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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및 제1차 세계 대전의 러시아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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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fff,#191919> 어뢰정 | 페르노프 | |||
구축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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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정 / 함 | 델핀, 솜급, 카사크타급, 미노가, 아쿨라, 카르프급, 카이만급, 크랍, 모르즈급, 바르스급, 나르발급, A급 | ||||
경순양함 | 알마스급, 스베틀라나급 | ||||
장갑순양함 | 게네랄 아드미랄, 미닌, 블라디미르 모노마흐, 드미트리 돈스코이, 아드미랄 나히모프급, 파먀티 아조노바, 로시야, 그로모보이, 바얀급, 류리크 | ||||
방호순양함 | 디아나급( 아브로라함), 바랴그급, 스베틀라나급, 아스콜드, 노빅급, 바가티르급, 이주므루드급 | ||||
군수지원함/구난함 | 콤무나 | ||||
순양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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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
<colbgcolor=#ffffff,#191919> 전드레드노트급 | 예카테리나 2세급, 나바린,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2세급,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트리 스비아티테리아, 아드미랄 우샤코프급 전함, 체자레비치, 보로디노급, 로스티슬라브, 페레스베트급, 포템킨, 레트비잔, 에프스타피급,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 |||
드레드노트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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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소련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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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전쟁 및
제2차 세계 대전 소련군의 해군 함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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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륙함 | 볼린데르급RE | |
어뢰정 | Sh-4급, G-5급, D3급, PT 보트US | |
잠수정 / 함 | 슈카급, 칼레브급노획, M급, A급, L급, P급, S급, D급, K급, 로니스급노획, 바르스급, L급UK, S급UK, U급UK, 퀘벡급C | |
호위함 | 타코마급 호위함US | |
구축함 |
노빅급(
데르즈키급,
오르페이급,
이쟈슬라프급, 피도니시급)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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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뢰전함 | 마르티급RE, 프로젝트 253L형 | |
순양함 |
키로프급, 막심 고리키급, 카가노비치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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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함 | SB-37급(제례즈냐코프급), 하산급 | |
군수지원/구난함 | 콤무나RE | |
순양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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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RE,
아르한겔스크U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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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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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вро́р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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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디아나급 방호순양함 3번함.함명인 Аврора(아브로라)는 오로라라는 뜻도 있지만 실제로는 대기현상 오로라가 아니라 로마 신화에 나오는 새벽의 여신 아우로라에서 따온 이름이다. 디아나급 방호순양함의 함명은 모두 로마 신화에서 따왔다. 동형함들의 이름인 디아나와 팔라다 역시 로마 신화의 여신 디아나와 로마 신화 속 기간테스인 팔라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2. 제원
제원 클래스: 디아나급 방호순양함 배수량: 6.731 톤 길이: 126.8m 폭: 16.8m 평균 홀수: 7.3m 기관: 3중 팽창 방식의 수직 엔진 3기,1894년식 Belleville 보일러 3기 최고 속도: 19 knots 항해 가능 거리: 10킬로노트로 4000마일 무장(1917년 기준): 6인치 함포 14문, 3인치 대공포 6문, 어뢰발사관 3문 추진기: 3개의 3날개 프로펠러(분당 135회 회전) |
3. 역사
순양함 오로라는 극동에서의 러시아 해상 전력의 확장 프로그램 하에 1897년에 시작하여 1903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새 해군본부에서 건조되었다. 1903년 11월 8일, 오로라 함은 해군 소장 A. A. 비레니우스(A.A.Вирениус) 제독의 지휘 아래 순양함 파견함대와 함께 극동으로 배치되었다. 오로라 함은 크론슈타트, 포클랜드, 알제리, 스페시아, 비제르타, 페라에우스, 수에즈, 지부티 등을 거쳐 극동으로 파견 되었다. 하지만 그 파견함대는 1904년 2월 8일에 러일전쟁이 시작된 덕에 발트 함대에 배치되었다.순양함 오로라 함은 러일전쟁 기간 동안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제독 예하의 엔크비스트 제독이 지휘한 3척의 순양함 중 한 척으로 참전하였다. 1905년 5월 27일에서 28일까지 벌어진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제1소함대 소속의 장갑 순양함들의 집중 포화를 받아 함교에 75밀리 포탄이 가격당해 함장 에로레프(Ерорев) 대령이 전사하고 부장 A. K. 네볼신(A.K.Неболсин) 중령이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함장역을 인수받았다. 총 15명의 승조원이 전사하고 83명이 부상을 입었다. 오로라 함은 상부 구조물과 함체 전체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화력통제시스템은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1문의 6인치 포와 5문의 75mm 포가 파괴되었다.
결국 러시아 함대가 완패했다고 본 엔크비스크 제독은 오로라를 포함한 3척의 순양함을 가지고 당시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1906년 2월 오로라는 리바우 항으로 돌아갔다.
당시 오로라 함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최우수함으로 인정할 정도로 승조원들의 기량과 단합, 사기 정도가 높았는데, 이는 에로레프 대령 등 장교들이 타 함정에 비해 수병들의 처우 개선에 열심이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러일전쟁 이후 오로라는 해군 사관생도들과 간부후보생들의 훈련선이 되었다.오로라 함은 1907년에 "1등급 순양함"에서 "보통 순양함"으로 재분류되었다. 1912년 봄과 여름에는 크레타 섬을 방어하기 위한 국제함대의 일원으로서 크레타의 수다만 안에 설치된 러시아 해군측 기지에 배치되었다.
3.1. 제1차 세계 대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G.I.Butakov 대령을 함장으로 한 오로라 함은 발트 함대의 제2순양함대에 소속되었다. 순양함 오로 함은 초계임무 및 포격임무 등을 수행하였다. 예를 들어 1914년 8월부터 9월 사이에 있었던 독일 제국 해군 침몰 순양함 "마그데부르크" 함의 잔해에 암호문 등을 입수하기 위해 잠수한 잠수사들의 안전을 위한 보호활동을 하였다. 또한 핀란드와 보드니아만사이에 위치하는 암초지대의 항로들에서 정찰활동을 하기도 하였다.1914년에서 1915년 사이 오로라 함은 6인치 포 14문과 75미리 포 4문, 그리고 전기 및 충격식의 1908년식 기뢰 150개와 그것을 부설하기 위한 레일 및 기뢰 절단선 등으로 재무장했다. 겨울동안에 있었던 관례적인 정비에 따라 오로라 함은 두문의 75mm, 1문의 40mm 대공포를 추가로 탑재했으며, 1915년 여름에는 또 다른 2문의 대공포를 탑재하였다.(기실 대기뢰작전을 위한 75mm 포들은 모두 제거되었다.)
1916년의 작전 동안 오로라 함은 중요한 정비를 위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프랑스-러시아 공장에 머물렀다. 1916년과 1917년 사이의 겨울 동안, 증기엔진이 수리되었고 또한 새로이 Belleville-Dolgolenko가 장착되었다. 주요 화력면에 있어서도 53련[1]에서 67련으로 사정거리가 증대된 새로운 포들로 바뀌었다. 임시변통의 75mm. 대공포 대신 F.F.Lender가 고안한 3인치 짜리 "정규" 대공포로 6문으로 바뀌었다. 그 외에 새로이 출력이 강한 무전기와 소나가 장비되었다. 승조원의 수도 723명으로 증대되었다.
3.2. 10월 혁명
페트로그라드에 정박해있던 오로라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공장 노동자들과 접촉하면서 오로라 함의 승조원들은 혁명을 촉구하는 정치적 선동에 말려있었다. 또한 당시 오로라 함의 장교와 수병 사이의 상하관계 또한 극심할 정도로 긴장되었다.
이 와중에 급기야 1917년 3월 13일 혁명이 발발되었단 소식을 듣고 오로라 함 승조원들은 "붉은 깃발"을 게양한 뒤 노동자들과 혁명에 참가했다. 함내의 장교들은 수병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승조원들 대부분은 배에서 내려 혁명을 위한 시위에 참가했다.
1917년 10월에 정치상황이 다시금 악화되고 "발트 함대 중앙 위원회"의 결정 하에 페트로그라드에서 수리를 받던 오로라 함은 "페트로그라드 의회"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수병들은 오로라함을 니콜라예브스키 다리로 끌고 가서 1917년 11월 7일에 10월 혁명 때의 일익을 담당했다. 뒤이어 오로라는 "임시정부"가 소재하던 겨울궁전[2]을 지키던 육군 병력의 사기에 압박을 가하기 위해 선수의 함포에서 공포(空砲)를 발사하였다.
11월 11일 까지 수리를 받던 오로라 함은 40명정도의 수병들만이 경비와 최소한의 업무를 위해 한동안 남겨졌다. 1918년 여름, 오로라 함은 크론슈타트로 이동되어 보존조치되어 한동안 전쟁에 이용될만한 가능성이 없어졌다. 오로라 함의 6인치 포들은 철거되어 붉은 불가강&카스피안 해 함대의 부유포대를 무장시키기 위해 아스트라한으로 보내졌다.
1922년에 오로라 함은 장기간 지속 보전을 위해 크론슈타트 항에 넘겨졌다.
3.3. 혁명 이후
1922년 소련 해군의 회복이 시작되면서, 1916년에서 1917년에 이루어진 주요 수리작업 때문에 훈련용 함선으로 복구하기로 결정됐다.[3] 1922년에서 24년까지 복구를 위한 정비와 보존조치 후에 순양함 오로라는 10문의 130밀리 포와 2문의 3인치 단장 대공포를 장비하였다.1924년부터 30년까지 오로라 함은 고등 해군 학교의 생도들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친 훈련 항해를 하였다.
1933년에 오로라 함은 점검 및 정비를 결정받았다 그러나 1935년에 조선소에 너무 과한 책임이 부과되다보니 결국 정비는 중단되었다. 오로라 함은 레닌그라드의 고등 해군 학교의 1년차 생도들을 위한 "스스로 못 움직이는 훈련 지원함"이 되었다. 겨울에 오로라는 잠수함 지원함으로서 사용되었다.
3.4.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의 군대가 레닌그라드까지 밀고 들어오자 오로라 함은 레닌그라드 방어를 위한 해상포대로 활용되었다. 오로라 함 자체는 레닌그라드 근처의 오라니엔바움(로모노소브)수로에 붙박혔다. 또한 주요 해군기지였던 크론슈타트 항의 대공방어에도 활용되었다.전쟁이 개시되었을 때 오로라 함은 대공포로 루프트바페의 폭격기들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겨울 동안 오로라 함은 또한 계속해서 잠수함들을 위한 지원함으로서도 활동하였다. 결국 1941년 9월 30일, 오로라는 독일 육군의 포격으로 파손을 입어 오라니엔비움 수로에 착저해버렸다. 남아있던 함포들은 철거되었다.
3.5. 기념함
1917년 10월 혁명 기념용으로서 오로라 함을 부활시키려는 결정은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에 나왔다. 1944년 오로라 함은 인양되었으며 45년에서 47년까지 수리되었다. 오로라 함의 외관은 1917년 11월 당시의 그것으로 맞추어졌다.그에 따라 1917년 당시 오로라 함에 장착되었던 것과 같은 6인치 캐논 포가 장착되기로 하였는데 정작 그런 함포는 오직"육상용" 대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 육상용 대포에 장착할)보호용 장갑판은 오래전에 오로라 함에서 근무했던 노병들이 그린 그림에 따라 새로 만들어졌다.
선체의 물밑 부분은 내부가 콘크리트로 채워졌다. 내부의 격실들 또한 거의 모두 완전히 다시 구획되어졌으며, 이곳에서 근무하게 될 해군사관학교 생도들과 교육자들이 거주하거나 일을 하기 위해 재정비되었다.
주요 추진장치는 제거되었지만 2개의 보일러와 중앙 증기 엔진은 훈련 및 기타 일상에 필요한 동력원으로서의 설비로서 남겨졌다. 함교 등의 상부구조물도 원래대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배의 굴뚝들은 모두 다시 만들어야 했는데 2차 대전동안 상당히 파손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로라 함은 1947년 11월 17일에 레닌그라드의 네바 강의 정박지에 마지막 항해를 끝내고 정박하게 된다.
오로라 함을 역사적인 박물관으로 만드는 작업은 이 배의 승조원들과 옛 노병들, 팬들에 의해 1950년에 착수되었다. 1956년에 중앙 해군 박물관에서 재편이 결정되었다. 1961년에 오로라 함은 훈련함으로서의 임무를 끝마쳤으며 박물관이 될 정비를 받았다. 6인치 포를 포함한 상부갑판과 앞갑판은 방문객을 위해 개방되었으며 오로라 함 박물관의 방들도 그러하였다. 그러나 다른 부분들에 대한 방문은 거부되었다. 정비작업은 1957년과 58년 그리고 66년에서 68년까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1968년에 오로라 함은 "10월 혁명 훈장"을 수여받았다.
1980년대 말에 오로라 함은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새로운 정비작업은 1984년에서 87년에 이루어졌다. 선체 전반의 모든 수면 아랫부분은 금속과 콘크리트로 된 부식방지제로 처리하여 정비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한다. 원래 부분은 잘라서 고철처리 한다. 스크류들 그리고 구리 외장재를 제거하고 모형을 만든다. 원래 선체의 아랫부분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의 항구의 방파제 혹은 잔교로 사용한다.
선체 윗부분은 새로 만들어질 아랫부분에 얹어놓기 위하여 3부분으로 나눈다. 보조엔진실은 보일러 모형이 두개 배치되어진 "보일러실"로 구성되었다. 주엔진은 복원되었으며 제1엔진실 안에 배치되어 있다. 장갑이 깔린 갑판도 새로 만들어졌으며 원래의 장갑은 함의 물 아래 부분에 설치되었다.
오로라 함의 상부 구조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1917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치장되었다. 굴뚝과 마스트들은 새로이 만들어졌다. 함포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되었다. 안쪽의 격실들은 다시 기획되어졌다. 박물관 행사용 홀들, 직원 숙소, 갤러리가 딸린 승조원 식당, 장교, 함장의 살롱, 함포가 있는 갑판 등이 있다.
이렇게 오로라 함은 러시아 해군을 상징하는 기념함으로 재탄생되었다.
또한 그 상징성 때문에 소설과 영화 붉은 10월의 모티브가 된 발레리 사블린의 선상 반란 계획에서 그의 최종 목표이기도 했다. 스트로제보이함을 핀 만을 거쳐 스웨덴 근방 바다를 스쳐지나간 후, 오로라 순양함 근처에 도착하여 라디오 전파를 통해 관료주의적이고 이상을 배반한 공산당의 실태를 고발하고 인민들에게 혁명을 선동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KGB와 소련 해군 부대들이 출동하여 발레리 사블린의 스트로제보이함의 선상반란을 진압함으로써 이뤄지지 못 했다.
4. 현재
오늘날 오로라 함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나히모프 해군 학교에서 여러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오로라 함 내부 박물관에서는 약 1,000점에 이르는 각종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수채화 6점을 비롯한 그림 12점, 깃발 10가지와 각종 상징물, 역사관련 원본 문서 40점 및 복사본 문서 46점, 개인 사진 114점, 그리고 옛 노병들이 받았던 포상 14점과 훈장 24점이 오로라 함에서 근무했던 수병들의 삶에 대하여 방문객들에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2013년 러시아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의 결정을 따라 명목상 현역으로 복귀하고 러시아 해군 기함을 맡게 되었으며 2014년 오버홀을 위해 정비시설로 들어갔다.
2017년 8월 기준으로 다시 방문이 가능해졌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기계 고장 때문에 현금으로만 티켓 결제가 가능하다고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0년 7월 25일 러시아 해군의 날 기념으로 붉은 군대 합창단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 아브로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위 영상에서 연주한 곡은 슬라브 여인의 작별(Прощание славянки).
5. 매체에서
게임 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소련 프리미엄 3티어 순양함으로 나온다.
전함소녀에서 교관으로 등장한다.
벽람항로에서는 러시아어 이름인 아브로라로 등장. 중국/일본서버 사전예약자들에게 주어진 고인물의 상징같은 배였으나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이후 복각 이벤트를 통해 2차적으로 뿌려졌다. 한국서버에는 19년 3월에 이벤트를 통해 배포. 2020년3월 '동절의 북해' 이벤트에서 다시 복각되었으며 이벤트 종료 후 영구 상시건조로 입수할 수 있다.
Naval Creed:Warships에서 프리미엄 1티어 순양함으로 등장한다.
소설 세계대전 Z에서는 해상의 피난민들이 이걸 끌고 나왔다고 언급된다.
2024학년도 10월 전국연합학력평가 세계사 16번 문제에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