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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6:02:02

릭 루빈


파일:NME.png 선정 가장 위대한 음악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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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음악 잡지 NME가 2012년 " 50 Of The Greatest Producers Ever"를 선정한 순위다.
<rowcolor=#fff,#000> 1위 2위 3위 4위 5위
조 믹 조지 마틴 퀸시 존스 나일 로저스 필 스펙터
<rowcolor=#fff,#000> 6위 7위 8위 9위 10위
릭 루빈 브라이언 이노 브라이언 윌슨 부치 빅 닥터 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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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크레치 페리 아리프 말딘 팀발랜드 나이젤 고드리치 티 본 버닛
<rowcolor=#fff,#000>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넵튠스 스티픈 스트리트 토드 런그렌 다니엘 라누아 앤드루 웨더럴
<rowcolor=#fff,#000>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크리스 토마스 베이비페이스 짐 스타인먼 DJ 프리미어 존 레키
<rowcolor=#fff,#000>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테오 마세로 로버트 존 머트 랭 제이 딜라 베리 골디 샘 필립스
<rowcolor=#fff,#000>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톰 다우드 지미 로바인 데인저 마우스 비두 제프 린
<rowcolor=#fff,#000>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맥스 마틴 마크 론슨 프린스 트렌트 레즈너 스티비 릴리화이트
<rowcolor=#fff,#000>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트레버 혼 스티브 알비니 지미 밀러 제리 웩슬러 로이 토마스 베이커
<rowcolor=#fff,#000>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RZA 피트 록 조지 클린턴 폴 에버스 DJ 섀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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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NME 선정 500대 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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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Rick Rubin
파일:external/lub-cdn.com/10952617.jpg
본명 Frederick Jay Rubin
프레데릭 제이 루빈
별명 DJ Double R
the Loudness King
출생 1963년 3월 10일 ([age(1963-03-10)]세)
미국 뉴욕 롱비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거주지 캘리포니아 말리부[1]
신체 183cm
직업 프로듀서
활동 1981년~현재
장르 힙합, 얼터너티브 록, 헤비 메탈, 뉴 메탈, 컨트리
악기
학력 NYU (중퇴)
레이블 Def Jam Recordings[2]
American Recordings[3]
Columbia Records
Warner Records
파트너 Mourielle Hurtado Herrera(2010~)[4]
파일:external/hilobrow.com/rickrubin_nyt_mag_cov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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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프로듀싱한 앨범
3.1. 1980년대3.2. 1990년대3.3. 2000년대3.4. 2010년대
4. 비판5. 기타

1. 개요

릭 루빈은 미국 음반 프로듀서로, 미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프로듀서 중 하나로 꼽힌다.

오랫동안 상업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왔다. 먼저, 활동 초기인 1980년대 데프 잼 레코딩스를 설립하고 뉴스쿨 힙합 뮤지션들을 프로듀싱하며 힙합 음악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 덕분에 뉴스쿨 시기 힙합 음악은 드디어 메인스트림에 가까워진다.

1990년대부터는 아메리칸 레코딩스 설립을 통해 힙합뿐만 아니라 조니 캐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슬레이어,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등과의 장기 협업으로 계열의 컨트리, 펑크 록, 얼터너티브 록, 메탈 등으로까지 장르적 지평을 넓히며 그래미의 단골 손님이 된다. 외에도 닐 다이아몬드, ZZ TOP 같은 대원로 로커들의 2000년대 앨범들을 빌보드 순위권에 올리고 빌보드 주변에서 놀지도 못하던 가수들을 빌보드 200 안에 올린다는 점에서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인정받는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프로듀서로서 제너럴 필드를 무려 3회 수상했고 장르필드도 4번이나 수상하는 엽기적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 컨트리, 등 여러 장르로 수상하며 폭 넓은 범위를 보여주었다.[5]

상업성 뿐만 아니라 빌보드 앨범 차트 200 10위권 안에 올린 뮤지션만 봐도 수십명이며[6] 앨범으로 따지면 무려 40 장 이상이다. RIAA 플래티넘 앨범들 역시 부지기수인데다 특히 아델의 21은 2010년대 대중음악 앨범으로는 최초로 다이아몬드[7] 인증을 받았다.

2. 생애

뉴욕에서 태어나 펑크 록에 심취하여 학창시절 밴드 활동을 했으며 학업을 위해 맨해튼으로 이주해 NYU를 다니는 동안 힙합에 눈을 뜨게 되어 1984년 It’s your라는 싱글을 발매하는데, 이를 통해 프로모터이자 매니저로 활동하던 러셀 시몬스와 연줄이 닿아 대학교 기숙사에서 데프 잼 레코딩스를 설립하게 된다. LL Cool J의 성공을 시작으로 비스티 보이즈, 슬릭 릭 등의 곡을 프로듀싱하며 뉴스쿨 힙합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이 당시 미국 인구 대부분이자 주류층을 차지하던 백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의도적으로 락 요소를 도입했다고 한다.

1986년 Run-D.M.C.의 정규 3집 Raising Hell을 프로듀싱하는데, 이 앨범은 뉴스쿨 힙합의 상징으로 불리며 특히 싱글 Walk This Way는 흑인과 백인간, 힙합과 락간의 크로스오버에 성공하며 힙합이 드디어 메인스트림에 오르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즉 백인들에게도 이들의 음악이 통한 것.

같은 해 슬레이어의 정규 3집 Reign in Blood를 프로듀싱하며 이들과의 장기 협업을 시작한다. 슬레이어는 이 앨범으로 메인스트림에 진출했으며 80년대 대표 메탈 밴드로 자리잡게 된다.

1988년에는 Tougher than Leather라는 Run-D.M.C. 영화를 본인이 직접 연출하며 35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였지만 평론가들에게 악평을 받았다. 같은 해에 루빈은 데프 잼을 나온 뒤 LA로 이주해 데프 아메리칸 레코딩을 설립한다. 큰 점환점이 된 것인지 더 이상 힙합이 아닌 메탈같은 계열 음악에 몰두하게 된다.

아메리칸 레코딩스을 통해 1990년대부터 컨트리 레전드 조니 캐시, 훗날 얼터너티브 록계의 전설이 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는 매우 장기간동안 협업하며 상업성은 물론이고 특히 음악성에 있어서 평단에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레드 핫 칠리 페퍼와는 1991년 정규 5집 Blood Sugar Sex Magik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는데, 이 앨범 덕분에 레드 핫 칠리 페퍼는 단숨에 메인스트림에 오르게 되고 릭 루빈 또한 이 앨범 덕에 락 업계에서 제대로 인정 받으며 계속 이어질 장기 협업의 기반이 된다.

1993년에는 “데프“를 떼고 사명을 아메리칸 레코딩으로 바꾼다. 데프가 더 이상 길거리가 아닌 메인스트림에 진입했기에 본래 뜻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해서 뗀 것이라고 한다. 이후 1994년 앨범 American Recordings를 시작으로 조니 캐시와의 장기 협업을 이어나간다.

1996년 톰 페티의 정규 2집 Wildflowers 프로듀싱에 참여하여 첫 그래미 장르 필드 노미네이션에 성공한다. 최우수 랩 앨범이 199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는 릭 루빈이 힙합에서 벗어나 타 장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라 의외로 아카데미와는 연이 없었다.

1998년 조니 캐시가 루빈의 아메리칸 레코딩에서 발매하는 두 번째 앨범인 Unchained를 프로듀싱했고 최우수 컨트리 앨범을 수상하며 첫 그래미 수상에 성공한다.

같은 해 LA 뉴 메탈 밴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데뷔 앨범 System of a Down을 프로듀싱하며 장기 협업을 시작한다.

2000년 톰 페티의 Echo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정규 7집 Californication을 프로듀싱해 최우수 락 앨범에 두 장을 노미네이트 시킨다.

2001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의 정규 2집 Toxicity를 빌보드200 1위로 진입시키며 이들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2003년 조니 캐시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에 참여해 최우수 컨템포러리 포크 앨범에 노미네이션된다.

2005년 래퍼 제이지의 싱글 99 Problems에 참여로 최우수 랩 음악에 노미네이션된다.

2007년은 그래미의 주인공이 된 해다. 딕시 칙스가 발매한 두 장의 앨범에 참여하여 앨범상, 레코드상,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을 휩쓴 데 이어 레드 핫 칠리 페퍼스 9집으로 최우수 락 앨범까지 수상했다. 단일 시상식에서 무려 제너럴필드 2개와 장르필드 2개를 가져갔다.

이렇게 1990년대와 2000년대 수많은 뮤지션들의 곡을 프로듀싱했고 2007년에는 컬럼비아 레코즈의 수장이 되어 2012년까지 이끈다.

2012년 아델 21에 참여해 세 번째 제너럴 필드를 받아갔다. 뿐만 아니라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만 1,4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2010년대 최초의 RIAA 인증 다이아몬드 앨범에다 21세기 최다 판매 음반이기도 하다.

2021년 스트록스 정규 6집으로 최우수 락 앨범을 수상했다.

3. 프로듀싱한 앨범

3.1. 1980년대

3.2. 1990년대

3.3. 2000년대

2005.11.28 Oral Fixation Vol. 2 (샤키라 4집) : Billboard 200 5위

3.4. 2010년대

4. 비판

수 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냈으며 장르 또한 힙합부터 시작해 , 메탈, 컨트리 등 가리지 않고 성공시켜 그야말로 천재적인 프로듀싱 능력을 가졌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비판점 또한 존재한다.

먼저, 프로듀싱 과정에서 심하게 독단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슬립낫 코리 테일러는 분노에 가득 차서 ”거품이 잔뜩 끼어 있다. 다시는 그 양반이랑 작업 안한다.“ 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일명 ' 라우드니스 워' 현상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인해 수많은 리스너들과 스타일러스 매거진, 가디언 등의 잡지에게 비판받았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 Californication, 메탈리카 Death Magnetic, 블랙 사바스의 13 앨범 등이 이에 해당한다.[8]

5. 기타



[1] 뉴욕에서 살았으나 데프 잼에서 나온 뒤 1988년 LA로 이주했다. [2] 1984년 본인이 세운 힙합 & 알앤비 위주의 레이블 [3] 데프 잼을 떠나고 1988년에 세운 레이블로 락 음악을 메인으로 취급하고 있다. 초창기 사명은 Def American Recordings였다. [4] 배우 겸 모델 출신이라고 한다. [5] 힙합 부문은 80년대 말부터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터라 장르 필드 제정이 릭 루빈이 힙합에서 멀어진 9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의외로 힙합 장르로서는 그래미와 그닥 인연이 없다. [6] Run-D.M.C., 비스티 보이즈, 퍼블릭 에너미, LL Cool J,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슬레이어, AC/DC, 셰릴 크로우, 톰 페티, 시스템 오브 어 다운, 림프 비즈킷, 릴 존, 위저, 닐 다이아몬드, 샤키라, 딕시 칙스, 조니 캐시, 저스틴 팀버레이크, 린킨 파크, 메탈리카, 키드락, 조쉬 그로반, 아델, 에미넴 등이 있다. [7] 미국 내 1,000만 장 이상 판매 [8] 자세한 내용은 Death Magnetic 문서 참조 바람.