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후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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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건륭제의 후궁 악귀인 | 鄂貴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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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colbgcolor=#fff,#1f2023>1733년 3월 24일 ~ 1808년 4월 25일(76세) | ||
시호 | 악귀인(鄂貴人) | ||
지위 | 어(漁)상재 ⇒ 악(鄂)귀인 ⇒ 악태귀인(太貴人) | ||
성 | 서림각라씨 | ||
가계 | 부친 순무 악낙순(鄂樂舜) | ||
부군 | 건륭제 | ||
자녀 | 슬하 자녀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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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후궁이다.2. 생애
옹정 11년 (1733년) 3월 24일에 태어났다.악귀인의 숙조부 악이태는 옹정제의 총신이다. 악귀인 일가는 악이태의 직계 후손은 아니지만, 황제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옹정 3년 악귀인의 고모가 이현친왕 윤상의 4남 홍교에게 주어졌다가, 건륭 10년에 악이태가 죽자, 옹정제가 남긴 인사에서 빨리 벗어나, 측근 대신들로 갈았고, 그 후 건륭 20년 호중조 사건으로 숙성 악이태 일족을 징치하였는데, 악귀인의 아버지는 죄를 받지 않았지만 소금상을 갈취하여 사사(賜死)되었으며, 악귀인은 악이태 사망 후, 가문이 청산되기 전에 입궁하였다. 건륭 12년 8월 10일, 군기대신 눌친 등이 악민 이녀를 위해 상진 한자 곡절 사은으로 선발된 것은 저술에 의하여 신명을 보낸 일로, 절강해 수비 비도 악민에게 편지를 보냈다. 건륭 13년 1월에 어(漁)상재로 입궁하였는데, 정확한 입궁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어상재는 궁중기록물에서 상재의 제일 마지막 순서로 정해졌다.
건륭 60년 (1795년) 9월 3일, 건륭제가 15황자 옹염을 황태자로 선포하고, 그해 12월, 40여년간 상재의 지위에 있던 서림각라씨가 악귀인으로 진봉했다. 가경 원년, 궁중에서 서림각라씨를 악태귀인이라 불렀다. 서림각라씨는 가경 원년까지 55년이 넘도록, 건륭제를 섬겼고, 그 경력은 잠저 출신인 완귀비 진씨 다음으로 길다. 그래서 《餵馬檔》에는 악귀인이 가경 12년 (1807년), 완귀비 진씨가 죽자 청동릉으로 이송할 진씨를 정안장에 가서 배웅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경 13년 4월 25일, 악귀인이 훙거하면서 광록사에서 처리한 백일 내 탁상 장 등의 비용만 은 1052냥이 들었다. 악귀인은 가경제가 즉위하기 전, 건륭제의 후궁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사망한 사람으로, 건륭제가 가경 3년에 건륭제의 후궁으로 보낸 진귀인 부찰씨와 수귀인을 제외하면 마지막 사람이다. 가경 14년 3월 18일, 그녀는 수귀인과 함께 청동릉 유릉비원침에 묻혔다. 악귀인의 봉분은 다섯번째 줄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세어서 두번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