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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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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e Cooker

1. 개요2. 역사3. 종류
3.1. 전통 솥3.2. 압력솥3.3. 전기밥솥
3.3.1. 전기압력밥솥
3.4. 기타 솥
4. 왕권의 상징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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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을 짓는 솥.

대략 20세기 말까지는 밥솥하면 가마솥을 의미했지만 전기밥솥이 가정으로 널리 보급된 21세기에는 보통 전기밥솥을 의미한다.

대개는 밥짓기 전용의 솥을 의미하지만 밥솥으로 꼭 밥만 하지는 않는다. 사실 압력솥 하나만 있어도 찌거나 삶는 방식의 거의 모든 요리를 집에서 다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수육이나 삼계탕 등도 압력솥으로 조리하면 맛이 훨씬 좋아진다. 심지어 케이크도 만들 수 있으며 아예 압력솥으로 닭튀김을 만드는 식당도 있다.[1]

2. 역사

솥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오랫동안 사용된 물건이다. 다만 무쇠로 만든 가마솥은 서민들에게 보급된 것이 생각보다 늦어서 삼국시대 후기부터 서민들에게 점차 보급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는 토기나 돌로 솥을 만들었다. 솥이 보급됨에 따라 단순히 곡물을 으로 만들어먹거나 쪄먹던 수준에서 을 지어 먹을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1960년대 이전까진 가마솥이 밥솥으로 널리 쓰였다. 아직도 솥뚜껑이라고 하면 넓고 둥그렇고 무거운 가마솥용 무쇠 뚜껑을 떠올릴 정도로 많이 쓰였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에 한국에 알루미늄 주물 방식의 압력솥이 출시되자 가마솥은 가볍고 연료도 덜 쓰는 압력솥에 밀려 사용량이 줄어들었고 도심에서는 전문 한식당이나 무쇠솥밥을 좋아해 일부러 쓰는 집 아니면 찾아보기도 어려워졌다. 일부 시골 마을에선 간간히 쓰는 집도 보이는 편이긴 하지만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압력밥솥보다도 월등히 편리한 전기밥솥이 나왔지만 초기엔 밥맛이 별로였기 때문에 외면받았으며 일부에서 보온용으로나 쓰였다. 하지만 전기밥솥에 압력밥솥의 장점을 결합한 전기압력밥솥이 나오면서 밥맛을 높이는 데 성공하고, 계속 지켜볼 필요가 없어 집안일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을 크게 줄여주면서 밥맛까지 좋고, 음성 지원, 예약 취사 등의 다양한 기능도 갖추게되자 여성의 경제활동 및 독신 인구 증가와 맞물려 사용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다만 즉석밥의 발달로 독신에서는 수요가 주춤해진 상태이다.

3. 종류

3.1. 전통 솥

전근대 이전까지 한국의 부뚜막을 100% 차지했던 부엌의 안방마님. 솥은 솥인데 가마(아궁이에 불을 때어 열을 가하는 시설)에 얹힌 솥은 '가마솥'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가마와 결합되지 않으면 그냥 솥이다. 용도는 취사 전반으로, 뚜껑으로는 지짐 요리 전반을, 솥으로는 국물 요리와 주식인 을 취사하는 용도로 많이 쓰였다. 막걸리 등 도수가 낮은 술을 담은 후 불을 때면서 뚜껑을 뒤집어 얹고 찬물을 부어 뚜껑에 맺힌 진한 술이 꼭지로 모이고 솥 가운데 놓은 그릇에 떨어지게 하는 간이 술 증류기로 쓰기도 했다. 전근대 사회의 한 식구나 다름없는 소의 식사인 소죽을 끓일 때도 가마솥에 쑤었다.

솥은 삼국시대부터 쓰였다고 추정되는데 불을 때지 않아도 밥이 되는 신기한 솥 얘기가 삼국사기에 나온다.[2] 이 즈음까지는 토기로 만들어졌으나 이후부터 무쇠로 주조되어 한민족이 애용하였다. 현대에야 시골을 가도 더 이상 보기 힘들 지경이다. 주조 방법으로 만들기 때문에 크게 만들 수는 있지만 재질이 무쇠인 특성상 충격에 잘 깨진다는 단점이 있다. 충북 보은 법주사에 가면 수백 명분 밥을 한 번에 지었다는 거대한 솥이 있다.

무쇠로 만든 솥은 지역마다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파일:external/www.heritagechannel.tv/11101811102673.jpg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 기념으로 지은 절인 개태사에는 거대한 솥 문화재가 있다.

전통적인 밥솥을 구매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재질을 고려해야 한다. 무쇠 솥은 자주 사용하지 않고 방치해 둘 경우 금방 녹이 슬어서 밥에서 녹내가 나 버리기 때문이다. 이따금 쓸 솥이라면 그냥 스테인리스강으로 된 값싼 밥솥을 사자.

무쇠 솥뚜껑은 불판용으로 고깃집에서 많이 쓰인다. 심지어 주물 공장에서는 고기 구이 용도로 쓰이는 적당한 크기의 솥뚜껑만 따로 만들기도 한다. 지금이야 프라이팬이 싸고 흔한 물건이지만 옛날에는 명절이나 제사 등에 전이나 부침개는 솥뚜껑을 거꾸로 뒤집어 부쳤다. 뒤집은 모양이 과 유사하므로 기름으로 볶고 튀기는 것에 적합하다. 뚜껑을 뒤집어서도 사용하고 반듯이 놓고도 사용하는 만능 조리도구다.

이것을 표현한 한자로 (가마 부)자가 있는데 부산광역시(釜)의 '부'가 바로 이 글자다. 동구 좌천동 금성중학교 뒷산인 ' 증산(山)'이 가마솥 모양인 것에서 따 온 것이다.

가마는 일본어로도 가마([ruby(釜, ruby=かま)])라 말한다.[3] 한국과 달리 일본의 가마 뚜껑은 나무로 되어있다.

3.2. 압력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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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전기밥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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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전기압력밥솥

3.4. 기타 솥

돌솥, 뚝배기 등으로도 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돌솥밥이 나오는 식당은 대부분 돌솥에 바로 바로 밥을 한다오 보면 된다. 도저히 급하거나 일반 자취생이면 일반 냄비[4]에도 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냄비는 불조절에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4. 왕권의 상징

특히 고대 중국에서는 솥이 황제의 상징 중 하나였다. 이때의 '솥'은 정()이라고 하여 위에서 묘사된 부뚜막에 거치해 놓고 쓰는 가마솥이 아니라 다리가 셋 달려 아래에서 불을 피우도록 세워놓을 수 있는 특수한 조리 도구였다. 하늘이나 귀신에 제사지낼 때 바치는 제물을 삶는 데 쓰이는 제기였고 고대 중국에서는 궁극적으로 천자가 나라를 대표하여 조상신이나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솥이 천자를 상징했던 것이다. 이에 얽신 고사가 있는데 전국시대 초나라의 장왕은 다른 제후국들과 달리[5] 호칭에 '왕'을 사용하며 군사력으로 위세를 부렸다. 오랑캐를 정벌한 후 의도적으로 주나라 가까이에 대군을 배치해 일종의 무력 시위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주나라 천자는 차분히 대처했다. 오랑캐 정벌의 공을 치하한다는 명목으로 사신 왕손만을 초장왕에게 보냈는데 장왕은 그 사신에게 "솥의 무게가 얼마나 나갑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사신은 "그런 것은 묻는 게 아닙니다."라고 답했고, 이에 장왕은 다시 "우리 초나라에서는 철이 많아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솥을 서너 개는 만들 수 있소."라고 답했다.

지극히 외교적 수사법인데 이를 풀이해 보면
그러나 주나라의 사신이 이에 굴하지 않고 "덕이 있다면 구정은 작아도 무거운 법이고, 간사하고 사악하면 아무리 커도 가벼운 법입니다. 주나라가 쇠하긴 하였지만 천명은 아직 바뀌지 않았습니다. 솥의 경중을 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즉, 천자의 권위는 힘이 아니라 덕과 명분에 기인하며 초나라가 강성하다고는 하나 군사력만으로 그 권위를 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초장왕도 이를 인정하고 물러섰다.

고사성어 중에 ' 문정경중()'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의 일화에서 초나라 장왕이 주나라 사신에게, 주나라 천자가 인간 대표이자 종손으로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상징인 구정(제물을 삶는 거대한 솥)의 무게를 물어본 사건에 빗대어 천하의 무게를 묻는다(=천하 패권을 넘본다)는 뜻이다.

소설 및 드라마 상도에서도 홍경래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임상옥을 회유하기 위한 장치로 이 솥의 무게가 어떠한지 물어보고, 임상옥은 교묘하게 다리 하나를 부러뜨려 거절 의사를 우회적으로 표시한다.

황제의 상징으로서의 솥은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에 많이 남아 있고, 중국 베이징에 있는 자금성에는 레플리카가 건물 앞에 많이 널려 있다.

진나라의 무왕이 이걸 힘자랑이랍시고 들어보다가 하체를 다쳐 그만 급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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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타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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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FC의 창업자인 커넬 샌더스도 압력솥을 이용하여 닭튀김을 만들었다. [2] 고구려 대무신왕 부여 정벌 도중 얻은 솥인데 이 솥의 주인이 직접 솥을 짊어지고 고구려군과 동행했고 상으로 '부정'이란 성씨까지 하사받았다. 그러나 이 신기한 솥은 부여군과 전투 도중 잃어버리고 말았다. [3] 통용 표기로는 카마 [4] 라면 냄비 같은 것 [5] 제나라, 조나라 등의 군주는 형식상으로는 주나라 왕의 제후였기 때문에 '공'이란 호칭을 사용했다. [6] 나는 자연인이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에서 동네 뒷산에 있는 임산물을 채취하거나 벌목 장면을 내보낼 때 항상 나오는 문구가 바로 '소유주의 허락을 받고 하는 행위이다.'라는 문구이다. [7] 출전: 웅진출판, "한국의 역사" 시리즈, 20권 "생활사 도감 2". [8] 두 전동차 모두 현대로템에서 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