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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9 18:42:20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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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프 앙상블
Ансамбль Александрова
Alexandrov Ensemble
파일:알렉산드로프 앙상블 엠블럼.svg
<colbgcolor=#cc101f> 창설일 1928년
국가
[[러시아|]][[틀:국기|]][[틀:국기|]]
단장 겐나디 사체뉴크 대령
위치 러시아 모스크바
SNS 파일:알렉산드로프 앙상블 엠블럼.svg 러시아어 파일:알렉산드로프 앙상블 엠블럼.svg 영어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텔레그램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명칭
2.1. 공식 명칭2.2. 기타
3. 역사
3.1.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 휘하3.2. 보리스 알렉산드로프 휘하3.3. 소련 붕괴 이후
4. 역대 단장 및 예술감독 목록5. 현재 단원 목록6. 그 외
6.1. 제복6.2. 내한공연6.3. 사건·사고
6.3.1. Tu-154 항공기 추락 사고
6.4. 여담

[clearfix]

1. 개요

러시아군의 합창단이다.

소련군 휘하의 합창단인데도 프로파간다와는 별 상관 없이 엄격한 규율과 연습을 통해 예술적 가치를 지켜내고 키워온 곳이다. 남성 보컬만으로 구성된 크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냉전 시기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동서를 가리지 않고 이름을 날렸다. 러시아 문화의 가장 뛰어난 유산 중 하나인 민요와 여기에 영향을 받은 군가들을 웅장하게 소화해내 남자의 가슴을 불타오르게 만드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세계 투어도 많이 다녀서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러시아 최고의 합창단이다.

편곡과 연주 스타일 자체는 " 강한 러시아"를 상징하기 위해 매우 우렁차면서도 우아한 테너 보컬과 이를 받혀주는 바리톤을 기반으로 한다. 타악기의 비중이 적어서 박자가 좀 묻힐 감도 있는데, 이걸 또다시 우렁찬 금관악기와 베이스가 커버하고도 남는다. 또한 이걸 힘으로만 밀어붙이면 세밀함이 부족하니 피콜로와 현악기가 잘 더해줘서 전반적으로 듣기 좋으면서도 한때 번성하였던 소련의 기상을 보여주며, 아무래도 편곡된 민요들을 주로 연주하는 만큼 인민의 공로와 소련 건국 이전~초반 인민들의 서글픔도 어느정도 함께 가미되어 있다.

또한 이곳은 소련에서 절대로 숙청되지 않았던, 일종의 성역이었다. 스탈린이 아꼈다.[1] 실제로 스탈린이 좋아하던 음악 중에는 이 합창단이 자주 부른 조지아의 서정 가요인 술리코(Сулико)가 있었다. 예술가가 숙청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선전선동을 매우 중시하던 사회주의권에서 예술가들은 상당히 자주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굴라그로 끌려간 예술가가 워낙 많아서 거기서 수용소 군도라는 대작품까지 나올 정도고, 문화대혁명의 시작을 알린 사건도 해서파관 사건이었으니, 이처럼 창작자 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행위자도 어떤 작품이 비혁명적이라고 판명되면 그걸 부른 배우와 가수들까지 뭉텅이로 숙청되었는데 군가야 그렇다치더라도, 민요는 반혁명적인 봉건문화 찬양, 잦은 국외행사는 자본주의자들과의 결탁한 퇴폐, 혹은 간첩활동이라고 트집잡으려면 얼마든지 트집잡을 수 있는 문제고 많은 소비에트의 예술가들이 같은 이유로 숙청되었지만 이들만큼은 절대로 무사했다.

소장이자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였던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Александров)에 의해 붉은 군대의 공식 예술단으로 출범하였다. 편제는 기본적으로 여타 국가의 군악대와 동일하지만, 이름에 들어간 'песни и пляски(가무, 춤과 노래)로 알 수 있듯 합창단과 관현악단 외에 무용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창단 때부터 이어져 온 전통인데, 'пляски'는 러시아의 전통 춤을 의미한다. 소련 시절에는 혁명가나 군가를 위주로 불렀으나, 후에는 러시아 전통 민요, 정교회 찬송가, 오페라 및 대중 음악도 공연하면서 소련이 붕괴한 이후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예술단이다. 앙상블 편성은 남성 합창단, 관현악단[2], 무용단 세 개 그룹으로 되어 있다. 합창단의 경우 합창단 가수 외에 독창이나 중창만을 전문으로 하는 독창 가수가 별도로 편성된다.

이 앙상블 외에도 러시아군에 소속된 다른 합창단이나 앙상블도 많다. 특히 해군이나 공군 등의 군악대가 똑같이 군복 차림으로 공연하면 굉장히 유사하게 보여서, 완전히 다른 단체를 알렉산드로프 앙상블로 착각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댄스 파트에 여군 단원이 있는 건 상관없지만, 합창 파트에도 여군이 있다면 정통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 아니라고 보면 되었지만. 2020년부터 자체적으로 여성 합창단을 구성하고 있어서 이들을 합창 공연에 동원하는 경우도 있고, 단독 공연 외에 다른 단체와 협연도 많이 하기 때문에 잘 구분해야 한다.

2. 명칭

공식 명칭이 매우 길기 때문에 약식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2.1. 공식 명칭

러시아어: Дважды Краснознамённый Академический ансамбль песни и пляски Российской Армии имени А. В. Александрова
(드바즈디 크라스노즈나묜니 아카데미체스키 안삼블 페스니 이 플랴스키 로시스코이 아르미 이메니 아. 베. 알렉산드로바)
영어: A. V. Alexandrov Russian army twice red-bannered academic song and dance ensemble
한국어: 2중 적기훈장을 수훈한 A. V. 알렉산드로프 명의의 정통 러시아군 가무 앙상블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rder_of_Red_Banner.png
적기훈장. 소련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무공 훈장이다. 2회 수훈.

흔히 약어로 알렉산드로프 앙상블(Ансамбль Александрова)로 부른다. 실제 러시아인들은 이렇게 부르면 쉽게 알아듣는다. 약어로는 'КАППСА, КАППРА, КрАПП' 등등으로 사용된다.

2.2. 기타

공식적으로 명칭에 러시아군을 명기하고 있지만, 소련 시절에 발족하고 또 유명해졌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붉은 군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직도 널리 통용되고 있다. 특히 영어권으로 넘어갔을 때는 특히 옛 이름에서 파생된 'The Alexandrov Red Army Choir(Chorus)', 'The Alexandrov Red Army Ensemble' 혹은 그냥 'Red Army Chorus' 라고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름들은 모두 올바른 명칭이 아니지만 고유명사로 굳어진 표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구글이나 유튜브 등지에서 검색할 때는 위와 같은 방법으로 검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 붉은 군대 합창단'이라는 비공식 명칭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붉은 군대 합창단이 알렉산드로프 앙상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붉은 군대 합창단'이라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알렉산드로프 앙상블만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러시아군에서 운영되는 군합창단의 총칭을 뜻한다. MVD(내무군) 앙상블, 적성(赤星) 앙상블이 대표적인 경우. 특히 국내에도 몇번 왔던 전략로켓군 소속인 적성 앙상블의 경우 '러시아 국립 적성 적군 앙상블'로 소개가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알렉산드로프 앙상블로 알고 낚였다(...).

이런 유사 단체와 혼동되는 상황은 러시아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2011년에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 자신들의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러시아 내무군 앙상블이 해외 공연에서 자신들을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인 양 소개하거나 그렇게 오독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공연 프로그램 노트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정면으로 반박하는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다. 공식 반박 영상

3. 역사

3.1.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 휘하

앙상블의 초기 역사는 정확히 말할 수 없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극장 감독인 펠릭스 다닐로비치가 앙상블을 조직해 모스크바의 세 지휘자 중에서 음악 감독을 선정했는데, 이들 중 한 명이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였고 이 때 초기 인원은 11명이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1928년에 미하일 프룬제 명칭 붉은 군대 중앙 회관에서 12명의 인원이 모여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프의 지도 아래 출범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설 중 사실상 두 번째 설이 공식이며, 앙상블의 홈페이지에 있는 역사 소개 항목에도 후자가 채택되어 있다. 1928년 10월 20일 제22사단에서 첫 공연을 했고, 초기에는 기병대나 극동군, 혹은 광산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곡을 주로 공연했다. 1929년부터 앙상블은 소련의 시베리아 지역 철도 노동자들을 방문했는데, 이 때부터 정기적으로 소련 각지를 도는 순회 공연을 시작했다. 이 당시의 공식 명칭은 'M. V. 프룬제 명칭 붉은 군대 중앙 회관의 붉은 군대 합창 앙상블(Ансамбль красноармейской песни Центрального дома Красной Армии имени М. В. Фрунзе)'이었다.

앙상블은 군대의 계급과는 상관없이, 더 좋은 음악적 소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고, 규모가 점점 확대되어 1933년에는 인원이 300명에 이르렀다. 이삭 두나옙스키와 게오르기 노소프, 보리스 모크로우소프, 아나톨리 알렉산드로프, 바실리 솔로뵤프-세도이 등의 소련 작곡가들도 이 앙상블을 위해 여러 군가와 가요들을 작곡했고, 이 곡들이 라디오 방송이나 기타 여러 공연을 통해 유명해지면서 앙상블의 명성도 소련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다.

1935년에는 적기훈장을 받았고, 이 때부터 붉은 군대 중앙 회관 직속 앙상블에서 독립해 나오면서 명칭을 '적기훈장을 수훈한 소련 붉은 군대 가무 앙상블(Краснознамённый ансамбль красноармейской песни и пляски СССР)'로 바꾸었다. 1937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엑스포에 참가해 그랑 프리(최우수상)를 수상했다. 하지만 대내외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준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이 시기 동안 앙상블은 전선에 참여하는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철도역부터 비행장, 병원 등 소련 각지에서 1500회 이상의 공연을 했다.
파일:attachment/alexanderalexandrovportrait.jpg 파일:알렉산더 알렉산드로프.jpg 파일:external/www.nasledie-rus.ru/740802.jpg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 1883.04.13~1946.07.08. 최종 계급은 상술한 대로 예술단 소속 장교의 진급 한계인 소장이었다. 창단 후 18년 동안 지휘자로 앙상블을 이끌었고, 작곡가로도 활동해 볼셰비키 당가(= 소련 국가, 러시아 국가) 등 상징곡과 성전, 소련군 찬가 등의 군가도 작곡하였다.

파일:external/2db5277056ddedfb8ef9b3802f24b0e86b382fa6303b3f86085a3d04b87e740e.jpg
초창기(1928년 ~ 1929년)의 앙상블의 인원. 맨 처음 출범 당시에는 12명의 조촐한 편성이었는데, 이 때도 두 명의 무용수가 있었다.

3.2. 보리스 알렉산드로프 휘하

1946년에 창립자였던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프는 독일의 소련 점령 지구에서 공연을 앞두고 급서했고, 그의 아들인 보리스 알렉산드로프(Борис Александрович Александров)가 앙상블을 이어받았다.세습 보리스도 아버지 못지 않은 조교조련 실력을 발휘했고, 임기 동안 사회주의노력영웅과 소련 인민예술가 칭호를 비롯한 여러 훈장과 메달을 수여받았다. 1949년 2월 7일에 앙상블은 대조국전쟁에 참가한 공로를 인정받아 적기훈장을 두 번째로 수여받았고,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적성훈장도 수여받았다.[3] 같은 해 6월 10일에는 창립자의 이름을 따 '2중 적기훈장과 적성훈장을 수훈한 A. V. 알렉산드로프 명칭 소련군 가무 앙상블(Дважды Краснознамённый ордена Красной Звезды ансамбль песни и пляски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имени А. В. Александрова)'로 개칭되었다.

보리스 알렉산드로프가 지휘한 앙상블은 공산주의 이념이나 선전하는 프로파간다 앙상블이 아니라 국제적인 인지도와 명성을 쌓는 예술 단체로 성장했다. 보리스는 1987년에 은퇴할 때까지 엄격한 훈련으로 앙상블을 이끌었고, 특히 지휘자가 없는 상태에서도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30분 이상 흐트러지지 않고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단련시켰다. 덕분에 지휘자가 퇴장한 뒤에도 악단과 합창단은 탁 트인 무대에서 계속 공연을 진행했고, 그 앞에서 무용수들은 자신들의 춤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스탈린 사후 데탕트 시기가 찾아오자 앙상블은 영국, 프랑스, 쿠바, 일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순회 공연을 가지면서 해외에도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공연을 개최했던 1956년과 1963년에는 EMI에서 세 장의 LP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는데, 당시 소련의 음반 사업은 여느 공산주의 국가들처럼 국가 직영 음반사인 멜로디아가 꽉 쥐고 있었고 해외 반출되는 음반도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실제로 EMI가 낸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의 음반들은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 스테디 셀러가 되었고, 이것으로 이 앙상블의 음악을 처음 들어본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또 이 음반들에서 독창 가수로 출연한 예브게니 벨라예프, 이반 디덴코, 이반 사브추크, 니콜라이 아브라모프(이상 테너), 알렉세이 세르게예프, 아르투르 에이젠(이상 베이스), 콘스탄틴 게라시모프(바리톤), 레오니트 하리토노프(베이스-바리톤)[4] 같은 이들은 이후 앙상블을 퇴단한 후에도 각자 솔리스트 혹은 교육자 활동을 계속 하면서 소련 음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8년에는 창단 50주년을 맞아 정통(академический)[5] 칭호를 받았고, 이름도 '2중 적기훈장과 적성훈장을 수훈한 A. V. 알렉산드로프 명칭 정통 소련군 가무 앙상블(Дважды Краснознамённый ордена Красной Звезды академический ансамбль песни и пляски Советской Армии имени А. В. Александрова)'로 또 개명되었다. 이것이 소련 시절 이 앙상블이 최종적으로 가졌던 공식명칭이다.

파일:attachment/borisalexandrovportrait.jpg

보리스 알렉산드로프 1905.08.04~1994.06.17 최종 계급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장이었다. 마찬가지로 지휘와 작곡을 병행해 우리의 국가 영원하라[6] 같은 가요도 남겼다.

보리스 재임기에는 콘스탄틴 비노그라도프와 유리 페트로프 등이 합창 지휘를 담당했고, 동생인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프도 1978년에 사망할 때까지 소령 계급을 달고 관현악단 담당 지휘자로 재직했다. 보리스 알렉산드로프 퇴임 후에는 악단의 수장이 행정을 총괄하는 단장과 공연 무대에서 지휘자를 담당하는 예술 감독으로 나뉘었다가, 2016년 5월부터 발레리 할릴로프가 단장과 예술 감독을 겸임하는 체제로 복귀했다.

3.3.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의 붕괴 이후 앙상블의 이름 변경에 대한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고, 결국 보리스 옐친의 결정으로 러시아군 앙상블로 개명되었다. 그러나 이미 고유 명사화 된 이름을 고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결국 1998년에 가서야 현재의 공식 명칭으로 개명되었다.

하지만 명칭 개명보다 더 큰 타격은 심각한 재정난이었고, 결국 여타 군 예술단과 마찬가지로 인원 감축에 들어가 현재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의 단원 수는 소련 시대와 비교하면 상당히 줄어들었다. 소련 체제 후반기인 1989년에 진행한 미국 순회 공연에서 각각 87, 43, 45명 규모였던 합창단과 관현악단, 무용단은 2003년 프랑스 공연 때 각각 46, 29, 20명으로 집계되어 상당히 격한 다이어트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자료 출처 비단 해외 공연 뿐 아니라 러시아 국내 공연에서도 예전보다 확실히 체급이 많이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단원 감소세에 대응하기 위해 말레프가 단장으로 재임하던 2007년에 부속 교육 기관인 알렉산드로프 어린이 합창 학교를 설립해 단원 자체 수급이 가능한 커리큘럼을 짰고, 현재도 많은 단원들이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준단원을 거쳐 정단원으로 승급되는 식으로 입단하고 있다.

2023년 3월 중순 Apple Music에서 ‘The Stalin Album'이 잠시 사용 불가 처리되었으나 다른 앨범의 동일 곡으로 변경되었다.

4. 역대 단장 및 예술감독 목록

보리스 알렉산드로프 이후의 역대 단장과 예술 감독은 다음과 같다.

역대 단장
역대 예술 감독

파일:겐나디사체뉴크.jpg
현재 단장 및 예술감독 겐나디 사체뉴크(1967~) 육군 대령

단장과 예술 감독 대부분은 군인 신분이지만, 표도로프나 라옙스키처럼 예술 감독 중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부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5. 현재 단원 목록

앙상블 공식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함께 소속 단원들의 이름과 역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앙상블 구성(Состав Ансамбля)

6. 그 외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러시아 국가


가끔 이렇게 자본주의 팝을 커버하여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기도 한다(...)[7]


류베, 퍄트니츠키 합창단과의 협연. 러시아를 대표하는 합창단인만큼 러시아 가수들과의 협연도 많이 진행한다.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2016년 12월 공연 실황 동영상. 후술할 Tu-154 추락 사고 직전에 개최되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여기에 올릴 수 없으나 북한에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 김정일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6.1. 제복

붉은 군대의 군악대로 출발했으므로 공연 때 입고 나오던 군복 자체는 당시 소련군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계급을 나타내는 견장은 리라 모양의 자수가 들어간 붉은 색의 것을 사용해, 일반 군인의 정복과 구별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앙상블의 제복은 1969년 소련 군복의 대대적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용되다가 1970년에 다른 군복들에 맞춰 전부 변경되었다. 현재는 러시아군의 정복을 입는다. 합창단원이나 관현악단원은 계급 표시가 없는 단색의 견장을 사용하지만, 예술 감독이나 합창단/관현악단 지휘자, 안무가, 단장, 부단장 등 악단을 통솔하는 행정 부서의 단원들은 계급이 확실히 표기된 견장을 사용해 구별하고 있다.

6.2. 내한공연

소련과 수교한 1990년의 이듬해인 1991년 "레드 아미 코러스"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최초로 내한공연을 온적이 있다. (이건 진짜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MBC에서 녹화중계를 해줬을 정도. 당시만 해도 냉전적 분위기가 지배적이어서 곡은 군가가 아니라 대체로 러시아 민요를 위주로 불렀다. 하지만 이후 한국 공연은 없는 상태고, 주로 북한에서 공연을 뛴다. 가장 최근에 북한에서의 공연은 2023년 9월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한국에는 보통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이 자주 오진 않고, 전략로켓군 소속 적성 앙상블이 내한공연을 맡아서 뛰고 있는 중이다. 2010년에도 세종문화회관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공연을 했고 2012년에도 내한했다.

6.3. 사건·사고

6.3.1. Tu-154 항공기 추락 사고

2016년 12월 25일, 단장 겸 예술감독 발레리 할릴로프 중장을 포함한 단원 64명이 시리아의 흐메이밈 공군 기지로 송년 위문 공연을 나섰다가 비행기 사고로 64명 전원 사망하는 창단 이래 최악의 사고가 터졌다. #1, #2, #3. 이들은 모스크바 근교의 치칼롭스키 공군 기지에서 러시아 국방부 소속 Tu-154 여객기를 타고 출발해 소치에서 급유를 위해 중간 기착했다가 다시 시리아로 향하던 중 탑승 기체가 흑해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단원 중 이번 공연에 참가하지 않고 남았던 사람은 총 15명으로, 다른 공연에 객원 단원으로 파견된 합창단 3명, 다른 항공편을 탄 무용수 4명과 악단 단원 8명이라고 한다.[8] #

러시아 국방부에서 발표한 탑승자 명단에 따르면, 해당 기체에 탑승했다가 변을 당한 인물들 중 알렉산드로프 앙상블 단원들은 다음과 같다. 콤소몰스카야 프라브다에 게재된 탑승자 명단 세르게이 쇼이구는 12월 27일에 개최된 러시아군 간부 회의에서 사고의 희생자들을 추모했고, 알렉산드로프 앙상블과 관련해서는 러시아군 음악학교 명칭에 발레리 할릴로프의 이름을 추가해 할릴로프의 업적을 기릴 것과, 앙상블을 최대한 빨리 재건하기 위한 단원 모집 오디션과 콩쿠르를 개최할 것을 특별히 지시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 국방부에서는 2017년 1월 15일과 27일에 신입 단원 모집을 위한 오디션을 개최했고, 할릴로프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단장과 예술 감독에 할릴로프의 전임자였던 겐나디 사체뉴크가 다시 임명되었다. 다만 단장 자리는 확정되지 않아 임시대행 직함으로 맡고 있다가 2017년 3월 24일 부터 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러시아는 온갖 기록, 연구자료, 교육자료, 전임자들까지 긁어모아 재건에 몰두했고 이렇게 새로 구성된 앙상블은 2017년 2월 18일에 크렘린 대회 궁전에서 열린 조국 수호의 날 기념 공연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국내 공연 외에도 해외 순회 공연 일정까지 발표하면서 성공적으로 재건되었음을 과시했지만, 단장과 예술 감독, 안무가를 비롯한 행정 조직과 공연 실무 담당자를 비롯해 단원 대부분을 잃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고 있는터라 예전만큼은 못하다는 아쉬움 섞인 비평을 많이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링크된 블로그로 가면 사고 이전의 앙상블과 재건된 앙상블의 공연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현재 동영상 삭제됨

그래도 시간이 좀 흘러 연습이 축적되자, 승리의 날 행사 등에서는 예전의 모습을 많이 회복했다는 평.

6.4. 여담



[1] 현재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 또한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을 매우 아낀다고 한다. 실제로도 발레리 게라시모프, 세르게이 쇼이구등 최측근 들과 함께 공연을 자주 보러간다. [2] 바이올린족 현악기가 인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적인 관현악단과 달리, 발랄라이카나 도므라 같은 러시아 전통 발현악기와 아코디언의 일종인 가르모니와 바얀이 대거 편성되어 있다. [3] 소련에 근속 훈장이 없었을 때는 적기훈장이 그것을 대신했다. [4] 볼가강의 노래나 검은 눈의 코사크 여인 등등 메인 가수로 나서서 수 많은 명곡을 남겼다. [5] 영어로 직역하면 academic이지만, 러시아어에서는 대학교와 관련된 것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 정통하다는 의미의 형용사로도 많이 쓰인다. [6] 트란스니스트리아의 국가가 이 노래를 개사한 것이다. [7] 솔리스트는 예브게니 불로치니코프. 후술할 Tu-154 추락 사고로 인해 안타깝게 요절했다.. [8] 살아남은 합창단원 중 한명인 로만 발루토프는 여권이 5개월 전에 만료된 줄 모르고 있다가 중간 기착지인 소치에서 출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하고 집에서 휴식을 하던 도중 지인들한테 안부 연락이 와서 사고 소식을 알았다고 한다. 원래 탈 예정이었으나 여권 문제로 출국을 못한 케이스라 탑승자 명부에는 있어서 한동안 사망자 명단에 올라오기도 했었다. 다른 한명인 솔리스트 바딤 아나니예프는 아내가 셋째를 출산하는 중이라 탑승을 미뤘다가 사고를 피했다. [9] 오시포프는 2010년 서울에서 공연했던 한·러 수교 20주년 기념 합동 오페라 공연 당시 러시아 오페라 가수로 참여하여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10] 합창단 전체 단원중 가장 최연소 단원이였고, 사고로 인해 1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