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불라트 샬보비치 오쿠자바
Була́т Ша́лвович Окуджа́ва Bulat Shalvovich Okudzhava |
|
|
|
출생 | 1924년 5월 9일 |
모스크바 | |
사망 | 1997년 6월 12일 (향년 73세) |
일드프랑스 오드센 클라마르 | |
국적 |
[[소련| ]][[틀:국기| ]][[틀:국기| ]]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묘소 | 바간콥스코예 묘지 |
학력 | 트빌리시 대학교 |
[clearfix]
1. 개요
|
1999년 러시아에서 발매된 기념우표 |
Булат Шалвович Окуджава (불라트 샬보비치 오쿠자바)
( 1924년 5월 9일 ~ 1997년 6월 12일)
소련의 가수, 작곡가. 1950년대부터 1980년대를 걸쳐 활동했으며, 감성적인 바르드(Бард) 음악의 거장으로 불린다.
2. 생애
오쿠자바는 1924년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샬바 오쿠자바는 조지아에서 티플리스 시위원회 서기까지 맡을 정도로 유명한 공산주의자였으나, 1937년 대숙청 당시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의 어머니인 아슈헨 날반디얀 역시 남편을 위해 구명을 벌이던 도중 1939년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가족을 잃은 이후 1940년 친척이 있는 트빌리시로 돌아갔다.1942년 박격포병으로 참전했으나, 그해 12월 캅카스에서 싸우던 도중 부상당했다. 이후 부상으로 인해 후방으로 돌려져 1943년 1월부터 1944년 3월 병사 계급으로 제대할 때까지 캅카스에서 복무했다.
이후 1946년 군에서 발행하던 신문에 "오래된 학생의 노래"를 개제하게 된 것을 계기로 작곡을 시작해 1961년 공식적으로 데뷔했다.
특히 1970년 영화 벨라루스역(Белорусский вокзал)에 삼입된 ' 우리에게는 승리가 필요하다(Нам нужна одна победа)'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러시아인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절제되면서도 서정적으로 표현했다. 이 곡은 오늘날에도 승리의 날 행사 등에 사용될 정도로 명곡으로 꼽히고 있으며, 오쿠자바는 이 곡을 계기로 유명세를 얻어 1967년 처음으로 파리에서 해외공연을 가졌다.
오쿠자바의 음반은 1967년과 1968년 파리에서 몇 차례 녹음된 적이 있었지만, 소련 내에서는 1976년 처음으로 음반을 출판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의 열악한 경제 사정 상 음반을 풍부하게 발매하거나 구하기가 어려웠던 관계로, 그의 노래는 음반보다는 주로 녹음기나 공연 필름 등을 이용해 전파되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사정에도 그의 노래는 워낙 인기를 끌어 소련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도 알려질 정도였다.[1]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해외에서 거주했으며, 1995년 파리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이후 1997년 파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3. 대표곡
포도씨(Виноградная косточка)
아르바트 거리(Арбат)
우리에게는 승리가 필요하다(Нам нужна одна победа)
[1]
이러한 사정은 다른 국가의 지원을 받지않는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여서, 당시 국민가수였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1980년대 소련 락의 거장이었던
빅토르 최도 비슷한 사정을 겪었다. 게다가 당시 소련은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던지라 가수 본인들도 음반 판매 등으로 인한 금전적인 수익을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