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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22:30:16

바야돌리드

바야돌리드 (카스티야이레온)
Valladolid
바야돌리드 (바야돌리드)
Valladolid

스페인어: Valladolid

1. 개요2. 역사3. 기타

1. 개요

스페인 중서부의 도시. 인구는 310,000명으로 스페인에서 13번째로 큰 도시고 레온-카스티야 주의 사실상 주도 역할을 하는 도시다. 피수에르가 강과 에스구에바 강의 합류점 부근에 위치해 있고 도시 이름은 중세 무슬림 군주 알 왈리드의 거주지를 나타내는 벨라드울리드(بلد الوليد)에서 유래되었다.

1469년 스페인 왕국의 발단이 된 이사벨 1세 페르난도 2세 간의 결혼식이 치러졌고 이후 카스티야 연합 왕국 수도가 되는 등 중근세 스페인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5세기~17세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고풍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인 도시로 콜럼버스 박물관이 유명하다.

2. 역사

상고대에는 켈트-이베리아(셀티베로)족이 거주했고 로마 시대에 소규모 병영 도시가 있었다. 기독교화가 이루어지고 서고트 왕국을 거쳤다가 우마이야 왕조의 정복과 이슬람의 도래로 레콘키스타 초기에 황폐화되었다. 920년에 레온 왕국의 군주 오르도뉴 2세는 시민들을 레온 쪽으로 이주시켜 무슬림 세력인 후우마이야 왕조와의 완충 지대를 만들었다.

이후 1072년에 기독교도들이 궁전 등을 세우고 도시를 재건하였다. 바야돌리드는 12세기~13세기를 거치며 무역 특권을 얻어 번영했다. 1346년에는 바야돌리드 대학이 문을 열었고 1469년 10월에는 아라곤 왕국 페르난도 2세 카스티야 연합 왕국 이사벨 1세의 결혼식이 치러져 스페인의 단합이 이루어졌다. 1506년에는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끝까지 자신은 인도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면서 사망한 도시가 되었다. 현재 그 위치에 콜럼버스 박물관이 있다. 1527년에는 유럽을 호령할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 펠리페 2세가 태어났다.

바야돌리드는 15세기~16세기 전반에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가 되어 자주 의회가 열렸는데 1550년에는 종교계와 정치계 간의 누에보 에스파냐( 아메리카 대륙 식민지)의 아메리카 원주민 ( 인디오)에 대한 인권을 논의한 바야돌리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585년에는 대성당이 완성되었다. 1591년에 도심을 덮친 화재로 쇠퇴하던 바야돌리드는 펠리페 2세의 명으로 복구되었고 펠리페 3세 시기인 1601년~1606년간 이베리아 연합의 공식 수도 역할을 수행했다.

19세기 이베리아 반도 전쟁 시에 나폴레옹 휘하의 프랑스 군대가 도시를 폭격, 방화해 구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훼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스페인 내전 시에는 프랑코와 군부의 거점이 되었다. 20세기 중반부터 식품 가공, 섬유, 기계, 화학 비료, 철강, 자동차 등의 산업이 발달한 공업 도시로 변모해 현재에 이른다.

3. 기타

15세기~17세기 동안 지어진 성당, 궁전, 학교들은 지금도 여행객들의 시선을 끈다. 1585년의 대성당과 성 그레고리오 교회(1480년~1496년)가 두드러진다. 라리가에 소속된 레알 바야돌리드의 연고지기도 하다.

스페인 내전 당시 내전 발발과 동시에 국민파 진영에게 넘어가고 공화파가 단 한 번도 탈환하지 못했다. 이 시절 역사적 영향으로 인해 요즘 와선 점점 변하는 추세지만 한동안 인민당, 복스 등 보수 우익 일색이었던 지방이라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파차돌리드(fachadolid, 파쇼(혹은 파초)+바야돌리드)'란 멸칭이 붙기도 했다. 대놓고 파시스트 정권 선전물이라고 광고하는 듯한, 바야돌리드 바로 근처 언덕 위에 있던 팔랑헤 지도자 오네시모 레돈도 기념비도 2016년이나 돼서야 철거되었다.

역사적으로 카스티야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고, 유적도 많이 남아 있고, 스페인이 가장 최근에 겪은 전국적 전쟁의 참화인 스페인 내전의 피해도 크지 않은데 도시 경관 전반은 역사적 유물들이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현대 와서 대충 때려 지은 못생긴 싸구려 건물들이 조망을 가린다고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가장 보기 흉측한 도시 중 하나, 역사적 매력을 못 살리는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굴욕을 당하기도 한다. 사실 바야돌리드도 도심으로 들어가보면 중세에서부터 내려온 수백 년 역사를 간직한 성당, 건물들이 많은데 이웃인 부르고스, 톨레도, 살라망카, 세고비아 같은 곳들은 당장 시내 중심부터 중세, 근세에 조성된 게 눈에 확 띄는 반면, 바야돌리드는 도시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그 역사성을 체감할 수 있다.[1]

크게 원인을 찾아 보자면 스페인 내전은 비껴갔다 한들 그 이전 19세기 이베리아 반도 전쟁의 집중적인 피해를 받은 곳이기도 했고, 20세기 후반 지역 자체가 우경화되면서 유적이나 문화유산을 함부로 땅 투기, 돈놀이로 삼은 인민당 일색 지방 정부의 탓이기도 한데, 비슷하게 가장 흉측한 도시로 꼽히는 우엘바, 알바세테, 시우다드 레알 같은 곳들은 거의 역사적 존재감이 없다가 19~20세기 들어서 급하게 조성된 도시라 이런 곳들과 비교당한다는 거 자체가 바야돌리드 사람들(vallisoletano, 바이솔레타노)들에겐 상당히 굴욕적인 사실이다.


[1] 카스티야, 레온 지방 자체가 역사는 깊고, 근대화에선 소외돼서 이런 문화 역사적 유물이 굉장히 풍부한데, 이 와중에서도 끝판왕은 아예 중세 성곽 자체가 완전 100% 보전되어 있고, 전 세계에서 한 구간도 안 끊기고 중세 도시 외벽 전체가 남아 있는 걸로 세계 기록을 달성한 아빌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