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시대에 설치되었던 관직으로, 주례에서 추관사구(秋官司寇)의 속관 중 하나였던 사예(司隸)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우리나라로 예를 들면 서울특별시장 겸 경기도지사 + 수도방위사령관 + 감사원장 정도로 볼 수 있다.[1]
정원은 1명으로 품질(品秩)은 비이천석(比二千石)이다. 처음 설치된 시기는 전한 무제 때였는데 지절(持節)로서 조정 백관들과 경사(京師) 및 인근 군현의 범법자를 감찰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사예교위의 일은 자사와 비슷하지만, 자사가 지방 관리를 단속하는 데 비해 사예교위는 중앙 관리를 단속하기에 자사보다 격이 높았다. 이때 사예교위는 어사중승·상서령과 함께 "삼독좌"(三獨座)라고 불렀다.
원제 때 지절을 없애고, 성제 때 관직을 없앴는데, 광무제가 중흥하고 건무 연간에 다시 설치하였다. 속관으로 종사(從事史) 12명과 가좌(假佐) 25명이 있었다. 백관 중에 범법자를 감찰하는 도관종사(都官從事) 1명, 주(州)의 인사 등을 담당하는 공조종사(功曹從事) 1명, 사예교위의 순찰 등을 담당하는 별가종사(別駕從事) 1명, 재물과 곡식 등의 장부를 담당하는 부조종사(簿曹從事) 1명,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조종사(兵曹從事) 1명, 소속 7개 군과 관련되어 문서와 범법을 감독하는 군국종사(郡國從事)가 각 행정단위마다 1명씩 하여 총 7명 있었다.
소속된 행정구역으로 삼하 (하남윤, 하내군, 하동군)와 홍농군, 삼보 경조윤, 좌빙익, 우부풍)의 7개 군과 그 산하의 현, 읍, 후국 총 106처가 있었다. 이 중 하남윤은 후한의 도성인 낙양의 소재지이고, 경조윤은 전한의 도성인 장안의 소재지이다.[2]
삼국지에서는 원소와 조조 등이 한때 이 관직을 지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촉한에서는 장비와 제갈량이 사예교위였다.
[1]
광무제가 내린 조서에 따라 조정의 회의 때, 어사중승(御史中丞), 상서령(尚書令)과 함께 별도의 자리에 앉았으므로 "삼독좌(三獨座)"라는 별칭이 있었는데, 지금의 서울특별시장이 국무회의 때 배석할 수 있는 것과 흡사한 면이 있다.
[2]
하남윤과 경조윤은 행정구역의 명칭이면서 해당 구역의 장관의 관직명으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