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5:43:20

박준영(법조인)

박준영
朴俊映 | Park Jun-yeong
파일:external/topclass.chosun.com/1610_016.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1974년 10월 29일 ([age(1974-10-29)]세)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면
(現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
학력 노화중학교 ( 졸업)
노화종합고등학교 ( 졸업)
목포대학교 ( 전자공학 / 중퇴)
직업 변호사
약력 제44회 사법시험 합격
제35기 사법연수원 수료
변호사 박준영 법률사무소 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 법률구조단
가족 아내, 자식들
수상 한국청소년 상담원 표창 (2010)
여성가족부 장관 표창 (2011)
제8회 노근리 평화상 인권상 (2015)
제3회 변호사 공익대상 개인부문 (2015)
헌법재판소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 (2016)
아산상 자원봉사상 (2017)
제1회 대한민국 법무대상 특별상 (2018)
제15회 영산법률문화상 (2023)

1. 개요2. 생애
2.1. 재심 전문 변호사로2.2. 사실상 파산과 재기
3. 대표 사건4. 기타 활동5. 대중매체
5.1. 영화 재심
6.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변호사.

2. 생애

1974년 10월 29일,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면(현 완도군 노화읍)에서 태어났다. 노화중학교, 노화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목포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으나 1학기만 다니고 중퇴했다.[1] 즉, 몇 안되는 고졸 출신 변호사 중 하나.[2] 박준영 변호사보다 기수 후배인 고졸 법조인은 단 3명뿐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착실했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등 가정의 불행으로 고등학교 시절엔 문제아였다고 한다. 가출하고 돈을 벌던 참이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만은 따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마음을 잡아 졸업하고 가까스로 대학에도 진학한다. 그러나 군대를 갔다 와서 대학을 자퇴하고 사법시험 준비를 하게되는데, 그 계기가 자기보다 잘난 것도 없던 친구들이 "행세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인생 역전을 항상 꿈꾸던 중, 군대에서 만나 친해진 선임이 법대생이었는데 제대하고 바로 사법시험을 준비할 거라는 말을 듣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제대를 하자, 본인보다 먼저 제대하고 이미 고시촌에서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선임에게 연락하고 찾아가 함께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한다.[3] 이후의 모습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본인은 이 결정 이후 정말 죽도록 고생을 했다고 한다. 법대생들의 고시 공부 타입상 한 학기 고시 공부하고, 한 학기 대학다니는게 정석이라 선임이 고시 공부 시즌이 끝나고 복학 시즌이 되어 떠나게 되자 선임의 고시원에 얹혀 살던 박준영은 혼자 공부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서 상당히 힘들어졌다고. 이후에도 몇번의 불합격을 겪으면서, 정말 극한의 고통을 느끼며 살면서도 목숨 건 노력으로 버텨서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4]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6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35기. 이후 수원시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2.1. 재심 전문 변호사로

그런데 2007년,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국선변호인으로서 변호하게 된다. 처음에는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리고 변호사 일에 도움이 될까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사건을 맡고는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여[5] 진지하게 할 마음이 없었고 솔직히 초반 한달 정도는 스스로 생각해도 성의도 별로없게 조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의 충격을 받고 태도가 점점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건 바로 누명을 쓴 가출청소년들을 과거에 돌봤던 청소년센터 소장과 선생님이 자신들에게 무고와 억울함을 호소했던 청소년이 있으니 제발 구해달라고 호소를 하자, "그럼 선생님들이 사건자료를 분석하신다면 진지하게 하겠다"고 요구하면서 속으로는 '자기들도 자기들 일로 피곤한데 대충하다가 그만둘거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예상을 완전히 깨버리고, 그 선생님들은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충격을 받았고, 박준영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그들이 퇴근 후, 박준영의 사무실에 와서 수 주간 매일 검찰의 수사기록을 5시간 이상씩 분석해서 의심쟁점을 전부 다 분석한 것이다. 이를 본 박준영은 그들의 필사적 태도에 감동을 받으면서 그 의심가는 쟁점들을 자신도 진지하게 분석하였고, 구치소의 피의자들을 찾아가 사건경위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하였고, 결국 경찰과 검찰의 조작에 의해 그들이 누명을 썼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어 이 일의 진위를 밝히는 것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처음 만났을때와 달리 다음에 구치소에 찾아가 피의자들의 억울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게 되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다고 한다.

중요했던 것은 사건당일 현장인 학교주변 CCTV 영상들이 명확히 있었음에도 경찰이 확보하지 않아 시간이 지나 자동 삭제되게 만들었고, 현장검증 때 피의자들에게 모든 행위를 경찰이 지시했다는 부분이었다. 피의자들에게 너무 세세한 행위들을 경찰이 말로 설명한 뒤 피의자들이 움직이게 시키고 있었다.

수원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사실 피의자들이 폭행한 사람[6]과 살해당한 피해자가 서로 아무상관도 없는 전혀 다른 사람임을 밝혀내, 재심[7]을 이끌어 낸 후 재심 전문 변호사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인간 박준영의 인생 자체를 바꾼 사건으로 스스로 지칭할 정도이며, 그렇기에 다른 재심 사건으로 방송에 나오거나 신문인터뷰를 할때에도 자기 인생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수원 노숙소녀 사건을 스스로 반드시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을 속물[8]이었다고 자칭하였고 사람이 변한다는 것도 잘 안 믿던 사람이었으나, 정말 이 한가지 사건으로 자신이란 사람이 많이 변해가는 걸 느꼈다고 한다.

수원역 재심사건 1심까지는 본인이 공격적으로 나오지 않아졌다고 판단하여[9], 2심에서 처음으로 검찰과 경찰이 사건을 " 조작"했다는 표현을 써서 정식 서면에 기재하여 제출하며 목숨을 걸고 재판에 임했고 자신이 완전히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는 장경욱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변호인단으로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국정원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10]

재심 사건을 많이 맡게 되면서 수입이 줄어들어 이미 사무실 직원도 다 내보내고, 이후에는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는 사무실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들이 수없이 쌓인다고 한다. 인터뷰. 재심이 필요한 힘 없고 경제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은 대개 박 변호사에게 수임료조차 주기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인 반면, 확정 판결 난 사건을 다시 재판해달라고 하려면 엄청난 노력과 준비가 필요[11]하여 다른 영리활동과 병행하기란 불가능하다. 변호사들이 자조 반 농담 반으로 하는 말 중에 "무죄 변론해 달라는 사건이 자꾸만 들어오는 것은 그 사무실이 망할 조짐"이라는 것이 있는데 보도대로라면 딱 그 격언대로 된 셈이다.

2.2. 사실상 파산과 재기

결국 2016년 8월에 사실상 파산을 선언하였다. 이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어 사무실도 정리하였다고. 박 변호사는 고민 끝에 함께하는 박상규 기자에게 요청하여 스토리펀딩을 열었다. 한겨레의 정치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서 한 말에 따르면, 1억 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의 만기 연장이 안 돼서 스토리펀딩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12] 만기 연장만 되었어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다행히 스토리펀딩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호응하여 주었다고 한다. ‘망한’ 변호사에서 ‘희망’ 변호사로 기사에는 3억 원 달성으로 되어 있으나 펀드 마감 기준으로 목표의 567%인 5억 6천만 원도 넘어갔다. 대신, 그는 이런 금전적 도움이 있기 때문에 양심적으로 수임료를 받고 하는 변호 수임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수임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거부하고 있다고. 간단히 말해 변호사 수임을 할 만한 경제적 사정이 되는 사람들에게 하는 변호 대신, 돈과 권력 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법 약자들의 재심을 위한 변호 일만 하겠다는 뜻. 공영방송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수임료를 받는 사건을 맡으면 우선적으로 돈을 낸 사람의 사건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없는 사람을 위한 일을 할 수 없어서 수임료 내는 사건을 거부한다고 한다.

스토리펀딩과 재심을 위해 노력한 경력이 화제가 되면서, 강연 요청, 방송 출연 요청 등이 어느 정도 들어와서 앞으로도 그걸로 수입을 충당하고, 순수 변호사로서의 일은 사법 약자를 위한 재판만을 하며 살 마음이라고 한다. 강연을 한달에 20건 이상 할 때도 있었을 정도로 많이 한다고. 맡고 있는 재심들이 끝나 여유가 생긴 후에는, 100% 재심만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법 약자들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재판에도 무료 변호인으로 나설 마음이 있는 듯.

3. 대표 사건

4. 기타 활동

5. 대중매체

5.1. 영화 재심

(한국일보)'아이콘택트' 박준영 변호사, 영화 '재심' 실제 주역 황상만 반장에게 '진심 사과'

2017년 개봉한 영화 재심의 주인공 변호사의 모델이 되었다. 작중 인물의 이름마저도 '준영'이다. 단, 영화의 경우 실제와는 달리 배경 설정 등에 많은 각색과 사실 왜곡이 들어갔다.

결국 황상만 반장의 행적 삭제에 대해서 이후 박준영 변호사 본인이 직접 황상만을 만나서 재심 영화에서 황상만 반장의 행적이 통째로 날아간 것에 대해 직접 사과하며 황상만 반장의 역할 또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이였음을 밝힌다.[16]

다행히 황상만 반장은 2022년 개봉한 영화 소년들의 주인공의 모티브가 돼서 한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었다.

6. 여담



[1]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밤에 출연했을 때 전자공학과 1학기만 다녔다고 말했다. [2] 고졸 출신 변호사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용삼 전 국회의원 등이 유명한데 역사를 통틀어서도 몇 명 되지 않는다. [3] 그 선임은 실제로 합격해서 법조인이 먼저 되었고 2022년 기준 판사로 근무중이라고 한다. 지금도 연락하는 사이다. [4] 본인의 회고로는 2차 시험에서 단 1점차로 간신히 붙었다고 한다. 당시 2002년이 월드컵 시즌이라 다들 공부가 안되는 시점이었고,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회고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주관식에서 1점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라고... [5] 피의자들이 죄다 경찰과 검사에게 자백을 해버렸기 때문. [6] 멱살잡이(훔친 돈 내놓으라고)를 한 걸 폭행이라고 말한 거라서 당연히 사망하지 않았고, 사망할만큼 과도한 폭행이 아니었고, 나이도 살해당한 피해자와 달리 20대 성인 노숙자였다. 살해당한 피해자는 10대 미성년자 여성이었다. 그리고 사건 일자도 이 폭행사건이 살인사건 2일전으로 전혀 다르다. 그냥 경찰측에서 다른 일반 노숙자들이 "며칠전에 쟤네들이 다른 노숙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욕을 하더라"라는 말을 듣고 살인누명을 뒤집어 씌워 체포 및 입건한 것. [7] 박준영은 재심까지 안 가고 자신이 처음 변호했을때 무죄가 나왔다면 자신이 지금같은 사람이 안 되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본인이 진실을 밝혀냈다고 생각했는데 1심 유죄가 나오자 분노하였고, 피의자들에게 너무 미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법조인생을 걸고 끝까지 가기로 결심하면서 완전히 변해버렸다고 한다. 결국 재심까지 성공해내면서 정신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변호사가 된다. [8] 재심사건을 1개만 성공하면 스타변호사 직행 열차를 탈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9] 재판을 해본 뒤 처음으로 재판에 진 것만으로 너무나 화가 나서 혼자 있을때 눈물이 줄줄 났다고 한다. [10] 아랫 단락에 나오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 의하면 장경욱 변호사에게 아무래도 제대로 낚인 듯. 간단하게 정리하면 장경욱 변호사의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수락한 후 인터넷을 검색하고서 장경욱 변호사의 화려한 경력을 보고 자기가 장경욱 변호사에게 낚인 꼴이란 것을 알았던 셈. 사실 그 전에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했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11] 증인을 30초 접견하기 위해 지방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사실 30초 접견하자고 약속해서 가는 게 아니라, 본인은 증인 한명이라도 더 만나서 증언 좀 구해 보려고 거기까지 고생해서 가는데, 증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미 끝난 사건에 다시 얽히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보자마자 거부하거나 제대로 얘기를 안 해주거나 아예 안 만나 주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거다. 변호사로서는 정말 고난의 행보 그 자체. [12] 그래서 스토리펀딩 목표액도 1억 원이었다. [13] 해당 사건은 재심 결정 이후 김신혜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했으나 2008년 이후 사건만 가능하여 기각되었다. 또한 해남지원 재판부를 기피신청하여 변경 요청하였으나 불공정한 재판을 할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하여 그것도 기각되었다. 한편,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결정 후 김신혜와의 모종의 갈등으로 한 차례 해임되었으나, 관계가 회복되어 2023년 5월부터 재심 공판도 박준영 변호사가 다시 맡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또다시 해임되었다.그런데 재심 구형공판에서 다시 변론변호사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다시 화해한듯 하다. # [14]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사람은 21년도 재심 당시 대통령이었던 문재인 前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15] 엄궁동 사건의 장동익이 보상금을 받으면 아직도 자기 집이 없는 박 변호사에게 그 돈으로 집을 사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16] 당연한게 실제로 황 반장은 영화의 소재가 된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해 1년간 자비를 들여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 기록을 작성했고, 이 기록이 바로 재심 사유가 됐었다. [17] SBS 당신이 혹한 사이2 2021년 9월 30일 방송분에서 언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