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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4:31:59

미아 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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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CEF
파일:유니세프 로고.svg
파일:미국 국기.svg GOODWILL AMBASSADOR
1987년 1995년 1999년 2000년
해리 벨라폰테 주디 콜린스 수잔 서랜든 미아 패로
2003년 2004년 2011년 2013년
우피 골드버그 대니 글로버 세레나 윌리엄스 케이티 페리

<colbgcolor=#000><colcolor=#fff> 미아 패로
Mia Farrow
파일:Pulitzer2018-mia-farrow-20180530-wp.jpg
본명 마리아 드로데스 빌리에 패로
María de Lourdes Villiers Farrow
출생 1945년 2월 9일 ([age(1945-02-09)]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배우, 모델
신장 162cm
활동 1959년 - 현재
종교 가톨릭
배우자
/파트너
프랭크 시나트라 (1966년 결혼~1968년 이혼)
앙드레 프레빈 (1970년 결혼~1979년 이혼)
우디 앨런 (1980년~1992년)
자녀
[ 14명 (친자녀 4명 / 양자녀 10명) ]
장남 매튜 프레빈(1970년생)[A]
차남 사샤 프레빈(1970년생)[A]
장녀 순이 프레빈(1970년생 / 1977년 입양)
차녀 라크 프레빈(1973년생 / 1973년 입양)
3남 플레처 프레빈(1974년생)[A]
3녀 서머 프레빈(1974년생 / 1976년 입양)
4남 모제스 패로(1978년생 / 1980년 입양)
4녀 탬 패로(1979년생 / 1990년 입양)
5녀 딜런 패로(1985년생 / 1985년 입양)
5남 로난 패로(1987년생)[A]
6남 타데이어스 패로(1988년생 / 1994년 입양)
5녀 프랭키-민 패로(1989년생 / 1995년 입양)
7남 아이제이아 패로(1992년생 / 1992년 입양)
6녀 퀸시 패로(1994년생 / 1994년 입양)
링크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어린 시절3. 사생활4. 아동 학대 논란5. 기타

[clearfix]

1. 개요

미국의 배우.

2. 어린 시절

파일:John_Farrow_family_1950.jpg
미아 패로 가족사진
맨 왼쪽 여자아이가 미아 패로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영화감독 존 패로[5] 아일랜드 출신의 여배우 모린 오설리번[6]의 밑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첫째 오빠인 마이클 패로는 19살 때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으며, 둘째 오빠인 패트릭 조지프 패로는 2009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남동생인 존 찰스는 아동 성추행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 9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3주 동안 격리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고 한다. 가톨릭 신자로 자랐으며, 가톨릭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미션스쿨 고등학교를 나왔다.

3. 사생활

파일:444213ec7107e782ac7563f38502d79b.jpg 파일:Frank-Sinatra-Mia-Farrow-2-Years.jpg
프랭크 시나트라와의 결혼식
1966년 7월 19일 미국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올릴 때 시나트라는 51살이였으나, 미아 패로는 21살 밖에 되지 않았다. 시나트라는 결혼 후 패로가 연기 활동을 관두기를 바랬고, 패로 역시 처음에는 동의했다. 1967년 11월 미아 패로가 영화 악마의 씨를 촬영 중 시나트라는 변호사를 통해 패로에게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 그렇게 1968년 8월 2년 만에 시나트라와의 결혼 생활은 막을 내렸다. 후에 패로가 말하기 둘의 나이차가 이혼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혼 후에도 시나트라가 사망할 때 까지 친구관계로 지냈다. 1987년 12월 19일 우디 앨런 사이에서 아들 로넌 패로를 출산했는데 2013년 배니티 페어와의 인터뷰에서 로넌이 어쩌면 프랭크 시나트라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인터뷰를 해 전 세계 사람에게 충공깽을 시전한 적 있다. 사실 그 전에도 아들 로넌 패로가 프랭크 시나트라와 너무 닮아서 # 시나트라의 아들이 아니냐는 설이 많았었는데 패로 본인이 직접 인터뷰로 "한번도 그(프랭크 시나트라)와 헤어진 적 없었다"라고 밝였다. 관련 기사

1970년 9월 10일 런던에서 지휘자이자 작곡가였던 앙드레 프레빈과 2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올릴 당시, 패로는 앙드레 프레빈과의 사이에서 쌍둥이를 출산한 상태였다. 이 둘은 불륜관계 였으며, 패로가 임신을 하자 앙드레가 부인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 했다. 앙드레는 1970년 7월 전부인과 이혼하였으며, 이혼 후 앙드레 프레빈의 전 부인이자 작곡가였던 도리스 프레빈은 정신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이후 재기하면서 "젊은 여자(미아 패로)를 조심하세요"라는 노래를 작곡하며 이 둘의 불륜관계를 까기도 했다. 링크 하지만 앙드레 프레빈과도 1979년 이혼했다. 패로는 앙드레 프레빈과 슬하 3남을 두고 있으며, 셋 다 생물학적 아들이다. 1970년 2월 26일 쌍둥이 아들을 출산하였으며, 1974년 3월 14일 아들 플레처를 출산하였다. 플레처는 현재 IBM CIO로 있다. 1973~76년까지 앙드레 프레빈과 아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으며, 베트남에서 라크 송과 썸머 송을 입양하였다. 그 후 1978년 한국에서 순이를 입양하였다. 순이는 그 당시 정확한 출생년도를 알 수 없어서 엑스레이를 통해 찍은 뼈로 나이를 추정했는데 5~7살 때쯤 미아 패로에게 입양을 왔다.

그리고 1979년 미국의 유명 감독인 우디 앨런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우디 앨런과 교제를 시작했으나, 21살이었던 자신의 한국계 입양 딸 순이와 우디 앨런이 불륜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1992년 결별했다.

1985년 미아 패로는 생후 2주 된 딜런 오설리번 패로를 입양했다. 딜런은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다. 1991년 12월 뉴욕에서 우디 앨런과 함께 한국 태생인 모세 패로를 입양했다.

사회복지학계에는 상당히 유명한 인물인데, 자신의 복잡한 사생활을 가계도를 작성하는 데 제공, 즉 논문을 작성하는 데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에서의 가계도는 반드시 일정한 양식을 따라야 인정이 되는데, 주어진 양식에서 조금이라도 변형이 생기거나 임의로 표시를 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사회복지사들의 공통된 약속이기 때문.

4. 아동 학대 논란

이전까지 미아 패로의 이미지는 10명이나 되는 자녀를 입양해서 키운 대단한 엄마이자 입양한 딸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남편을 가진 불쌍한 아내 정도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그녀의 입양한 자녀들의 삶이 대부분 순탄치 못하거나 자살 등으로 요절한 게 알려지면서 미아 패로의 양육이 적절했느냐 하는 의구심 섞인 시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4년부터 패로의 입양한 자녀들 중 한 명인 모제스 패로가 어머니 패로와의 연을 끊고 우디 앨런을 옹호하기 시작하였다.

패로의 아동학대 의혹이 결정적으로 불거진 것은 2018년 모제스가 자서전을 통해 미아 패로의 아동학대와 우디 앨런의 무죄를 주장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미아 패로가 순이에게 도자기를 집어던진 적이 있으며, 소아마비인 다른 입양아에게도 수시로 폭력을 가했다고 폭로했다. 모세가 그녀의 학대에 대해 폭로하자, '경찰과 검사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라'며 또다시 폭행과 협박을 일삼았고 우디 앨런에 대해 위증하라고 강요했으며, 이런 심각한 아동학대로 인해 그녀의 자녀들 상당수가 자살하거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폭로했다. * 또한 순이와 모세는 모두 동양계 입양아인데, 미아 패로가 금발벽안인 백인 자녀들만 편애했다는 것도 폭로했다. * 여기애 20년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해왔던 순이 패로가 2018년 입을 열고 우디 앨런과 결혼한 이유가 미아 패로의 학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였다고 주장해 논란이 있었다. 링크

패로의 자식들의 현황은 다음과 같다.( 출처)
  1. 매튜 프레빈(친자) - 장남. 사샤 프레빈과 쌍둥이이며 예일 대학교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 사샤 프레빈(친자) - 형 매튜 프레빈과 쌍둥이이며 포덤 대학교 졸업 후 회계원으로 일하다 현재는 의사 아내와 결혼 후 전업 주부로 살고 있다.
  3. 라크 프레빈(입양자) - 패로가 처음으로 입양한 딸로 베트남 출신이다. 10대 시절부터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적발되는 등 사고를 쳤고 성인이 되어서는 막장으로 살다가 35세의 나이에 AIDS로 인한 폐렴으로 요절했다.
  4. 플레처 프레빈(친자) - 코네티컷 대학교 졸업 후 IBM에서 일했으며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현재도 미아 패로의 주변에 살면서 어머니를 가장 많이 직접적으로 변호하며 살고 있다.
  5. 서머 데이지 프레빈(입양자) - 라크 프레빈 이후로 베트남에서 입양한 딸이다. 언니 라크와 함께 물건을 훔치는 등 사고뭉치였으며, 대학도 중퇴했고 심지어는 언니 남편의 형제와 사고쳐서 임신해 결혼하는 등 삶이 순탄치 않았다. 현재는 건설현장 소장 일을 하고 있으며 새 남편과 재혼해 살고 있다.
  6. 순이 프레빈(입양자) - 한국에서 입양한 딸. 원래 이미 2명의 해외 입양을 했으므로 더 이상 해외 입양을 할 수 없었으나 미아 패로가 소송을 통해 법까지 고쳐가며 입양하였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양어머니의 남자친구였던 우디 앨런과 결혼했다.
  7. 모제스 패로(입양자) - 순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이며 가벼운 뇌성마비를 앓았다. 현재 아동학대를 겪은 해외 입양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아 패로와 가장 사이가 안 좋고 우디 앨런의 무죄를 강하게 주장하는 자녀이다. 2020년 가디언지와 인터뷰하였다. 링크
  8. 딜런 패로(입양자) - 1985년 패로가 앙드레 프레빈과 이혼 후 텍사스에서 입양한 딸로, 패로가 입양한 자녀 중 유일한 백인이다. 우디 앨런이 자신이 7세 무렵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9. 탬 패로(입양자) - 베트남에서 입양한 시각장애인 소녀. 2000년에 불과 19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후 모제스 패로는 사실 탬의 죽음은 단순한 심장마비가 아니며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에 가까우며 미아 패로가 이러한 사실을 숨겼음을 폭로했다.
  10. 로넌 패로(친자) - 미아 패로와 우디 앨런 사이의 친자. 원래 이름은 사첼 패로였으나 이름을 로넌으로 바꾸었다. 실제로는 프랭크 시내트라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많으며 외모도 시내트라와 훨씬 닮았다. 엄청난 수재로 불과 15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을 거쳐서 유니세프 대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탐사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아 패로의 자녀 중에 어머니와 매우 가까운 자녀이며, 딜런 패로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11. 아이제이아 패로(입양자) - 1992년 입양한 흑인 남자아이로 코네티컷 대학교 졸업 후 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12. 타데이어스 패로(입양자) - 1994년 인도에서 입양한 남자아이다. 소아마비로 인해 하반신에 장애가 있었다. 27세의 나이에 어머니 미아 패로의 자택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차에 탄 채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3. 퀸시 패로(입양자) - 1994년생으로 패로의 자녀 중 가장 어린 자녀다. 원래 이름은 케일리-샤 패로였으나 퀸시로 개명했다. 흑인 소녀이며 마약중독자 생모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릴 때 팔을 쓸 수 없었으나 현재는 회복되었다고 한다.
  14. 프랭키 민 패로(입양자) - 베트남에서 입양한 시각장애인 소녀이다. 패로가 마지막으로 입양한 자녀이다.


현재 패로의 자녀들의 현황을 보면 친자녀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고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유대감이 깊다. 반면 그녀가 해외에서 입양한 자식들의 경우 미아 패로와 가까운 경우도 있지만 거의 의절하다시피 한 자녀도 있으며 심지어 이미 죽은 자녀들도 있다. 실제로 아동학대가 있었는지의 여부를 차치하고 보더라도 미아 패로가 10명이나 되는 많은 자녀를, 그것도 상당수는 해외 입양을 통해 데려온 다른 인종의 아이이며 장애를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라 제대로 양육하기 매우 힘든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양을 한 것은 적어도 책임감이 있는 행위라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미아 패로가 순이를 데려올 당시만 해도 외국인 아이의 입양은 2명까지로 제한되었는데, 이 제한을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서 철폐시켜 버린 게 미아 패로였다. 링크 미아 패로의 입양 대부분이 30여년 전이라 당시에는 불쌍한 아이들을 구원해준다며 칭송 받았지만 요즘은 반려동물도 이렇게 입양하면 욕 먹는 세상이다.

더군다나 미아 패로보다 먼저 외국인 고아들을 입양하여, 훗날 미아 패로의 롤 모델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 조세핀 베이커의 경우에도 그녀의 사후 양자들이 순탄치 않았던 성장 과정을 고백한 바 있다.[7]

그녀가 데려온 입양아들 중 절반 이상이 불행하게 살거나 죽거나 그녀를 적대시하고 있으며, 심지어 모제스의 경우 어머니를 적대하는 것을 넘어서 해외 입양, 특히 백인 부모의 유색인종 아동 입양에 대해 인종차별적 인신매매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해외입양 반대 운동까지 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

5. 기타

이 분야와 별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엉뚱하게도 경제학에서 임대료 상한 규제를 비판할 때 그녀의 이름을 따서 '미아 패로 법' 이라고 비꼬는 경우가 있다. #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귀환한 장병들이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일각의 비판을 수용해 그들에게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제공하고자 뉴욕 시에서 마련한 임대료 상한 규제 법안에서 유래된 것이다.

뉴욕 시 정부에서는 건물별로 임대료에 상한선을 두었고 한 번 계약한 세입자는 특별한 이유 없이 내쫓을 수 없게 규제하였다. 의도는 좋았으나 그 결과 건물주들이 돈이 안 되는 건물 관리를 등한시하게 되었고, 신규 건설이 중단되면서 도시가 슬럼화되고 공급이 오히려 감소하였다. 또한 이 여파로 뉴욕시의 재산세 수입이 급감하며 시 재정에도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한편 이 규제 덕에 이득을 본 것은 엉뚱하게도 서민층이 아닌 미아 패로와 같은 부유층이었는데, 그녀가 90년대 이 법의 존재를 이용해 임대한 방 10개짜리 초호화 아파트의 월세는 미국 소도시의 평범한 아파트 한 채의 월세와 비슷한 2000불 정도 수준이었다. 이 일화가 알려지면서 그레고리 맨큐가 자신의 미시경제학 교과서[8], 에 이 일화를 실었고 뉴욕시의 해당 법안에 비꼬는 뉘앙스의 '미아 패로 법' 이라는 별명을 붙이게 된 것이다.

파일:1118full-mia-farrow.jpg
'미아 패로 숏컷'을 유행시켰다. 진 시버그, 오드리 헵번과 함께 1960년대 중성적인 숏컷 여성 이미지를 유행하게 만든 배우다.

악마의 씨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 루스 고든과 절친한 사이였다.


[A] 생물학적 친자녀 [A] [A] [A] [5] 아버지인 존 패로는 1956년 개봉한 '80일간의 세계 일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6] 어머니인 모린 오설리번는 조니 와이즈뮬러가 출연했던 영화 <타잔>에서 여주인공인 제인 역할을 맡았으며, 1991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7] 그나마 조세핀 베이커의 경우는 돈만 있으면 아이 입양에 제한이 없었고 양육 방침이 보수적이었던 시대상을 참작해야 하며, 생전 그녀와 갈등했던 양자들도 양모에게 그런 결점이 있었다 해서 양모가 위인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도 조세핀의 경우는 적어도 피부색으로 양자를 편애했다는 논란은 없었다. 그런데 조세핀 사후 엄격해진 법을 느슨하게 풀어 놓은 게 미아 패로라는 점에서 미아 패로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아동 인권 관련 법을 후퇴시켰다고 비난받아 마땅하다. [8] Principles of Microeconom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