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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하 D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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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YamahaDX-7.jpg

1. 개요2. 역사3. 모델 목록
3.1. DX73.2. DX7II
3.2.1. DX7IID3.2.2. DX7IIFD3.2.3. DX7S3.2.4. DX7II Centennial
4. 평가5. 대중음악계에서 사용6. 사용 뮤지션7. 여담

1. 개요

야마하에서 1983년 5월 출시해 1989년까지 생산한 FM 신디사이저이자 최초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디지털 신디사이저.

2. 역사

흔히 라디오 주파수로 사용 되었던 FM(주파수 변조)를 가지고 1960년대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존 차우닝은 FM 합성법을 처음 개발해 낸다. 당시 흔히 쓰였던 감산합성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방식 보다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 차우닝은 특허를 받았고 하몬드 오르간으로 유명한 하몬드사와 월리처 피아노로 유명한 월리처사에 문의 했지만 당시 미국의 전자악기 엔지니어들은 FM 합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는 악기 시장 점유율이 없던 야마하의 엔지니어 한명이 그의 FM 합성을 이해했고 이후 1975년 야마하와 FM 합성에 대한 독점권을 협상했다. 여담으로 당시 Roland의 창립자인 이쿠타로 카케하시도 FM 합성에 관심을 표하면거 차우닝을 찾아왔으나 이미 야마하와 계약한지 6개월 뒤였다고 한다.

그렇게 1970년대 부터 FM 방식 음원 합성을 연구하며 발매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하여 1980년 최초의 상업적 FM 디지털 신디사이저인 GS-1이 탄생했는데 IC칩 때문에 제조비가 많이들어 약 100대정도 밖에 생산 못했다고 한다. 당시 야마하는 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초고밀도 집적 회로 칩을 개발하여 GS-1에는 50개나 들어가는 칩셋을 단 두개로 FM 알고리즘을 구현할수 있게 개발했다.

3. 모델 목록

3.1. DX7


1983년 5월 출시. 문서 맨 위에 사진 기종이다.

역사적인 첫 오리지널 DX7으로 24만엔에 출시되었다. 61건반이며, 작은 스크린, 멤브레인 스위치가 특징이다.

YM2128(OPS) 오퍼레이터 칩 기반의 총 6개의 오퍼레이터로 내장된 32가지 알고리즘 중 하나를 가지고 음색이 합성되는 구조이다. 기본 내장 사운드로 32개의 사운드가 탑재되어 있다.

하츠네 미쿠의 디자인 원형이 되는 모델이다.

3.2. DX7II

파일:야마하 DX7II.jpg

3.2.1. DX7IID

1986년 출시. 오리지널 기종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기존 오리지널 DX7에서 원가 절감을 이유로 탑재되었던 작은 스크린과 멤브레인 버튼이 더 커진 스크린과 푸시 버튼으로 변경되었고, 프로그래밍하기 편하게 슬라이더도 더욱 커졌다. 또한 16비트 디지털 회로가 탑재되었으며, 내장 음색 메모리도 기존 32개에서 두배인 64개로 늘어났다. 사운드 스플릿 기능과 레이어 기능이 추가 되었다.

3.2.2. DX7IIFD

DX시리즈의 강화판 중 최고의 베스트셀러
DX7IID에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가 추가된 모델. 1986년 12월 출시.

3.2.3. DX7S

파일:YAMAHA DX7S.jpg
DX7 II '최후' 염가판으로 플로피디스크, 듀얼모드가 생략되었다. 일본 카탈로그를 보면 알겠지만 1987.6.1 발매라고 돼 있고 1983 오리지널과 비슷해 보이나 DX7II답게 64프리셋 메모리가 내장되어 있다.

3.2.4. DX7II Centennial

파일:야마하 DX7II Centennial.jpg
파일:야마하 DX7II Centennial 설명.jpg
야마하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100대만 한정생산한 모델. 76건반이다.

4. 평가

신디사이저 시장을 혁신시킨 역사적인 모델이자 상업적으로 성공한 첫 디지털 신디사이저. 최초로 10만대 이상 판매를 돌파한 신디사이저이기도 하다.

당시 흔히 사용되었던 moog, Oberheim, SCI등과 같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는 프로그래밍 난이도는 DX7보다 비교적 쉬울지는 모르나 복잡한 하드웨어 구조와 파형을 기조로 하는 감산합성이라는 점에서 실제 소리를 모방하기에는 까다로웠고, 당시 등장했던 Fairlight, Emulator 같은 디지털 신디사이저들은 샘플방식이라는 점에서 DX7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모방이 되었으나 가격이 무려 10000달러 이상 호가하는 사실상 슈퍼컴퓨터나 마찬가지인 악기여서 성공한 프로 뮤지션이 아닌이상 일반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DX7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에 아날로그 신디사이저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노브들을, 스크린과 버튼 그리고 몇가지 컨트롤 노브로 미니멀리즘화 했으며, 이러한 구조는 이후 출시되는 대부분 디지털 신디사이저에 기초가 되었다.

다만 단순화된 구조 탓과 그리고 FM 합성 특유의 복잡한 프로그래밍 구조로 인해 합성을 하기에는 기존 아날로그 감산합성보다 훨씬 까다로웠다는 단점이 있었다.

Sequential 설립자로 유명한 데이브 스미스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는 신디사이저 시장이 작아 어떤 제품도 5만대 이상 팔지 못했지만 DX7이 가격도 적당하고 키보드 표현과 음색을 갖추고 있으며 같은 가격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경쟁 제품보다 어쿠스틱 사운드를 더 잘 에뮬레이션했기 때문에 잘 팔렸다고 말했다.

특이하게 국내 한정으로 DX7이 최초의 디지털 신디사이저라는 인식이 있는데, 틀린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1983년은 이미 Fairlight, Emulator 같은 샘플러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프로 뮤지션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다만 이러한 샘플러 신디사이저 기종이 가격이 만달러가 넘는 초고가 제품인지라 국내에서는 사용 사례가 거의 없어 이러한 인식이 생긴듯 하다. 그외에도 이미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서도 JUNO-6등 기종에서 오실레이터 한정으로 DCO를 탑재했으며, PPG와 같은 디지털 기반 웨이브테이블 신디사이저도 이미 있었다.

5. 대중음악계에서 사용

(위에서 언급했듯) FM 합성 특유의 복잡한 프로그래밍 구조와 단순화된 하드웨어 구성으로 인해 합성을 하기 굉장히 난이도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뮤지션들은 프리셋을 기반으로 연주했다.
DX7 E.PIANO 1 톤이 사용된 시카고의 Hard Habit To Break (1984) E.PIANO 1 톤이 사용된 토토의 I'll Be Over You
특히 오리지널 DX7부터 있는 E.PIANO 1 음색의 경우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를 비슷하게 모방한 음색이지만 당시 기술의 한계로 전혀 다른 소리가 나왔는데, 이 소리가 나름대로 굉장히 영롱하고 좋아서 DX7을 상징하는 음색이 되었고, 당시 1980년대 파워 발라드에서는 거의 필수 요소급이였다.[1]
DX7 BASS 1 톤이 사용된 A-ha Take On Me (1985) BASS 1 톤이 사용된 케니 로긴스 탑건 사운드트랙 Danger Zone (1986)

베이스 음색인 BASS 1도 유명하며 여러 신스 팝 음악에서 신스 베이스 소스로 많이 활용되었다.

당시 통계에 따르면 1986년 기준 빌보드 핫 100 1위 곡중 40퍼센트이상이 DX7이 사용되었으며, 알엔비 싱글차트 한정으로는 무려 60퍼센트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정도로 1980년대 DX7의 팩토리 사운드는 대중음악계에서 흔하게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일부는 DX7 일렉피아노 소리가 좋아 로즈 일렉트릭 피아노를 처분하는 사례도 많이 있었다.

프로그래밍하기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DX7이지만 몇몇 뮤지션들은 능숙하게 프로그래밍해서 사용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앰비언트 음악가이자 프로듀서로 유명한 브라이언 이노로, 직접 DX7을 에디팅해서 Apollo: Atmospheres and Soundtracks 같은 명반은 만들기도 했으며, 훗날 이노가 U2, 콜드플레이를 프로듀싱할때도 사용되었다.

JR 동일본 발차 멜로디도 대부분 DX7로 작곡되었다. 또한 1990년대 ~ 2000년대 후반 KBS 전국노래자랑에서도 쓰였다.[2]

마이클 잭슨의 1988년 Bad World Tour에서 유명 세션 키보디스트인 그레그 필린게인즈가 사용했다.

6. 사용 뮤지션

※ ㄱ-ㅎ/A-Z 순서로 작성

7. 여담

요즘에는 국내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곳은 콜라텍이다. 일명 전자올겐을 구성하는 악기로써 많이 사용되는데 가야금 소리를 내는 용도로 많이 사용한다. 업계인들은 뭉뚱그려 DX7이라 부르지만 진짜 DX7인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DX7II-D를 사용한다.

매체에선 하츠네 미쿠의 원본으로 유명하며, 몬스터vs에일리언에서 대통령이 연주하던 신스가 DX7이다.[17]

박수홍이 1991년 당시 대학개그제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1] 이러한 FM 계열 EP는 후대에도 사운드모듈, 신디사이저 및 가상악기에도 흔하게 들어가는 소리가 되었고, 교회 반주에서도 꽤나 애용되는 음색이다. [2]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인협 KBS 경음악단장이 생전에 Technics KN1000 모델과 함께 주 신디사이저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참고 영상 [3] I'll Be Over You가 대표적이다. [4] 원래는 베이시스트지만, LIKE A CHILD를 연주할 때에는 DX7을 사용한다. [5] 1987년 솔로 라이브에서 DX7IIFD 사용. [6] # 1989년 3월 11일 KBS에서 방송된 ‘자니윤 쇼’ 첫 회에서 송골매의 키보디스트 이봉환이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7] # 1990년 4월 5일 KBS에서 방송된 ‘자니윤 쇼’ 마지막 회에서 송골매의 키보디스트 이종욱, 이봉환이 Roland D-50과 함께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종욱은 현재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에서 활동 중이다. [8] DAIVA 게임 음악 만들 당시에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소지중이다. 다만 라이브에선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9] 대표적으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의 EP 소리가 이 악기로 사용되었다. [10] Zoolook때 이용. Chronologie세션 때 사진에서도 보인다. [11] 015B 2집 레코딩(가사집 속 사용 악기 목록에 적혀있다.)과 '아주 오래된 연인들' 뮤직비디오 찍을 때 DX7 사용. 다만 라이브에서 쓴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여기서 나오는 피아노 소리는 DX의 오리지널 FM 주파수는 아니다. [12] # 1988년 12월 29일 KBS에서 방송된 ’88 아듀 조용필 콘서트에서 키보디스트 김효국이 Roland D-50, Roland S-50, Yamaha DX7을 사용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3] # 1993년 2월 7일 KBS에서 방송된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 조용필편’에서 조용필의 백밴드 ‘조용필과 뮤직파티’의 키보디스트 최승찬이 사용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4] 무한궤도 라이브 영상을 보면 DX7IID로 추정되는 모델을 연주하고 있다. [15] The Works에서 멤버 모두 사용. 이후 메직 투어에서도 등장.(10초쯤 보인다.)(여기선 브라이언 메이가 사용했다). [16] 1986년~88년 투어때 사용. Invisible Touch 뮤비에서도 사용(35초쯤 보인다) [17] 음색이 FM사운드가 나오는 등 어느정도 고증은 있긴 하나 오리지날 모델 처럼 볼륨 노브가 2개인데 버튼은 DX7 후기 모델처럼 되어 있다. 또한 무슨 마개조를 했는지 몰라도 워크스테이션 처럼 신스 자체적으로 (시퀀싱 되어 있거나 패턴화 되어있는)드럼 사운드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