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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야구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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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추어 시절2. 프로 선수 경력
2.1. 2004 시즌2.2. 연이은 시련, 그리고 집념의 복귀
2.2.1. 2005 시즌2.2.2. 2006 ~ 2007 시즌
2.3. 2010 시즌2.4. 2011 시즌2.5. 2012 시즌2.6. 2013 시즌2.7. 2014 시즌2.8. 2015 시즌2.9. 2016 시즌2.10. 2017 시즌2.11. 2018 시즌2.12. 2019 시즌2.13. 2020 시즌2.14. 은퇴
3. 연도별 주요 성적

1. 아마추어 시절

10살 때 야구를 처음 시작했다. 서원초 - 세광중 - 세광고를 거쳐가며 프로 데뷔를 꿈꿨다.

중 3이던 2000년 문화관광부 장관기 전국야구대회 우승을 이끌며 세광고에 입학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등번호인 31번을 고 1부터 계속 달았으며 고 1부터 많은 이닝을 책임졌다. 고 3이던 2003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에 진출했으나 김재호의 중앙고등학교 야구부에 밀려 좌절했고,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는 박석민의 대구고등학교 야구부에 무릎을 꿇었다.[1]

유원규, 이승규, 소병선, 송기범(이상 내야수), 김오중(포수), 유영웅, 유지훈(이상 외야수) 등 타선의 지원을 잘 받았으나 송창식의 뒤를 받쳐줄 투수진이 없어 매번 홀로 던져야했다.[2]

2003년 청주기공과의 충북지역 예선에서 고 1이던 정범모에게 홈런을 맞기도 했다.

2. 프로 선수 경력

2.1. 200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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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했던 신인 시절.

정치적인 문제로 1차 지명은 결국 북일고의 좌완 투수 김창훈에게 넘겨줘버렸지만 한화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 송창식은 한화의 미래라고 평가를 받던 유망주였고, 팬들도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실제로도 데뷔 시즌에 평균자책점이 높긴 했지만, 신인임에도 완봉승을 거두는 등 인상적인 피칭으로 8승 7패를 거둬 현대 유니콘스 오재영, 삼성 라이온즈 권오준과 신인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둔 후 후반기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1승만 거둔채 일찍 시즌아웃되었다. 그래서 신인왕은 우승팀 버프까지 있던 오재영이 차지한다.

그러나...

2.2. 연이은 시련, 그리고 집념의 복귀

2.2.1. 2005 시즌

프로에 입단하자마자 막장이 된 한화 투수진 상황 때문에 당시 감독이었던 유승안은 고1 때 팔꿈치에 부상을 입어 수술 전력이 있는데다, 고 3 때 혹사를 당해서 반드시 관리가 필요했던 송창식을 전천후로 굴리기 시작했다. 송창식은 전천후로 등판하며 한화의 투수진을 메우면서 제 몫을 해냈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프로 데뷔 후 1년. 단 1년만에 송창식은 혹사로 인해 인대가 망가졌고, 결국 이듬해 5월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된다. 그래서 2005년 내내 1군에 등판하지 못 했다.

그리고 이것은 시련의 시작에 불과했다.

2.2.2. 2006 ~ 2007 시즌

유승안에 이어 한화의 감독으로 취임한 김인식은 아직 재활의 터널에서 나오지 못한 송창식을 1군에 올려서 쓰기 시작했고,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라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던 송창식에게 이 일은 치명적이었다.[3]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송창식은 버거씨병(손/발가락 혈행장애)에 걸리면서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에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4] 결국 버거씨병 판정을 받은 후 2008년 4월에 치료를 위하여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2.3. 2010 시즌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송창식은 자신의 모교인 세광고에서 투수코치로 일하면서 재활을 병행하고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때 손을 거쳐 간 모교 야구부의 선수들 중 2011년 마지막 지명자로 한화에 입단하면서 다시 만난 선수가 박혁이다. 그리고 2년 간의 재활 끝에, 마침내 다시 한 번 뛸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송창식은 다시 한 번 한화에 입단 테스트를 받아 선수로 복귀한다. 2010년 박정진을 제외하면 전원 막장인 상태였던 중간계투진에 합류, 8월 19일 LG전에서 통증으로 자진 강판 후 2군에 다시 내려갈 때까지 12경기 17⅔이닝 방어율 4.08을 찍었다.

그에게 거는 기대치도 컸고, 그가 프로계에서 떠난 이유도 혹사로 인한 것이었기에 한화 팬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응원을 보내게 되는 투수. 한화 팬들은 다시 한 번 마운드에 올라서는 그에게 응원을 보냈다.

2.4. 2011 시즌

시즌 시작 전에는 양훈, 안승민과 함께 2011년 시즌 한화 이글스 선발진의 새 얼굴이 될 전망이었다. 일단 규정이닝 채운 경험이 한 번은 있긴 한데 이는 7년 전 이야기고, 또한 예의 버거씨병이 있기에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2011 시즌을 앞두고 전지훈련과 연습경기, 시범 경기에서 호투하여 마침내 한화의 선발진에 합류하는 기염을 토했다. 말 그대로 인간 승리!

4월 6일, KIA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1⅓이닝 동안 KIA 타선에게 신나게 털리며 5실점하고 조기 강판당하며 호된 선발 신고식을 치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팀은 10:9로 연장전까지 가서 역전승. 결국 승리는 불펜인 정재원에게 갔다. 그리고 4월 12일 SK전에서 4⅓이닝 동안 3피홈런 4실점으로 결국 첫 패전, 4월 17일에는 중간계투로 나와 2⅔이닝동안 1실점하여 아직은 갈망하던 첫 승을 올리진 못하고 있다. 이후 5선발 경쟁에서 신인 장민제에 밀렸지만 중간계투로는 제 활약을 하는 중.

4월 29일 삼성전에 6회 말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삼진 3개를 잡고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낸 뒤 7회초 한화의 다이너마이트 타선 폭발로 2004년 8월 4일 이후 2,459일 만에 승리를 얻어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별 활약을 못하고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고, 5월 10일 LG전에서 7회에 갑자기 위기에 몰린 안승민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으나 몸에 맞는 볼로 주자 만루를 채우고는 박경수에게 만루홈런을 맞아 안승민의 승리를 날리는 것은 물론 원치 않는 분식회계까지 해버렸다. 안 그래도 시즌 초반과는 달리 송창식에 대한 시선도 싸늘해진 상황에서 더더욱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며 더더욱 까이는 중.

6월 들어서 1군에 콜업, 시즌 초와는 달리 예전의 구속과 구위를 회복했으나 종종 제구가 높게 되어 맞는 모습이 보임으로써 아직은 승리조에 두기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하지만 내년이 되면 한화의 우완 불펜은 송창식만 남아 있기 때문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5]

그러나 8월 21일 두산전에 선발로 나와 5⅔이닝 동안 107개의 공을 던져 6피안타 2볼넷 1사구 4K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하여 승리를 가져갔다! 직구 구속도 최고 145km/h까지 나왔으며, 무엇보다 안정된 제구력과 침착한 위기 관리 능력을 보여주었다. 무려 2,573일 만의 선발승! 2004년 8월 4일 롯데전 이후 7년 만에 선발승을 거둔 것이다. 버거씨병에 걸리면 손가락에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에 투수로서 심각한 위기인 상황이었으나 결국 승리 쟁취! 오늘의 선수에 오르며 송창식은 "위기의 순간에도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아간다면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라고 말하며 인터뷰를 보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10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바티스타가 불을 지르고 6:3으로 역전당한 8회 말에서 등판해 고의여부는 알수 없으나 일관되게 타자 몸쪽으로 공이 날아가 황성용의 몸과 정훈의 팔꿈치를 맞히는 등 2연속 사구를 기록하고, 이를 빈볼로 판단한 주심이 퇴장 명령을 내리면서 시즌 1호 퇴장 선수가 되었다. 이 날 장성우가 2루 주루중에 헤드샷까지 당하면서 상당히 분위기가 심상찮았다.[6]

2.5. 2012 시즌

2012 시즌 6월 6일 롯데와의 경기가 방송사 중계 일정관계로 낮경기가 되면서 2군에 있다가 전격적으로 콜업되어 류현진 대신 깜짝 선발 등판했는데, 우려를 딛고 5이닝 1실점 1자책으로 호투, 2011년 8월 21일 잠실 두산전 이후 무려 290일 만에 승리투수가 되었다. 한대화 감독에 따르면 퓨쳐스리그에서 그날 선발 등판 예정이었으며, 낮 경기에 신체리듬이 익숙하기에 내보냈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투수가 3:2의 신승으로 귀중한 3연승을 이끌어 가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승리.

6월 20일 LG전에 선발등판하여 우려와 달리 5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여 시즌 2승째를 챙겼다.

그 후에 주로 불펜으로 활약하며 터프한 상황에서 잘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8월 15일 삼성전에 바티스타가 부상으로 내려간 2회에 올라와 갑자기 등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5.2이닝 동안 1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봉쇄하며 승리 투수가 되었다.

이날까지 7, 8월 성적은 15게임에 등판해 25이닝 동안 단 2점만을 내준 특급 불펜의 성적으로 먹튀 송신영에게 기대했던 역할 이상을 해주고 있다.

8월 31일 KIA전에서 9회말 박정진의 뒤를 이어 등판, 이닝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이날 선발이었던 류현진의 승리를 지켜냈다. 3:0 승리.

9월 9일 기준, 59이닝 동안 3.05의 평균 자책점에 단 37피안타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볼넷도 22개로 많은 편은 아니다. 이렇게 해서 WHIP가 1.00인데, 어느정도인가 하면 박희수가 0.98을 기록하고 있으며 팀의 셋업맨 역할을 하는 안지만, 홍상삼, 이동현 등이 각각 1.04, 1.01, 1.02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2011년에 비해서 놀라울 정도의 성장을 거두었다.

총 성적 4승 3패 1세이브 12홀드 평균 자책점 2.91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하며 13년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2.6.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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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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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즌보다는 부진해서 많이 휴식했다. 그가 없어진 한화 불펜은 그나마 안정진 트리오가 있어서 어떻게든 버티긴 했다.

2.8.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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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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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김성근은 송창식이 12실점을 하는 동안 동안 투수를 바꾸지 않았고, 혼자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보였다.[7]

8월 29일, 부상으로 인해 일본으로 가게 되어 사실상 시즌 아웃 확정. 현재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조만간 복귀할것이라는 설이 커지고 있었지만 결국 포스트 시즌이 사실상 좌절되면서 쓰지 않는다고 한다. #

결국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

2.10. 2017 시즌

연봉이 크게 올라 2.2억을 받게 되었다.

놀랍게도 수술 후 6개월도 되지 않아 재활조에 합류해 훈련을 진행했고, 시범경기부터 등판했다.

3월 31일 두산과의 개막전에 0대 2로 뒤져있는 7회 초 선발 비야누에바 다음으로 등판해 공 하나로 양의지를 유격수 땅볼로 잡고 내려갔다.

4월 1일 두산전에 우천 상황에서 공을 던진 탓인지 흔들리던 오간도의 뒤를 이어 5회 2사 상황에서 등판해 2이닝 2볼넷 2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4일 NC전에 6대 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9회 등판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7일 NC전에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해 역시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4월 8일 KIA전에 동점 상황에서 송은범의 뒤를 이어 7회 등판해 1이닝은 무사히 막았으나 다음 회에 연속으로 주자를 출루시킨 뒤 박정진과 교체되었다. 이후 박정진의 희생번트-볼넷으로 1사 만루가 된 뒤 올라온 윤규진이 희생 플라이를 허용해 첫 실점을 기록했다.

5월 2일 SK전 4-5로 1점 뒤진 8회 말 2사 마운드에 올라 이재원에게 2루타를 허용했으나 다음 타자 김성현을 땅볼처리하며 이닝을 마쳤다. 9회 초 한화는 2득점에 성공했고 교체된 투수 정우람이 리드를 지켜내며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됐다. 0.1이닝 3구 1피안타.

5월 3일 문학 SK전에 등판하며 19경기로 리그 출전 횟수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이다. 살려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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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의 혹사를 나타내는 자료[8]

5월 6일 kt전 3-1로 두점 뒤진 6회 초 구원등판,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고 7회 말 팀이 4득점하면서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됐다.

5월 14일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윤규진의 뒤를 이어 등판해 믹서기의 혹사로 인해 떨어진 구위로 연거푸 큼지막한 타구를 허용하여 1이닝 2실점의 형편없는 투구를 보여줬다. 시즌 ERA는 5.17을 기록하였다. 본인은 혹사가 아니라고 인터뷰에서 계속 강조하였지만, 누가 보더라도 작년보다 확연히 약해진 구위가 혹사를 증명하고있다

5월 2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경기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여전히 거지같은 구위를 뽐내며 난타를 당했고, 결국 조기에 강판되고 만다.이날 기록은 0.1이닝 2피안타 2실점 1홀드(...)로 그야말로 불을 질러놓고 홀드를 챙겨 간 것을 본인도 썩 만족스럽지 못해 하는 것 같다. 시즌 ERA는 당연히 5.85로 치솠고 말았다.팀은 김태균의 무사 만루 내야 플레이에 힘입어 9회 말의 결정적인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9-8로 패배하였다.

결국 이렇게 계속 김성근의 혹사 피폭자로써 구위하락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21일 악덕 감독의 혹사로 대형사고를 쳐버리고 만다. 삼성과의 3연전 일요일 홈경기에서 박정진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다린 러프에게 투런포를 맞았고, 곧이어 백투백으로 이승엽 선수에게 통산 450호 솔로홈런을 허용해버리고 말았다. 이날 기록은 0.2이닝 2피안타(2 피홈런) 2실점으로 시즌 ERA는 6.27으로 점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결국 패전기록은 똑같이 혹사에 피폭당한 박정진이 가져갔지만, 이날 팽팽했던 경기를 터뜨리며 지배해버렸고, 삼성 라이온즈에게 시즌 첫 스윕승을 주고 말았다. 그후 경질당했으니 어쩌면 열사님일지도

5월 27일 NC전 안영명-장민재에 뒤를 이어 3번째로 나와 2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얻었다.

5월 30일 두산전 7회 1사 만루 위기에 마운드에 올라 에반스를 상대했다. 커브 2개로 1볼-1스트라이크를 만들었고, 3구 째 직구로 유격수 땅볼로 병살을 이끌어내며 대량실점을 막았다. 영상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김재환에게 2루타를 맞은뒤 오재일과 박건우의 진루 땅볼을 내줬고 권혁과 교체됐다. 이날의 기록은 1.1이닝 1피안타 1실점.

6월 4일 기준 승계주자 실점률 0.130의 사기적인 스탯을 보유하고 있다. 2위는 두산 김승회의 0.250.

그러나 남의 승계주자 실점은 적은 편이나, 정작 본인은 안타 맞아 주자를 내보내고 또 얻어맞으며 실점하는 경기가 많아서 결국 ERA가 높게 나오는 것이다. 남 좋은 일만 하고 있다

그렇게 본인의 맛탱이가 간 구위로 6월 4일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 SK 홈런 타자들에게 백투백 2피홈런을 헌납하며 다 이기고 있던 경기를 터뜨려버렸고 블론 세이브와 패전을 동시에 기록하였다. 이날 기록은 0.1이닝 2피안타(2피홈런) 1볼넷 2실점으로 시즌 ERA는 5.95를 기록하였다.아무래도 본인만 안 퍼졌다고 열심히 주장하고 있지만 완전히 수술여파로 퍼진 듯. 사실 3일 휴식 후 선발, 3연투 후 하루 쉬고 선발, 3.1이닝 10실점 등 혹사란 혹사는 다 당한 상태라 권혁, 심수창처럼 언제든 마운드에서 드러누워도 이상할 게 없다. 성큰 보고 있나?

그래도 6월 시점에선 옛 살려조 멤버들중에서 가장 꿋꿋하게 잘 던져주고 있다. 권혁이 구속이 4km가량 하락해 불을 지르고 있는 것과 달리 필승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중. 이상군 대행은 최대한 연투를 피하고, 연투를 하게되면 투구수 조절을 해주고, 3연투 없이 2연투만 시키는 선에서 관리를 해주고 있다. 관리를 받자 김성근 시절의 처참한 피칭 내용이 개선되는게 확연히 보인다.

위의 평가대로 6월 13일 선발 이태양이 4이닝도 못채우고 강판되었음에도 올라오지 않다가 추격조 이동걸-스윙맨 장민재가 꾸역꾸역 이닝을 먹어주고 팀이 역전하자 1점차 스코어를 지키기 위해 7회 무사에 등판해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홀드 하나도 얻었다.

6월 14일 SK 와이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장작을 쌓고 내려간 윤규진을 구원하러 기세좋게 등판하였지만 위의 설레발이 정말 부끄러워 질 정도로 털리면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였고 승리투수요건이던 윤규진에게 패전을 선사하였다.이날 기록은 0.2이닝 1실점 시즌 ERA는 5.44를 기록하였다.역시 인간백정 김성근때문에 퍼진것이 확연하다. 그리고 노리타들이 자위하는 승계주자 실점 기록 최소 1위라는 사실이 무색하게 이날은 본인이 받은 승계주자를 전원 홈으로 보내주었다.[9]

16일 kt전에서 흔들리는 선발 배영수의 뒤를 이어 5회 무사에 구원등판했으나 4안타를 허용하며 승계주자를 모조리 불러들인 것은 물론 자신도 실점하여 kt의 17시즌 한 이닝 최다 점수 기록을 8점으로 갱신시켜주었다. 배영수의 기록은 4이닝 7실점, 송창식의 기록은 1이닝 3실점. 그런데 6회초 한화가 다시 7점을 뽑아 경기가 뒤집어졌고, 난타전 끝에 6회 로사리오의 쓰리런이 결승타가 되어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3승. 평균자책점 5.91. ???: 나 때도 이렇게 점수낼 수 있는 거지?

20일 넥센전에서 7회초 박정진이 만든 1사 1,2루에서 등판했으나 승계주자 실점을 막은 것은 물론 1.2이닝동안 3K 1피안타로 넥센 타선을 봉쇄했고 7회말 로사리오의 결승타, 정우람의 1이닝 무실점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21일 넥센전에서 9회초 등판했으나 임병욱의 볼넷 후 도루에 이은 박동원에게 안타를 맞았고 장민석의 투포환 송구로 점수를 내줘 1이닝 1실점으로 패전을 먹었다. 정우람, 이동걸 등이 있었음에도 굳이 팔꿈치 피수술자를 연투를 시킨 이상군의 패착.

6월말부터 이동걸의 폼이 많이 올라오면서 이동걸, 권혁과 짐을 나눠지고 있다. 여담으로 7월 1일 시점에서 시즌 98이닝 페이스인데 이게 이상군이 혹사를 시켜서가 아니고, 김성근 나가기 직전 110이닝 페이스였던걸 이상군이 한달동안 적절한 이닝분배로 줄이고 줄여서 98이닝 페이스가 된 것.

그리고 7월 동안 그동안의 보답인듯 2군에 내려가 휴식을 취했고, 7월 28일 박정진, 차일목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그러나 이상군마저 그를 갈아버리기 시작하며 어느새 평균자책점이 6점 중반대로 폭등했다.

9월 8일 정경운의 강경학만도 못한 수비 이후 만루홈런을 맞으며 화려하게 불타올랐다. 이후 이날 경기를 마지막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후술할 인터뷰를 보면 이상군 감독대행의 지시로 마무리캠프 전까지 공을 만지지 않고 쉬기만 했다는 듯. 그래도 최후의 양심은 있었다

시즌 후 마무리캠프를 소화 중이긴 하지만 한용덕 휘하 코칭스태프 모두 혹사 경력을 익히 알고 있어서 무리하지 않고 가볍게 폼만 유지 시키는 형식으로 훈련하고 있다. #

2.11. 2018 시즌

2천만원 오른 연 2억 4천만에 계약을 체결했다. 7kg 정도 감량했다고 한다.

2월 26일 연습경기에서 3점 홈런을 맞았다. 일부 야구팬들은 아예 1년 정도 안식년을 주거나 9월 확장 엔트리에나 1군에서 던지게 하라고 할 정도로 송창식을 걱정해주고 있다.

3월 7일 롯데와의 연습경기에서 8회 등판해 안타-폭투-안타로 역시나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최진행, 김민하의 맹활약으로 5대4로 팀은 간신히 이겼다. 3년간 던진 거 보면 올해는 그냥 서산가서 1년 통으로 드러누워도 아무도 욕 안할텐데 올해가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3월 18일 NC와의 연습경기에서 마무리로 등판, 2아웃을 잡은 뒤에 2피안타를 얻어 맞으면서 불안함을 내보였으나, 다음 타자를 뜬공으로 잡아내면서 1이닝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치면서 세이브를 얻어냈다. 속구는 나름 괜찮아 보였지만, 변화구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찌 되었든 개막전 엔트리에는 합류할 듯 하다. 투수가 정말 없으니까...살려조 중 혼자만 3월에 1군에 있게 되었다

3월 25일 넥센전 8회에 올라와 박동원을 삼진으로 잡고 한타자만 상대한채 내려갔다.

3월 28일 NC전에서 7회 1사에서 서균에 이어 등판해 2아웃을 잡으며 이닝을 끝냈고 약속의 8회 팀 타선이 4득점을 뽑아준 뒤 이후 불펜진이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아 첫 승을 거두었다.

4월 1일 뜬금없이 1군에서 말소됐다. 감독에 의하면 아직 타자들을 압도할만한 구위가 아니니 좀 더 연습하고 오라고 했다고.

4월 13일, 2군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했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계속 선발등판을 하고 있으나 직구 평속이 135km에 머무는지라 전반기 복귀는 요원해 보인다.

강산 기자발에 따르면 구위는 완전히 회복세에 올라왔다고 한다. 밸런스 조정만 끝나면 과부하된 불펜투수와 교체하는 식으로 1군 콜업을 시킬 것이라고 한다. 일부 팬들은 윤규진, 정재원(...) 등 불안한 베테랑말고 한때 선발 투수로도 그럭저럭 던져준 송창식을 5선발로 써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현장 스태프들은 1군에서는 필승조로만 기용하려는 듯.

6월 17일 경기 몸살 감기에 걸린 뒤 밸런스가 무너져 부진의 늪에 빠져있던 안영명을 대신해 드디어 1군에 등록됐다. 그리고 6점차로 벌어진 9회초 등판해 솔로 홈런하나를 허용하고 1이닝 1실점으로 마무리했다. 구위가 확실히 전만 못하다.

6월 26일 7점차로 뒤진 삼성전에 6회초 등판했으나 1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고 평균자책점 역시 9점대까지 치솟았다. 일부 비뚤어진 야구팬을 빼면 그를 욕할 한화 팬이 몇이나 있겠느냐만은...

7월 3일 김민우가 4.1이닝 7자책으로 무너지자 구원등판해 2.2이닝 1실점을 기록해 평균자책점을 7.04까지 낮추었다. 하지만 공이 맞으면 쭉쭉 뻗어나갈 정도로 구위가 좋지 못한 편. 한화 불펜이 좌완 김범수 정도를 빼면 전원이 필승조급인지라 가비지 이닝을 먹이는 용으로 어떻게든 써먹으려는 듯.

아쉽게도 7월 4일 경기 직전에 안영명과 자리를 맞바꿔 말소되었다.

9월 8일 오랜만에 1군에 콜업됐다.

이후 3G 등판, 4이닝 1실점을 기록한 뒤 19일 1군에서 말소됐다.

시즌 최종 1군 성적은 12경기 12.2이닝 1승 0패 평균자책점 4.97

시즌 중반 구속이 살아나 140대 중반대의 속구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2018시즌 한화이글스는 강력한 4을 보유하고 있었고 남은 패전조 역할은 젊은 투수들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이 여파로 권혁과 함께 비교적 적은 기회를 부여 받았다. [10]

2.12. 2019 시즌

2군에서 시즌을 출발했다.

좋은 투구 내용으로 5월에 콜업되었으나 5월 4일 kt전에 ⅓이닝 3피안타 2실점하고 다시 말소되었다.

2군에서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평균자책점 2.39를 기록했지만 2019시즌 한화 이글스는 리빌딩과 육성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송창식의 2019시즌 1군 등판은 5월 4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2.13. 2020 시즌

새로운 얼굴들이 계속 올라온 가운데에도 뎁스가 썩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한화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들지 못했다. 1군에서 시작하긴 어려울 듯.

개막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고 불펜진이 불안한 와중에도 아무 소식이 없다. 이대로라면 시즌 도중 아니면 말미에 지도자로의 전업을 준비할 수도. 가끔 2군 경기 중계시 보이며 관련기사가 올라오기도 한다. 관련기사 팬들 역시 소식을 궁금해 하면서도 그의 소식이 나온다는 게 사실상 은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체념하고 있다.

2.14. 은퇴

그리고 7월 15일 결국 은퇴한다는 기사가 떴고 # 임의탈퇴 공시도 바로 이루어졌다. 관중 입장이 되는 때에 은퇴식을 연다고 하며, 팬들은 그동안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며 응원하고 있다. 은퇴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 관련 입장도 밝혔다. 김성근 감독 시절이 야구하면서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던 시기였다고 회고하며 # 김성근 감독이 원망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선수로 쉴 때보다 뛸 수 있었던 게 행복했다. 정말 힘들 때는 조금 쉬고 싶다고 김성근 감독에게 말을 하고 며칠 쉬기도 했다"고 전하면서[11]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은퇴 소감에 대해서는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하였고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당분간 육아에 전념할 것이며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쉬고 싶다 밝혔다. #

한편 그간의 공로를 생각해 송창식의 상징과도 같았던 등번호인 31번을 KBO 영구결번으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극소수 있었으나, 말 그대로 극소수였을 뿐, 영구결번이 사실상 명예의 전당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KBO에서 송창식의 영구결번은 야구 좀 보는 사람이라면 코웃음을 칠 이야기였고[12][13] 31번은 후배 우완 투수인 오동욱이 물려받았다.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한화 26 140⅓ 8 7 0 0 0.533 5.13 143 15 71 80 83 80 1.468
2005 1군 기록 없음
2006 21 17 0 0 0 1 0.000 5.29 13 2 12 11 10 10 1.412
2007 2 4 0 1 0 0 0.000 13.50 9 0 2 3 6 6 2.750
2010 12 17⅔ 0 0 0 0 0.000 4.08 17 1 5 11 8 8 1.245
2011 34 61 4 3 0 0 0.571 6.34 75 11 30 52 43 43 1.607
2012 47 74⅓ 4 3 1 12 0.571 2.91 45 7 31 66 24 24 0.955
2013 57 71 4 6 20 0 0.400 3.42 63 3 40 67 27 27 1.394
2014 26 29 1 3 1 3 0.250 7.45 35 9 17 21 24 24 1.690
2015 64 109 8 7 0 11 0.533 6.44 115 29 71 87 82 78 1.64
2016 66 97⅔ 8 5 0 8 0.615 4.98 97 10 45 77 61 54 1.45
2017 63 73⅓ 5 6 0 15 0.455 6.63 77 13 38 64 56 54 1.50
2018 12 12⅔ 1 0 0 1 1.000 4.97 15 2 5 8 7 7 1.50
2019 1 0 0 0 0 0.000 54.00 3 0 0 1 2 2 9.00
2020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3시즌)
431 707⅓ 43 41 22 51 0.512 5.31 707 102 377 548 433 417 1.46


[1] 이 때 김재호는 두산 베어스의 1차 지명을 받았고 박석민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는다. [2] 송창식을 제외한 나머지는 프로에 진출하지도 못 했다. [3] 소화 이닝이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재활 중인 선수를 함부로 당겨쓴 것이니 누가 뭐래도 혹사 맞다. [4] 송창식 선수가 스톡킹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2008년 캠프를 다녀오고 2군에서 삼성 2군과 경기를 치렀는데, 3이닝 즈음을 지나면서 손이 어는 느낌을 받았고, 바로 병원을 여러 곳 찾은 끝에 버거씨병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5] 그래서 김광수를 데려온 것이지만... [6] 다만 공을 던진 백승룡의 표정으로 봐선 장성우를 맞힌 것에 대한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 [7]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8] 5월 6일 엠스플 중계화면 中 [9] 사실 송창식은 작년만 해도 벌투 경기 하나 때문에 ERA가 확 치솟은 편이었지만, 그후로는 매우 잘 던졌다.그러나 김성근이 계속 혹사시켜서 수술을 하게 되자 17시즌은 이렇게 고전하게 된 것. 게다가 2017년은 지난 해처럼 한경기에 10실점 이렇게 기록한적이 없이 5점대 중반 ERA를 기록하고 있다는건 그냥 평이하게 시즌 내내 털리고 (...) 있다는 증거이다. [10] 이후 권혁은 강력한 불만을 표출하며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11] 혹사와는 별개로 김성근 감독은 투수는 확실히 신경 써서 챙겨줬었고 덕분에 타자조에서 감독이 투수조만 편애한다는 불만이 돌았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김태균이 밝힌 바로는 타자들이 아프다고 하면 재활도 잘 시켜주고, 안부도 자주 물었다고 하니 제대로 된 진실은 불명. [12] 일단 통산 등판 경기수가 500경기에도 미치지 못 하는데다가 승수나 홀드, 세이브 모두 부족하다. 그가 보여준 선수로서의 모습이 팬들에게 인정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나 영구결번을 시킬 성적은 아니다. 그러나 경쟁에서 밀려 투신자살한 김영신도 OB-두산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케이스도 존재하는데 송창식도 꼭 불가능할건 아니다. [13] 물론, 이도 30년이 넘은 사건이고, OB-두산 구단 측에서도 따로 깃발을 건다는 등의 영결 의미는 거의 없어서 요즘 사람들이 박철순 이외의 영결이 또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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