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솔라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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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CF | ||
Real Madrid Club de Fútbo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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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산티아고 솔라리 Santiago Sola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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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산티아고 에르난 솔라리 포히오 Santiago Hernán Solari Poggi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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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6년
10월 7일 ([age(1976-10-07)]세)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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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아르헨티나|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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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2cm / 체중 75kg | |
직업 |
축구선수 (
윙어[1] / 은퇴) 축구 행정가 축구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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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선수 |
리버 플레이트 (1996~199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9~2000) 레알 마드리드 (2000~2005) 인테르나치오날레 (2005~2008) 산 로렌소 (2008~2009) 아틀란테 FC (2009~2010) CA 페냐롤 (2010~2011) |
감독 |
레알 마드리드 (2013~2016 / 유스 감독)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2016~2018) 레알 마드리드 (2018 / 감독대행) 레알 마드리드 (2018~2019)[2] 클루브 아메리카 (2020~2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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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레알 마드리드 CF (2022~ / 풋볼 디렉터 ) | |
국가대표 | 11경기 ( 아르헨티나 / 1999~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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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8년부터 2019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을 맡았다.2. 선수 경력
전성기를 보낸 레알 마드리드 시절 |
솔라리는 유소년 시절에 미국의 리처드 스톡턴 대학교에서 뉴얼스 올드 보이스 유소년팀, 레나토 세사리니로 옮긴다. 이후 CA 리버 플레이트로 이적한 후, 1996년 5월 12일에 프로 데뷔 무대를 가졌다. 3시즌간 팀의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유럽 다수 클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다.
결국 1999년 1월,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이적이 성사되었다. 2월이 되어서야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후 주전을 쉽게 차지했으며, 1999-2000 시즌에는 리그에서 34경기 6골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하지만 헤수스 힐 구단주의 막장행보로 팀이 와해되며 어처구니없게 2부리그로 강등됨에 따라 솔라리는 다른 클럽으로 이적하기로 결심한다.
이적팀은 지역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 CF. 입단 초기 솔라리는 브라질 출신 사비우를 대체할 수 있는 왼쪽 윙어로 기대를 모았으나, 자리가 없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는 초절정기를 구가했던 슈퍼스타 루이스 피구가 부동의 라이트 윙어로 기용되었고, 피구와 같은 포지션이었지만, 고액 연봉자라 벤치만 달구기도 애매했던 스티브 맥마나만이 왼쪽으로 자리를 옮겨 꽤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 바람에 솔라리는 리그에서 단 14경기에 나올 정도로 주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그러나 두번째 시즌인 2001-02시즌부터 솔라리는 준주전급으로 올라서면서 갈락티코스 1기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중요한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1-02 시즌 레알 마드리드 전술의 가장 큰 변화는 공격 전술의 핵이 루이스 피구[4]에서 새로 영입된 불세출의 스타 지네딘 지단으로 옮겨왔다는 점이었는데, 사실 기대와는 달리 시즌 초반, 지단과 피구 두 슈퍼스타의 공존이 잘 안 되고, 지단의 가세가 오히려 공수 밸런스 불균형과 수비 불안이라는 역효과로 나타나는 등 전술상에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팀은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5]
우선 델 보스케 감독은 자동문이나 다름없던 수비진 안정과 페르난도 이에로의 확실한 파트너를 찾고자 마켈렐레와 더블 볼란테로 맹활약하며 2000-01 시즌 리그 우승에 기여했던 이반 엘게라를 센터백으로 내리면서 효과를 보게 되었다. 엘게라가 빠진 미드필드에는 비슷한 성향의 플라비우 콘세이상이 우선 고려되었으나, 이 때 대안으로 등장했던 선수가 변화무쌍한 전술을 소화하는 데 조금 더 적합했던 솔라리였다.
벤치 멤버에 가까웠던 솔라리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단지 수비 안정화에 그치지 않고, 중원에서 공수의 밸런스를 맞추고 단조로운 공격 패턴을 지양하고자 델 보스케 감독이 미드필드에도 칼을 대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이 무렵부터 지단의 위치는 흔히 알려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닌 왼쪽 미드필더로 고정되었고, 역할은 윙어라기보다 프리롤을 부여받은 측면 플레이메이커였다.[6] 지단이 중앙이 아닌 측면으로 이동하면서, 중앙에는 공격 지향적인 지단과 피구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두 명의 미드필더를 고정적으로 기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중 한 자리는 홀딩 미드필더인의 교본인 클로드 마켈렐레의 몫이었고, 남은 한 자리에는 일반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보다 다양한 전술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솔라리를 하프윙으로 기용하면서 비로소 갈락티코스가 하나로 돌아가기 시작했다.[7] 당시 지단은 왼쪽 윙어에 배치되어 중앙으로 볼을 끌고 나오며 자유롭게 경기를 운영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부여 받았다면, 지단의 움직임으로 비워진 왼쪽 측면은 중앙에서 사이드로 빠져 나오는 하프윙 솔라리의 지능적인 움직임[8]과 풀백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무지막지한 오버래핑이 더해지며 더욱 복잡해지고 다채로운 패턴을 갖게 되었다.[9] 솔라리는 늘 맡아왔던 왼쪽 윙어가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 하프윙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으나,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 지단과의 스위칭등 전술적 역할 뿐 아니라 마켈렐레보다 빠른 발로 중원에 스피드를 부여하며, 레알 마드리드 미드필드에 활력을 불어 넣기 시작했고, 리그 중반부터 선발 출전 빈도를 늘려가기 시작하더니 결국 레버쿠젠과의 200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도 선발 출전하여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에 기여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지네딘 지단의 환상적인 발리슛의 시작은 다름아닌 산티아고 솔라리. 솔라리가 왼쪽으로 치우쳐 움직이다 순간 맹렬히 질주하며 왼쪽 측면을 오버래핑하던 호베르투 카를루스에게 로빙 패스를 올린 것이 이 역사적인 득점 장면의 시발점이었다. 바로 그 득점 장면[10]
2002-03 시즌에도 변함없는 활약으로 리그 우승에 기여했으나, 미드필더로 괄목한 활약을 보여주기 시작했던 구티[11]에게 자리를 조금씩 내주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출장 시간을 기록했던 시즌은 어쩌면 21세기 중에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어수선했던 2003-04시즌으로, 리그 34경기(15선발) 5골, 대회 총합 54경기 9골을 기록하였다. 2004-05시즌에도 출전 기회를 보장받았으나, 갈락티코를 지원하는 어중간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쳤으며, 결국 인테르에 이적료 €6M에 이적했다.
인테르에서는 기량 저하와 부상으로 예전만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팀의 리그 3연패 달성에 무관하게 솔라리는 출전기회가 많지 않았다. 결국 유럽 생활을 접고, 남미 클럽들을 전전하다가 2011년에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2016-17 시즌부터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16-17시즌에 세군다 리가 B에서 11위, 17-18시즌에 8위로 마감하는 등 성적이 썩 좋지 못했다. 솔라리 부임 전인 15-16시즌에 1위를 차지했던 것만 봐도 영 좋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솔라리는 카스티야 감독 시절 선수 육성과 전술적 능력 면에서 약점을 가졌기 때문에 레알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12] 한편, 18-19시즌에는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의 맹활약에 힘입어 5위를 마크하고 있었는데...2018년 10월 29일에 훌렌 로페테기가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직에서 경질되면서 당분간 감독 대행을 맡기로 했다.
3.1. 레알 마드리드 CF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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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감독으로 부임 후 3연승을 기록하게 되자, 스페인 아스에 따르면 설문조사 결과 82%에 해당하는 참여자들이 시즌 종료까지 레알을 이끄는 것에 대해 찬성을 했다고 한다. 여기에 11월 9일 기준으로 임시 감독 기간인 2주가 마무리되어 레알은 빨리 사령탑 자리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지네딘 지단처럼 카스티야 감독에서 1군 감독으로 정식 부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13] 11월 12일에는 셀타 비고 원정경기를 승리할시 정식감독으로 승격된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사 그리고 승리를 거두었다.
11월 12일, 레알의 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솔라리 감독의 4연승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2021년 6월 30일까지 지휘를 맡기기로 했다. 하지만 정식 감독으로서의 첫 경기였던 11월 24일에 펼쳐진 리그 13R 에이바르전에서 0-3 패배를 당했다. 이후 리그 3경기에서는 모두 승리를 거두면서 전반기를 4위로 마무리했으며, 챔스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CSKA 모스크바에 0-3으로 또다시 3점차 패배를 당했지만 AS 로마를 제치고 조 1위로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준결승에서 가시마 앤틀러스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가레스 베일의 해트트릭으로 3-1 승리를 거둬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전에서는 알 아인 FC를 만나 4-1 완승을 거두면서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해 2018년을 기분좋게 마무리했다.
그러나 2019년 초입에 펼쳐진 리그 17, 18R 경기에서 각각 2-2 무승부, 0-2 패배를 거두면서 리그 순위가 5위까지 하락했으며, 국왕컵에서도 졸전 끝 다음 라운드에 겨우 진출하는 등 팀의 경기력까지 올라오지 않아 정식 부임 후 3개월 만에 감독 자리가 위험하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19R부터 리그에서 5연승을 기록하면서 위기설을 진화했다. 특히 23R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원정 더비 경기에서 예상을 뒤집고 3-1 완승을 거두며 리그 순위도 2위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이후 리그, 코파 델 레이 4강에서 FC 바르셀로나에게 홈에서 무기력하게 2연패를 당하며 82년만에 엘클라시코 전적을 역전당하는 기록을 쓰게 되었다. 이후 아약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도 홈에서 1-4로 무기력하게 패하며 총합 스코어 3-5로 역전패를 당하면서 감독직이 위태로워졌고, 다시 한 번 경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조세 무리뉴의 선임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이 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무리뉴 대신 지네딘 지단 감독을 복귀시켰다.[14] 솔라리 감독은 바야돌리드 전 이후 훈련에서 선수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냈으며 지단이 재선임된 3월 11일 경질되었다. 레알은 한 시즌 중에만 무려 두번째 감독 교체.
3.2. 이후
레알 마드리드 재단에서 약 2년간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및 기부 활동을 했다.3.3. 클루브 아메리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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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시각으로 2022년 3월 2일, 전격 경질되었다.
3.4. 이후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와 U-19경기를 챙겨보고 있다고 한다.최근에는 레알 마드리드 CF 페메니노경기까지 챙겨보고 있다고 한다.
레알 마드리드 CF로의 복귀가 거의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이에 팬들은 카스티야 감독을 원하고 있는데, 현 카스티야의 감독인 라울 곤살레스가 카스티야 2부 승격을 위해서 카스티야 소속 선수들을 1군으로 콜업하는 것을 해주지 않아서 그렇다.
기예르모 라이에 따르면, 레알 마드리드의 새로운 풋볼 디렉터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 CA 리버 플레이트 (1996~1998)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996 아페르투라, 1997 클라우수라, 1997 아페르투라
-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996
-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1997
- 레알 마드리드 CF (2000~2005)
- 라리가: 2000-01, 2002-0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2001, 2003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1-02
- UEFA 슈퍼컵: 2002
- 인터컨티넨탈컵: 2002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5~2008)
- 세리에 A: 2005-06, 2006-07, 2007-08
- 코파 이탈리아: 2005-06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5, 2006
4.1.2. 지도자
- 레알 마드리드 CF (2018~2019)
- FIFA 클럽 월드컵: 2018
5. 여담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2시즌, 레알 마드리드에서 5시즌, 인터 밀란에서 3시즌을 뛰는 등 2000년대 초중반에 유럽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매우 낮다. 오죽하면 이 문서도 레알 마드리드 임시 감독으로 부임한 2018년 11월이 되어서야 생성되었다.
- 산티아고 솔라리의 아버지가 에두아르도 솔라리 , 큰아버지가 호르헤 솔라리이다. 솔라리의 동생인 에스테반 솔라리와 다비드 솔라리 역시 축구선수로, 에스테반의 경우에는 2011-12 시즌에 UD 알메리아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PK 득점을 기록했다 #. 솔라리의 삼촌인 호르헤 솔라리는 리버 플레이트 레전드 중 하나로, 1941년생임에도 불구하고 2016년까지 축구계에 종사했다. 큰아버지 호르헤 솔라리의 딸 , 즉 솔라리의 사촌 여동생은 페르난도 레돈도와 결혼했다.
- 여동생 중 하나는 1983년생 배우인 리즈 솔라리이다.
- 발재간이 상당했던 선수로써 이에 대해 독일의 레전드 축구선수였던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지네딘 지단과 함께 묶어서 지단과 솔라리가 내 앞에서 잔재주를 부릴때마다 다리를 부숴버리고 싶었다고 칭찬했다.
[1]
좌측.
[2]
2019년 3월 11일 경질.
[3]
현지 시각 2022년 3월 2일 경질.
[4]
지단의 영입도 영입이지만, 마침 피구 본인도 이 시즌에 부상을 달고 다녀 레알 마드리드 커리어 중 가장 경기력이 안 좋았던 시즌이기도 했다.
[5]
시즌 초반 리그 17위까지 떨어져 있었고, 지단이 리그 득점 선두를 달리던 기이한 모습이 일어나고 있었다.
[6]
지단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은퇴할 때까지 이 위치에서 활약했다. 참고로 2002 월드컵의 참담한 실패를 겪은 프랑스 대표팀도 지단의 의존도를 줄여보고, 전성기에 다다르고 있는 티에리 앙리, 다비 트레제게를 동시에 기용하고자 전형을 플랫한
4-4-2로 개편하고, 지단을 클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왼쪽 미드필더로 기용한 적이 있다. 그럭저럭 맞춰가다 유로 2004에서 8강에 실패하며, 지단은 다시
4-2-3-1의 10번 자리로 돌아간 바 있다. 같은 위치에 지단이 있었어도 당시 프랑스 대표팀의 전술이 대단히 단조로워 실패.
[7]
변형된 레알 마드리드는 변형된
4-2-3-1 전형을 기반으로 선수들의 무한 포지션 스위칭을 기반으로 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당시 세상을 호령하던 갈락티코들의 개성과 강점을 모두 녹여낼 수 있었던 전술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갈락티코 개개인의 능력에 기댄 전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로는 그 정도 수준이 되는 선수들이어야 가능했던 전술. 우선 한 명의 공격수는
페르난도 모리엔테스(01-02시즌) 또는
호나우두(02-03시즌)가 맡아 득점을 노린다. 세컨드 스트라이커에
라울이 기용되어 경기장을 넓게 쓰며, 창의성과 공격력, 수비 가담에 공헌, 오른쪽
윙어에
루이스 피구(하지만 왼쪽, 중앙 가리지않고 신출귀몰하며 수비 돌파), 왼쪽
미드필더에
지네딘 지단(하지만 프리롤을 부여받은 측면 플레이메이커), 그 밑에
클로드 마켈렐레가 홀딩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궂은 일을 앞장서 하고, 그 옆에 솔라리가 하프윙으로 속도를 더해주는 동시에
호베르투 카를루스,
지네딘 지단과의 계속된 포지션 스위칭, 수비 가담 등 다양한 역할로 서포트하며 갈락티코들 사이의 윤활유같은 역할을 했다. 이 전술로 레알 마드리드는 결국 2001-02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2002-03시즌 리그 우승이라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03년 여름,
데이빗 베컴의 영입과
클로드 마켈렐레의 이적으로 전술의 밸런스기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플로렌티노 페레스 구단주의 퇴단과 갈락티코스 1기의 해체로 이어지게 되었다.
[8]
2013-14 시즌
카를로 안첼로티가
앙헬 디 마리아를 윙에서 하프윙으로 배치하며, 그를 레알 마드리드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파워트레인으로 사용했다는 점과 유사하다. 다만 솔라리는 디 마리아 만큼의 파괴력을 보이진 않았으나, 지능적인 움직임과 간헐적인 수비 가담이 돋보였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솔라리와 디 마리아의 스타일 차이일 수도 있지만, 부분 전술에서 자주 호흡을 맞춰야 하는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마르셀루의 스타일 차이 때문이기도 하며, 전술적으로 10번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가 전방에 있고 없고 차이이기도 하다. 윙어의 하프윙 기용은 최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하파엘 게레이루의 활용에도 잘 나타난다.
[9]
여기에 오른쪽 측면의
루이스 피구마저
갑툭튀하며 왼편에 출몰하여 상대 수비를
충공깽모드로 돌려놓곤 했다.
[10]
2001-02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왼쪽 부분 전술의 전형적인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11]
구티는
모리엔테스가 부상으로 빠진 2000-01 시즌 공격수로 깜짝 출전하여 리그 14골을 기록했으나, 사실 커리어 초기에는 다양한 포지션 중에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다소 부침을 겪고 있었다. 구티가 본연의 자리인 미드필드에서 괄목할만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던 시점은
호나우두가 영입되며 공격수 풀이 넓어면서 오로지 미드필더로서 집중할 수 있었던 2002-03 시즌이었다.
[12]
이런 약점이 카스티야의 좋지 못한 성적에 영향을 주었다.
[13]
다만 위에 나와있듯 카스티야 부임 시절에 좋은 지도력을 가졌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 시각에서는 말도 안 되는 도박이라는 의견도 많다.
[14]
페레즈는 무리뉴 리턴을 생각했지만, 레알 마드리드 감독 이후 지속적인 실패를 겪고 선수단과 불화가 생기는 문제 때문에 다른 보드진들과 선수들의 반대의사가 강했다. 그리고 무리뉴 본인도 라모스, 호날두, 카시야스가 있는 한 레알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