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4-02 08:19:35

번릉


후한의 태위
{{{#!wiki style="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ece5b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81818,#e5e5e5
1대

조희
2대

우연
3대

조희
4대

모융
5대

포욱
6대

등표
7대

정홍
8대

송유
9대

윤목
10대

장포
11대

장우
12대

서방
13대

장우
14대

이수
15대

사마포
16대

마영
17대

유개
18대

양진
19대

풍석
20대

유희
21대

주총
22대

유광
23대

방참
24대

시연
25대

방참
26대

왕공
27대

환언
28대

조준
29대

이고
30대

호광
31대

두교
32대

조계
33대

원탕
34대

호광
35대

황경
36대

호광
37대

황경
38대

유구
39대

양병
40대

진번
41대

주경
42대

유구
43대

문인습
44대

유총
45대

곽희
46대

문인습
47대

이함
48대

단경
49대

진탐
50대

허훈
51대

유관
52대

맹욱
53대

장호
54대

진구
55대

교현
56대

단경
57대

유관
58대

허욱
59대

양사
60대

등성
61대

장연
62대

장온
63대

최열
64대

조숭
65대

번릉
66대

마일제
67대

유우
68대

동탁
69대

황완
70대

조겸
71대

마일제
72대

황보숭
73대

주충
74대

주준
75대

양표
76대

가후
※ 둘러보기: 한의 대장군 (大將軍) · 후한의 대사공 (大司空) · 후한의 대사농 (大司農) · 조위의 태위 (太尉) · 조위의 사도 (司徒) · 조위의 사공 (司空) · 손오의 승상 (丞相) · 촉한의 재상 (宰相) }}}}}}}}}}}}}}}

1. 개요2. 창작물에서

1. 개요

樊陵
(? ~ 189)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덕운(德雲)으로 번영[1]의 손자.

형주 남양군 호양현 사람으로 이응의 문하생이 되려다가 거절당했으며, 182년에 하남윤을 지냈고 영락소부를 지내다가 환관에게 뇌물을 바쳐 188년 5월에 태위가 되었다가 6월에 파직되었다. 환관들이 189년에 하진을 죽이자 사예교위에 임명되었다가 8월에 원소가 군사들을 이끌고 궁궐을 공격하자 환관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십상시의 난 때 후한서 효영제기에서는 원소가 억지로 병사를 수습해 번릉, 허상을 비롯해 환관들을 나이에 관계없이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고 후한서 하진전에서는 가짜 사예교위라는 서술과 함께 원소와 원외가 조서를 고쳐 허상과 함께 참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십상시들이 기습적으로 하진을 죽이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반 환관파의 거물이었던 원소와 왕윤이 제각기 사예교위, 하남윤을 맡아 수도를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하진을 살해한 직후 원소, 왕윤을 역적으로 몰아 지휘권을 박탈하고 수도의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인사로 여겨지나 원소에게 선공을 맞아 당한 것으로 보인다.

부자(傅子)에서 영제 때 관직을 팔아서 산 사람으로 단경, 최열, 장온과 함께 무리라고 하면서 뇌물로 벼슬을 사들였다고 언급되며, 번릉은 능히 때를 잘 맞추어 재능이 뛰어남에도 뇌물을 써서 지위를 취했다고 평가되었다.

2. 창작물에서

삼국지 천도의 주인에서는 조충의 일파로 영락소부로 있다가 광록대부를 지냈는데, 흑산적의 난이 끝나면서 정원, 공융을 탄핵했다. 정원은 목야로 오라는 유성의 군령을 어긴 항명, 공융은 유성에게 역모를 뒤집어씌운 무고로 탄핵한 것이다.

정원은 하진의 영도 받았다는 것이 참작되어 관직을 강등되는 선에 그쳤는데, 공융은 강한 처벌을 받을 뻔 했지만 유성이 무죄를 주장해 공융은 처벌받지 않을 수 있었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아 소면호(笑面虎)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마음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든 항상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할 정도로 영악한 것으로 나오며, 조숭의 저택에 찾아와 자주 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나온다.

십상시들이 세력이 약해지자 사직하자는 조숭의 권고에도 관직에 남아있다가 십상시의 난 때 하진의 군사들에게 붙잡히면서 조숭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울부짖다가 사망한다.


[1] 樊英, 경씨학을 익힌 사람으로 후한서 방술열전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