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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 유리명왕 때의 장수.2. 행적
서기 12년, 중국 신나라의 황제 왕망이 고구려에서 흉노를 정벌하기 위한 병력을 강제로 징발해갔다. 그러나 강제로 끌려간 고구려인들은 오히려 진영에서 도망 나와 도적이 되었다. 다만 한서의 왕망전에 따르면 이때 징발당한 고구려인들은 본래부터 고구려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현도군이 이치하면서 강제로 이주당한 고구려 계통의 사람들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이후 현도군 변경을 공격하기도 하였다.급기야 신나라에서 요서 대윤 벼슬을 지내던 전담(田譚)이 이들을 추격하다가 오히려 죽고 말았는데, 이에 왕망은 그 허물을 고구려에게 돌렸다. 왕망의 신하였던 엄우[1]는 흉노를 미처 정발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구려인들을 자극하는 것은 이롭지 못하다고 간하였으나 왕망은 이를 듣지 않고 고구려를 공격했다.
연비는 이때 고구려군을 이끌고 있었는데, 엄우의 유인술에 넘어가 전사하였다. 엄우는 연비의 목을 베어서 신나라의 수도인 장안으로 보냈다. 한서의 왕망전과 후한서의 고구려전의 기록으로는 구려후 추를 유인하여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로 왕망은 고구려왕을 '하구려후(下句麗侯)'라 부르며 멸시하였다. 이후로 고구려와 신나라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고구려가 신나라의 변방 지역을 침범함이 더욱 심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