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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03:07:32

우스이 요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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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keepall> 우스이 요시토
[ruby(臼井, ruby=うすい)] [ruby(儀人, ruby=よしひと)] | Usui Yoshito
파일:우스이 요시토.jpg
2007년 11월 당시 생전 모습.
<colbgcolor=#ccb654,#010101><colcolor=#010101,#ccb654> 출생 1958년 4월 21일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1]
사망 2009년 9월 11일 (향년 51세)
군마현 칸라군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가족 아내 우스이 히사코
장녀 우스이 미코토, 차녀 우스이 미츠키
학력 카스카베공업고등학교[2] (졸업)
직업 만화가
데뷔 1987년 ‘다라쿠야 스토어 이야기’
활동 기간 1987년 ~ 2009년
서명
파일:우스이 요시토 서명2.svg
파일:external/blog-imgs-15.fc2.com/20111209001848733.jpg
암흑 마왕 대추적에서 카메오 출연했을 때의 모습[3]

1. 개요2. 특징
2.1. 작품 목록
3. 친한파 작가4. 사망5.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 만화가. 대표작은 크레용 신짱.

국내에선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로 더 친숙한 만화 크레용 신짱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이 만화의 국민적 대성공에 힘입어 일본의 거액 납세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2. 특징

일본의 유명 만화가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화풍을 구사한 작가 중 한 명. 배경이나 명암을 대부분 생략한 채로 펜선으로만 작업했고, 스크린톤도 거의 쓰지 않아서 웬만해선 해칭으로 면을 채워넣었다. 채색한 일러스트도 따로 명도를 나누는 일 없이 단색으로만 칠한 게 많다. 실제로 그림보단 스토리를 짜는 데에 시간을 더 투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그림체는 겉으로 보면 얼핏 못 그린 걸 넘어서 아예 성의가 없는 수준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의외로 그 단순한 그림체의 일면 속에서는 생각보다 뚜렷한 디테일과 어느 작품과 섞여도 어색해지지 않는 범용성이 숨겨져 있다. 우선 인물상에 따른 외모의 형태가 정말 다양해서 수많은 인물을 그려놔도 차이가 별로 없을 만큼 구분이 뚜렷하고, 그러면서도 미형이나 색기를 쉽게 묘사할 수 있어 다른 유아용 만화의 그림체들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가진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찾아보면 짱구의 그림체로 다른 만화를 그리는 패러디물이 굉장히 많이 보이는데, 분명 원작과 그림체의 차이가 전차만별인데도 묘하게 어울리는 점에서 화풍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지 짐작할 수 있다.[4]

한 가지 특이한 부분이 있다면 캐릭터를 그릴 때 정면샷을 묘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 정면이 더 어울리는 장면에서도 항상 반측면으로만 그려지며,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로 정면샷이 나오는 장면이 손에 꼽는다. 이는 디자인 과정에서 항상 측면샷을 기준으로 정하던 습관 때문이었는데, 아무리 구도와 어울리게 그려봐도 비율이 계속 망가지는 통에 그냥 과감히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체와 다르게 스토리의 특징은 성인향이 짙은 편이었고, 그의 대표작인 신짱도 원래는 성인 만화로 첫 연재된 작품이었다.[5] 신짱 이외의 작품은 전부다 성인 취향 개그 만화다. 크레용 신짱의 인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에 우스이 요시토의 다른 작품이 몇 개 번역되었는데[6] 여기 있는 진짜 성인물들은 매우 수위가 높다. 혼전임신, 3P, 풍속업소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7] 이런 작품들에 비하면 크레용 신짱만큼은 전연령용으로 순화된 축에 속한 편이다.

2.1. 작품 목록

3. 친한파 작가

생전에 한국을 매우 좋아했으며, 몇 번 내한을 한 적이 있어 즐켜 찾던 음식점도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서 그의 가족들도 대단한 한류 팬이라고 하는데, 그의 만화에 친한 성향이 잘 드러나는 예로는 작중 짱구의 엄마 봉미선이 열심히 보는 드라마 여름 찬장은 일본에서도 히트를 쳤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패러디가 있다. 그리고 미사에가 한국의 인기 배우인 장동건이 일본에 온다고 하자, 애들을 데리고 냅다 공항으로 달려갔다. 또한, 노하라 일가가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9] 이 때문에 일본 내수판 애니메이션 에피소드에서도 한국어가 나오거나 한국 요소가 나오는 장면이 많으며, 원판 애니에서도 짱구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몇번 한 적이 있다.[10] 그 외에도 일본 연재본에서 동방신기가 언급된다거나 한국에서 있었던 사건인 내귀에 도청장치가 언급되는 등.

김혁의 글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방에서 열린 애니 관련 페스티벌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다른 만화작가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스이는 참석을 했는데, 덕택에 그 행사가 실속을 차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내세울 만화작가가 그 뿐인지라 사인회도 오래하고 여러번이나 해야할 정도였다. 그래도, 짱구는 못 말려 인기 덕분에 불만사항이 없었고 행사에서 인기를 얻다보니 덕분에 관계자들이 숙식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담하여 사례하였다고 한다. 작가 본인도 당시를 회상하며 한식 좋아하는 것을 얼마든지 주문하라고 하여 실컷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 김혁에게 사인을 해 줄때 한글로 적었는데 글씨가 매우 바르다. 김혁이 말하기를 그와 그의 아내인 우스이 히사코는 한국어 학원에 등록까지 해놨다고 했다. #[11]

황미나가 쓴 글에 의하면 다른 행사가 진행될 때 같이 참석하여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어설프게나마 한국말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였으며, 잘 웃어 주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황미나 씨는 그 때를 회고하며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려 그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SBS 방영 초기에 SICAF에서 아기공룡 둘리의 원작자인 김수정과 캐릭터 교환식을 하기도 했었다. # 후일담에 의하면 SICAF가 끝나고 나서는 이외수도 만났었던 것 같다. ##

4. 사망

파일:kureshin1우스이요시토추모1.jpg
파일:kureshin2우스이요시토추모2.jpg
<bgcolor=#ccb654,#010101> 우스이 요시토의 사망 확인 이후 방영된 짱구는 못말려의 추모자막[12]
「크레용 신짱」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진심으로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 방송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오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009년 9월 11일, 군마현 아라후네산(해발 1423m)으로 등산을 하러 갔다가 돌연 실종되었는데, 그로부터 8일이 지난 9월 19일에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20m 가량 높이의 가파른 절벽 아래에서 등반하고 있던 등산객이 처음 목격했었다고 하며, 얼굴을 포함한 전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던 탓에 치형대조를 하고 나서야 겨우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현장 경사가 너무 높아서 수습 과정이 오래걸렸기 때문에 20일에 확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정확한 사인은 불명이나, 당시 소지하던 카메라의 마지막 사진이 벼랑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실족사로 보고되었다. 사실 등산로 자체는 완만한 편이었는데, 하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위험한 곳으로 발을 디뎠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전에 유명 만화가로 이름을 알렸던 만큼,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자 수많은 네티즌들이 충격을 받았다. 픽시브에서는 우스이 작가를 추모하는 그림들이 올라왔으며, 天国へ漫画を描きに行った男(천국으로 만화를 그리러 간 남자)라는 태그가 생겼다. 투니버스에서는 편성PD 강유미가 9기 첫회에서 해당 사건을 추모하는 소식을 알렸고,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의 엔딩 크레딧에는 모두가 정면을 보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우스이 요시토 선생님을 추모하며.'라는 말로 그를 추모했다. 그 외에 과거 정식방영을 했던 SBS와 보도전문채널 YTN에서는 도쿄 특파원의 리포트로 해당 소식을 전했었으며( SBS, YTN), MBC에서도 단신으로 사망 소식을 보도했었다. #

위기탈출 넘버원에서도 해당 사례를 소개했는데, 아무리 재연극임을 감안해도 묘사가 지나치게 희화화된 감이 있어서 고인모독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13]

한편 실종 후 발견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군마 경찰 측에서는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주변인물에 대해서도 조사를 시도했는데, 그 결과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음이 밝혀졌고, 작가 본인도 이에 대해 우호적이었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작가의 모친은 아들이 신흥종교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겨서 서로 싸운 적도 있었다고 했는데, 해당 사건은 단순히 등산을 갔다가 실종된 것이라서 종교와의 연관선은 적다고 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작가의 모친은 이후 작가의 아내보다 일본 내에서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 아들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그동안 신짱으로 벌어들어온 인세로 호화롭게 생활을 했다가 그것이 기부로 방해되는 걸 막고자 작가에게 직접 간섭했다는 것이 싸움의 원인으로 추측되었고, 그 사실이 작가가 사망한 이후로 알려졌기 때문에 모친이 유산 문제 관련으로 잡음을 일으켜서 신상정보까지 공개될 정도로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었다. 기본적으로 우스이 요시토의 유산인 크레용 신짱의 저작권 및 인세는 배우자인 아내와 자녀들에게 가는 것인데도 이 모친이 아들이 자신에게 일임했다는 위임장을 공개했으나, 실제 작가가 위임했는지 명확하지 않아 기각되면서 사문서위조 혐의까지 받아 일본 내에서 사이비 논란이 있는 여호와의 증인도 문제지만 우스이 요시토의 어머니는 그보다 더 막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즉, 그의 모친은 아들을 돈줄로 보고 사치를 일삼다가 아들이 (사이비 논란이 있다지만) 종교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혼을 내는 등 편협하게 굴다가 아들이 죽고서는 그 사실이 드러나 본인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한일 양국 팬덤에서 전혀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자업자득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현재는 그의 딸들과 제자들이 우스히 요시토의 명의를 이어받아 신 크레용 신짱을 연재하고 있다. 애니판은 원작 연재 시절부터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많았고, 제작진들도 신짱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할지 고려해서 제작한다고 한다.

5. 여담



[1] 자란 곳은 사이타마현 카스카베시. 대표작인 크레용 신짱의 배경이 카스카베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만화전문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3] 만화가 우스이 요시토(취미: 변좌관상(감상),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 마츠 타카코)라고 적혀 있다. 해당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는 토바 이치로 - 형제선. 후에 짱구 가족에게 노래자랑대회가 어딘지 아냐고 물어보다가 알 게 뭐냐는 히로시의 대답과 함께 죽빵을 맞고 뻗어버린다. 한국 성우는 비디오판에선 박상훈이, 대원방송판에선 현경수가 맡았다. [4] 공식 매체를 살펴봐도 가면라이더 시리즈와의 콜라보 에피소드가 있다. [5] "짱구는 못 말려"로 발매되던 시절엔 상단 귀퉁이에 경고 문구가 들어간 빨간 딱지가 인쇄되어 성인물임을 표시하고 있었으며, 초기엔 여성의 나체가 거의 적나라하게 그려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아동용으로 전환되었다곤 하더라도 이후에 묘사가 좀 더 순화되었을 뿐이지, 다소 선정적인 표현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6] 세월이 흘러 모두 절판되었고, 특히 오래된 작품들은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만화도서관에선 2017년 이후 열람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 중 인기가 많은 작품은 신맨말고 딱히 없다. [7] 이런 작품들에 나온 개그의 예를 하나 들자면, 한 남매가 다투는데 그 이유가 누나가 남동생의 야구 배트에 쇠구슬을 수십 개 박아넣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마약 또한 기본으로 들어간다. 댓글 참고 [8] 서울문화사판은 신바람 lady 짱미는 못말려라는 이름으로 정발됐었고 3권 이후로 절판. [9] 짱구는 한국에 두 번 갔다 왔다. 첫번째는 만화가 이벤트에 당첨되어 훈이랑 같이 가게 된 적이 있고, 두번째는 가족이 겨울연가 이벤트를 위해 간 적이 한번 있다. 첫번째의 경우는 당시 서울문화사에서 로컬라이징판을 번역해서 내던 때였기 때문에, 번역 본에선 반대로 짱구가 일본에 여행을 간 것으로 바뀌었다. 짱구가 한국 음식인 김치를 먹고 너무 맵다면서 난리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한국판에서는 반대로 일본 음식 중 하나인 와사비를 먹다가 맵다고 난리를 치는 장면으로 설정 변경 되었다. 물론 서울문화사 발매본 기준의 이야기이며, 재발간된 학산문화사 판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수정되었다. 두번째로 간 한국 여행의 경우는 이미 학산문화사로 판권이 넘어가 일본명 그대로 번역만 되었던 때였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나온다. [10] 짱구랑 비슷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던 아따맘마에서도 한국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는 경우가 있다. [11] 상단의 프로필 사진도 해당 블로그에서 촬영된 사진이며, 공식적으로 알려진 얼굴 사진은 해당 사진이 유일하다. [12] 우스이 요시토의 사망 확인 이후에 방영된 2009년 10월 16일 681화의 부분이다. 단조로운 배경과 장평을 줄여서 길쭉하게 쓴 것이 안노 히데아키스러운 점, 명조체 자막, 그리고 별도의 음악이 삽입되지 않은 추모 메시지 때문에 당시 시청하고 있었던 시청자들은 섬뜩함을 느꼈었다는 후일담이 나왔다. [13] 등산하다가 개미를 보고 이상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14] 국내판에서는 윤도현의 ' 사랑했나봐'가 삽입되었다. 사실 사잔 올 스타즈는 그 일본 내 친한파의 최종 보스인 초난강의 입지를 위협할 정도의 친한파들이다. 우스이 요시토나 사잔 올 스타즈나 친한파들이었다 보니 케미가 잘 맞았던 것. [15] 법적으로 저작권은 저작자가 사망한 뒤 70년 후까지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