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에 대한 내용은 앙리 1세(예루살렘 왕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아이티 왕국의 국왕에 대한 내용은 앙리 크리스토프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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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2395> 프랑스 카페 왕조 제3대 국왕
앙리 1세 Henri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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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생 | 1008년 5월 4일 | ||
프랑스 왕국 랭스 | |||
사망 | 1060년 8월 4일 (향년 52세) | ||
프랑스 왕국 비트리오로주 | |||
재위기간 | 프랑크인의 왕 | ||
1027년 5월 14일 ~ 1031년 7월 20일 (공동통치) | |||
1031년 7월 20일 ~ 1060년 8월 4일 (단독통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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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2395> 가문 | 카페 가문 | |
아버지 | 로베르 2세 | ||
어머니 | 아를르의 콩스탕스 | ||
배우자 |
프리슬란트의 마틸드 (1034년 결혼/1044년 사망) 키예프의 안나 (1051년 결혼) |
||
자녀 | 필리프 1세, 로베르, 엠마, 위그 1세 | ||
종교 | 가톨릭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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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 카페 왕조의 제3대 왕.2. 생애
제2대 왕인 로베르 2세와 아를르의 콩스탕스 사이에서 태어난 차남이었다. 형인 '대왕'(Le Grand) 위그는 공동왕이었으나, 1025년에 사망하여 단독왕이 되지 못했다. 앙리 1세의 치세 중에 중요한 일은 어린 나이에 사생아로서 작위를 상속받았던 노르망디 공작 기욤 2세가 귀족들을 정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하지만 기욤 2세가 강성해지자 프랑스의 왕위를 노릴까봐 경계했던 앙리 1세는 1054년과 1056년에 전투를 펼쳤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거기다 그 기욤 2세가 나날이 승승장구하며, 엄청난 행운들로 1066년 브리튼 섬으로 건너가 노르만 왕조를 건국하는 윌리엄 1세가 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잉글랜드 노르만 왕조를 성립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에도 교황과 대립하고, 신성 로마 제국에 압박을 가해 동부의 로렌(로트링겐, 로타링기아) 지방 탈환을 시도했다. 1060년 비트리오로그에서 사망했다.
또한 당시 키예프 루스[1]의 대공인 '현명공' 야로슬라프 1세의 딸 안나(А́нна Яросла́вна, Anne de Kiev; 1024~1075)가 앙리 1세에게 시집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