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10:46:07

코믹 챔프

소년챔프에서 넘어옴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color=#fff> 순정지 파티 · 윙크
소년, 청년지 아이큐 점프 · 코믹 챔프
기타 개똥이네 놀이터 · 고래가 그랬어 · 어린이과학동아 · 어린이수학동아
폐간/휴간
순정지 나나 · 나인 · 댕기 · 르네상스 · 모던타임즈 · 민트 · 밍크 · 슈가 · 오후 · 이슈 · 쥬티 · 터치 · 해피 · 화이트
소년, 청년지 기가스 · 부킹 · 비트 · 수퍼 챔프 · 주니어 챔프 · 영 점프 · 영 챔프 · 찬스 · 찬스 플러스 · GM 코믹스 · 코믹 팬티 · 팡팡 · 모션 · 넥스트
성인지 매주만화 · 빅 점프 · 주간만화 · 만화광장 · 투엔티세븐 · 미스터블루
기타 내친구들 · 만화왕국 · 보물섬(1982년 잡지) · 보물섬(2012년 잡지) · 카툰컵 · 툰도시 }}}}}}}}}


파일:external/www.dwci.co.kr/monthly_804_attach.jpg

1. 개요2. 상세3. 기타4. 연재중인 작품5. 연재 종료 작품
5.1. 국내 만화5.2. 일본 만화

1. 개요

홈페이지
블로그
Comic Champ

대원씨아이에서 발행하는 격주간 만화잡지.

2. 상세

1991년 12월 5일 창간한 주간 만화잡지. 이 때 이름은 소년 챔프였다. 많은 독자들, 특히 올드팬들은 소년 챔프로 많이 기억한다. 현재는 이름을 코믹 챔프로 바꾸고 격주간화되었다. 사실 말이 주간 잡지였지 창간 초기엔 격주간이었다가 본격적으로 라이벌인 아이큐 점프와 경쟁하면서 1992년부터 주간으로 전환했다가 제호 변경과 함께 다시 격주간으로 회귀한 셈.

서울문화사에서 발행하는 아이큐 점프와 더불어 1990년대 만화잡지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여러모로 소년 점프 포지션이었던 아이큐 점프의 라이벌격이자 일본으로 치면 소년 선데이, 혹은 소년 매거진 급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학산문화사 찬스가 소년 매거진을 벤치마킹했던 걸 보면 선데이 격 위치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일본 소년 점프의 양대 산맥인 원피스 나루토를 챔프에서 연재하는 등 일본의 특정 잡지와 성향이 매치되지는 않는다. 아이큐 점프가 드래곤볼을 수입해서 재미를 보고 있을 때, 챔프는 슬램덩크를 수입해서 상당히 재미를 봤다.

한편, 아이큐 점프가 1992년 8월 자매지로 <월간 코믹 점프>(다음 해 3월 '월간 아이큐 점프'로 제호명 변경-1995년 3월 폐간)를 창간하자 이에 질세라 챔프는 자매지로 <월간 챔프>를 창간했는데, 95년 9월까지 발행되었다.[1] 이 잡지의 폐간 이후 한동안 비순정 월간만화잡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가 1998년 6월 주니어 챔프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2002년 11+11월 합본호를 끝으로 폐간되었고, 그 이후 1995년 1월 창간된 팡팡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이 잡지도 2006년 10월 폐간되어 현재 대원의 비순정 월간만화잡지는 명맥이 끊어진 상태다.

2013년 9월 1일, 영 챔프가 코믹 챔프 쪽으로 통합되었다. 출판본은 코믹 챔프라는 이름으로 계속 발매되며, 디지털본은 챔프D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발매된다.

2021년 12월 1일, 아이큐 점프에 이어서 한국 만화잡지 중 두 번째로 창간 30주년을 맞이했다.

3. 기타

현재 격주간으로 발매중인 코믹 챔프는 300페이지 이상의 엄청난 두께와 큰 판형에도 불구하고 3,000원[2]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게다가 광고도 거의 없다.

수익성으로만 보면 늦어도 2010년대 초반에 폐간되었어야 될 잡지가 계속 발행되고 있는 것은 일본 출판사 쪽에서 이런 정기 연재 잡지 하나 즈음은 가지고 있어야 잘 나가는 작품의 연재 계약을 잘 주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다만 창간 초창기에는 30만부에 달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국내 만화잡지 가운데서 아이큐 점프와 함께 수위권의 위상을 자랑했었다. 를 찍어내면서 그 이전까지 만화잡지계의 왕좌 자리를 누리고 있던 보물섬이 쥐고 있던 지위를 빼았았으며 또한 X세대[3]가 널리 선호했다.

즉, 이 당시에는 동네 분식점이나 이발소, 미용실 등 고객이 기다려야 하는 형태의 가게에는 항상 스포츠신문과 함께 점프와 챔프를 비치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소년 챔프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당시 연재했던 '어쩐지... 저녁', '협객 붉은매', '미스터 부'는 무려 누계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사실 2000~2010년대에 히트한 살아남기 시리즈나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WHY, 코믹 메이플스토리에 비하면 그리 많다고 할수는 없지만, 이 당시에는 인기만화라해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 흔치 않았고[4],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것도 제작비가 많이든다는 이유로 몇개 제작되지 않아서 TV를 통한 홍보효과를 누리기 힘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물론 20세기 말에 주요 만화출판사들이 긴축경영을 한다면서 일본만화를 대규모로 출판하기 시작한데다가, 때 마침 스캔본의 시대가 왔고, 주요 히트작들도 하나둘 연재종료된데다가, 웹툰과 학습만화로 옮겨지며 간간히 생명줄을 유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특이점으로는 격주간지이다보니 일본 만화의 경우 주간지인 일본 측 점프와 스케줄이 맞지 않아 2회 분량, 즉 2주 분량을 코믹 챔프 한 부에서 연재하고 있다. 책을 사서 보면 2회 분량이 한꺼번에 실려있다. 물론 점프에서 한 주 휴재하면 1회가 실리기도 한다.

창간 초창기에는 TV 광고도 방영하였고, 챔프의 인기작 중 일부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개봉하기도 하였다.[5] 애시당초 대원동화가 1987년에 떠돌이 까치 달려라 호돌이를 시작으로 국산 TV만화영화의 제작을 도맡으면서 아기공룡 둘리 일부 회차, 달려라 호돌이,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 등 흥행작을 다수 냈기때문에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명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참이었고. 당시 맹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창훈을 기용하여 맹구 캐릭터 그대로 활용하여 찍은 광고와 아동용 극장영화를 도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광고는 TV뿐만 아니라 대원에서 배급하던 비디오물에도 중간 광고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TV 만화영화와 극장판 만화영화를 만드는것은 달라서 극장판 만화영화의 경우에는 흥행성적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독고탁 극장판으로 극장판 애니메이션에 손을 댔으니 노하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1990년대 초중반은 국산 영화 점유율이 20% 안팎에 그치던 한국 영화계에서 불황의 시기라서 흥행에 더 어려움이 있을수밖에 없다.

TV판 애니메이션도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없었던데다가 1990년대 중반에 나온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도 TV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 애니메이션쪽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던 시절이었고, 이 때문에 소년 챔프 작품의 TV 애니메이션화는 지지부진해서 만화영화로 나온 작품은 마법사의 아들 코리 검정고무신 정도가 고작이다. 같은 대원 소속 만화잡지에서 연재된 만화 가운데 만화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몇 작품 더 있지만, 두치와 뿌꾸 안녕 자두야는 코믹 챔프가 아닌 팡팡이나 찬스에서 연재된 작품이다.

이른바 기존의 유명한 스타 작가진들이 대거 포진해있던 아이큐 점프에 비해[6] 고행석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형 작가들의 작품이 없어 창간 이후 약 1년간은 판매량에서 점프에 밀리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런 작가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사 자체적으로 신인작가 공모전을 분기별로 열어 많은 신인작가들을 발굴했고, 이 때 데뷔한 신인작가들은 1990년대 초중반 소년챔프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작가들과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4. 연재중인 작품

코믹 챔프/연재중인 작품 참고.

5. 연재 종료 작품


5.1. 국내 만화

5.2. 일본 만화


[1] 1993년 2월부터 격주간으로 변경된 보물섬이 1994년 8월 월간지로 환원한 동시에 제호명을 <빅보물섬>으로 변경시키면서 1995년 1월호부터 일본 만화 모모이로 사바스(<빅보물섬> 연재 당시 제목은 '고스트 보디가드')를 수입하는 등 개방적인 형태로 변화한 것도 있었으나 같은 회사에서 또 다른 비순정 월간 만화잡지 팡팡을 창간(95년 1월)하여 입지가 좁아져 폐간된 것으로 풀이되는데 '월간 아이큐 점프'의 폐간 사유도 '월간 챔프'와 비슷한 이유로 풀이됐으며 <보물섬>은 1996년 1월호부터 처음 제호명으로 환원했다. [2] 그나마 이 가격도 영 챔프와 통합 후 2,000원에서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 [3] 보통 언론에서 386세대 바로 다음 세대(1970년대 생)를 지칭하는데, 학술적으로 엄밀한 정의도 아니고 이제는 실생활에서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4] 199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소설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편이었고, 이후로 소설판권료가 올라가면서 자체제작으로 전환했고, 주로 만화는 주로 아동용이 많다거나 실사드라마로 만들기 어려운 SF류 작품이 많다는 이유로 드라마로 제작되는 빈도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헬로 발바리나 비트, 아스팔트 사나이가 이 당시에 만화원작으로 드라마화된 작품이었다. [5] 스트리트 파이터의 패러디물인 거리의 무법자와 일본도 안했던 실사 드래곤볼 등을 제작했다. [6] 아이큐 점프 창간 당시 참여했던 작가진을 보면 1980년대 한국 만화계를 대표하는 스타 만화가들이 상당수였다. 이현세, 이상무, 황미나, 김철호, 김형배, 장태산, 김영하 등등.. [7] 특이하게 데뷔는 챔프에서 했는데 첫 장편 연재는 점프에서 했다. [8] 스노우 브라더스의 해킹롬중 이 만화의 캐릭터들을 차용해서 개조한 국산 해킹롬이 있다. [9] 챔프코믹스의 첫번째 단행본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것도 이 작품. [10] 이원복의 원작을 이상철 화백이 재구성한 작품이다. [11] 배금택 화백의 흑역사 Y세대 제갈공두의 파일럿급 작품이다. [12] 2부를 기약하고는 있지만 과연 가능할지... [13] 영 챔프에서 옮김 [14] 이 만화를 끝낼 때 챔프 편집부의 실수가 하나 있었는데, 최종화가 연재된 호 표지에도, 그 앞전호 예고에서도 최종화라는 언급을 하지 않고 급종료시켰다. [15] 코믹 챔프에서 처음부터 연재한 만화로선 최장기 연재작. 1996년부터 2014년까지 18년간 연재하였다. [16] 김성모 화백의 초기 역작인 그 작품 맞다. [17] 작가는 윤인완, 양경일로 한국인이지만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하므로 여기에 수록 [18] 언제부터인가 호당 1화씩 실리고 있다. 좋아하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골룸한 일. [19] 중간에 내렸다. [20] 중간에 내렸다. [21] 중간에 내렸다. [22] 중간에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