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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7a0><colcolor=#ffffff> 출생 | 1916년 4월 8일 |
전라남도
나주군 나주읍 금성동 (現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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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1년 4월 29일 (향년 85세)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본관 | 평산 신씨 32세손 |
부모 |
아버지
신익희 어머니 이승희(생모)·김순이(계모) |
남편 | 김재호 |
자녀 |
장남 김낙양[2] 차남 김유생[3] |
형제자매 | 남동생 신하균 |
학력 |
난징여자고등학교 (졸업) 베이징 즈청대학 (중퇴) |
서훈 |
건국포장 수훈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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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16년 4월 8일 전라남도 나주군 나주읍 금성동에서 신익희의 장녀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 후 부친을 따라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부친을 보필했다. 1937년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39년부터 1941년에는 임시정부에 의하여 산동성 제2전구 사령부에 공작원으로 파견되어 지하공작 첩보활동을 하였다.1943년 10월, 그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전라도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8.15 광복 때까지 활동했으며 임시의정원 역사상 7번째 여성 의원이자 마지막 여성의원이었다.
광복 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한성화교학교, 숙명여고 등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다. 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001년 4월 29일 서울에서 사망했고,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3. 가족관계
남편 김재호[4]와 사이에 2남을 두었다. 장남 김낙양은 1937년 중국 낙양에서 태어나 이름을 낙양이라 지었고, 1940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차남 김유생은 1942년 중경에서 태어났는데 중경의 옛 이름인 유주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에서 유생으로 지었다.차남 김유생은 경기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했고, 1963년 봉봉사중창단[5]으로 가요계에 데뷔하였다. 지웅이라는 필명으로 꽃집 아가씨[6]를 작사하였다. 한국 연예기자 1호인 정홍택을 따라 한국일보에 입사해 일간스포츠에서 연예부 기자로 활동하였고, 1970년대엔 라디오, TV 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하였다 #. 한국일보에서 야당 국회의원 송원영[7]의 딸인 송리라와 결혼하고 문공부 해외공보관으로 발탁되어 핀란드, 이란 대사관 공보관으로 근무하다가 1981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