 그렇다."라고 했던 것을 거론하는가 하면, # 사정당국의 판단을 단독 보도한 세계일보는 대놓고 '삼십육계 줄행랑이 전직 중수부장다운 처신이냐'라고 비웃었다. [13] 다만 우병우와 홍만표는 검사 퇴직 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 없는 다른 게이트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14] 조갑제닷컴을 통해 출간했다. [15] 정동기는 3월 17일 이에 대해 "논두렁 시계 관련 이야기는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반박했다. # [16] 특이하게도 펜앤드마이크는 노무현을 결코 좋게 보지 않는 극우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비겁한 검사의 뒤늦은 폭로?”라는 냉소적인 기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