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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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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Sansa, monastères bouddhistes de montagne en Cor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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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전라남도 순천시
등재유형 문화유산
지정번호 1562
등재연도 2018년
등재기준 (iii)[1]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1200px-Seonamsa_Seungseongyo.jpg
선암사의 입구 격인 승선교[2]와 강선루.
해우소(뒷간)와 더불어 절을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파일:seonamsailjumun.png
선암사 일주문

1. 개요2. 상세3. 문화재4. 교통5. 사건사고
5.1. 소유권 분쟁5.2. 관음상 사건
6. 여담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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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자 : 仙巖寺 / 로마자 : Seonamsa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현재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수행 총림이다. 진입로는 경사도 완만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름다운 운치있어서 사찰보다 진입로를 더 좋아하는 방문객들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산 속의 절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선암사의 진입로는 다른 절에 비하면 적당한 편이다.

2018년 6월 30일, 전국 각지에 소재하는 산사들과 함께 '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2. 상세

백제 성왕 5년(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初刱主)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사찰을 창건하였고, 산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사찰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신라 말 이창주(二刱主)[3]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선암사로 지었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1철불 2보탑 3부도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 중기 삼창주(三刱主)인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대각국사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重創建圖記)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소 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 1171-1197)는 시(詩)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또한 조선 중기 왜란 시기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종 1년(1660년)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세 승려가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크게 중창했지만 전쟁 이전의 사세를 복구하기에는 무리였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한 이는 호암약휴(護巖若休) 스님이었다. 호암은 승선교를 비롯하여 원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 이후 법당 8채, 전사(殿舍) 12차, 중료(中寮) 16채, 산암 13채를 갖추고 선적암(善積菴), 도선암(道詵菴) 등을 부속암자로 두었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년) 봄에 선암사는 또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었다. 상월새봉(霜月璽封) 스님과 서악(西岳) 스님이 이듬해(1760년) 재건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초창주 아도화상 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

상월새봉 스님은 중창불사뿐만 아니라 1734~35년에 두 차례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한다. 그리고 상월스님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1761년 산 이름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하였다.

정조 13년(1789년)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訥菴)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海鵬) 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 임금이 태어났다. 이후 왕위에 오른 순조 임금은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이라고 쓴 편액[4]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다.

순조 22년(1798년)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하였다. 순조 23년(1823) 3월 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다음해부터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 스님 등이 6번째 중창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예전의 조계산, 선암사로 복칭(複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다.
파일:선암사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수정2.jpg
일제강점기 선암사 전경

1919년 조선총독부가 본말사법(本末寺法)[5]으로 전국의 사찰을 30본산(本山)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 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100여 동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당시 40여 동이 소실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이후 6.25 전쟁으로 꽤 많이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만 남았다. 게다가 후술되는 조계종 태고종과의 갈등으로 지금까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갈등 때문에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선암사 일원은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 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3. 문화재


태고종 조계종간 소유권 분쟁 탓에 관리가 잘 안 돼서인지 선암사는 전국에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도난당한 절이다.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기준으로 선암사는 현재 총 8건 33점의 문화재를 도난 당한 상태인데 그림( 불화)이 5건 27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부도( 승탑) 2건 5점, 동종 1점도 포함돼있다. 2023년에 그림 3점을 찾아 회수해오는 등 조금씩 되찾고 있기는 한데 매우 더딘 상태이다.

선암사같은 교구본사급 대형 절에서 이런 수준으로 문화재를 많이 도난 당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며 조계종의 25개 교구본사들만 봐도 나머지 24개는 대부분 0~5건 수준이고 이웃한 송광사의 경우도 1건 13점을 도난 당한 정도이다.

4. 교통

자가용의 경우 호남고속도로 승주 나들목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순천시 시내버스의 경우 순천역 순천종합버스터미널을 경유하는 순천 버스 1에 탑승하여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아서 시간표 맞추기는 힘들지만, 순천의 다른 관광지인 낙안읍성은 선암사에서 가깝기 때문에 둘 다 볼 관광객이라면 순천 버스 16을 시간표 맞춰서 타면 된다.

송광사와 등산로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자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좀 걸어도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송광사로 가서 선암사로 나오거나 그 반대로 가는 일정을 짜는 것도 괜찮다. 등산로라 해도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고 산중턱을 둘러 가는 길이라 걷기길치고 약간 가파른 정도다.

5. 사건사고

5.1. 소유권 분쟁

태고종 본산이지만 조계종에서 재산의 소유권을 가지면서 1960년대 이후 양 측의 갈등이 심해졌다. 심지어 관리 권한은 1970년대부터 순천시에 있는 등 관리 주체가 꼬여 하단의 불상 실종 사태 등 여러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현재도 사찰의 직접적인 운영은 태고종이, 문화재 구역 입장료 징수는 태고종과 조계종이 공동으로 하는 이원적인 상황이 지속 중이다.

그러다가 결국 순천시가 권리를 반납하면서 태고종과 조계종의 법정 다툼이 벌어졌는데, '태고종 선암사'가 '조계종 선암사'[6]에 재산권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러다가 지난 2011년 2월 “조·태 분규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선암사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불조 혜명을 잇기 위해 분규종식을 선언한다”고 합의하고, 1966년부터 순천시가 가지고 있던 선암사 재산관리권을 인수했다. 양측의 합의로 반세기 넘게 이어져 온 조·태 분규는 사실상 마무리됐으며, 선암사는 조계종과 태고종이 공동 관리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듯 했지만, '조계종 선암사'가 순천시를 상대로 실질적 소유자 동의 없이 건립한 '차 체험관'을 철거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면서 양 측의 갈등이 더욱 커졌다.

2014년 1심에서 "태고종의 소유권을 인정한다." 하는 판결이 나왔다. 조계종은 판사가 불교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며 반발하여 항소하였다. 이어 2015년 2심에서는 "40년간 태고종이 관리하고, 이후 조계종에 반납한다."라고 화해 권고를 했으나, 양 쪽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라 거절하였다. 결국 해당 소송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는데, 2020년 12월 24일 대법원은 '조계종 선암사'의 실체를 사실상 부정하며 파기환송을 시키면서 다시 광주지방법원으로 넘겼다.

이후 2022년 7월 20일 광주지법 대법원 파기환송심 결심 판결에서도 태고종 선암사가 승소했고, 11월 17일 대법원에서 조계종 측 항고를 모두 기각하며 태고종이 최종적으로 승소하였고 선암사에 대한 소유권이 태고종에 있음을 인정하였다.

2023년 6월 15일, 조계종은 2심 판결이 종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민사사건처럼 판단해 문제가 있다며 재심을 신청했다.

이와는 별개로 '태고종 선암사'가 '조계종 선암사'를 상대로 낸 '등기말소 소송'에서도 2022년 7월 7일 광주고법은 “토지의 실제 소유주는 태고종 선암사가 맞다” 고 판결했는데, 이로 인해 그동안 갈등을 빚어 온 불교계 두 종단인 태고종 조계종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들의 갈등이 얼마나 심하면 아래의 글처럼 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전략)돌기둥[7]에는 8·15 해방 후 조선불교의 초대 교정(종정)을 지낸 대단한 학승인 박한영 스님이 지은 게송 댓구가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글씨도 좋지만 내용이 이 절집에 딱 맞아 지날 때마다 소리내어 읽어보게 된다.
放出曹磎 一派淸 방출조계 일파청 / 劈開南岳 千峯秀 벽개남악 천봉수
번역해보면 “ 조계(육조 혜능)스님이 나타나자 온 물결이 맑게 되었고, 남악(회양懷讓)스님이 등장하자 일천 봉우리가 빼어나게 되었네”라는 뜻이다.
요즘 학생들은 한문은 고사하고 한자도 못 읽어 큰 문제인데 어느 해인가 제법 한문에 관심이 많아 한문강습소도 다니는 기특한 녀석이 여기에 이르자 먼저 달려가 읽어보고는 내게 자랑삼아 해석해 보이는 것이엇다. "선생님, 조계 일파를 방출하자, 데모 구호를 써놓은 건가요?"하고 하는 것이었다.
하도 기가 막혀 제대로 해석해주려고 원문을 읽어보니 마지막 한 글자가 돌무더기에 파묻혀 "방출조계일파(放出曹磎 一派)"라고만 되어 있는 것이었다. 학생의 번역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불교의 선맥(禪脈)을 말한 이 멋진 법구(法句)가 '맑을 청(淸)'자가 빠져버리니 태고종의 제모 구호로 바뀌고 말다니. '맑을 청'자 하나.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 창비, 2011, p189~190[8]

5.2. 관음상 사건

선암사에는 조선시대에 제작한 관음보살상이 있는데, 관리주체가 꼬인 탓에 문화재 등록도 되지 않은 채였다. 그러다가 보살상이 1995년에 모조품으로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졌다. 시간이 흘러 보살상이 바뀌었다고 사람들이 당시 주지에게 알리자, 그는 도난을 염려해서 모조상을 만들어두고 진품은 비밀리에 보관 중이라고 했다.

심지어 모조상 제작비용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서울의 신자가 자금을 대줬다는 말을 하거나, 거액의 헌금을 받을 수 있는 개금작업[9]을 신도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하는 등 수상한 정황들이 계속 나왔다. 결국 주지는 이 일로 물러나고 말았다.

결국 1997년 원본 보살상이 돌아왔지만 1992년 제작한 선암사 도록에 수록된 사진과 다르다는 의견이 계속 나왔다. 이런 의혹 때문에 2004년 해당 목상의 시료를 채취해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나무의 연대를 측정해보니 16세기 전후라고 나왔다. 이 때문에 보살상이 진품이라고 결론 나오는 듯하였지만 반대론자들은 그 시기의 나무를 구해다가 조각하면 되는 일이라며 반발하였다.

결국 공개적으로 복장유물을 확인해 보자고 말이 나왔고, 사람들을 불러서 복장유물[10]을 꺼냈는데... 연대를 알 수 없는 불경과 플라스틱 손거울이 나왔다... 당연히 난리가 났고, 물러났던 주지가 다시 불려왔는데, 개금작업을 할 때 복장을 열어봤고, 자기가 추가로 거울을 넣어 놨다고 주장했다.

2013년 11월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918회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여기에 출연한, 수십 년 전에 해당 불상을 개금해봤던 개금장이 해당 불상이 자기가 기억하는 선암사 관음불상이 맞다고 증언했다. 워낙 완벽한 불상이라 일반적으로 안 보이는 부분들의 특징을 기억하고 있는데, 해당 불상은 자기가 개금했던 것이 맞다고 증언하였다. 불상에 옻칠이 아니라 '카슈'[11]가 사용된 부분에 대해서는 가격 차이가 워낙 많이 나다보니 개금할 때 카슈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12]

다른 문화재 전문가들도 가짜라는 게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눈에 안 보이는 부분, 예를 들어 복장을 파내는 부분은 손으로 깎으면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는데, 이 불상은 안 보이는 부분까지 전부 손으로 깎았고 기계를 사용한 흔적이 보이지 않으며, 깎인 흔적들이 전부 오래되어서 근래에 만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예전 사진과 부처님이 어디가 몇 cm 정도 위치가 다르고 이런 건 그냥 사진상의 문제라고. 한 불상조각가는 목조상 특성상 정교한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재시도가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석조상과는 달리 나무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줄어들거나 뒤틀리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는데, 불과 팔 위치 몇 cm 차이까지 따라하는 정교한 복제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몇백 년 전 나무를 재시도를 수차례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하고.

이 정도로 정성을 들여 복제품을 만들려면 소비되는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하므로 결국 진품이 맞다는 결론.

물론 복장유물에 대해선 개금장이나 문화재 전문가 등이 개금을 하면서 복장을 열어보는 일은 없다고 하고 있고, 불상의 품질대비 복장의 내용이 너무 부실하여 복장유물 도난에 대해서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6. 여담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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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2] 보물 400호 [3] 처음 절을 개창한 초창주에 이어서 두번째로 사찰을 중흥시킨 스님을 일컫는 말 [4] 사람과 신들에게 모두 큰 복이 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5] 전국의 사찰을 유서 깊고 규모가 큰 본사(本寺)와 그 부속사찰인 말사(末寺)로 구성한 사법(寺法) [6] 명목상으로는 조계종 20 교구의 본사(물론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이긴 하지만, 재산관리 목적으로 전산 상에만 존재하는 사찰로 등기부 이름만 있을 뿐 소속 승려나 신도는 없다. 입장료 징수 및 순천 지역 사찰의 행정을 관리하는 교구 본사로 순천 지역 행사시 대표단을 파견하는 정도로만 활동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태고종에서 관리하는 사찰이지만 매표소에 조계종 신도증을 제시하면 입장료가 면제된다.(...) [7] 선암사 입구에 나무 장승과 함께 세워진 돌기둥을 말한다. [8] 2009년 10월 당시 선암사를 방문했을 당시를 연재로 썼던 것으로 보인다. 위에 언급된 선암사를 둘러싼 조계종과 태고종의 갈등도 나름 다뤘다. [9] 목불상에 옻칠과 도금을 새로 하는 것을 말한다. [10] 불상을 만들 때 불상 안에 넣는 물건으로, 보통 사리나 불경 등을 넣지만 그 밖에 가치 있는 보물이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안동 광흥사에 있던 불상에선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 [11] 캐슈넛을 수확하는 캐슈나무로 만든 옻칠의 대용품. [12] 카슈는 1킬로에 만 원 정도, 옻칠은 1킬로에 100만원 정도 한다고 한다. [13]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