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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비판과 논란/대통령 재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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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시기별
2.1. 변호사 시절 논란
2.1.1. 법무법인 부산 관련 논란
2.1.1.1. 옹호론
2.1.2.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 변호 2.1.3. 풍산금속 관련 논란2.1.4. 노무현 전 대통령 방치 논란2.1.5. 친박 서청원 변호 논란
2.2. 민정수석 재직 시절 논란
2.2.1. 업무 능력 관련2.2.2. 아들 고용정보원 취업 논란2.2.3. 노무현 대통령 사돈 음주운전 은폐 의혹2.2.4. 다운계약서 논란2.2.5. 부산 정권 발언2.2.6. 철도노조 파업 대처
2.3. 19대 대선 기간 전후로 제기된 논란2.4. 정치 활동 관련 논란
3. 삼성 관련 논란
3.1. 삼성 X파일 사건 특검 논란
3.1.1. 변호론
3.2. 참여정부, 삼성공화국 논란
3.2.1. 변호론
3.3. 이학수법 미서명 논란
4. 트위터 야동 이미지 업로드 논란

1. 개요

대통령 재임 이전. 문재인의 비판과 논란을 다루는 문서이다.

2. 시기별

2.1. 변호사 시절 논란

2.1.1. 법무법인 부산 관련 논란

지난 2012년 3월 1일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며, 새누리당의 이종혁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 때 "문재인이 2003년까지 대표 변호사로 있었던 '법무법인 부산'이 2004~2007년 사이 부산저축은행 측으로부터 59억원 가량의 사건 수임료를 받았고 이는 청탁 로비의 성격이 크다."며 소액 민사사건 5만여 건을 수임한 것과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했다. 이어 "2002년도 법무법인 부산은 연간매출액이 13억여원에 불과했던 무명의 법무법인이었지만, 문재인이 민정수석으로 오른 후 2005년도에는 전국 323개 로펌 중 수임료 2위까지 뛰어올랐다. 또한 2003년 3월 관보에 실린 당시 민정수석 비서관 문재인 재산목록에 따르면 법무법인 부산은 문재인 출자지분이 25%였다. 문재인이 부산저축은행 김양 부회장의 로비를 받고 유병태 금감원 국장에게 전화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사실인지 밝혀야 한다."고 부산저축은행과의 관련을 제기했다.

또 10월 경엔 '법무법인 부산'이 문재인이 복직해 공동대표로 있던 2008~2012년까지 10억 3,034만원의 수임료를 추가로 받았다는 자료가 나왔다. #

2003년 민정수석 당시에 부산저축은행이 온갖 비리를 저질러 왔음에도 불구 불법 경영인의 퇴진 등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2011년 부산의 수많은 저축은행 피해자가 양산됐고, 피해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면 이것에 대해 책임이 있어야 하며 이에 관한 해명과 부산시민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비판 측의 주장이다.

그 외에도 2005년에는 법무법인 부산의 대표변호사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정재성씨가 사건수임 전국랭킹 3위를 차지했고, 4위와 5위도 같은 로펌의 변호사들이 차지했다는 것에 관한 의혹 또한 제기되었다. #
2.1.1.1. 옹호론
법무법인 부산은 "2004년 4월 부산 지역의 또다른 법무법인인 국제가 '부산2저축은행으로부터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민사소송을 받았는데 건수가 많으니 나누자'고 제안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건당 10만~20만 원을 받고 5만여 건을 처리했다."고 수임 경위를 밝혔다.

또한 수임 경위도 문재인과 관련이 없다.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사건을 수임받은 시기에 문재인 참여정부 청와대에 재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휴식 중인 상태였다는 것이다.

전화에 관해선 유병태 비은행검사1국장이 검찰 조사에서 "2003년 민정수석이던 문재인으로부터 '철저히 조사하되 예금 대량인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히 처리해 달라.'는 전화를 받은 일이 있지만 청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압력을 느끼지도 않았다."고 진술했다. #

2008~2012년의 수임료는 문재인 측에서 "해당 수임료는 2004년 계약의 연장선으로, 문재인이 대표 변호사로 복귀한 이후 법무법인 부산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추가로 수임한 것은 전혀 없다."라고 해명하였다.

대법원의 공시자료와 예금보험공사가 보관하고 있는 부산저축은행 소송서류에 문재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을 제시하며 문재인이 그 때 이미 소송 대리인으로 참여했다고도 하나, 이에 대해 송달 및 확정증명원 발급 실무상 어느 사건에서든 해당 법무법인 소속 모든 변호사의 이름이 기재되었고 판결문에도 문재인의 이름이 없기 때문에 대리인이라는 근거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 #2

결국 이후 2013년 4월 5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원칙대로 다 조사했지만 고발 혐의를 입증할 근거가 없다"며, 문재인 후보에 대해 무혐의를 처분하였다. 부산저축은행이 부실저축은행이라고 하지만 부산저축은행과 관련된 모든 행위가 불법은 아닐 뿐더러 문재인이 부산저축은행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증거도 없다. #

정재성 변호사가 '사건수임 전국 3위'를 차지했다는 사건에 대해서도, 법무법인은 구성원인 개별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 별로 수임 건수가 산정될 수도 없거니와 정 변호사를 포함해 소속 변호사들이 3,4,5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다. #

2.1.2.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 변호

문재인은 변호사 시절 1996년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의 주범들을 스스로 자진하여 변호했었다. 18대 대선 당시 이것으로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문재인 후보는 본인이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것을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링크의 인터뷰를 보면 먼저 이들의 변호를 자처하였다. #

변호사 윤리 규칙 제19조 1항의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여서는 아니 된다."[1] 라는 규정을 거론하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옹호론도 있다. 하지만 변호사 윤리 규칙이라는 것은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문서도 아니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권위 있는 문서도 아니며, 단지 변호사 협회가 자신들에게 가해질 비난을 회피하기 스스로 만든 내규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입장이 있다. 또한 페스카마 피고인들은 이미 국선변호사가 담당하여 1심이 끝난상황으로 인권을 침해받고 있는 상황조차 아니었다.

정리하자면 이미 국선변호사를 선임하여 재판받은 1심의 판결로 사실관계가 밝혀진 상황에서 스스로 자처해서 가해자들을 찾아가 2심의 변호를 맡아 우발적인 살인이라 변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영치금을 넣어주는 등 가해자들을 도왔으며 이후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하는 동안 가해자들이 감형되었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특사를 통해 사형수로 복역 중이던 페스카마호 사건 주범 진재천을 무기징역수로 특별감형시킨 일이 있었는데, 이는 자신이 변호했던 사건을 자신이 감형시킨 것이 아니냐 하는 논란이 따랐었다. 이 논란에 대해 문재인 측은 "해명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라며 딱 잘라 말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며, 전혀 근거가 없는 우연일 뿐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

더 자세한 내용은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 문서 참조.

20여 년 후 대통령 시절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 문재인이 보인 인권 경시 태도가 위 살인 사건에서의 인권 중시(?) 태도와는 너무나 상반되어, 위 변호사건이 새삼 인구에 회자되었다. 이를 두고 서민같은 이는, 이는 이중잣대가 아니고 문재인에게는 '북한주민>중국사람>한국사람'이었으므로 일관성 있는 태도라고 비웃었다. |#

2.1.3. 풍산금속 관련 논란

참세상은 풍산금속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고 심지어 제대로 보상도 못 받을 때, 문재인은 법무법인 부산 소속의 변호사이자 풍산그룹의 고문변호사로서 사 측을 변호했다는 칼럼을 싣었다. # 해당 칼럼에서는 풍산금속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김영일 씨가 문재인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풍산금속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일관되게 문재인이 사 측을 변호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 당시 풍산금속 해고 노동자들을 취재한 기사에 따르면 김영일 씨는 "치가 떨린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며 "내가 말하지 않는 얘기를 칼럼에 쓰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 이름이 들어가 있는 판결문은 보지 못했다"며 "문 후보가 법정에 직접 나와서 사 측을 변론한 모습도 본 적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풍산금속 노조 간부를 지낸 정숙난 씨도 "내가 풍산금속 관련 법정은 다 가봤는데 거기서 문 후보를 본 적은 없다"고 전했다. 풍산금속 해고노동자 출신인 권영국 변호사는 "노사문제가 발생해 회사 쪽에서 자문을 요청해 수동적으로 소송 대리에 응했을 수도 있지만 문 후보가 적극적으로 사 측을 변론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민변에 소속된 법무법인들도 기업을 자문하는데 이것을 일괄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그인 필요) #(접속불가))

단순히 악한 사람이나 집단을 변호했다는 것 자체로 지탄받는다면 그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시키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문재인 측의 반박에 따르면 "법률사무소가 풍산금속과 고문 계약을 맺을 때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소송은 맡지 않는 것'을 전제로 했다" 며 "문 후보가 고문변호사였던 건 맞지만 노동자를 상대로 사 측을 변호한 적은 결코 없었다" 고 반박했다. 문 후보가 과거 정 전 의장에게 했던 말에 대해서는 "풍산금속 고문을 맡고 있어 노동자들의 변론을 못 해 주는 게 미안하다는 취지였다" 고 해명했다.

2.1.4. 노무현 전 대통령 방치 논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문재인은 변호인으로서 무능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이인규 변호사는 2023년 3월 17일,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발간한다.
회고록에 따르면,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2009년 5월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무런 변호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변호사는 수사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이 '수사 책임자인 나는 물론 수사팀 누구도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온 적 없다'면서 '의견서 한 장 제출한 적 없다'고 했다. '검찰을 찾아와 검찰의 솔직한 입장을 묻고 증거 관계에 대한 대화를 통해 사실을 정리해 나갔더라면 노 전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

2.1.5. 친박 서청원 변호 논란

2012년 8월 9일, 문재인이 2008년 비례대표 돈 공천 사건에 연루된 유력 정치인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8일 확인됐다는 경향신문 보도가 있었다. 18대 국회의원 총선 직전 비례대표 후보자들에게 공천헌금을 받은 혐의로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당시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의 변호인단에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문재인이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노무현의 조카사위인 정재성 변호사와 함께 법무법인 부산 명의로 서 대표 변호에 참여했고,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돈 공천 사건은 서청원이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과 김노식 의원에게 공천을 약속하고 모두 32억 1,000만원의 공천헌금을 받아 기소됐던 사건으로 2008년 2월 신설된 공직선거법상 '공천헌금 금지규정'에 따라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첫 사건이었다.

2009년 5월 14일 대법원 최종심에서 서청원은 징역 1년6월의 원심이 확정됐고, 김노식 의원은 징역 1년, 양정례 의원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특별한 인연이 없던 문재인이 서청원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것에 "서청원 사건을 맡았던 대법관 4명이 노무현 정부에 의해 임명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인 문재인이 공천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 변호에 나선 것은 부적절한 게 아니었느냐는 지적에 문재인 측은 "당시는 청와대 민정수석에서 퇴임해 정치인이 아니었으며, 서청원이 개인적 용도로 쓴 게 아니라 정당이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차입금으로 회계책임자가 받아 당의 운영자금으로 쓴 사건이라 서청원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법리적으로 다툼이 있었기 때문에 쟁점이라고 판단해 변호활동에 참여한 것 같다."고 해명했으며 진선미 대변인은 "서청원의 대법원 상고심을 법무법인 부산이 수임했고 당시 문재인이 변호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던 것도 맞지만, 이 사건은 문재인이 변호사 활동시기에 맡았었고 결과적으로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됐다."고 말했다. # #2 #3

2.2. 민정수석 재직 시절 논란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 재직시 비판과 논란을 다루고있다.
임 기 직 책
2003년 2월 25일 ~ 2004년 2월 13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4년 5월 16일 ~ 2005년 1월 20일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
2005년 1월 20일 ~ 2006년 5월 2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
2006년 5월 2일 ~ 2007년 3월 12일 공 백 기
2007년 3월 12일 ~ 2008년 2월 24일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2.2.1. 업무 능력 관련

문재인이 민정수석에 재직 중일 때 청와대의 공직자나 대통령 친인척 등의 비리가 대규모로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조치가 아예 없었다. 노건평의 뇌물 수수나 세종증권 매각 비리는 모두 문재인이 민정수석에 재직하던 때 벌어졌으며, 삼성이 청와대에 뇌물을 주거나, 청와대 행정관들끼리 불륜을 벌이고 그 결과 청와대 3급 행정관이 아내[2]를 죽이는 살인사건이 벌어졌음에도 문재인은 예방도 사후조치도 하지 못했다.

2.2.2. 아들 고용정보원 취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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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노무현 대통령 사돈 음주운전 은폐 의혹

이 논란의 핵심은 노무현 대통령 사돈 음주운전 사고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 비서관이 이 사건을 얼마나 알고 있었고 개입을 했는가 여부이다.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던 주체는 이호철 전 민정수석 비서관이고, 경찰관 임 경위가 협박당했다던 오 모 행정관은 2016년 1월에 사망해 사실확인이 불가능하다. 문재인측은 이 사건을 언론보도로 접했고 원칙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2017년 4월 5일) 문화일보 단독보도
2003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돈 배모 씨가 일으킨 음주운전 사고를 당시 이호철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에 '덮고 가자'며 은폐를 시도했다며, 靑보고 문건 사본 입수해 보도했다. 처음 이 사건은 2년 10개월 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 2월 한 언론에 첫 보도 되었고, 폭로되고 경찰의 재조사로 배 씨의 음주 사실이 확인됐을 때에도 청와대는 ‘배 씨의 음주 사실을 사전에 몰랐고 사건 무마에 개입하지도 않았다’며 일관되게 은폐 의혹을 부인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A 전 행정관의 말을 인용해 민정수석실이 조직적으로 배씨의 음주 교통사고를 은폐한 일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A씨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비서관이 '덮자'고 했고, 청와대 내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을 때도 이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이 힘들어지니 덮고 가자'는 설득을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또 당시 민정수석실의 오모 행정관이 피해자 임모 씨를 두 차례 만나 회유·설득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 경찰청 재조사로 배씨는 음주운전이 확인되어 만3년 만에 벌금 200만 원 약식 기소되었다. 경찰청 감사로 드러나기 전까지 청와대는 교통사고도 몰랐고, 은폐하지도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
이 보도와 관련해 이호철 전 비서관은 해당 보도는 사실무근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관련자들에 대해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전날에도 배 씨의 사고에 대해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후보가 알고도 은폐를 시도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 문재인 후보는 당시 사고는 사람이 다치지 않은 큰 사고가 아니었기에 동향 파악만 했으며 훗날 피해자가 문제 제기를 하여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고 설명하였다. #
2017년 4월 5일 문재인 후보는 사실 관계를 다시 철저히 파악해서 언론에 상황을 정확히 알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캠프 김경수 대변인은 당시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 사건을 보고받지는 못했고, 이호철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 선에서 사건이 종결됐다고 설명했다.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은 음주 운전 처리가 끝까지 제대로 이뤄졌는지 좀더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김경수 대변인은 2006년 2월 언론에서 이 부분이 문제 제기되자, 당시 문재인 민정수석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하고, 철저한 진상 조사와 원칙적인 처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청에서는 재감찰을 실시했고, 배 씨의 음주 사실이 밝혀져 원칙적으로 처리하라는 민정수석의 지시에 따라 이후 처리가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

2.2.4. 다운계약서 논란

2012년 11월 30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대변인 안형환은 문재인이 지난 2003년 일부 지분을 갖고 있던 부산 부민동의 상가를 팔면서 기준시가보다 9천여만 원 낮춰 신고해 ' 다운계약서' 작성에 따른 세금 탈루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문재인 측은 법원 검찰청 이전으로 인근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여 공시지가보다 낮은 가격에 손절매한 것으로, 실제 계약금액이지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였다. #

새누리당도 당시의 다운계약서는 일반적인 관행이었고, 불법도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재인이 고위공직자로서 규정과 관계없이 실거래가를 신고하고 세금도 더 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에 근거해 공직자의 도덕성을 평가한다면 2006년 이전에 부동산 거래를 한 적이 있는 공직자는(실거래가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거의 대부분 자유롭지 못하고 따라서, 부적격자로 전락할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현재의 규정과 잣대로 과거의 일을 재단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결국 이 보도는 거짓으로 결론났으며, 선거방송심의위는 2012년 11월 29일 다운계약서 작성을 확정보도한 채널A의 '뉴스A'에 대해 법정제재 최고 수위인 ‘경고’를 의결했다. <선거방송심의에 관한 특별규정> 제8조(객관성)과 제12조(사실보도)를 위반했다는 판단이다. 65p~69p

2.2.5. 부산 정권 발언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당시 문재인도 참석했는데 문재인은 거기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와 신항 및 북항재개발, 인사 등 정부로써 거의 할 수 있는 만큼 부산에 신경을 쓰고 지원을 했는데 시민들의 귀속감이 전혀 없다, 엄청 짝사랑하는 것 아니냐?" "대통령도 부산광역시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참여정부를) 부산 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부산에 아쉬움을 표했다. #[3]

이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민주노동당 모두 지역감정을 조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심지어 같은 당인 이광재, 송영길도 문재인 수석을 비판했다. # 훗날 2021년 이광재 본인이 오히려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했다.

문재인 수석은 훗날 저서인 ' 문재인의 운명'에서 자신은 지역감정을 부추긴 게 아니라 오히려 지역주의 구도를 비판한 것이었으며 문제의 그 기자간담회에는 부산 지역 언론인들과 연합뉴스 기자들만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크게 다뤄지지 않고 그냥 발언 내용만 짧게 단순 보도되었는데, 그 보도가 있었던 다음날 '어느 신문'이 자신이 한 발언 중 '부산 정권' 부분만 쏙 끄집어내 마치 본인이 부산 정권을 내세우면서 지역주의를 부추긴 것마냥 보도했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중앙부 또한 그 보도에 낚여서 본인을 크게 질타하자 열린우리당 부산시당이 문재인의 발언이 왜곡되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크게 사태가 진정되진 않았었다고. 당혹스럽고 오해의 소지와 시비소지가 많은 발언을 한 것을 후회하며 피해자에게 사과의 뜻을 전달하였다.

2.2.6. 철도노조 파업 대처

2003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 참여정부는 총파업 3시간 만에 시위자 3,000명을 진압하기 위해 경찰 45개 중대 5,400명이 1시간 만에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문재인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기존의 합의를 뒤집고 정부를 길들이려는 정치 파업", "실제 노동자의 생존권, 권익 향상과는 관계 없이 노조 지도부의 자기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지었고, "이런 노동 운동의 양태를 포함한 최근의 노동 운동 흐름이 경제의 발목을 잡아 외국인 투자, 경제 회상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인식을 노무현 대통령이 확실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4]

그런데 10년 후, 2013년 12월 22일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공권력을 투입한 것과 관련해 이와 같은 의견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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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두 사건은 상황이 다른 부분이 있다.

2003년 철도 파업은 파업이 발생한 지 3시간 만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으로, 노조 측에서 공사화 반대와 고속철도 부채의 정부 인수를 요구하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이다. # 이때 파업이 불법이었던 이유는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거론되는 직권 중재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철도 노조는 2003년 4월 2일 "철도공공성을 감안해 기존 민영화 방안을 철회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앞으로 철도개혁은 철도노조 등 이행 당사자의 충분한 논의와 공청회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노정(勞政)합의에 따라 참여정부는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면서도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철도청을 폐지시켰지만,[5] 민영화는 결코 추진하지 않았다.[6] #

이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노조 간부들을 청와대로 불러 함께 식사까지 하면서 설득하는 정성을 보여주었고 공식·비공식 대화를 통해 정부, 노조, 철도청 모두가 인정하는 합의 타결을 이루어냈다.[7]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당 위원장은 이 자리를 마련한 게 문재인 당시 수석이었다고 밝혔다. #

그러나 2013년 철도 파업은 참여정부처럼 노조와의 대화 시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철도 노조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 받았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받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민주노총 사무실에 쳐들어가 간부를 체포하려고 한 것 때문에 논란이 터진 것이다. 심지어 민주노총 사무실은 경향신문사 사옥에 입주해 있기도 한데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도 안 받았으면서( 법률적 근거) 언론사 사옥에 함부로 진입해 기물을 파괴하기까지 하는 건 명백한 불법 행위라며 법률가 단체들이 당시 경찰에게 날선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다만 법적으로 언론사 사옥은 치외법권지역이 아니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체포·구속하는 경우 '필요한 때' 영장 없이 수사, 압수, 수색, 검증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긴 하다. 경찰의 강제 침입 사건은 이런 법률적 시비 때문에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

2.3. 19대 대선 기간 전후로 제기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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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정치 활동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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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성 관련 논란

3.1. 삼성 X파일 사건 특검 논란

삼성 X파일 사건은 2005년 이상호 당시 MBC 기자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도청 내용이 담긴 테이프를 입수해 폭로하면서 촉발되었다. 당시 폭로된 내용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불법 대선 자금과 고위 검사들에 대한 금품로비 관련 범죄 사실이 담긴 대화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에 검찰과 삼성은 물론, 정치권까지 일대 후폭풍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상호 기자의 폭로는 찻잔 속의 태풍’이 되었다. 검찰이 테이프에 담긴 범죄사실이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판단, 도청 내용 관련자들을 전원 무혐의 처리했던 것. 당시 검찰은 테이프 내용을 폭로한 이상호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이상호 기자는 이문제로 MBC에서 해직되었다. 노회찬 의원도 테이프 내용에 있는 금품로비를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 직을 상실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 고발 뉴스의 대표인 이상호 기자는 당시 노무현 정권에서 삼성X파일 특검을 막은 장본인이 당시 민정수석인 문재인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상호 기자는 "저는 그때 특검을 간절히 바랐다. 목숨을 걸고 보도했다. 하지만 며칠 뒤에 노무현이 이것은 뇌물보다는 도청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수사 기류가 바뀌었다."라면서 노무현을 당시 수사를 막은 몸통의 일원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쪽이 특검을 요구했을 때 아직 시기상조라며 검찰조사를 지켜보자고 한 분이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라고 말했다. #

3.1.1. 변호론

위와 같은 이상호 기자의 보도에 대해서 반론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당시 비노계이자 김한길계인 최재천 의원도 특검을 막은 것은 한나라당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특검법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한나라당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X파일 특검법' 가운데, 위법 내용 '공개' 부분이 위헌이라며, 법사위 비공개 내부회의에서 간간히 반대의 뜻을 내비쳐 왔다. 그러다가 아예 "도감청 수사 범위를 김영삼 정부는 빼고, DJ와 노무현 정부에만 국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X파일 특검법 합의를 뒤집었다. # 그러나 저 도청은 1997년 일이다. 김영삼 정부를 뺄래야 뺄 수가 없는 사건인데 그렇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허핑턴포스트 기자의 기사를 보면 문재인의 발언은 자신이 민정수석이라 국회를 움직일 순 없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보고 있으며, 삼성에 대한 처벌이 없었던 것은 문재인이 방해해서도, 노무현이 친 삼성성향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합의안 뒤집기와 사학법을 이유로 시작된 장외투쟁(국회에서 아예 나가버렸다) 및 당시 수사책임자였던 황교안의 수사방식이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1 #2

3.2. 참여정부, 삼성공화국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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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2일, 삼성 저격수로 유명한 박영선 의원이 참여정부와 문재인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하였다. 문재인이 대선주자로서 재벌들과의 만남을 갖으며, 참여정부 때의 실책을 반복하려 한다고 비판하였다.

심상정 의원 역시 "참여정부는 삼성연합정권"이라고 비판하였다. # 실제 참여정부는 삼성과 가장 친했던 정부로 불린다. 이해찬, 홍석현, 홍석조, 진대제, 이언오는 삼성출신으로 각각 국무총리, 주미대사, 법무부 요직, 정보통신부 장관, 국정원 요직에서 근무하였다.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역시 '삼성공화국'을 만들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명박 정권 당시 노무현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삼성과의 비리가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하나, 수사는 재계서열 600위권 밖의 태광실업에 대해 주로 이루어졌다. 삼성이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에게 뇌물을 줬다는 자수가 있었음에도( #), 삼성에 대한 수사를 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3.2.1. 변호론

노무현과 삼성이 서로 어떤 식이든 관계가 있었다면 삼성의 치명적인 약점인 지배구조를 건드리는 금산분리 정책을 부활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금산분리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결탁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기본적인 장치인데 삼성은 산업 계열사와 금융 계열사를 둘 다 가지고 있어 금산분리의 대상이 되는 유일한 재벌이다. 삼성은 계열사가 수십 개이지만, 기본 축은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두 개인데 불법, 편법으로 이루어진 지분상속구조하에서 금산분리정책을 준수하기 위해선 금융이나 산업쪽 주식 중 한쪽을 매각하며 지분 구조가 흔들리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외부에서 보면 삼성의 엄청난 반발을 부를 것이 틀림없는 위험한 시도였다.

3.3. 이학수법 미서명 논란

이학수법의 정식 명칭은 '특정재산 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으로 이재용·이부진·이서현 등 삼성가 삼남매가 삼성SDS(삼성에스디에스) 상장으로 얻은 부당한 시세차익을 국고로 환수하는 법안이다. #

박영선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으로 "범죄행위로 혜택을 본 사람의 재산 몰수도 가능해야 한다. 선진국에선 범죄수익 몰수는 소급 적용하고 있다. 삼성을 겨냥한 게 아니라 경제 질서를 바로 잡으려는 것이다"고 법의 취지를 밝혔다. 박영선, 주승용, 박지원, 안철수 등 여야의원 104명이 서명에 참여하였다. 특정인을 겨냥한 법안에 여야 국회의원 104명이 서명한 것은 아주 드문 일로 재벌의 잘못에 처벌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에 불참하여 논란이 되었다. 가뜩이나 참여정부와 삼성과의 관계에 대해 말이 많은 상황에서 논란이 되었다. 문재인은 전당대회를 치르기 전만 하더라도 '이학수법'에 서명할 의사가 있었으나,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서명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

시사오늘에서 전당대회 전후로 '이학수법'에 대한 공식 서면질의를 보낸 바 있으나 문재인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그의 보좌진들도 "나는 잘 모르는 일"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이학수법이 재벌 개혁에 정말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삼성을 10년 넘게 주야장천 비판해온 '삼성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교수는 경향신문에서 이학수법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가 있다. 이중처벌 및 소급입법에 대한 문제가 있고, 과잉집행되거나 과소집행될 문제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 물론, 문재인이 김상조와 같은 입장에서 이학수법이 실효성이 있는지 우려해서 해당 법 발의에 불서명한 것인지, 박영선 의원과 당시 사이가 좋지 않아 불서명한 것인지, 아니면 삼성을 옹호하고 싶어서 불서명한 것인지, 그것은 문재인 본인이 해당 사항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다.

4. 트위터 야동 이미지 업로드 논란

[ 모자이크 처리된 해당 이미지 (열람 주의) ]
파일:문재인근친물.png


2016년 9월 26일 새벽, 문재인이 트위터에 백남기의 추모를 한 후 몇 시간 만에 갑작스레 AV 표지가 업로드돼서 논란이 되었다. 게다가 해당 음란물이 누나와 동생 간의 근친을 다룬 내용이라서 더 충격을 주었다. 이 AV 표지는 이후 몇 분 만에 내려졌다. 이에 문재인 측에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해킹이다", "실수다"라는 등 여러 가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링크

참고로 해당 AV의 품번은 DISM-036이며 해당 AV의 주연 배우는 히토미 마도카다.


[1] 가끔 있는 "변호사마저 검사로 돌변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 규칙 때문이다. 변호할 여지가 아예 없는 경우에도 수임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당시 열린우리당 대변인실 부국장이었다. [3] 이는 "어느 지역에서든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라는 문재인의 발언과는 반대로, 결과적으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결과가 나왔다. 전국 16개 광역단체중 12개가 한나라당으로 갔고, 230개 기초단체중 155개가 한나라당으로 갔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광역자치단체 1개, 기초자치단체 19개의 참담한 성적을 냈다. [4] 이때 파업 때문에 해고된 46명의 철도 공무원들은 수 년 후 이철 철도공사 사장에 의해 복직될 뻔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5] 현실은 효율성 따위는 개도 못 물어갈 상황이 되었다. 여전히 시설공단은 시설공단대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고, 철도공사는 철도공사대로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애초에 철도청을 폐지한 목적은 부채 때문이 아니라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국가가 아닌 자가 철도사업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기는 하다. [6] 이 부분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정부가 철도공사라는 기업에게 철도운영을 이양한 것 자체가 철도민영화의 시작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실제로 영국의 철도민영화가 이런 과정을 통해 진행되었다. 게다가 시설은 시설공단에, 부채는 철도공사에 주는 어이없는 분할과정을 거쳤으니 철도청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7] 이때 합의한 내용에 없던 게 바로 고속철 건설 부채를 철도 공사에 이관한다는 것과 시설공단의 분리였다. 이는 수년 후 철도공사 사장을 지내던 이철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면하면서 부채 때문에 철도공사 운영이 어렵다고 하소연할 정도였다.(이는 입법화 과정에서 알려지고, 철도청 파업의 원인이 된다.) 그게 그럴 만도 한 게, 고속철 건설 부채는 부채대로 떠안고(당시 철도공사가 떠안은 고속철 건설부채만 4조 5천억이었다), 고속철 사용료(KTX 매출액의 31%다.)까지 시설공단에 내야 했으니 경영이 될래야 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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