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 ||
가해자 | ||
소년 A (당시 18세, 징역 20년) |
소년 B (당시 17세, 징역 10년) |
소년 C (당시 15~16세, 징역 5년) |
소년 D (당시 16~17세, 징역 5년) |
소년 E (당시 17세) |
소년 F (당시 15세) |
피해자 | ||
후루타 준코 (당시 17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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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관·장소 | ||
사이타마현 미사토시 · 도쿄도 아다치구 · 도쿄도 고토구 · 일본의 경찰제도 |
<colbgcolor=#171B1C,#000><colcolor=#eeeeee,#dddddd> 미나토 신지 湊伸治 | Minato Shinj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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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2년 12월 16일 ([age(1972-12-16)]세) |
도쿄도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화학 전문 공업고등학교 (퇴학) |
소속 | 극청회 |
가족 | 부모 (아버지 미나토 야스토, 어머니 미나토 마사코), 형 미나토 코지(1972년 1월 21일생, ([age(1972-01-21)]세) |
1. 개요
일본의 범죄자. 피해자 후루타 준코의 감금 장소를 제공한 인물. 범인들 중 최연소이다.2. 성장 과정
1972년 12월 16일에 도쿄도 일대에서 아버지 미나토 야스토와 어머니 미나토 야스코 사이의 슬하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니혼바시 인근 일본공산당과 연계된 약국의 사무국장이었으며, 어머니는 주임 간호사였고[1], 형제로는 연년생인 형이 1명 있었다. 큰아버지는 야쿠자 고위 간부였다고.미나토 신지는 소학교 시절만 해도 의젓한 성격으로 평범한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의 체벌로 인해 분노하게 되었고, 그에 대한 반발로 이후부턴 부모를 때리고(...) 차는 등 각종 비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부친은 외골수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소학교 5학년 무렵부터 자식들이 집의 정해진 룰을 지키지 않으면 어머니에게 그것을 보고 받아서 혼을 냈고, 자식들이 자고 있더라도 때려서 깨운 뒤 혼내는 등 학대 수준의 징계를 하였다고 한다. 12월의 아야세에서 상의를 벗거나 나시만 입게 하고 공원을 달리게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술을 좋아해서, 신지 형제의 증언에 따르면 1달에 한번은 체벌을 당했다고 한다. 다만 부친은 몇달에 1번 혹은 1년에 몇번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1985년 4월, 아다치구립 히가시아야세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재학 도중에 공갈, 절도 등의 비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아버지보다 몸이 강해짐에 따라 어머니에게 심한 폭언과 폭행을 하기 시작했고, 아버지에게도 반발하게 된다.
1988년 3월, 중학교를 졸업한다.
1988년 4월, 도내의 유일한 화학 전문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이 때부터 무단외박, 불량교우, 가정폭력 등의 문제행동이 더욱 심각해졌다.
1988년 7월, 미나토의 방은 비행 청소년들의 집합소처럼 변하였다. 부모는 이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들의 폭행이 두려웠기 때문에 손을 쓰지 못했다.
1988년 9월, 결국 고등학교에서 입학 3개월만에 퇴학을 당하게 된다.
1988년 11월, 자동 이륜차를 무면허로 운전하는 비행을 저질러 교통 단기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3. 출소 후
1989년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이후 그나마 미야노 히로시, 오구라 유즈루보단 가담 정도가 적다고 판단되어 1994년 경 출소하였다.1995~ 1996년경, 아야세시의 태국 요리점에서 무에타이 파이터로 데뷔한 것을 시작으로 프로선수로 활동했다. 사건 당시에도 그의 방에는 각종 권투 훈련기구와 아령, 덤벨 등이 있었다고 하며 이것들은 피해자 후루타 준코를 고문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하루 10시간 넘게 훈련하는 등 프로 무에타이 파이터로서도 결코 약한 편이 아니었다.[2] 하지만 그의 본성이나 행적이 숨겨지는 것은 아닌지라 등장할 때마다 야유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결국 2001~ 2002년 경 은퇴했다.
2006년, 루마니아인 여성과 결혼해 오사카로 이사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결혼한 상대가 리히텐슈타인 국적이라고 한다.
2007년, 간병인 자격증을 취득했고 네야가와의 한 파칭코 가게에서 일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2008년 경, 도쿄도 오타구 미나미카마타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을 했다. 도쿄의 아파트에서 살았을 무렵, 미나토 신지에게는 동거녀가 있었던 것 같지만 동거녀와의 싸움으로 인해 종종 소음 트러블을 일으키며 다른 주민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끼쳤다고 하는데,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밤중에 남녀가 구론하는 목소리, 특히 여성의 울음소리나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여러 번 났고 아파트 방의 창유리가 깨지기도 했다고 한다.
2008년 5월, 이웃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아파트에 방범용 카메라가 설치됨과 동시에 이사를 갔다.
2018년 8월 19일, 사이타마현 카와구치시에서 주차 문제로 두 남자와 시비가 붙자 한 남성(당시 32세)을 41cm의 삼단봉으로 내려친 뒤 나머지 한 남성의 후경부를 8cm 칼로 수차례 찔러 살인미수로 긴급 체포되었다. # #
2019년 3월 5일부터 사이타마현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판 중에서도 미나토 신지는 칼로 찌른 것은 맞지만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칼로 목을 찔렀다는 점에서 전혀 신빙성이 없는 주장이다.
2019년 11월 22일, 징역 1년 6개월, 보호 관찰부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을 받았다. 2022년 기준으로 집행유예 집행이 종료되었다.
4. 기타
- 출소 후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노려보면서 고함 지르기, 이른 시간에 아래층의 천장 전등이 흔들릴 정도로 쿵쿵 뛰어 잠 깨우기, 괴성을 지르면서 쿵쿵 뛰어대기, 처음 보는 사람에게 도널드 트럼프 이야기를 꺼내며 말 걸기, 차 안의 짐을 빼고 있는 사람 뒤에서 차 문을 세게 닫아버리기 등 기행을 벌이며 이웃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고 한다.
- @denngekiraketto라는 X(舊 트위터) 계정이 존재한다. 테크놀로지 범죄(#テクノロジー犯罪)라는 태그를 달고 게시글( #, #)을 쓰는 것으로 보아 '정부가 비밀리에 국민들을 조종한다'는 일명 마인드 컨트롤 음모론을 믿는 것으로 보이며, 현재도 게시글마다 그를 비난하는 답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상황. # 또한 유튜브 채널도 존재하고[3] 채널의 영상에는 그를 비난하는 댓글과 피해자를 추모하는 댓글이 달려있다.
[1]
일본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적기)>로부터 표창까지 수상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둘 다 공산당에서
제명당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둘은 해당 사건의 가해자는 아니긴 하다만.
[2]
한국에는 전적이 변변치 않았다고 알려지기도 했지만 일본 기사를 뒤져보면 45전 9패였다고 한다.
[3]
그가 단 답글에서 그의 살인미수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테크놀로지 범죄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아 본인의 계정이 맞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