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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22:29:19

볼프강 미터마이어/작중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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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 볼프강 미터마이어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2. 유년기 ~ 결혼

파일:볼프강 미터마이어.어린시절.jpg
어린 시절의 미터마이어

볼프강 미터마이어는 제국력 459년 은하제국의 어느 중산층 평민 집안에서 태어났다. 둘도 없던 친구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부모가 막장이던 거랑 달리 미터마이어 부모는 착실하게 모범적인 가족이었기에 미터마이어로선 좋은 가정환경에서 큰 부족함없이 잘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귀족이나 부유한 평민을 대상으로 일하는 원예사였는데, 제법 솜씨가 좋아 장사는 그럭저럭 잘 되어서 부유하지 않아도 넉넉하게 중산층으로 잘 살아갔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도 제국처럼 신분제도가 엄격하고 한계가 있는 상황에선 아들이 기술자가 되어 평탄하게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서 기술을 배우라고 가르쳤다. 그 말대로 미터마이어는 기술자가 되었지만, 원예사나 장인이 아니라 전투에 능한 전쟁 기술자가 되었다.

이후 16살이 되자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이듬해에 훗날 평생의 반려자가 될 사람을 만났다. 미터마이어의 어머니의 먼 친척인 에반젤린 미터마이어는 아버지를 전장에서 잃자 미터마이어 가에 맡겨졌는데 미터마이어는 에반젤린을 보고 한번에 반해버렸다. 미터마이어는 겉으로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행동했지만 휴가를 얻을 때마다 집으로 와 에반젤린을 만나서, 부모도 미터마이어가 에반젤린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미터마이어는 소위로 임관했고,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전장으로 나가 무수한 무훈을 쌓았다.
파일:은하영웅전설 DNT 미터마이어 청혼.jpg
파일:은하영웅전설 DNT.미터마이어 청혼.jpg
미터마이어의 청혼
그리고 7년 뒤 마침내 청혼을 결심하고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노란 장미로 꽃다발을 만들고 스펀지케이크를 산 미터마이어는 에반젤린 앞에 섰지만, 에반젤린을 만나자 미리 준비한 멋들어진 대사는 모조리 까먹어버리고 딱딱하게 굳어 제대로 청혼하지 못했다. 몰래 지켜보던 미터마이어의 아버지는 자식의 우유부단함을 탄식했지만, 에반젤린이 청혼을 받아들이고 서로 키스하자 만족해했다.

제국력 483년 미터마이어는 에반젤린과 정식으로 결혼했다. 당시 미터마이어는 24살, 에반젤린은 19살이었다.

한편 미터마이어는 이 무렵 오스카 폰 로이엔탈과도 인연을 맺었다. 로이엔탈은 미터마이어의 1년 선배로, 미터마이어와 같이 사관학교를 다녔지만 정작 두 사람은 사관학교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제국력 480년 미터마이어가 이제르론 요새에 부임했을 때 두 사람은 힌터 페잔 사건을 계기로 친구가 되었다.

3. 영관

제국력 484년, 중령이 된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과 같이 행성 카프체란카 전투에 참전했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두 사람은 열심히 싸웠지만 동맹군에게 포위당해 모든 무기를 잃어버리고 죽기 직전까지 몰렸다. 그러나 죽기 직전 제국군의 대기권 내 전투기가 급강하 폭격을 퍼부어 동맹군의 포위망 일각을 무너뜨렸고, 두 사람은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듬해 대령으로 승진한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과 함께 전선에서 물러나 군무성 사열국에서 서류업무에 매진했다. 두 사람은 이때 반플리트 성역 회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라인하르트 폰 뮈젤 준장을 잠시 목격했는데, 두 사람 모두 라인하르트를 높게 평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4. 소장

4.1. 클롭슈톡 사건

승승장구하던 미터마이어는 제국력 486년 소장까지 승진했다. 그리고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이 황제 암살을 꾀했다가 실패하고 영지로 도망치자, 미터마이어는 사병을 모아 토벌대를 결성한 문벌귀족의 전투지휘를 돕는 '전투기술고문'으로 종군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말을 듣지 않았고, 전투가 끝나자 후작령의 영민들을 상대로 전쟁 범죄나 저질렀다. 미터마이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난동을 부리는 청년 귀족들을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중, 코르푸트 자작가의 어느 대위가 노부인을 가지고 놀다가 죽였다. 분노한 미터마이어는 제국군 군율에 따라 대위를 즉결처분했는데, 문제는 이 대위의 가문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의 먼 친척이었다는 것이었다. 토벌대 사령관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먼 친척이 죽은 건 딱히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미터마이어가 자신의 이름을 무시하고 대위를 죽였다는 사실에 격분하여 미터마이어를 체포했다. 하지만 미터마이어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탄핵했고, 더더욱 분노한 브라운슈바이크는 미터마이어를 죽이려고 했지만 측근 안스바흐 준장과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준장이 뜯어말려서 영창에 보내는 걸로 끝냈다.

그렇게 오딘으로 돌아간 미터마이어는 군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플레겔 남작은 미터마이어를 손봐주고자 사회질서유지국 소속 고문기술자를 고용하여 미터마이어를 고문하려고 했는데, 미터마이어는 고문에 고통스러워하기는 커녕 고문기술자를 넘어뜨려 제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플레겔이 직접 미터마이어를 두들겨패려고 했는데 미터마이어는 플레겔을 도발하면서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자고 제안했다. 미터마이어의 도발에 넘어간 플레겔은 미터마이어의 수갑을 풀어주었는데, 미터마이어는 즉시 플레겔에게 달려가 단번에 제압했다. 분노한 플레겔은 친구들에게 당장 미터마이어를 쏴 죽이라고 지시했지만,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요청으로 사태에 개입한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 덕분에 사태는 진정되었다.

이후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의 도움 덕분에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일시 석방되었다.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은 이 일을 계기로 라인하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4.2. 제4차 티아마트 회전

제국력 486년 말이 되자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 휘하 함대 사령관으로써 제4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전했다. 전투 직전 미터마이어가 죽인 대위의 형 코르푸트 자작이 나타나 미터마이어에게 전투 중에 쏴죽이겠다고 선언했지만, 미터마이어와 로이엔탈은 같잖다는 태도로 쫓아내버렸다. 그 말대로 코르푸트는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에서 미터마이어의 기함을 포격했지만 미터마이어는 즉각 응징에 나서 코르푸트가 탄 전함 알트마르크 자유행성동맹군의 손으로 처리해버렸다.

이후 벌어진 제4차 티아마트 회전에서도 미터마이어는 동맹군을 유인 후 섬멸하는 등 활약했다.

5. 중장 ~ 대장

제국력 487년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정식으로 제국원수가 되어 원수부를 열자 미터마이어는 원수부로 전속했다. 제국령 침공작전에서는 알 살렘 중장이 지휘하는 제9함대를 격파했는데, 도망치는 적과 아군이 뒤섞일 정도로 빠르게 추격해서 '질풍 볼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암릿처 회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양 웬리 중장의 13함대에 기함 베어볼프가 피탄당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대장으로 승진했다.

립슈타트 전역이 발발하자 미터마이어는 함대 선두에 서서 알테너 성역에서 슈타덴 제독과 히르데스하임 백작을 격파했으며, 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는 장갑척탄병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의 무력 때문에 몇 차례 패배를 겪었지만 로이엔탈과 함께 함정을 파서 오프레서를 생포했다. 이후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는 미끼를 맡아 귀족연합군 주력부대를 끌어낸 뒤 순간 역습으로 선두함대를 분쇄했다. 전쟁이 끝나고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암살자에 당해 죽자 미터마이어는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제안에 따라 오딘을 공격, 재상부로 달려가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이 관장하던 국새를 탈취했다. 라인하르트가 정권을 장악하자 미터마이어는 승진하여 상급대장이 되었다.

6. 상급대장

6.1.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립슈타트 전역 이후 안톤 힐머 폰 샤프트 기술대장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이동요새로 개조하여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하자고 라인하르트에게 제안하자 미터마이어는 '무명지사'[1]라고 샤프트를 호되게 비판했으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살아있었다면 라인하르트를 나무랐을 거라고 탄식했다. 그러나 칼 구스타프 켐프 대장이 파견군 사령관에 임명되자 더 이상 반대할 단계는 지났고 반대의견을 견지했다가 켐프를 질투한다는 세간의 오해를 사기 싫어 더 이상 비판론을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이 벌어지고 1달 뒤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의 명을 받아 로이엔탈과 함께 켐프를 도와주러 출정했다. 그러나 때는 늦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토르 하머에 직격당해 폭발했고 켐프는 전사했으며 원정군은 섬멸당해 수백 척만 남아 있었다. 부상당한 채로 패잔병을 이끄는 나이트하르트 뮐러 대장으로부터 켐프의 부고를 들은 미터마이어는 전우의 명복을 빈 뒤 곧바로 휘하 제독들에게 복수전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대로 패잔병을 뒤쫓는 동맹군 응웬 반 티우 소장과 산도르 알라르콘 소장을 로이엔탈과 함께 섬멸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응웬과 알라르콘은 일방적으로 털리다가 전사했고, 미터마이어는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는 동맹군을 보고 "이놈들이 정말로 양 웬리의 부하란 말인가?"라고 어이없어했다. 이후 양 웬리 대장이 지휘하는 본대가 등장하자 로이엔탈과 협력하여 빈틈없이 후퇴했다.

전투가 끝나고 켐프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 미터마이어는 친구와 함께 세상 이야기나 나눌 생각으로 술병을 들고 로이엔탈의 관사를 방문했다. 그런데 로이엔탈은 술에 취했는지 미터마이어에게 "라인하르트는 부하를 소모품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요지의 불만을 쏟아냈다. 친구가 주군에게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란 미터마이어는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하며 이 일을 밖에 이야기하지 않았다.

6.2.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페잔 자치령과 결탁한 문벌귀족 잔당들에 의해 에르빈 요제프 2세가 납치되자, 라인하르트는 귀족 잔당과 결탁한 자유행성동맹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선전포고한다. 가장 먼저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이 이제르론 요새를 공략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그러자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에게 즉각 로이엔탈을 도울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페잔 자치령 침공 계획을 숨기기 위한 연극이었고, 미터마이어는 이제르론으로 가는 척 하면서 페잔으로 진격한다. 그리고 어리둥절해하는 부하들에게 이번 작전의 진짜 목표를 공개하며 사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미터미아어는 달갑지 않았지만 페잔 방면으로 진격하며 마주치는 민간선들을 나포하고 이에 불응하면 격침시켜 최대한 은밀하게 페잔에 접근했다. 페잔 위성궤도에 도착한 미터마이어는 중앙우주항을 점령하여 임시 사령부로 삼고, 페잔의 주요 거점과 동맹 판무관 사무소, 페잔 항로국 등을 차례차례 점거했다. 율리안 민츠가 데이터를 파기하고 도주한 탓에 동맹 판무관 사무소에 보관되어 있던 동맹령 데이터를 입수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페잔 자치령을 제압하여 데이터를 확보했기 때문에 큰 실책은 아니었다. 페잔을 장악한 미터마이어는 정당한 이유없이 가격을 올리거나 물건을 팔지 않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고 선언하여 페잔의 경제 혼란을 수습하나, 제국군 병사 몇 명이 페잔의 민간인 여성에게 약탈과 폭행을 일삼다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2] 미터마이어는 해당 병사들의 직속 상관들이 관대한 처분을 간청했다는 보고에 대해 "분명히 안된다고 경고했을텐데? 한번 더 그딴 요구를 했다간 그들도 같이 처형시키겠다!"다며 단호히 거부하고 문제의 병사들을 페잔 한복판에서 공개처형을 해버렸다.

우주력 799년 새해가 밝자 미터마이어는 선봉대를 맡아 가장 먼저 동맹령에 진격했다. 그리고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과 교전했는데, 폭주하는 동맹군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이후 동맹군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는 최대한 버티기로 일관했기 때문에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고, 라인하르트는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를 투입하여 동맹군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양 웬리가 등장하면서 동맹군 완전섬멸은 실패한다. 이후 동맹정부로부터 재량권을 위임받은 양 웬리가 미쳐날뛰면서 제국군 수송선단을 섬멸하고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바렌을 차례로 박살내자 미터마이어는 "1개 함대로 아군을 희롱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우주력 799년 5월 라인하르트는 동맹령 어딘가에 숨어있는 양 웬리를 끌어내어 섬멸하기 위해 자신이 바라트 성계로 진격하여 출동한 양 함대를 상대하는 사이, 동맹령 각지를 공략하러 나간 제독들이 돌아와 양 함대를 포위섬멸하는 작전을 세웠다. 미터마이어는 이번 작전에서 엘류세라 성역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았고, 제독들 중 가장 먼저 우르바시를 출격했다. 그러나 막상 붙어부니 라인하르트가 고안한 기동적 종심방어진은 양 웬리의 속임수에 의해 깨져버렸고, 미터마이어가 즉시 돌아간다 쳐도 그 전에 라인하르트가 먼저 전사할 정도로 전황이 악화되었다. 그런데 고속순항함을 타고 엘류세라 성역으로 달려온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 백작영애는 버밀리온 성역으로 달려가서 라인하르트를 구하는 대신 바라트 성계를 공략하여 동맹정부의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고 미터마이어를 설득했고, 미터마이어는 고심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목표를 정한 미터마이어는 인접한 리오베르데 성역을 공략 중인 로이엔탈과 함께 바라트 성계로 진격했고, 동맹정부를 상대로 정전을 요구하는 고압적인 통신문을 보낸 뒤 극저주파 미사일을 발사하여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 청사를 날려버렸다. 최고평의회 의장 욥 트뤼니히트는 수도가 제국군의 공격에 의해 불바다가 되는 걸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전 요구를 수락했는데, 정작 미터마이어는 동맹 권력자들을 한심하다고 비웃었다. 이후 라인할트가 제국으로 돌아와 로엔그람 왕조를 건국하자 미터마이어는 제국원수로 승진하여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취임했다.

7. 제국원수

7.1.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이 터지자 미터마이어는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의 추태에 탄식했다. 그리고 군 고관들이 모인 회의에서 밀고자들의 처단을 주장하는 뮐러의 주장을 지지했다.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국가의 안전과 미래의 화근을 제거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모략이라고 옹호하자 미터마이어는 국가는 모략이 아니라 신의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비록 적이지만 명장이라고 부를 만한 양 웬리에게 예의를 갖추지는 못할망정 밀고와 모략으로 제거한다면 후세에 무엇으로 변명하겠나고 반박했다. 오베르슈타인이 2년 전 립슈타트 전역 때 리히텐라데 공작을 숙청한 건을 꺼내서 비꼬자 미터마이어는 더더욱 분노했지만 로이엔탈이 대신 반박했다.

로이엔탈의 반론과 메크링거의 발언이 이어지고 오베르슈타인이 양 웬리와 부하들이 황제의 대리인인 렌넨캄프를 납치한 죄를 물어야 한다고 역설하자 미터마이어는 그 역시 밀고 따위를 믿어 증거 없이 양을 처단하려 한 렌넨캄프의 잘못이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하이드리히 랑이 렌넨캄프를 비판하는 것은 황제를 비판하는 것과 같다고 재반박하자 분노한 로이엔탈이 노성을 질러 랑을 회의실에서 쫓아냈다.

이후 오베르슈타인, 로이엔탈 등과 계속 의견을 주고받다가 황제가 '대친정'을 선언하자 미터마이어는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의 뒤를 이어 2진으로 동맹령에 진입했다. 동맹 정부는 윌리엄 오데츠를 특사로 보내어 철군 교섭을 시도했지만 미터마이어는 회담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부하들이 황제를 모욕한 오데츠를 사살하려 하자 단 한마디로 저지하고, 오데츠를 철군 요구를 거부했다. 그리고 동맹군 조병창이 있는 행성 루지아나를 습격했고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도 제국군 본진으로 돌진하는 동맹군 본대와 교전했다.

결국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패배한 동맹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하이네센은 제국군이 점령한다. 그런데 하이드리히 랑이 로이엔탈의 관사에 있던 엘프리데 폰 콜라우슈를 근거로 로이엔탈을 탄핵하자, 미터마이어는 연금된 로이엔탈과 만나려 했지만 부하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그리고 어전회의에 출석한 로이엔탈을 필사적으로 변호하며 랑을 탄핵했다. 라인하르트가 로이엔탈의 죄를 묻지 않고 노이에란트 총독에 임명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동맹이 멸망하고 회랑 전투가 벌어지자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에게 황제가 굳이 친정할 필요는 없다고 진언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듣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자 미터마이어는 선봉으로 양 함대와 교전했지만 혼란에 빠진 통신망과 양 함대의 교묘한 용병 탓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황제 곁에서 물러나 기함 베어볼프를 타고 혁명군과 교전했는데, 교전 도중 기함 베어볼프가 피탄당해서 죽을 뻔했다. 베어볼프가 피탄당하자 제국군 진영에는 미터마이어 원수가 전사했다는 오보가 퍼졌는데, 미터마이어는 직접 총기함 브륀힐트 생존을 알리는 통신문을 보내 동요를 가라앉혔다.

대친정이 양 웬리의 죽음과 함께 끝나자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과 술잔을 나누며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누고,[3] 양 웬리의 뒤를 이어 혁명군 사령관이 된 율리안 민츠에게 고생이 많겠다고 동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내 에반젤린 미터마이어에게 편지를 쓴 뒤 라인하르트와 함께 페잔으로 귀환했다.

7.2. 노이에란트 전역

페잔으로 돌아온 미터마이어는 가장 먼저 우주항에 마중나온 에반젤린 미터마이어와 재회하고 라인하르트가 있는 총본영을 방문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페잔 대상인이 소유한 호화로운 관사를 거절하고 총본영과 가까운 2층집을 빌려 관사로 삼았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베스터란트 유족에게 암살당할 뻔한 사건을 계기로 예술에 문외한이 제국군 제독들을 공연이나 미술관에 데리고 다니자 미터마이어는 우주함대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라인하르트의 초대를 거절한 뒤 제3자인 척 "통치자는 예술에 돈만 대면 그만이지, 쓸데없이 관심 가져서 가짜 예술가들 배를 불릴 필요는 없다"고 말했는데, 그걸 들은 뮐러는 그렇게 식견이 높으면 자기 대신 전위음악회에 따라가 달라고 탄식했다(...). 물론 현명한 미터마이어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의 공무를 핑계로 부관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을 대리로 내보냈다.

그렇게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는 듯 했지만 로이엔탈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처음에는 미터마이어도 음모가들의 모략이라고 치부했지만, 우르바시 사건으로 루츠 상급대장이 죽자 사태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궁지에 몰린 로이엔탈은 황제 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하는 간신들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겨우 페잔으로 돌아온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에게 사태 진압을 명령했다. 미터마이어도 처음에는 반란 발발을 전하는 부하들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사태가 일목요연하여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미터마이어는 어떻게든 로이엔탈을 변호하고 최대한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려고 했지만 라인하르트의 의지가 매우 강경했고 로이엔탈 역시 미터마이어가 제안한 화평을 거부하면서 어쩔 수 없이 친구를 토벌하러 출정했다.

미터마이어는 특기인 급속 행군으로 로이엔탈이 짠 방어작전을 무력화시키고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로이엔탈이 지휘하는 노이에란트 치안군 전군과 교전했다. 전투 자체는 양측 지휘관의 실력이 엇비슷해서 무승부로 끝나는 듯 했지만 이제르론 회랑을 통과한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이 하이네센 방면으로 움직이자 로이엔탈이 먼저 후퇴하면서 미터마이어의 승으로 끝났다. 미터마이어는 로이엔탈이 재정비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사심을 버리고 추격을 명령했고, 몇 차례 교전에 벌어졌다. 그런데 알프레트 그릴파르처 대장이 배신하여 로이엔탈을 공격하자 미터마이어는 그릴파르처의 추태에 격노했다. 그릴파르처의 배신으로 로이엔탈 군을 와해되고, 미터마이어는 올해 안에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하이네센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그가 총독부에 왔을 때 로이엔탈은 이미 부상이 악화되어 죽어있었다.

친구의 시신을 본 미터마이어는 자신의 군용 망토로 시신을 덮어주었고, 로이엔탈이 남긴 아기와 하인리히 람베르츠를 데리고 페잔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로이엔탈의 아기를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입양하고, 에반젤린과 함께 펠릭스 미터마이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이 즈음에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가 사의를 표하면서 차기 국무상서로 천거되었는데, 미터마이어 본인은 정치와 연이 없어서 크게 당황했지만, 그 소식을 전해준 바이어라인은 "미터마이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베르슈타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여서 거절할 수도 없었다.

7.3. 시바 성역 회전

우주력 801년 라인하르트가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이에란트로 향할 때 미터마이어도 따라가 보좌했다. 그리고 이제르론 혁명군이 군사행동을 벌이고 라인하르트가 친히 이제르론을 치려고 하자 뮐러와 함께 만류했다. 미터마이어는 페잔에 있는 황후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와 황자 알렉산더 지크프리트 폰 로엔그람을 봐서라도 후방에서 아군을 독전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도 처자식이 있는데 위험을 자처하냐고 반박했고, 미터마이어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시바 성역 회전이 벌어지자 미터마이어는 선봉대로 가장 먼저 발진하여 혁명군과 겨룰 전장을 설정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자 선봉에서 혁명군의 공세를 강건하게 맞받아쳤는데, 도중 '카이저 혼절'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터마이어는 혼란에 빠진 부하들을 질타하고 적에게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통신망을 일부 폐쇄하고 메크링거의 요청을 받아 브륀힐트로 자리를 옮겼으며, 라인하르트로부터 병권을 위임받아 전군을 지휘했다. 그런데 미터마이어가 황제의 혼절로 잠시 혼란에 빠진 사이 혁명군은 소수 강습부대를 동원하여 기함 브륀힐트를 공격했고, 미터마이어는 마치 퇴각하는 것 처럼 보이던 혁명군의 움직임에 낚여 진형을 흐트러뜨리고 말았다. 흐트러진 진형 사이로 혁명군 함정들이 난입하여 브륀힐트를 공격하고, 로젠리터 연대가 탑승한 강습양륙함 이스트리아가 브륀힐트와 충돌했다.

기함에 침입한 혁명군 병사 중에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가 있다는 뮐러의 보고를 받은 미터마이어는 바로 황제의 방을 나가려고 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이를 제지했다. 미터마이어는 혁명군이 라인하르트의 몸을 노리고 있다는 점, 침입한 적병 중 사령관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방치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라인하르트는 양 웬리의 후계자라면 지혜는 몰라도 용기는 비범할 것이니 만약 그자가 자신의 앞까지 온다면 교섭할 수 있다고 말한 뒤 다시 누웠다. 결국 미터마이어는 황제의 명에 따라 혁명군이 쳐들어오는 걸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율리안이 정말 라인하르트 앞으로 오자,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의 명에 따라 전군에 전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전투가 끝나구 뒤늦게 황제 병환 소식을 안 비텐펠트가 분노하자 미터마이어는 차분하게 이유를 들며 자숙하라고 다독였다.

7.4. 벨제데 임시 황궁 습격사건

페잔으로 돌아온 라인하르트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자 벨제데 임시 황궁에 모인 제독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비텐펠트가 가장 먼저 격발하고 바렌이 노성을 지르며 맞받아치려고 하자 아이제나흐가 물을 퍼부어 사태를 진정시키고, 미터마이어는 비텐펠트를 나무랐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부탁을 받아 임시 황궁을 빠져나와 아내와 자식을 데리러 갔는데, 폭우 때문에 교통정체가 생겨 차 안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날씨가 잠시 맑아지고 임시 황궁에 잠입한 지구교도들이 모두 소탕되자 미터마이어는 그제서야 임시 황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아들 알렉산더에게 대등한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으니 부디 들어달라고 부탁했고, 미터마이어는 펠릭스에게 알렉 폐하에게 충성을 맹세하라고 말했다. 펠릭스와 알렉산더는 서로 마음에 들었는지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미터마이어가 무례를 저지를까 우러하여 떼어놓으려 하자 울음을 터뜨렸다. 이후 중신들과 함께 라인하르트의 최후를 지켰다.

황제 사후 넋이 나간 미터마이어는 펠릭스가 "아빠!"라고 부르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미터마이어는 임시 황궁 앞뜰로 나와 아들에게 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가 에반젤린과 함께 임시 황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장면을 끝으로 은하영웅전설도 막을 내린다.
[1] 無名之師. 대의명분이 없는 무지한 전쟁을 뜻하는 말. [2] 원작에서는 성폭행으로 묘사되며 사건 이후 미터마이어가 직접 피해 여성을 찾아가 사과했다. 애니판에서는 폭행으로 순화, 여기에 OVA판에서는 그 병사들을 자기 자기 손으로 총살해버리고 싶었을 정도라며 격한 분노를 표출한다. [3] 이때가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술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