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10101><colcolor=#dddddd> 무카이야 미노루 [ruby(向, ruby=むかい)][ruby(谷, ruby=や)][ruby(実, ruby=みのる)] | Minoru Mukai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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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6년 10월 20일 ([age(1956-10-20)]세) |
출신 | 도쿄도 세타가야구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키보디스트,
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주식회사 음악관 대표이사 |
소속 그룹 | 카시오페아 (1977 ~ 2012) |
장르 | 퓨전 재즈 |
데뷔 | 1979년 카시오페아 1집 |
배우자 |
전 아내 (? ~ ?) 후지 미사키(藤みさき)[1] (2015 ~ ) |
자녀 | 2명 (아들, 딸) |
학력 | 도쿄도립대학 부속고등학교 (졸업) |
홈페이지 | | | | | |
음악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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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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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물
카시오페아의 사운드는 무카이야 미노루 특유의 다재다능한 연주가 큰 비중을 차지했기에 카시오페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키보드 파트가 돋보이는 곡[3]은 주로 무카이야가 작곡했다. 탁월한 테크닉과 자연스러움이 넘치는 음색을 넉넉히 사용하는 감성적인 코드워크로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켜 '철벽의 16비트'라는 별명도 얻었다.또 라이브 공연 시에는 밴드의 얼굴 마담격인 MC역할도 겸했는데, 그의 뛰어난 진행능력은 88년에 FM 라디오의 DJ를 맡을 정도였다. 음악 외에도 다채로운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것으로 유명한데, 멀티미디어 분야에도 진출해 있고 NHK 교육TV의 '텐즈 네트워크'라는 프로그램의 사회자로도 출연하기도 하였다. 갖가지 공연과 다양한 이벤트로 무대에서 폭넓게 활약하고 있으며, 최근에도 재치 넘치는 입담은 여전하여 니코니코 동화 등에서 젊은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도 하였다.
지금은 철도운전 시뮬레이터를 제작하는 회사[4]인 음악관의 사장이기도 하다. 시뮬레이터와 철도게임 외에도 철도 출발음 제작도 참여 했었는데 대표적으로 큐슈 신칸센 역 출발음, 차량 방송음과 케이한 전기철도의 출발음을 만든 걸로 유명하다. 케이한의 출발음 메들리 이제는 홈도어까지 만들고 있다. 예시는 큐다이갓켄토시역에 설치된 것인데, 문을 열고 닫을 때 무카이야 미노루가 직접 작곡한 개폐음이 나온다.
교육자로서도 다양한 행보를 보여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나고야예술대학 음악학부 음악문화응용학과 전임교수로 재직하는가 하면, 2012년에는 도쿄음악대학 시간강사로도 출강하였다.
3. 생애
3.1. 데뷔 이전
4살 때 오르간을 접하기 시작했고 5살 때부터는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6살에 작곡을 해내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피아노에서 엘렉톤으로 방향을 바꾸어 콩쿠르에서 우승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네무 음악원(현 야마하 음악원)의 엘렉톤과에 진학해 야마하 음악능력검정의 엘렉톤 부문 그레이드 3급(연주)와 지도자 그레이드 3급을 취득하였다.네무 음악원 재적 중인 1977년, 친구를 통해 같은 학년의 노로 잇세이를 알게 되고 노로의 권유로 사쿠라이 테츠오와 결성하고 있던 카시오페아에 가입 제안을 받는다.[5] 이후 야마하의 아마추어 밴드 콘테스트 EastWest '77에 참가하여 결승까지 진출하였고 카시오페아는 전년도에 이어 우수 그룹상을 받게 된다. 무카이야는 본래 수입이 불안정한 밴드 활동보다는 안정된 엘렉톤 업계에서 종사하는 장래를 설계하였으나 이 일을 계기로 프로 데뷔를 목표로 하게 된다.
3.2. 1979년 데뷔 이후
1979년 5월 25일, 일본 퓨전 붐의 한가운데 앨범 CASIOPEA로 데뷔하게 된다. 카시오페아는 노로의 뛰어난 작·편곡 능력과 함께, 앨범을 완전재현시키는 뛰어난 라이브 연주력으로 높은 평가를 얻는다. 무카이야는 동시에 2대의 키보드를 연주하는 등 엘렉톤 플레이어로서의 경험을 백배 살리게 된다. 또 라이브 사회자를 결성 당시부터 잠깐은 리더인 노로가 사회(MC)를 맡았었지만, 이 무렵에 무카이야가 사회를 보게 된다. 특유의 코믹한 화술로 청중의 집중을 유도하는 무카이야의 MC는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고, 司会屋実(시카이야 미노루)[6]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카시오페아는 당시 반년 간격으로 앨범을 발매하며 매출은 물론이고 라이브의 규모도 그에 따라 확장되어갔다. 카시오페아 활동이 바빠지고 그에 따라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1980년대 초반은 카시오페아의 활동에만 전념한다. 그러나 카시오페아 이외의 음악 활동에도 의욕적인 마음은 가지고 있었기에 1984년 처음으로 자신이 음반 제작의 주가 되어 아란 토모코의 앨범 More Relax를 프로듀싱하게 된다. 또, 같은 해 도내에 레코딩 스튜디오인 스튜디오 JIVE를 설립하고 그에 관련한 회사인 음악관(音楽館) 또한 1985년 설립하여 스튜디오 운영에 참여하게 된다. 또 이 스튜디오에서 레코딩한 첫 솔로 앨범 Welcome To The Minoru's Land를 1985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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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come To The Minoru's Land의 수록곡 Asia |
3.3. 1995년 Train Simulator 발표
무카이야는 어린 시절부터 차표 수집을 시작으로 학생 때는 8mm 카메라로 증기기관차를 찍으러 먼 곳까지 나가기도 하고, 카시오페아 활동 중에도 라이브 투어로 전국 각지를 돌아다닐 때 기회가 있으면 현지의 노선을 타러 가거나 다른 멤버나 스텝들이 효율적인 여객기나 신칸센 등을 타고 이동하는 와중에도 이동시간이 꽤 걸리는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등 철도 취미를 즐기기도 하였다. 또 Welcome To The Minoru's Land에도 증기기관차 소리가 들어간 곡인 Take The SL Train을 수록하는 등 그의 열정적인 취미 활동은 이전부터 카시오페아 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7]이런 취미 활동의 연장으로 1995년 세계 최초의 실사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 Train Simulator 1편을 자신의 회사인 음악관에서 발매한다. 음악 활동으로 축적한 컴퓨터 기술을 이용해 열차의 승무원실에서 촬영한 실사의 논스톱 동영상을 처리해 완성한 이 게임은 취미적 요소로 개인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긴 했지만, 그간에 없었던 철도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 히트시켰다는 의의가 있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에 걸쳐 무카이야에게 Train Simulator 시리즈의 제작은 솔로 활동의 기둥이 되었다. Train Simulator의 음악 제작은 스스로 하였지만, 다른 솔로 음악 활동은 크게 줄어들었다. 때마침 카시오페아 활동도 해마다 감소했기 때문에 Train Simulator 제작자로서 음악 외 분야에서 미디어 출연이 늘긴 했지만, 음악계에서의 활동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3.4. 2006년 카시오페아 휴지 이후
그러던 중 2006년 8월 1일, 노로 잇세이는 "카시오페아의 일체의 활동을 중지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치고, 이에 따라 카시오페아의 레코딩과 라이브 활동이 중지된다. 하지만 카시오페아 휴지 이후에 오히려 무카이야의 음악 활동은 반대로 활동적으로 변해 철도 사업의 음악 제작에 기용했던 뮤지션들로 무카이야 미노루와 멜로디즈(向谷実とメロディーズ)를 결성하고 철도 이벤트에서의 데모 라이브 외에도 유료로 단독 라이브도 개최하였다.한편 Train Simulator 시리즈는 타이토와 합작한 Railfan 시리즈를 발매한 후 제작이 중단되지만, 무카이야와 음악관은 그 응용으로 후지츠와 제휴하여 철도 회사가 실제로 승무원의 훈련에 사용하는 업무용 시뮬레이터의 개발을 다루게 된다. 2007년에는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철도박물관 내에 있는 철도 운전 시뮬레이터를 제작하는 등 음악관의 주요 사업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3.5. 2012년 카시오페아 탈퇴 이후
워낙 다양한 활동을 해서 그런지 결국 카시오페아 활동이 재개되는 2012년 4월 멤버들과의 합의 끝에 카시오페아를 탈퇴하고, 이후 키보디스트 자리는 오타카 키요미가 맡게 된다.2016년에는 도쿄에서 2년마다 열리는 악기 박람회인 악기 페어(楽器フェア)에서 자신의 환갑을 기념한 라이브 Minoru Mukaiya presents "EAST meets WEST"를 개최. 1982년 발표한 카시오페아의 앨범 FOUR BY FOUR에서 협연했던 리 릿나워(Lee Ritenour, 기타)와 돈 그루신(Don Grusin, 키보드)과 나단 이스트(Nathan East, 베이스)뿐만 아니라 짐보 아키라(神保彰, 드럼), 무라타 요이치(村田陽一, 트롬본), 에릭 미야시로(エリック・ミヤシロ, 트럼펫) 등 일본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일류 뮤지션들을 한자리에 맞아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이후 2018년에는 그의 연장선으로 일부 멤버를 교체한 뒤 25년만에 3번째 솔로 앨범 THE GAMES-East Meets West 2018-를 제작해 발표하고, 레코딩 멤버 그대로 라이브 또한 진행하였다.
2021년 10월에는 같은 카시오페아 출신의 사쿠라이 테츠오와 짐보 아키라와 함께 카츠시카 트리오(かつしかトリオ)를 결성하여 약 33년만에 같은 무대에서 라이브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일회성 활동은 아니었는지 2022년에도 라이브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웃 밴드인 T-SQUARE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결성되었고 이름도 비슷한 아카사카 트리오(アカサカトリオ)가 활동을 하고 있어 퓨전 음악 팬들 사이에서 두 밴드가 비교되기도 하였다.[8]
2022년 6월 4일에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일본 항공자위대 소속의 곡예비행단인 블루임펄스의 전시비행용 음악을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3년부터 사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2023년 3월에는 본인의 사무소 겸 스튜디오에서 카츠시카 트리오가 모여 신곡 제작, 라이브 투어에 대한 미팅을 했고, 4월에는 가을에 진행할 전국 라이브 투어 일정이 공표되었다.
4. 디스코그래피
- 솔로 앨범
- Welcome To The Minoru's Land (1985)
- Tickle the Ivory (1993)
- THE GAMES -East Meets West 2018- (2018)
- 철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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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横特急(
도요코 특급) (2008.5.8)
Super Bell"Z와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 京阪電車発車メロディcollection( 케이한 전기철도 출발 멜로디 collection) (2008.11.1)
- 海幸・山幸BGM集(付録・九州新幹線BGM集)( 우미사치 야마사치 BGM집(부록・ 큐슈 신칸센 BGM집)) (2009.11.27)
- 京阪電車発車メロディCOLLECTION 2013( 케이한 전기철도 출발 멜로디 COLLECTION 2013) (2013.5.11)
- 東京メトロ東西線 発車メロディCollection( 도쿄메트로 토자이선 출발 멜로디 Collection) (2015.5.13)
- 京阪電車発車メロディCOLLECTION 2016( 케이한 전기철도 출발 멜로디 COLLECTION 2016) (2016.5.14)
5. 여담
- 지금은 적당히 벗겨진 머리에 마음씨 좋고 후덕한 옆집 아저씨같은 인상을 주지만 밴드 초창기 시절에는 의외로 탁재훈이나 조현문과 용모가 비슷한 훈남이었다.
- 무카이야가 애용했던 신디사이저인 야마하 DX7은 보컬로이드 하츠네 미쿠의 원형이 된 모델이기도 하다.
- 코에이 게임 팬들에게도 유명세가 있는 편인데 왜냐하면 명작 삼국지 2와 삼국지 3의 음악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1]
직업은
나레이터. 2015년 1월 17일 결혼식을 올렸다
[2]
위 사진은 1985년 4월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린 콘서트에서의 모습으로,
노로 잇세이와
사쿠라이 테츠오가 Galactic Funk 키보드 솔로 파트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보고나서의 반응이다.
[3]
IHILANI,
LUCKY STARS 등
[4]
도큐 전철의 승무원 훈련용 철도운전시뮬레이터 등 철도 실사영상으로 제작된 시뮬레이터는 대부분 이 회사에서 만들었다.
[5]
이 때 노로 잇세이는 당시 무카이야가 신봉하고 있던 뮤지션 중 하나인
칙 코리아(리턴 투 포에버)와 같은 음악을 하고있다고 꼬셨다.
[6]
사회(일본어로 시카이)와 성인 무카이야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사회 맛집과 같은 의미.
[7]
어느정도냐면 사용하는 키보드에 철도차량 번호판을 부착할 정도였다.
[8]
이쪽은 노리타케 히로유키(드럼), 스토 미츠루(베이스), 안도 마사히로(기타)의 조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