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윌리엄 드 워렌 William de Warenne |
|
생몰년도 | 1119년 ~ 1148년 1월 6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서리 백작령 | |
사망지 | 아나톨리아 카드모스 산 | |
아버지 | 윌리엄 드 워렌 | |
어머니 | 이자벨 드 베르망두아 | |
형제 | 레지널드, 군드레드, 에이다 | |
배우자 | 퐁티외의 아델라 | |
자녀 | 이사벨라 드 워렌 | |
직위 | 제3대 서리 백작 |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무정부시대에 스티븐 왕의 편에 서서 마틸다와 대적했다.2. 생애
조부 윌리엄 드 워렌은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원정에 참여해 헤이스팅스 전투의 승리에 기여했으며, 둠스데이 북에서 13개 주에 걸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1088년 초 영주들이 윌리엄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윌리엄 2세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고, 그 보답으로 초대 서리 백작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페번시 성 공방전 도중 치명상을 입었고, 1088년 6월 24일 이스트 서식스의 루이스에서 사망했다. 제2대 서리 백작 아버지 윌리엄 드 워렌은 초기엔 헨리 1세에 대항해 로베르 2세와 기욤 클리토 부자를 지원했지만, 나중엔 헨리 1세에게 회유되어 1119년 브레물 전투에서 헨리 1세가 프랑스 국왕 루이 6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데 일조했다. 어머니 이자벨 드 베르망두아는 베르망두아 백작 위그 1세의 딸이자 프랑스 국왕 앙리 1세의 손녀였다. 형제로 레지널드[1], 군드레드[2], 에이다[3]가 있었다.1137년, 아직 미성년이었을 때 노르망디에서 잉글랜드 국왕 스티븐 왕의 군대에 가담했지만 전투 도중 또래 귀족들과 함께 도망쳤다. 스티븐은 그들을 추격하여 붙잡은 뒤 최선을 다해 달랬지만 전투에 다시 투입하지는 않았다. 1138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제3대 서리 백작에 선임되었다. 그 해 부활절에 갈레랑 4세 드 묄룬과 함께 잉글랜드와 프랑스 왕국 간의 조약을 비준하기 위해 파리로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이 되었다. 1141년 2월 2일 링컨 전투에서 스티븐 왕과 함께 참여했지만, 글로스터의 로버트가 이끄는 기병대의 돌격에 겁먹고 달아났다. 이후 스티븐 왕이 생포되자 마틸다에게 귀순했지만, 스티븐 왕이 풀려나자 다시 스티븐 왕의 추종자가 되었다.
이후 루이스 수도원 등 자기 영지에있는 수도원들에 종종 기부하며 영지를 경영하던 그는 1146년 베즐레 공의회에서 프랑스 국왕 루이 7세가 십자군 서약할 때 가담했으며, 이듬해에 단행된 제2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1148년 1월 6일 아나톨리아의 카드모스 산 전투에서 룸 술탄국 소속 튀르크군에게 사살되었다.
3. 가족
- 퐁티외의 아델라(1110 ~ 1174): 퐁티외 백작 기욤 3세와 부르고뉴의 엘리[4]의 딸. 윌리엄이 사망한 뒤 1148년 또는 1149년에 초대 솔즈베리 백작 페트릭[5]과 재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