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 후한의 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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郭禧
(? ~ 179)
후한 말의 인물. 자는 군방(君房). 곽궁의 종손.
예주 영천군 양책현 사람으로 예석의 기록과 다르게 후한서 주석에는 자가 공방(公房), 부구현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업으로 법률을 공부하면서 유학에 통달해 명성이 있었으며, 연희 연간에는 정위를 지내고 이후에는 태복을 지내다가 169년 겨울 10월에 일식이 일어나면서 11월에 유총이 태위에서 면직되자 후임으로 태위가 되었다. 170년 3월에 일식이 일어나자 여름 4월에 태위에서 파직되어 후임으로 문인습이 임명되었다.
178년에 2월에는 일식, 지진이 일어나고 여름 4월에 또다시 지진이 일어났으며, 5월에는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덕양전 문으로 들어왔으나 도망쳐 잡지 못했다고 한다. 6월에는 검은 기운이 황제가 있는 온덕전 뜰 안에 내려앉았으며, 7월에는 푸른 무지개가 옥당 후전 뜰 안에서 보였다고 한다.
요상한 이변들이 자주 발생하자 영제가 조서로 채옹, 양사, 마일제, 장화, 선양 등을 시켜 금상문으로 숭덕전에 들어오게 해 조절, 왕보 등을 시켜 재해와 이상 현상들을 없앨 방법을 묻게 하면서 특별히 조서로 물어보게 했다. 채옹이 이에 대한 상주를 하면서 간신들 대신 정직한 신하들이 대신 국사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는 내용의 상소에서 정직한 신하들을 말하는 부분에서 순박하고 충실하며 노련하다고 언급되었다.
채옹이 올린 상소에 따르면 178년에는 정위를 지냈으며, 179년 여름 5월에 태중대부를 지내던 중에 사망했다.
같은 군현 사람인 곽가는 종족의 후예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