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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와 일본의 외교관계에 대해 다루는 문서.2. 내용
2.1. 전기
고려 전기에는 한일 역사상 가장 교류가 없었다고 할 정도로 교류가 적었다. 이전의 삼국시대 국가들이나 신라, 발해보다도 교류 횟수가 적다. 벽란도에 송나라, 심지어 아라비아 상인들도 왔을 정도로 송나라와 교류는 많았지만, 일본과 교류는 매우 적었다. 그나마 성종 이후, 문종 때는 교류가 늘은 편.고려시대 당시의 일본은 헤이안 시대,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시대였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은 당나라와 신라라는 이웃나라들이 쇠락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으며, 곧 이들과의 교류를 서서히 차단함과 동시에 국풍 문화를 고집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외국의 것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국수주의는 보편적인 풍토로 자리잡았고, 이는 외국 사절의 방문에도 극도로 인색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당장 후백제의 사절부터가 문전박대를 당했고, 통일 이후 통교를 위해 찾아온 고려 사절들도 '번국의 예를 안 지켰다'(...)느니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왕실의 행사에는 일본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도 참석하고 있었으니, 국가간 공식 관계가 수립되지는 않았어도 교류는 어느 정도 있었던 듯하다.
2.2. 후기
서로 간에 무역 정도나 하던 양국 사이에 커다란 변화가 온 건 몽골 제국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몽골이 일본을 침략할 때 고려군과 함께 쳐들어가는 바람에 양국은 마찰을 빚었다. 외국 정규군에게 침공당해 본 것이 역사상 처음이었던 일본인들은 이 전쟁을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였고, 민간에서는 무쿠리코쿠리(むくりこくり, 일명 '몽골 고구려') 귀신 괴담까지 등장할 정도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 일본인들은 연합군이 패한 바람에 이 사건을 당시 세계 최강국을 이겼다며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한다.한편 여말선초에 극성이었던 왜구가 반일감정을 조장하였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이 무렵 발생했을 반일감정의 깊이나 지속 기간에 대해서 검증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