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은하영웅전설
1. 개요
일본의 소설 은하영웅전설을 둘러싼 논쟁을 다룬 문서.2. 은하영웅전설은 SF인가?
정확히 말하면 하드 SF가 아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SF가 아니라고 주장할 게 아니라면 SF는 맞다.[1] 다만 80년대 이후 등장한 (한국에 번역된) 서구권 모던 스페이스 오페라[2]들에 비하면 완성도면에서 아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 말부터 스타워즈가 대박을 치며 맞이한 스페이스 오페라의 흥기에서 SF, 문학적 성취와 재미를 모두 잡기 위해 노력한 작품들이 나왔는데 그에 비하면 은하영웅전설의 완성도는 크게 못 미친다.[3]초반에는 제법 정통 SF적인 분위기[4]를 따라가려 하나 뒤로 흐지부지 된다. 때문에 포괄적 SF를 다루는 커뮤니티 등에선 은영전이 SF냐 아니냐로 논란이 뜨거워지기도 했고 사실 지금도 꺼내면 꽤 뜨거운 반응이 몰려온다.
은하영웅전설이 지적받는 부분이 이런 작품들은 시대 배경만 미래고 우주일 뿐이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전쟁 영웅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통 SF에서 표현하는 내러티브와 미래적 비젼은 별로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방대한 우주에 길이 막혀 통로가 2개뿐이라든지, 3차원 체스를 두고 있으면서 막상 전쟁은 2차원인 부분 등 은영전은 기본적인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중근세 전쟁 이야기에 우주 스킨 씌워놓은 작품이 은영전만 있는 게 아니다. 스타워즈는 얘기할 필요도 없고 데이빗 웨버의 아너 해링턴 시리즈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현시대 밀리터리/스페이스 오페라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걸작이지만 둘 다 참신한 미래사회의 전쟁을 묘사한 작품들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근대 전쟁사에 우주 스킨 씌운 작품들이다. 특히 아너 해링턴 시리즈는 대놓고 작가 스스로가 혼블로워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은 극찬을 받으며 SF 문학에 주는 상도 받았고 SF팬들도 대부분 군말없이 인정한다.
이런 말이 계속 나오는 건 딱 대학생이 전쟁과 정치에 가진 판타지를 갖고 글을 쓴 다나카 요시키의 역량이 부족했던 탓도 크지만 한국 SF 팬덤 내에서 은하영웅전설에 가진 적개심이 무시무시한 탓도 크다. 누적판매부수 100만부를 넘겨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SF 소설인데다 열성적인 팬도 많았는데 이게 선민의식 높은 한국 SF 팬덤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들은 은하영웅전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지 SF가 아니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다. 한국에서 스페이스 오페라는 SF가 아니다 하면서 들고 나오는 작품은 십중팔구 은하영웅전설이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SF가 아니라면서 분명 스페이스 오페라에 속하는 보르코시건 시리즈나 아너 해링턴 시리즈, 댄 시먼스의 히페리온, 데이비드 브린의 스타타이드 라이징, 이언 뱅크스의 컬쳐 시리즈는 절대 들고 나오지 않는다. 한 장르 내에 속한 여러 작품들을 평가하며 완성도에 가름하는 건 당연하지만 은하영웅전설은 스페이스 오페라지 SF가 아니라면서 비토하고 서구권 유명 스페이스 오페라는 명작 SF라며 떠받드는 태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SF가 이처럼 흥한다고 자랑하고 싶을 땐 당연히 SF라며 끼워주고, 고상한 척하고 싶을 땐 이건 스페이스 오페라지 SF 아니라고 선긋는 표리부동함은 오늘도 계속 되고 있다.
설정이나 전개에 미진한 점이 많은 건 은하영웅전설의 원서가 도쿠마서점의 도쿠마 노벨즈라는 레이블로 나온 영향도 크다. 도쿠마 노벨즈는 SF가 아닌 전기(傳奇)물, 모험물, 추리물 전문 레이블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흔히 말하는 라이트 노벨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가 형성되는 데에는 이 작품의 상업적 성공이 큰 영향을 끼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젊은 다나카 요시키의 학비 마련용 작품이라 3권만 계획된 상태였고, 초기 제목은 <은하 삼국지>[5]였다. 그보다 더 이전에 작가가 맨 처음 생각했던 제목은 <은하의 체스 게임>이었다고 한다. 또한 원래는 현재 작품의 내용은 설정이었다고 한다. 이때의 줄거리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6] 등장인물도 등장하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였다고 한다. 결국 편집부에서 설정이 더 재미있다고 해서 작품의 방향을 변경하고, <은하 삼국지>로 개명했다가 결국 최후의 제목인 <은하영웅전설>로 귀결을 보았다.
3. 라이트 노벨의 원형?
은하영웅전설과 함께 칸바야시 쵸헤이의 전투요정 유키카제, 후지카와 케이스케의 <우주황자>, 타카치호 치하루의 <더티 페어>, <크래셔 죠>, 토미노 요시유키의 기동전사 건담(소설판), <오라배틀러 전기> 같은 소설들이 히트하면서 이들이 초기 코믹마켓 같은 팬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라이트 노벨 시장의 토대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본 현지의 중론이다.작품의 내용이나 작품성과는 별개로, 작품의 형식이나 인기, 삽화 등등의 이유로 토미노 요시유키의 소설판 건담이나 전투요정 유키카제 등과 함께 라이트 노벨의 원형을 제시했거나 라이트 노벨의 시조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폭발적인 인기만큼이나 대중문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어서 가히 일본 SF 소설계의 스타워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7] 특히 SF 전쟁소설로서는 당시로는 이례적으로 신화적이나 오버 테크놀로지적인 요소들을 일체 제외하고, 대부분 다소 양념 같은 요소로 두었던 이념 충돌과 사회혼란 등 등의 정치적 묘사와 내전이나 대외항쟁 등 복잡한 군사적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운 상당히 리얼한 작품 분위기 때문에 하드한 분위기를 즐기는 독자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팬덤을 형성하였다. 실제로 은하영웅전설은 지금까지도 일본에서 나온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 가운데서 전쟁의 규모와 서사의 스케일에서 가장 거대한 작품 중에 하나로 평가받고 있으며,[8] 대규모 전쟁을 다룬 다양한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의 설정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애니메이션인 무책임함장 테일러와 코드 기아스는 곳곳에서 이 작품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
[1]
이런식의 논리면 SF를 하나의 장르로 빚어내고 팬덤을 형성시켰던 20세기 초 스페이스 오페라 작가들이나 1960년대 뉴웨이브 SF 작가들은 SF작가가 아니게 된다. 뉴웨이브 SF가 낳은 걸작
제임스 G. 발라드의 크리스털 월드가 엄밀한 과학법칙을 따르던가? 2010년 국제SF 영화제 개막작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었다. SF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다. 건담시리즈 같이 따져보면 순 말도 안되지만 과학적인 고증을 집어넣는 척한 로봇물도 엄밀히 따지면 SF의 범주에 들어간다. 단지 컨텐츠 특성상 해당 작품의 팬들이 SF팬덤과 접점이 없을 뿐 이다.
[2]
로이 맥마스터 부졸드(
보르코시건 시리즈), 데이비드 웨버(
아너 해링턴 시리즈), 댄 시먼스(
히페리온), 오슨 스카 카드(
엔더의 게임), 이언 뱅크스(
컬쳐 시리즈), 데이비드 브린(스타타이드 라이징), C.J. 체리(다운빌로 스테이션), 버너 빈지(심연 위의 불길)
[3]
그렇다고 서구권 스페이스 오페라는 저렇게 다 수준이 높다고 생각하는건 곤란하다. 미국의 그 거대한 출판시장에서 범작, 졸작이 매달 엄청나게 많이 쏟아지는데 그런 작품들은 번역이 안 되니까 모를 뿐이다.
[4]
우주복이라든가, 에어록이라든가. 아무튼 "한랭진공의 위험공간인 우주에서 전쟁을 하는 만큼 그에 대한 대비책"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5]
이름이 같은 소설이 1990년대 국내 출판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이 아님.
[6]
예를 들면 불로.
[7]
사실 제국 대 공화국이라는 설정은 물론이고, 데스스타와 이제르론, 한 솔로와 코네프, 루크와 율리안의 비행복 등에서
스타워즈에서 퍼왔구나 싶은 설정도 있다. 그에 따르면 건담은 일본 애니계의 스타워즈라고 할 수 있다.
[8]
이건 딱히 은하영웅전설이 SF적으로 뛰어나서 그런 건 아니다. 애초에 하드 SF 소설들은 우주를 누비고 다니는 스페이스 오페라에 비해 스케일이 작은 게 당연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