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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05:29:03

오이란

타유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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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
2.1. 오이란과 유녀들의 계급2.2. 오이란을 만나기까지2.3. 오이란의 단골, 나지미(馴染み)2.4. 오이란의 헤어스타일과 패션2.5. 오이란의 이동 행렬, 오이란도추(花魁道中)
3. 여담4. 대중매체
4.1. 오이란 캐릭터4.2. 오이란 컨셉 캐릭터
5. 관련 문서6. 외부 링크

1. 개요

[ruby(花魁, ruby=おいらん)]

일본에 존재한 매춘 직업. 유곽에서 일하는 유녀들 중 최상위 계급인 유녀를 말한다. 서양으로 치자면 유럽에서 상류층 손님들 위주로 상대한 고급 창녀 코르티잔(courtesan)이나 고대 그리스 헤타이라(Hetaira), 한국으로 치자면 일패기생과 같이 '예능, 지식'을 두루 갖추고 상류층의 후원을 받으며 모든 형태의 유흥을 제공했다는 점이 비슷하다.[1]

오이란은 마케팅이 중요했으며 이런 마케팅 행위를 법으로 허락하였기에 그만큼 화려하게 치장했고 비록 유곽 거리로 한정하였지만 평민, 그것도 유흥업 여자가 거리를 행차를 할 수 있는 타 문화권에서 보기 드문 권위를 행사했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매춘을 금지한 기생과 달리 유녀는 막부에게 공식적으로 매춘업을 인정 받았고, 국가의 강제 동원이 명문화된 공공재인 기생과 달리 자유 직업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었으므로 막부의 권력자로 인해 본인의 의사나 유곽 내의 규칙을 무시하고 우선 콜을 받는 일도 있었다. 다만 외모가 가장 중요한 코르티잔과 달리 아시아 문화권의 매춘업 최상위 종사자들은 인문을 중시한 상류층 손님들의 취향을 따라 인문잡기가 외모만큼이나 중요했으며, 이는 오이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유직이라 하더라도 오이란으로 오른 자들은 일단 출생이 가난하여 팔려온 경우가 대부분인 데다 오이란으로 오르기까지 엄청난 돈을 투자했므로 빚을 진 경우가 대부분이며, 자금의 출처는 많은 경우 유곽이나 전문 대출업자이므로 자신의 몸값과 투자빚을 모두 갚기 전까진 유곽 주인이나 물주에 의해 신변이 통제당했다. 신분제 사회였으므로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유직, 자유민 신분이 아니었다.

'오이란'이라는 말의 어원은 18세기 중엽 유명한 공창 구역이었던 요시와라 유곽에서 동생뻘 유녀들이 '우리집 언니(おいらの所のお姉さん, 오이라노 도코로노 오네상)'라고 부르던 말에서 변한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오이란 이전까지 최상급 유녀를 가리키던 '다유(太夫)'라는 말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점차 쓰지 않게 되었다.

게이샤, 마이코와 비슷해 보이는 화장이나 머리 모양 때문인지 자주 헷갈리지만 이 둘은 전문 예능인을 말하는 것이고, 정말로 유곽에서 매춘을 하던 이들은 오이란이다.

2. 특징

한 유곽의 유녀 자리에서 알파격 자리에 있는 고급 유녀라 할 수 있으며, 오이란 외에 '타유'라는 명칭으로도 불렀다. 이들은 가발이 크고 화려하며 일반인들이 오비를 뒤로 매던 것과 달리 앞으로 오비를 맸다. 오비를 앞으로 매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노동을 하지 않는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을 탔던 방식이나, 오이란이 이 방식을 흉내내면서 오이란의 상징이 되자 앞으로 오비를 매는 일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유곽에서도 화대가 몹시 비싼 고급 유녀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면대면이 가능하긴 힘들었다. 보통 유곽의 격자창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호객 행위를 하는 가게인 하리미세(張見世)에 오이란은 가지 않았다. 격자창 뒷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유녀들은 주로 오이란보다 아래 계급인 코우시. 가게 밖을 지나다니는 손님 유인용 유녀들이 주로 이들이었다.

오이란은 찻집(茶屋, 차야)을 매개로 삼아 연락을 주고받았다. 유곽들이 몰려있는 곳에 있는 찻집은 체면을 중시하는 무사 계급 특징상 직접적으로 찾지 않고 유녀에게 기별을 보내 자신을 모시러 올 때까지 기다리던 곳이어서 말 그대로 찻집 역할도 하면서 간단한 밀회 장소(물론 밀회 이상의 것들(...)도 할 수 있는 자리도 2층에 마련)로도 활용하였다. 그런 탓에 찻집에서도 호기를 부려 유흥비를 떨어뜨리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손님보다도 오이란이 상석에 앉았고, 오이란과 초기에 관계를 가질 손님은 무려 3차까지의 대면 절차가 존재했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이러다 보니 당연히 급 낮은 유녀들에 비해 몸 치장, 옷 치장, 머리 모양 등이 화려하기 그지없었고, 해당 직책에 걸맞게 섭렵해야 하는 것들도 많았다. 또한 출신지를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해 이쪽 업계에서나 쓰는 언어와 말투( 쿠루와코토바(郭詞))를 따로 배우며, 기본 출신지가 말투 등에서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이건 다른 유녀들도 마찬가지여서 만약 스스로 들어온 게 아니라 부모나 보호자 동의 없이 강제로 팔려온 여아가 이 말투가 입에 배어버리면 출신으로 아이를 추려내서 찾기가 어려워지기도 했었다.

여하튼 이런 연유 때문에 오이란들은 용모가 아름다운 건 기본이고 지성과 품격, 잠자리 스킬, 다도, 꽃꽂이, 향도[2], 악기 연주, 노래, 장기, , 전반으로 매우 능해야 했으며, 미모·지성·교양 모두를 다 갖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써 상품화하여 팔리는 존재들인 만큼 패션 측면에서도 자신들을 갈고닦아 당대 패션 리더라 불릴 정도로 패션 유행을 주도하기까지 했었다. 이런 오이란들로 인해 발생한 직종이 바로 유녀들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여성 미용사인 카미유이(髪結)였다. 이리 까다로운 조건들을 갖춘 만큼 각 유곽이 보유한 오이란의 수는 당연히 적었다.

이쯤 보면 매춘부임에도 가히 귀족 아가씨들과 맞먹는 스펙의 보유자라 할 수 있으나, 그래도 결국 유곽에 붙잡힌 인생인 데다 직장에서 뛸 수 있는 기간도 길어야 30세 안팎이었다. 유녀들의 평균 은퇴 시기가 27세였다. 그래서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직접 몸값을 치르고 중간에 나갈 수 있는 길은 사실상 없었다. 유녀가 유곽으로 팔려왔을 때 몸값의 경우 보통 유녀를 판 사람들이 받아 챙긴 지 오래이며, 급이 높은 유녀가 밑에 두고 부리는 카무로와 신조의 부양 비용을 상급 유녀들이 모두 내야 해서 기껏 번 돈이 얘네들 챙기느라 빠져나가기도 했다. 개인실을 가질 수 있는 중급 이상 유녀들의 경우 여기에 더해 방세도 따로 내야 했으며(...) 옷, 머리, 화장품, 장신구 등 손님 받기용 치장비도 유녀 자신이 다 내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오이란들의 경우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빠져나가는 돈도 그만큼 많았기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다가 급이 올라갈수록 기본 낙적료도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유녀 일을 하던 중간에 자기를 빼낼 수준의 돈을 유녀 스스로 마련하는 일이 어려웠다.

결국 나이가 다 차서 나 나간 20대 후반 유녀들은 이제 한물 간 퇴역이었기에 일을 받기도 힘들고 잘 나가는 손님 잡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유녀들에겐 잘 나가던 시절 몸값 다 치르고 나가거나 후술할 미우케(身請け)를 받는 게 이상적이었지만 그것도 어려웠던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은퇴한 뒤에도 반토신조 등의 형식으로 유곽에 남아 후임 유녀 양성을 하거나 돈 있는 손님들에게 미우케(身請け), 즉 특정 유녀를 선택한 손님이 돈을 치르고 그 유녀를 낙적시켜 밖으로 빼내는 방식으로 받아 첩으로 들어가는 것 정도만 노릴 수 있었다.

그나마 오이란에게 이상적인 결말이 미우케였다. 제 아무리 학식과 교양이 높고 용모가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결국 매춘만 하던 인생이었던 만큼 맨몸으로 유곽에서 나가면 그 뒤로 살아남기가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우케를 받는다면 최소한 돈줄과 보호자(남편)가 될 남자의 첩 자리라도 얻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도 미우케를 받을 확률은 그닥 높지 않았다. 오이란을 빼내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는데 유곽 주인(보우하치)들이 마음대로 값을 불러대서 천정부지로 높게 제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부담을 감수하여 오이란을 빼가 첩이나 아내로 삼는 사례도 있었다.

2.1. 오이란과 유녀들의 계급

처음부터 바로 오이란이 되는 유녀는 없다. 대체로 유곽에서 유녀들의 맨 초기 계급은 카무로(禿)에서 시작한다. 카무로는 직역하면 대머리.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다는 뜻으로 유녀 특유의 올림머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깨까지 가지런히 자른 아동기의 머리 모양이나 혹은 그런 머리 모양을 한 아이들을 가리킨다. 좁은 의미에서 이 카무로라는 말은 에도 시대 유곽에서 사는 계집아이를 가리킴과 동시에 견습 유녀를 가리키는 보통 명사라 봐도 된다. 자세한 계급 구조는 유녀 항목 참고.

2.2. 오이란을 만나기까지

오이란은 해당 유곽의 상급 유녀, 최상급 유녀인 만큼 만나기까지 절차가 복잡하기 그지없었는데, 첫 손님과 오이란의 대면만 해도 3차례로 나뉘어졌다.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드는 비용도 기본 화대비+중개료+연회 비용+종업원에게 주는 웃돈으로 붙는 추가 요금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 오이란을 만날 수 있는 이들은 돈 많은 상류층 사람들로 자연스레 한정되었으며, 이들은 오이란을 비롯한 상급 유녀를 사는 행위를 '머리 올리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이란을 만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절차들이라고 알려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정작 이런 절차들은 실제로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며, 만약 정말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에도 시대 호황기였던 겐로쿠 시대 때 높은 계급 손님들에게만 한정적으로 행했으리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요시와라 구역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유녀들의 손님이 무사 계급에서 평민 계급으로 옮겨갔으니 이를 따라 점점 유녀 접대도 대중화, 간략화 되어 최소한 요시와라 후기엔 이런 절차들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고 볼 수 있다.

2.3. 오이란의 단골, 나지미(馴染み)

위에서도 나와있듯이 오이란에게 3번의 화대를 성공하여 단골로 인정 받은 손님을 말한다.

이들은 겸사겸사 나지미킨(馴染み金)이라는 단골비도 내야 했으므로, 나지미가 되는데 들어가는 돈이 못해도 현재 가치로 200만엔을 넘어가니 당연하게도 신분 높고 돈 많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 대신 나지미가 된 손님은 오이란에게 자기 이름이 적힌 젓가락 주머니(하시부쿠로)를 받고 이름을 불러주며 부부처럼 대하는 것도 가능하고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 또한 가능해지는 등 확실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지미에게도 따라야 할 규칙이 있었다. 다른 유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오이란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취급하여 들킬 경우 요시와라 문 앞에서 붙잡혀 위자료를 물어내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기다 다른 유녀들에게 조롱을 받거나 여장을 당하게 되는 등 망신을 당할 일들도 감안해야만 했다.

만약 여러 손님이 오이란 한 명을 동시에 지정할 경우 오이란은 그 중 한 명만 상대하고 나머지는 오이란의 시중을 드는 하급 유녀들이 상대했다. 그래도 화대는 받아낸다고 한다(...) 물론 통상 가격의 화대 수준이다.

2.4. 오이란의 헤어스타일과 패션

대표적인 헤어스타일로 비녀 여러 개를 좌우대칭으로 꽂는 다테효고(伊達兵庫), 카츠야마라는 유명한 유녀가 유행시킨 헤어스타일은 카츠야마 마게(勝山髷), 그 외에 겐로쿠 시마다 마게(元禄島田髷), 에도 시대 중기에 유행한 등롱빈(燈籠鬢)[3], 시마다 마게(島田髷) 등의 헤어스타일이 있다. 이 중에서 시마다 마게는 일본 전통 결혼식 신부 머리 모양이 되었으며 오이란 헤어스타일이 당대의 유행을 타고 일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 외에 일반 비녀 말고도 꽃비녀로 머리칼을 장식하기도 했다.

신발은 산마이바 게타(三枚歯下駄)라고 해서 정말 높은 건 20cm였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굽이 상당히 높다. 통굽이 아닌 3개로 갈라진 굽인 나막신(게타)을 신고 다녔으며, 걸을 때 발을 안쪽으로 모아 걷는 특별한 팔자걸음 걸음걸이인 하치몬지(八文字)를 시전하며 걸어다녀야 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요시와라는 '외팔문자'(발걸음을 밖으로 돌림), 교토 시마바라(京嶋原)와 오사카 신쵸(大坂新町)는 '내팔문자'(발걸음을 안으로 돌림)였다. 이 걸음걸이가 익숙해지기까지 대체로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오이란은 최고급 유녀답게 의상도 호화롭고 사치스러웠다. 기본 기모노 위에 화려한 무늬와 색상이 있는 겉옷인 우치카케(打掛)를 입고 오비를 앞으로 걸쳐 풍성하게 천을 늘어뜨리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의상의 무게도 엄청나게 무거워 30kg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동할 때 굉장히 힘들었을 확률이 높은데 상당한 무게의 장신구가 있는 가발+굽 높은 신발+8자 걸음+30kg이나 되는 의상(...)을 몸에 매달고 움직여야 했으니 쌀가마니 30kg 이상의 무게를 지고 힘든 내색 없이 우아한 자태로 요상한 걸음걸이까지 써서 다녀야 했던 것. 생각보다 여성의 몸은 저렇게 무거운 걸 잘 드네 싶을 정도의 근력 수준까지 가더라도 근육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남성은 어느 정도 무거운 걸 들면 바로 근육과 혈관이 튀어나와 쉽게 눈에 띄는 것과 다르다.

2.5. 오이란의 이동 행렬, 오이란도추(花魁道中)


참고글.

다른 말로는 스베리도추(滑り道中)라고 한다. 손님에게 지명된 오이란이 몸단장을 한 뒤 행렬을 거느리고 손님이 기다리는 찻집이나 연회장으로 가는 것으로, 이는 오이란이 요시와라의 중앙 거리인 나카노초(仲之町)를 행차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이란에게는 자기를 지명할 정도로 부유하고 높은 손님이 왔다는 점과 자기가 그만큼 잘 나간다는 점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오이란들이 경쟁적으로 행차를 한 적도 있었는데, 이 때문에 생기는 폐해를 막기 위해 에도 막부가 아예 오이란 행차를 하루 1번으로 정해서 과하게 하는 것을 막을 정도였다. 화려하게 볼거리인 행렬이어서 그런지 현대에서도 종종 재현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이란도츄 행렬 참가 인원은 아래와 같다. 그 중 기본은 오이란, 카무로, 신조, 미세반.

3. 여담

4. 대중매체

상급 유녀의 대명사격인 직책이어서 그런지 창작물에서는 1차와 2차를 막론하고 보통 이런 사진처럼 섹시하고 화려한 밤의 여왕 같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으며, 오이란 캐릭터들도 보통 그런 성향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오이란 기믹이 있으면 자연히 색기담당 기믹이 따라오기도 한다. 유녀를 다루는 작품이라면 유녀가 앉을 수 있는 최고 직책이다 보니 유녀들의 꿈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역으로 그런 클리셰를 깨고 야한 이미지를 덜 강조하는 외유내강형 타입 오이란 캐릭터라든가, 오이란조차도 극복하지 못할 암담한 유녀들과 유곽의 현실을 표현하는 식의 오이란류 캐릭터도 제법 있다. 이럴 땐 '새장에 갇힌 새'라는 비유를 많이 쓴다.

4.1. 오이란 캐릭터

4.2. 오이란 컨셉 캐릭터

해당 문단은 오이란이 아닌 오이란의 외형만 따온 오이란 컨셉 캐릭터들이다.

5. 관련 문서

6. 외부 링크



[1] 그러나 한국의 일패기생은 공식적으로는 매춘을 하지 않았다. 일패기생은 왕을 상대하며 오이란과 비교하자면 그 아래등급인 양반들을 상대하는 이패기생과 더 비슷하다. 황진이도 이패기생이었다. [2] 향을 맡고 그게 어떤 향인지 알아맞추는 등 향에 대한 학식을 쌓는 것. [3] 고래수염 등을 사용한 봉으로 머리를 옆으로 부풀려 안이 비춰보이게 고정시키 머리 모양으로, 등롱의 갓 같다고 해서 등롱빈이란 이름이 붙었다. 빈(鬢, びん)은 옆으로 퍼지게 코디한 머리 모양을 일컫는다. [4] 물론 오이란 정도 되면 매춘 없이도 큰 돈을 벌 수는 있었으므로 매춘 대상자를 한없이 좁힐 수는 있었다. 최고 권력자의 눈에 들었을 경우처럼. [5] 잠입 목적이었지만 유일하게 오이란 자리까지 올랐다는 언급이 나온다. [6] 인간으로서 전생에도 오이란이었고, 이름부터가 오이란 이전에 쓰인 고급 유녀를 가리키는 타유였다. [7] 청루 오페라에 나오는 유곽의 우두머리 유녀. 사실 청루 오페라 작품 자체가 요시와라가 무대인 만큼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유녀들이다. [8] 일단 요시와라 도원향에 지내고 이명도 천도 유녀이지만, 오이란이라기보다는 자경단의 단장이다 보니 유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