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 3일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태어나 자랐다. 중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명문대학인 탈린 공과대학에서 수학할 정도로 엘리트였으나 축구를 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했다. 폼은 결혼하여 2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데, 첫째 마르쿠스 폼은 아일랜드의
샴록 로버스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에스토니아 대표로도 활약 중이다.
1988년 에스토니아의 플로라에서 데뷔한 마르트 폼은 1989년 구소련 리그의 스포르트 탈린에 입단했다. 그러다가 1992년
핀란드의 KuPS로 이적해 9경기에 출전했고, 1992년 중반 다시 에스토니아의 플로라로 돌아와 1년간 22경기에 출전했다. 1993년 7월 스위스 리그의 FC 윌로 이적해 13경기를 뛰었고, 1994년
EFL 챔피언십 소속이었던
포츠머스 FC로 이적했다. 그러나 주로 거기에서는 백업 자원으로 머물렀고, 1995년 다시 친정팀인 플로라로 임대되어 1시즌 반 동안 머무르며 19경기에 출전했고, 756분간 무실점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1997년 3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더비 카운티로 이적했다. 1997년 4월 5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시합에 선발출전해 선방쇼를 펼치며 팀의 3-2승리에 주요한 역할을 한 이래 더비 카운티 팬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으며, 1999-2000 시즌 더비 카운티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피터 슈마이켈의 은퇴 후 잠시동안 골키퍼난에 시달리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폼의 영입을 원하기도 했으나, 더비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잔류했다. 2003년까지 더비 카운티에서 뛰며 도합 247경기를 소화했고, 92회의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더비 카운티의 인기인으로 꼽히게 되었다.
더비 카운티 FC가 2001-02 시즌을 끝으로 강등되어
EFL 챔피언십에서 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더비에 잔류한 폼은 2002년 10월 주전 골키퍼였던
토마스 쇠렌센이 장기부상을 입은
프리미어 리그의
선덜랜드 AFC로 긴급임대되었다. 이어 2003년 1월 3m 파운드의 이적료에 선덜랜드로 완전이적했다. 그러나 2003년 선덜랜드도 강등되어 폼은 또다시 챔피언십에서 뛰게 되었다. 2003년 9월 20일 친정팀
더비 카운티와의 원정경기, 선덜랜드는 0-1로 끌려가고 있었고, 종료 직전 마지막 코너킥 기회를 갖게 되었다. 골키퍼였던 마르트 폼까지 동점골을 위해 나오게 되었는데 이 때 헤딩으로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했다. 비록 종료 직전에 허용한 동점골이었지만 한 때 팀의 레전드였던 골키퍼 마르트 폼의 득점에 더비 카운티 팬들도 환호했고, 영국 언론으로부터 "골키퍼에게서 나온 가장 아름다운 골"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4-05 시즌에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단 11경기에만 출전한 채 선덜랜드를 떠났다. 선덜랜드에서 총 56경기에 출전해 232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2005년 8월,
옌스 레만과
마누엘 알무니아를 백업하는 3번째 옵션 골키퍼로
아르센 벵거의
아스날 FC로 임대되었다. 2005-06 시즌에는 단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으나
UEFA 챔피언스 리그 25인 로스터 안에는 들었기 때문에 준우승 메달은 받았다. 2006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아스날로 완전 이적하였고, 2006년 11월 8일 열린
에버튼 FC와의 리그 컵 경기에서
마누엘 알무니아가 전반 종료 직전 부상으로 실려나가자 교체출전하여 아스날에서의 첫 데뷔전을 치렀다. 2006-07 시즌
포츠머스 FC와의 리그 마지막 경기[2]에 선발출전해 아스날에서의 첫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치렀고, 포츠머스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팀의 0-0 무승부에 일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